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우우웅!
쇠와 쇠가 격돌하는 파열음이 13칸의 폐쇄된 대기를 찢었다.
충격파가 바닥을 타고 올라와 발끝을 흔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채 흐릿하게 빛을 내뿜던 가스등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배관 틈새로 붉은 녹가루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강철 격벽의 중앙부가 안쪽으로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쩌적, 쩌저적!
두께 20센티미터에 달하는 무거운 입구 격벽 표면에 거대한 가로형 거미줄 무늬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장갑판의 이음매를 고정하던 볼트 대가리들이 엄청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툭, 투둑! 떨어진 볼트가 바닥의 철판을 때리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
"으아아악! 벽이, 벽이 무너진다!"
뒤쪽에 모여 있던 영민 하나가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도화선이 되어 순식간에 공포를 전염시켰다. 사람들은 무기를 쥔 손을 덜덜 떨며 뒤쪽 구획으로 한 걸음씩 물러섰다.
하지만 카일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찌그러진 철벽 앞에 서서 회색 메모 패드를 굳게 쥔 채 숫자를 적어 내려갔다.
'1차 충격량, 대략 12톤. 증기 실린더의 압축비가 예상보다 높군.'
카일의 시선은 균열의 틈새로 흘러나오는 뜨거운 증기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공포도, 분노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파괴 현상을 수치로 환산하려는 냉혹한 지성만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치이이이이익!
갈라진 격벽의 틈새로 고압의 백색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증기는 차가운 13칸의 공기와 만나 순식간에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냈다. 그 안개 너머로, 기괴한 형체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쿵. 쿵.
둔탁한 발걸음 소리. 그것은 인간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스팀 실린더가 장착된 기갑 의족이 철판을 짓밟는 기계음이었다. 안개 속에서 걸어 나오는 자들의 신체는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었다. 팔뚝 대신 육중한 회전 톱날을 이식했거나, 가슴팍에 증기 배출구를 달아놓은 고르곤의 정예 부대원들이었다.
"히익...!"
카일의 바로 뒤편에서 짧은 신음이 터졌다.
레나였다. 그녀는 복구용 스패너를 가슴에 꼭 안은 채, 이빨을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광기로 가득 찬 침략자들의 비주얼은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공포가 아니었다.
그녀의 몸이 통제력을 잃고 바르르 떨렸다. 본능적인 생존 위협을 느낀 레나의 손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왼쪽 발목으로 향했다.
카일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곁눈질만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레나의 양말 목 부분에 작게 튀어나온 실루엣이 있었다. 검은색 소형 금속 실린더. 그것은 그녀가 최후의 순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몰래 숨겨둔 안구 파괴용 극독 스프레이였다.
그녀는 카일의 눈을 피해 그것을 소지하고 있었다. 만약 카일이 자신을 미끼로 던지거나 버릴 경우, 최후의 저항 수단으로 삼으려 했음이 분명했다.
레나의 눈동자가 카일의 차가운 옆얼굴과 마주쳤다. 그녀의 호흡이 턱 막혔다. 규칙을 어긴 자에게 내려지는 카일의 처벌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다. 그녀는 즉시 손을 거두려 했다.
그러나 카일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눈길을 돌려 다시 격벽의 대치선 쪽을 바라보았다.
'쓸모가 있겠지.'
카일의 뇌는 차갑게 계산을 끝마쳤다. 그녀가 독 스프레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수가 아니다. 오히려 고르곤의 돌발적인 침투 상황에서 유용한 살상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철저한 도구화. 그것이 카일이 영민을 지배하는 방식이었다. 카일의 묵인을 눈치챈 레나의 눈에 안도와 함께 기묘한 굴종의 빛이 서렸다.
"놈들이 들어온다! 전원 사격 준비!"
요한이 사제 소총을 치켜들며 외쳤다. 영민들이 조잡하게 개조한 가스압 소총의 총구를 겨누었다.
철벽의 틈새를 억지로 벌리며, 가장 선두에 선 고르곤의 거구 부대원이 상체를 밀어 넣었다. 그의 얼굴은 가죽 가면으로 덮여 있었고, 오른팔은 거대한 유압식 집게로 개조되어 있었다.
"흐하하하! 쥐새끼들이 여기 다 모여 있군!"
거구가 광소를 터뜨리며 격벽 사이로 진입하려 했다. 그의 거대한 발이 바닥의 유압판을 밟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가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통로가 있었다. 카일이 미리 촘촘하게 얽어놓은 구리 전선 지대였다.
"지금이다."
카일이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손가락 끝으로 벽면의 수동 레버를 아래로 꺾었다.
철컥!
순간, 13칸 발전기실에서 끌어올린 고압의 전류가 구리 전선을 타고 해일처럼 밀려 나갔다.
치지직! 파지직!
