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울렸다. 진동은 척추를 타고 올라와 머릿속을 흔들었다. 방금 전까지 날뛰던 정찰대 부대장의 기갑 슈트 잔해에서 여전히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방에 흩어진 살점과 쇳조각들 사이로, 부러진 안테나가 달린 무전기가 뒹굴었다.
치지직, 치직.
피로 얼룩진 금속 스피커에서 거친 기계 호흡음이 흘러나왔다. 인간의 성대라기보다는 쇠를 가는 듯한 인공적인 음색이었다.
[...카일... 에버하르트...]
도살자 고르곤의 목소리였다. 연결 칸 전체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내 개들을 꽤 그럴듯하게 도살했더군. 하지만 거기까지다. 네놈이 만든 장난감 덫 따위는 내 증기 전차의 궤도 아래에서 고철더미가 될 것이다. 13칸의 모든 인간 가죽을 벗겨 내 전차의 장식으로 쓰마. 목을 씻고 기다려라.]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살의는 둔탁하고 무거웠다. 레나와 요한, 그리고 뒤편에 웅크리고 있던 영민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의 호흡이 가빠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구두 앞굽으로 뒹굴던 무전기를 지시 없이 밟았다.
콰직.
플라스틱과 기판이 한데 으깨지며 소음이 뚝 끊겼다. 카일은 구두창에 묻은 핏자국을 털어내지도 않은 채, 허공에 떠오른 살인 대장(Ledger of Homicide)의 붉은 텍스트를 응시했다.
[정찰대 부대장 처단 완료. 획득 데스 포인트(DP): 1,200] [살인의 기록이 누적됩니다.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순간, 뇌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카일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부대장이 죽기 직전 느꼈던, 폐가 짓눌리고 뼈가 바스러지는 감각이 그의 신경망을 타고 그대로 주입되었다. 머릿속이 붉은 광기로 물들었다.
카일은 턱에 힘을 주어 이를 악물었다.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차가운 땀 한 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 고통의 대가는 그의 감각을 하나씩 앗아갔다. 입안을 맴도는 침에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각은 이미 완전히 소실되었다. 온각 역시 희미해져, 손끝에 닿는 강철의 냉기가 그저 둔탁한 감각으로만 전해졌다.
그는 감정을 배제했다. 소실된 감각 대신 손에 쥔 것은 힘이었다.
카일은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가볍게 휘저었다. 화면을 누르듯 차가운 궤적을 그리자, 1,200의 DP 중 800이 순식간에 차감되었다.
웅웅웅.
공기가 공명하는 소리와 함께 제13연결 칸의 전방 출입문이 붉게 달아올랐다. 방폭 철문 표면에 미세한 구리선 같은 회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철판의 분자 구조가 재배열되며, 고압의 전류를 유도하는 아크 코일이 겹겹이 도금되었다.
"이, 이게 무슨..."
요한이 숨을 들이쉬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렸다. 인간의 기술로 불가능한 기적이 그의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카일은 벽면으로 걸어갔다. 주머니에서 분필 한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방금 강화된 철문 옆의 콘크리트 벽면에 거침없이 선을 긋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일정한 박자로 분필이 깎여 나갔다.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과 수식, 그리고 전력의 흐름을 통제하는 물리 배선도가 벽면에 그려졌다. 침략자가 문을 열려 하거나 물리적인 타격을 가하는 순간, 저장된 고압 전류가 전방 2미터 이내의 모든 전도체를 태워버릴 아크 방전 트랩의 계산식이었다.
적들이 당장이라도 철문을 부수고 들어올지도 모르는 전야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카일의 손끝은 단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선을 그려나갔다.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도, 분노도 없었다. 오직 완벽한 통제와 생존을 향한 계산만이 존재했다.
그 압도적인 침묵과 이성이 영민들을 내리눌렀다. 요한조차 그 기괴한 엄숙함에 기가 눌려 입을 열지 못했다. 카일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지배력이 연결 칸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때, 레나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기어 카일의 발끝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카, 카일 님..."
카일은 분필을 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벽면에 정교한 각도를 표시하며 차갑게 흘려보냈다.
"말해라."
"고르곤의... 고르곤 본대의 기갑 장갑에 대해 알고 있어요."
레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는 카일이 쓸모없는 도구를 어떻게 처분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가치를 쥐어짜 내야 했다.
"그들의 슈트는... 전면부 장갑이 30밀리미터가 넘어요. 일반적인 소총탄이나 가벼운 덫으로는 이빨도 안 들어가요. 하지만..."
레나가 침을 삼켰다.
"증기 압력을 조절하는 배기 밸브와 하부 유압 실린더 이음매는 다릅니다.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 부분은 장갑을 얇게 대거나 아예 노출해 둬요. 특히 고압 증기가 차오를 때 배기 배출구를 강제로 막아버리면, 역류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관절 내부가 폭발하게 되어 있어요."
카일은 그제야 분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무감각한 눈동자가 레나를 꿰뚫어 보았다. 레나는 그 시선에 숨이 막히는 듯 목을 움츠렸다.
"배기 밸브의 위치는?"
"지면에서 약 40센티미터 높이, 장갑 우측 하단입니다. 전차가 돌격할 때 먼지를 막기 위해 얇은 철망으로만 덮여 있어요."
"쓸만한 정보군."
카일이 다시 벽면으로 돌아서며 선을 그었다.
"요한."
뒤에서 침묵을 지키던 요한이 어깨를 흠칫 떨며 반응했다.
"불러라. 13칸의 모든 생존자를."
카일의 명령은 단호했다. 요한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들은 방금 전 전투로 지쳤소. 다친 이들도 많고, 정신적으로 한계요. 조금이라도 쉬게 해야..."
