빠드득, 쩍.
쇠파이프 끝단이 운전석 유리창을 짓누를 때마다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깨진 틈새 사이로 눅눅한 밤공기와 함께 역한 담배 냄새가 밀려들었다.
"이봐, 강 피디. 좋게 말할 때 문 열고 나오지? 생방송 가다 사고라도 나면 아까운 애들 목숨만 날아가잖아."
험악하게 일그러진 덩치의 사내가 히죽거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쇠파이프와 몽둥이들이 블루프린트의 낡은 밴 차량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최준형이 보낸 사설 수거업자들.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업계의 사냥개들이었다.
뒷좌석에서 하진의 숨소리가 가빠지는 것이 들렸다. 과거 NHN에서 버림받았던 기억이 공포의 그림자가 되어 아이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지훈은 이를 악문 채 문고리를 잡으려 했다.
"형님, 내가 나가서 저 새끼들 대가리를—"
"가만히 있어, 지훈아."
태온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훈의 손을 제지했다. 태온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핸드폰 화면 위로 '흥행 경영 장부'의 실시간 데이터가 붉은빛을 뿜어내며 경고등을 켜고 있었다.
[위기 조우: NHN의 사설 물리력 개입] [해결 가치 수치: 배강두-NHN 미공개 후원 계약서 유효성 98%]
태온은 천천히 조수석 보관함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운전석 창문을 아주 조금, 사내의 손가락이 들어올 만큼만 내렸다.
"이게 뭔지 아나?"
서류의 첫 장, NHN 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직인과 함께 지훈의 전 소속 크루 리더인 '배강두'의 서명이 선명하게 찍힌 페이지가 유리에 밀착되었다. 사내의 눈동자가 서류의 내용을 훑는 순간 잘게 떨렸다.
"배강두가 지훈이를 노예 계약으로 묶어두는 대가로 NHN 최준형에게 매달 사설 후원금을 받아 챙긴 미공개 계약서 원본이다. 대기업이 사설 댄스 크루를 앞세워 미성년자 노동력을 착취하고 배임 행위를 저지른 증거지."
태온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게 언론사에 전송되는 순간, 너희를 고용한 최준형은 물론이고 배강두와 엮인 너희 업체 사장까지 전부 구속 수사 대상이다. 지금 당장 이 차에서 손 안 떼면, 1분 뒤에 국회 문방위 소속 의원실과 대검찰청에 이 파일이 다이렉트로 전송된다. 선택해라. 최준형의 푼돈을 지키려다 조직 통째로 쇠창살 뒤로 꺼질 텐가?"
사내들의 기세가 순식간에 꺾였다. 단순한 기획사 사장인 줄 알았던 태온이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흔들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사내들의 우두머리가 침을 퉤 뱉으며 쇠파이프를 내렸다.
"……철수해."
검은색 SUV 두 대가 요란한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어둠 속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상황은 정리되었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태온은 차에서 내려 오른쪽 앞바퀴를 살폈다. 예리한 칼날에 처참하게 찢겨 나간 타이어가 주저앉아 있었다. 휠까지 찌그러져 굴러갈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피디님, 어떡해요……? 여의도까지 가려면 30분도 안 남았는데……."
하진이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의도 방송국에서 진행될 게릴라 생방송 무대까지 남은 시간은 단 28분. 대중의 시선이 아레스의 표절 사태로 쏠려 있는 지금이 최준형의 카르텔을 무너뜨릴 유일한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었다.
태온은 지훈을 바라보았다.
"지훈아. 신촌에서 같이 구르던 애들 중에 오토바이 타는 녀석들 아직 연락되나?"
지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스트리트 크루 애들이요? 다들 배달대행이나 퀵서비스 뛰면서 밤에는 오토바이 탑니다. 지금 바로 부르면 5분 안에 성산동 골목 다 뒤엎고 올 수 있습니다!"
"불러라. 헬멧이랑 가죽재킷 확실히 챙겨오라고 해."