푸른색 광선이 어두운 통로를 대낮처럼 밝혔다. 격벽 사이에 몸을 끼워 넣고 있던 첫 번째 침격자의 유압식 집게팔에 강력한 전기 스파크가 튀었다.
"아... 아아아악!"
철제 의수와 장갑복은 전류를 체내로 전달하는 완벽한 도체였다. 고압의 전류는 순식간에 그의 전신을 관통했다.
지독한 소음과 함께 그의 몸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선에 닿은 다른 부대원들의 몸에도 일제히 푸른 불꽃이 휘감겼다. 고압 전기 장치는 적들의 철제 갑옷을 거대한 전열기구로 탈바꿈시켰다.
치이이익!
단백질이 타들어 가는 노린내와 가죽 가면에 불이 붙는 냄새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거구의 침격자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격렬하게 경련했다. 전선에 달라붙은 채 온몸의 근육이 수축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우, 우욱...!"
뒤에서 지켜보던 영민 몇 명이 구역질을 하며 입을 막았다.
전류의 세기는 카일이 의도적으로 증폭시킨 결과였다. 초자연적인 전도율을 자랑하는 강화 구리 코일은 적들의 단단한 장갑차 내부까지 전류를 침투시켰다.
화르륵!
마침내 고열을 견디지 못한 적들의 무장과 살점이 한데 엉겨 붙으며 불길이 치솟았다. 거대했던 침략자 세 명이 그 자리에서 새카만 숯덩이로 변해가며 녹아내렸다. 그들의 무거운 기계 의족이 열기에 녹아 바닥 철판에 눌어붙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강렬한 시각적 도살극이었다.
공포에 질려 있던 영민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들을 몰살할 것 같던 괴물들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타 죽는 모습을 본 것이다. 요한조차 방아쇠를 당기려던 손을 멈추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카일의 몫이었다.
[살인 대장(Ledger of Homicide)이 갱신됩니다.] [사망자: 고르곤 정예 돌격병 3명.] [획득 비용: 150 DP]
머릿속에서 차가운 양가죽 대장의 책장이 거칠게 넘어가는 환청이 들렸다.
동시에,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적 파동이 카일의 전두엽을 직격했다.
"윽..."
카일의 미간이 깊게 찌그러졌다.
전류가 몸을 관통할 때 육체가 찢어지는 고통.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되며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광기. 피부가 열기에 녹아내리며 뼈가 드러나는 극렬한 열성이 그의 뇌세포 하나하나에 직접 주사되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입안에서 비린 침이 고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 안에서 무언가 소중한 것이 떨어져 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온각(溫覺)이군.'
카일은 조용히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피어오르는 불길의 뜨거움도, 뺨을 스치는 차가운 증기의 온도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피부는 이제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완전한 불감의 영역으로 떨어졌다. 미각에 이어, 온각마저 살인 대장의 제물로 바쳐진 것이다.
하지만 카일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감각의 상실은 생존이라는 거대한 목적에 비하면 사소한 기회비용에 불과했다.
"적들의 선발대가 전멸했다!"
요한이 정신을 차리고 영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카일 님의 함정이 통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영민들의 눈에 광적인 흥분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카일의 잔혹한 수단을 경멸하면서도, 그 수단이 가져다주는 확실한 안전에 복종하고 있었다. 지독 가스라이팅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카일의 계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쿠우우우웅!
다시 한번, 격벽 너머에서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울림이 발생했다.
증기 전차의 메인 엔진이 한계까지 출력을 끌어올리는 소리였다. 슈우우욱! 엄청난 양의 검은 매연이 통로를 가득 채웠다.
쿵!
2차 추진이었다. 전차의 전면에 장착된 거대한 정면 돌격용 강철 드릴이 회전하며 격벽의 중심부를 그대로 관통했다.
콰과광!
엄청난 충격에 격벽을 지지하고 있던 거대한 좌우 철제 지지대가 굉음과 함께 부러져 나갔다. 지지대가 튕겨 나가며 바닥의 유압 라인을 건드렸다. 푸쉭! 붉은 작동유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안 돼! 지지대가 부러지면 방어선이 무너진다!"
요한이 소리치며 전방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부러진 지지대 파편을 어떻게든 고정하기 위해, 그리고 뒤이어 밀고 들어올 진짜 본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사지로 밀어 넣었다. 영민들을 규합하려는 그의 이성적이지 못한 의협심이 다시 한번 발동한 것이다.
카일은 그 모습을 보며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
'멍청하군. 하지만 좋은 미끼가 되겠어.'
격벽이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의 찰나, 어둠 너머에서 고르곤의 거대한 본대의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쿠르르릉!
붕괴하는 격벽 사이로 거대한 쇳덩어리가 밀고 들어왔다. 전차 전면에 장착된 강철 드릴이 불꽃을 튀기며 회전했다. 고압 증기가 드릴 틈새로 뿜어져 나와 사방을 하얗게 가로막았다.