"그럼 그냥 죽어라."
카일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
"내 뒤에 서는 대가는 절대적인 복종이라 했을 텐데. 내 계산에 휴식이라는 변수는 없다. 3분 주겠다. 움직이지 않는 자는 즉시 철문 밖으로 던진다."
요한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카일의 눈에 서린 잔혹한 확신을 본 순간, 그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 괴물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대기하고 있는 것은 고르곤의 도살 창날뿐이었다.
잠시 후, 13칸의 영민들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중앙 광장에 모여들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극도의 피로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카일은 그들 앞에 서서 한 명 한 명의 상태를 관찰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영민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남은 체력, 근력, 그리고 미끼로서의 효율성으로 환산되는 '자원'에 불과했다.
"노동 가능 인원 42명. 부상자 8명."
카일의 목소리가 텅 빈 철제 벽면에 반사되어 울렸다.
"지금부터 전방 차단벽 보강 작업을 시작한다. 열차 바닥에서 뜯어낸 모든 철판과 지지대를 전방 격벽에 용접해 덧댄다. 기한은 정확히 3시간이다."
"3시간이라니요! 그 많은 철판을 뜯어내고 용접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한 청년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카일은 청년에게 다가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청년의 코앞에 멈춰 선 카일이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청년의 이마에 들이댔다.
철컥.
"불가능하다면, 네놈의 쓸모는 여기서 끝이다."
"카, 카일!"
요한이 다급히 제지하려 했으나, 카일의 차가운 눈빛에 가로막혔다.
"나는 살기 위해 계산을 한다. 내 계산에 협조하지 않는 자는 요새에 있을 자격이 없다. 노역을 하다 쓰러져 죽든, 지금 머리에 구멍이 나든 선택해라. 10초 주지."
청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죽음의 공포가 그를 완전히 압도했다. 청년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하,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움직여라."
카일이 총을 거두며 차갑게 지시했다.
영민들은 비틀거리며 철판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용접 불꽃이 어두운 열차 칸을 간헐적으로 비추었다. 쇠비린내와 탄내가 가득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절망적인 노역에 매달렸다. 체력이 바닥난 이들이 쓰러질 때마다, 카일의 차가운 시선이 그들을 채찍질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독려했다. 낙오자가 되어 미끼로 던져지지 않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인간성이 지워진, 철저한 통제와 공포의 경영이었다.
카일은 그 아수라장을 뒤로하고 열차의 가장 어두운 하부 통로로 내려갔다.
차가운 철제 계단을 내려가자, 열차 바닥의 유압 파이프라인들이 얽혀 있는 지하실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바닥에는 녹슨 물과 기름이 흥건했다.
카일은 벽면에 설치된 하부 배수 밸브 앞에 섰다.
이것은 2화에서 그가 격렬한 침입에 대비해 인위적으로 조작해 둔 장치였다. 밸브의 고정 나사는 헐겁게 풀려 있어, 약간의 충격이나 압력 변화만으로도 유압이 역류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카일은 공구 가방에서 렌치를 꺼내 헐거운 나사를 완전히 돌려 빼냈다.
스으으으...
밸브 틈새로 고압의 유압 오일이 미세하게 뿜어져 나왔다. 카일은 온각을 잃어 그 기름의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지만, 눈으로 확인되는 압력계의 수치는 정확했다.
"레나가 말한 기갑 장갑의 약점."
카일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는 헐거워진 밸브의 출구를 바닥에 매설된 유압식 압착 가시 트랩의 메인 실린더와 연결했다. 고르곤의 무거운 증기 전차나 기갑병들이 이 구역을 밟는 순간, 비정상적으로 누적된 유압이 역류하여 배수 밸브를 폭발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폭발적인 압력은 바닥의 날카로운 강철 가시들을 초속 수십 미터의 속도로 뿜어내어 적들의 취약한 하부 배기 밸브를 정확히 꿰뚫게 된다.
완벽한 연쇄 반응의 설계였다. 2화에 심어둔 헐거운 밸브 복선이, 고르곤의 전면 침공을 무력화할 치명적인 덫으로 화하는 순간이었다.
딸깍.
마지막 기폭 핀을 고정하는 소리가 지하 통로에 작게 울렸다.
카일은 손에 묻은 검은 그리스를 대충 옷에 문질러 닦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방어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상부 칸으로 올라왔다.
영민들은 피땀을 흘리며 방벽 보강을 거의 마무리 짓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카일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동시에 이 요새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기묘한 맹신이 공존하고 있었다.
카일은 벽면에 그려진 배선도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그의 통제 하에 있었다.
그때였다.
쿠우우웅...!
열차의 맨 끝자락, 제14칸과 이어지는 연결 통로 방향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단순한 포격이 아니었다. 거대한 강철 괴수가 궤도 위를 질주하며 질러대는 비명이었다.
치이이이이익!
고압의 증기가 배출되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왔다. 뒤이어 둔탁하고 규칙적으로 바닥을 때리는 금속성 실린더 구동음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쿵! 쿵! 쿵! 쿵!
거대한 피스톤이 움직이며 엄청난 질량의 증기 전차가 13칸의 철벽을 향해 고속으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충격파로 인해 천장에서 먼지와 녹가루가 비처럼 쏟아졌다.
"놈들이... 놈들이 옵니다!"
요한이 소리치며 무기를 움켜쥐었다. 영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숨었다.
하지만 카일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강철 벽에 기대어 서서,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파괴의 소리를 조용히 경청했다.
어둠이 내린 열차 통로 저편에서, 붉은 증기 불빛이 서서히 대기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13칸의 철벽을 통째로 우그러뜨릴 거대한 파멸이, 마침내 그들의 코앞까지 도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