태온의 지시에 지훈이 즉각 전화를 걸어 고함을 질렀다.
"야! 한세민! 지금 당장 애들 풀 세팅으로 성산동 삼거리로 집합해! 블루프린트 목숨이 걸렸다!"
정확히 4분 뒤, 성산동 골목길의 정적을 깨뜨리는 거친 배기음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웅장한 엔진 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 불빛을 뿜어내며 대형 바이크 대여섯 대가 정렬했다. 가죽재킷을 입은 거친 청춘들이 헬멧을 벗어 던지며 지훈을 향해 씨긋 웃었다.
"지훈아, 가자! 여의도까지 칼치기로 15분 끊어준다!"
"하진아, 지훈아. 날 믿어라."
태온이 두 사람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비바람이 불든, 바퀴가 터지든 우리는 무대로 간다. 가서 증명하고 와."
"네, 피디님!"
하진과 지훈은 망설임 없이 가죽재킷을 껴입고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탔다. 헬멧의 쉴드가 내려앉는 순간,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밤비가 헬멧 표면을 두드렸다.
바이크들이 굉음을 지르며 마포대교를 향해 빗길을 찢고 달리기 시작했다.
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빗방울이 가죽재킷을 적시고 헬멧 너머로 들어와 뺨을 차갑게 식혔다. 하지만 뒷좌석에 앉은 하진의 가슴속은 오히려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어릴 적, NHN의 차가운 연습실 구석에서 "네 목소리는 이제 쓸모없다"는 폭언을 들으며 숨죽여 울던 기억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하진은 자신의 목에 새겨진 희미한 수술 흉터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성대 결절 수술의 실패 흔적. 모두가 끝났다고 했던 그 상처.
하지만 태온은 달랐다. 태온은 하진의 이 상처를 정확히 독해해 냈었다.
'하진아, 네 성대의 상처는 결함이 아니다. 고음 영역에서 공기가 그 흉터 틈새를 스치며 만들어내는 비정형적 하모닉스, 그건 이 세상 어떤 보컬도 흉내 낼 수 없는 너만의 유일무이한 무기야. 두려워하지 말고 목을 열어라.'
하진은 헬멧 속에서 조용히 아를 가다듬었다. 빗소리와 바람 소리 사이로, 자신의 목을 통해 울려 퍼지는 진동이 느껴졌다.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옆 차선에서 나란히 달리는 지훈의 바이크가 빗길을 시원하게 미끄러져 나갔다. 지훈 역시 헬멧 너머로 하진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두 아이는 빗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하나의 팀으로서 단단해지고 있었다.
동시에, 낡은 밴 차량에 홀로 남은 태온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그는 노트북을 켜고 크레센도의 한예주 본부장과 연결된 비밀 핫라인을 작동시켰다.
"한 본부장님, 준비한 레코드 파일을 지금 터뜨리십시오."
- "정말 괜찮겠어요, 강 피디님? 이 파일이 풀리면 NHN은 회생 불능입니다."
"그들이 자초한 일입니다. 남의 노력을 훔쳐 간 대가는 뼈아파야죠."
태온이 말한 레코드 파일은 바로 그가 회귀 직후 고의로 흘려두었던 '실패한 미래 히트곡 초안 레코드'였다. 최준형이 태온의 작업실을 도청하고 훔쳐 가 아레스의 타이틀곡으로 둔갑시켰던 바로 그 곡.
사실 그 곡은 미래에 해외 유명 작곡가의 미발매 데모곡과 뼈대가 일치하여, 발매 즉시 국제 저작권 분쟁에 휘말려 매장당할 운명을 지닌 '독이 든 성배'였다. 태온은 나비효과로 인해 변하는 미래를 예측하고, 최준형이 이를 덥석 물도록 일부러 초안을 방치했던 것이다.
몇 분 뒤, 대한민국 최대의 연예 커뮤니티와 뉴스 포털의 메인 화면이 뒤집어졌다.