"밀어라! 버텨야 산다!"
요한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의 두 손이 뜨겁게 달아오른 철제 지지대를 움켜쥐었다. 치이익, 살가죽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카일은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응시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뗐을 열기였다. 하지만 요한은 이빨이 깨질 정도로 악물고 버텼다. 그의 헌신에 자극받은 영민 세 명이 추가로 달려들었다. 그들 역시 붉게 달아오른 강철을 함께 붙잡고 몸으로 지탱했다.
'비합리적인 행동이군.'
카일은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저들이 몸으로 격벽을 지탱하는 시간은 길어야 40초에 불과하다. 인간의 근섬유는 금속과 증기의 압력을 이겨낼 수 없다. 결국 뼈가 으스러지고 짓눌릴 뿐이다.
하지만 그 40초는 카일에게 완벽한 기회였다.
"레나."
카일이 나직하게 불렀다.
제자리에서 얼어붙어 있던 레나가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극도의 공포로 흔들리고 있었다.
"저쪽 배관으로 가."
카일은 턱끝으로 벽면 구석에 위치한 유압 제어 장치를 가리켰다.
"메인 실린더의 압력 밸브를 수동으로 고정해라. 역류가 시작될 때까지 절대로 손을 떼지 마."
"하, 하지만 거기 있으면... 놈들의 사선에 노출됩니다!"
레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녀의 손이 다시금 발목의 독 스프레이 쪽으로 움찔거렸다.
카일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차갑고 건조한 시선이 그녀의 뺨을 찔렀다.
"선택해라. 미끼가 될지, 도구가 될지."
그녀는 카일이 자신을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독 스프레이를 쥐고 있어 봐야, 카일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 그녀의 전신을 지배했다.
레나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제어 장치를 향해 달렸다. 그녀의 손톱이 철제 커버를 거칠게 긁으며 밸브를 붙잡았다.
그 순간, 격벽의 틈새가 완전히 벌어졌다.
콰아아앙!
강철 드릴이 회전을 멈추며 13칸 내부로 완전히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틈새를 뚫고, 기괴한 형체의 거구가 안개 속에서 걸어 나왔다.
고르곤의 부두목 중 하나인 '도끼잡이 바르그'였다.
그의 양팔은 인간의 뼈 대신 두꺼운 증기 구동 실린더와 거대한 도끼날로 대체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을 덮은 철제 마스크 틈새로 붉은 안광이 번들거렸다.
"하하하! 벌레 같은 놈들이 떼거지로 몰려 있구나!"
바르그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전진했다. 그의 육중한 기계 의족이 바닥 철판을 밟을 때마다 쿵, 쿵 하는 진동이 울렸다.
그의 발 아래는 정확히 카일이 설계한 유압식 압착 가시 트랩의 격발 구역이었다.
증기 전차의 무게와 바르그의 중량이 더해지며, 바닥의 유압판이 미세하게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익!
레나가 붙잡고 있는 배수 밸브에서 고압의 작동유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압력계의 바늘이 붉은색 한계선을 넘어 터질 듯이 진동했다.
"카, 카일 님! 압력이 너무 높습니다! 지금 격발하지 않으면 실린더 자체가 폭발합니다!"
레나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손가락 끝은 이미 마찰열과 오일 누출로 인해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카일은 레버를 당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트랩의 격발 범위. 그 붉은 선 안에는 고르곤의 부대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격벽을 몸으로 지탱하고 있는 요한과 세 명의 영민 역시 정확히 그 범위 안에 서 있었다.
지금 레버를 당기면 바닥에서 솟구칠 수십 개의 강철 가시가 적들을 관통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요한과 영민들의 몸 역시 아래에서부터 꿰뚫어 천장에 박아버릴 것이다.
"카일!"
지지대를 붙잡은 채 피를 흘리던 요한이 고개를 돌려 카일을 바라보았다.
요한의 눈빛에 담긴 것은 원망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카일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직감하고 있었다. 카일의 손이 메인 격발 레버 위에 얹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직 여기 있다! 멈춰...!"
요한의 절규는 쇠가 긁히는 소음에 묻혔다.
바르그가 거대한 도끼를 치켜들었다. 그의 실린더가 증기를 뿜어내며 요한의 머리를 향해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지금 격발하지 않으면 요한 일행은 도끼에 쪼개질 것이고, 적들의 본대는 13칸의 내부 방어선까지 단숨에 돌파할 것이다. 하지만 격발하는 순간, 아군은 적들과 함께 고기반죽이 된다.
영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카일의 손끝으로 쏠렸다. 공포와 불신, 그리고 처절한 생존의 갈망이 뒤섞인 눈빛들이었다.
카일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차가운 쇠레버를 움켜쥐었다. 그의 마비된 감각 속에서, 오직 기계적인 냉혹함만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아래를 향해 힘을 주었다.
딸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