[속보: NHN '아레스' 신곡, 스웨덴 유명 프로듀서 연대 무단 도용 판명… 국제 저작권 소송 피소] [충격: 표절의 원천은 전 NHN 프로듀서 강태온의 미완성 도난 포트폴리오로 밝혀져]
그와 동시에 여론은 또 하나의 실시간 중계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태온이 기획한 실시간 모바일 생중계 채널. 오토바이를 타고 빗길을 뚫으며 여의도 방송국으로 진격하는 하진과 지훈의 거친 호흡과 빗방울 맺힌 헬멧의 모습이 날것 그대로 송출되고 있었다.
- "와, 미쳤다. 진짜 오토바이 타고 방송국 가고 있어?!" - "대기업은 표절로 도망치고, 진짜 실력파들은 빗속을 뚫고 무대로 달리는구나." - "이게 진짜 드라마다. 블루프린트 제발 무사히 도착해라!"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실시간 오디션 다큐멘터리에 대중은 열광했고, 접속자 수는 순식간에 수십만 명을 돌파하며 폭발했다.
여의도 방송국 예능본부 대기실 안.
최준형은 초조하게 담배를 피워대며 핸드폰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아레스의 표절 소송 속보가 포털을 도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왜 해외 원작자가 즉각 반응을 하느냐고!"
최준형이 소리를 지르며 재떨이를 내던졌다. 옆에 서 있던 방송사 담당 PD 역시 식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최 이사님, 이러다 저희 방송사까지 표절 옹호 채널로 찍히게 생겼습니다. 게다가 지금 인터넷 보십시오. 블루프린트 그 애송이들이 오토바이 타고 여기로 오고 있답니다. 여론이 완전히 뒤집혔어요!"
"입 닥쳐! 방송 시작까지 이제 3분 남았어! 바퀴를 찢어놨으니 절대로 제시간에 못 와! 무대는 펑크 나고, 블루프린트는 방송 사고의 주범으로 매장당할 거다!"
최준형이 광기 어린 눈빛으로 소리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대기실의 두꺼운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려 젖혀졌다.
문틈 사이로 자욱한 빗물 안개와 함께, 가죽재킷을 걸친 두 명의 형상이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머리카락은 땀과 빗물에 젖어 뺨에 달라붙어 있었고, 가슴은 격렬한 질주로 인해 크게 들썩이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단단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진과 지훈이었다.
"……늦지 않았지, 최준형 이사님?"
지훈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가죽 장갑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하진 역시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최준형과 담당 PD를 정면으로 주시했다.
최준형의 얼굴이 공포와 경악으로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너, 너희들이 어떻게……!"
땀범벅이 된 채 생사의 경계를 넘어 무대 바로 직전까지 당도한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거대한 폭풍과도 같았다.
기적 같은 생환에 대기실의 정적이 흐르던 그때, 구두 굽 소리와 함께 예능국의 절대 권력자이자 고위 의사결정권자인 예능본부장이 뒷짐을 진 채 대기실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땀에 젖은 하진과 지훈을 위아래로 훑었다.
본부장은 시계를 툭툭 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눈물겨운 쇼는 잘 봤는데 말이야. 여기는 장난치러 오는 놀이터가 아니거든. 생방송 큐시트는 이미 확정됐고, 너희 같은 신생 나부랭이들 때문에 방송 사고를 낼 수는 없지."
본부장이 최준형에게 슬쩍 눈짓을 건네며 차갑게 뱉어냈다.
"좋아, 무대에는 올려주지. 대신 딱 '90초' 준다.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그 시간 지나면 무조건 마이크 꺼버릴 테니까 억울하면 나가든가."
90초.
완성된 곡의 1절조차 제대로 부를 수 없는, 사실상 무대 위에서 조롱거리로 만들겠다는 노골적인 사형 선고였다. 최준형의 입가에 다시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