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대 부대장이 바닥에 흘러내린 기름을 밟고 분노 가득한 기함과 함께 거대한 도끼를 드는 순간이었다.
그의 가슴팍에 달린 증기 엔진 보일러가 벌겋게 과열되며 비명 같은 고주파음을 내뿜었다. 3초. 그 짧은 시간 안에 보일러는 폭발할 것이고, 이 좁은 연결 칸은 무너져 내릴 터였다.
카일의 오른손은 마비되어 있었다. 살인 대장이 주입한 정신 파동의 여파였다.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찰나, 부대장의 도끼가 카일의 정수리를 향해 매섭게 호선을 그리며 하강했다.
피할 곳은 없었다.
카일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부대장의 발밑, 더 정확히는 바닥 철판 틈새에 고정되어 있었다.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발을 쓰면 그만이었다.
카일은 몸을 비틀어 도끼의 궤적에서 반 보 물러섰다. 묵직한 도끼날이 그의 뺨을 스치며 허공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카일은 오른발 끝에 힘을 실었다. 지표면에 바짝 붙어 있는 유압 압착 기물의 수동 제어 레버를 정확히 짓밟았다.
철컥.
묵직한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가 바닥 밑바닥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부대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도끼를 내리치느라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 그의 발밑에서,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대지에 심어둔 덫이 깨어날 시간이었다.
카일은 지난 2화에서 이 구역의 하부 배수 밸브 나사를 인위적으로 헐겁게 조작해 두었다. 레나조차 단순한 정비 불량으로 생각하고 넘겼던 미세한 유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오차였다.
배수 밸브의 나사가 헐겁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틈새를 통해 유압 계통의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누출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카일이 레버를 밟아 그 누출구를 강제로 차단하는 순간, 갇혀 있던 유압은 갈 곳을 잃고 폭발적인 압력 편차를 일으키게 된다.
슈우우우욱!
찢어지는 듯한 증기 배출음이 터져 나왔.
헐겁게 조여져 있던 배수 밸브 고정 핀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그 순간, 배관 내부에 고여 있던 초고압의 유압 오일이 한 방향으로 쏠리며 가시 구동 장치를 미친 듯이 밀어 올렸다.
서서히 솟구쳐야 할 유압 압착 가시들이, 제어력을 상실한 초고압에 밀려 탄환처럼 사출되었다.
푸하학!
바닥을 뚫고 솟구친 강철 가시 세 자루가 부대장의 허벅지와 옆구리를 그대로 관통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궤도를 이탈한 압력은 주변에 쓰러져 있던 척후병들의 시체와 반쯤 살아 숨 쉬던 잔당들의 신체까지 사정없이 꿰뚫었다.
"끄아아아악!"
부대장의 비명이 연결 칸의 쇠벽을 울렸다.
솟구친 가시들은 그들의 몸을 꿰뚫은 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고압 유압의 반동으로 인해 가시 끝에 매달린 신체들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 순간 부대장의 가슴팍에 달린 보일러 엔진의 압력 바늘이 임계점을 넘어섰다.
쾅!
굉음과 함께 부대장의 기갑 슈트가 폭발했다. 하지만 그 폭발력은 사방으로 퍼지지 못했다. 헐거운 밸브 덕분에 비정상적으로 높게 솟구친 강철 가시들이 방패막이 되어 폭발의 충격을 위쪽 천장으로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튀는 것은 쇳조각과 붉은 선혈, 그리고 갈기갈기 찢긴 살점뿐이었다.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렸다.
카일은 얼굴에 튀는 뜨거운 핏방울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기계적인 정확도로 눈앞의 살육 현장을 관찰하고 있었다.
[살인 대장(Ledger of Homicide)이 침입자들의 완전한 죽음을 기록합니다.]
[데스 포인트(DP) 200 획득.]
머릿속에서 차가운 영혼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폭사한 부대장과 척후병들이 마지막 순간에 느낀 고통이 카일의 신경망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온몸의 가죽이 벗겨지는 듯한 화상. 뼈가 으스러지며 장기가 터져 나가는 압착의 공포.
카일은 어금니를 지긋이 깨물었다. 신음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왼쪽 눈에서 흘러내린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끝에서 툭, 떨어졌다.
[대가 지불로 인해 온각(溫覺)의 소실이 완료됩니다.]
뇌리를 때리는 이명이 잦아들자, 기묘한 고요가 찾아왔다.
카일은 천천히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마비는 풀려 있었다.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해보았다. 움직임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피의 뜨거움도, 연결 칸 내부를 가득 채운 증기의 후끈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철제 레버를 만져도, 그것이 차가운지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온각의 상실.
카일의 세계에서 '온도'라는 개념이 영원히 삭제된 순간이었다. 그는 이제 얼음과 불을 구별할 수 없고, 자신의 피가 끓는지 식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불필요한 자극이 사라진 덕분에 머릿속은 얼음처럼 맑게 가라앉았다.
"하아... 하아..."
구석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식량 창고를 점거하려던 요한과, 카일의 명령에 따라 보조 장치를 조작하던 레나였다.
그들의 얼굴은 핏기를 잃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바닥에 가득한 붉은 피와 살점,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아무런 감정 없이 서 있는 카일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레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그녀는 카일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꼴사납게 기어가 그의 발끝에 머리를 조아렸다.
"카, 카일 님... 제발... 저는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밸브 조작도, 배수관 확인도... 전부 제가 유도한 대로..."
그녀의 목소리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카일이 자신을 언제든 저 덫의 미끼로 던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깨달은 것이다. 충성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을 향한 맹목적인 복종이자, 거부할 수 없는 공포가 만들어낸 굴종이었다.
카일은 레나를 내려다보며 건조하게 말했다.
"일어나라, 레나. 네 쓸모는 아직 다하지 않았다."
"예, 예...!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시키시는 것은 전부..."
레나는 흐느끼며 바닥의 피붙이를 피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에 담긴 것은 인간에 대한 경외가 아닌, 절대적인 포식자를 향한 두려움이었다.
카일은 시선을 돌려 요한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연대와 존엄을 외치던 선동가 요한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영민들은 이미 구석에 처박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네가 원한 질서인가?"
요한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주먹은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쥐어져 있었다.
"질서가 아니다."
카일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생존이다."
"이건 생존이 아니야! 도살이지! 사람들을 도구로 쓰고, 공포로 묶어두는 게 어떻게..."
"그 도살 덕분에 네 목숨이 붙어 있지."
카일의 단호한 음성이 요한의 말을 가로막았다.
"네가 소리 높여 외치던 인간성이 저 기갑 슈트를 입은 도살자들을 막아주었나? 네 연대가 저들의 도끼날을 부러뜨렸나?"
요한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카일의 말이 잔인할 정도로 정확했기 때문이다. 만약 카일의 무자비한 덫이 없었다면, 지금 이곳은 정찰대의 도끼에 난도질당한 시체 공장이 되었을 터였다.
"살고 싶다면 입을 닫고 내 규칙을 따라라, 요한. 다음번에는 너를 저 가시 위에 가장 먼저 올려놓을 테니."
카일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협박도 없었다. 그저 내일의 날씨를 예보하는 것처럼 덤덤했다. 그것이 요한에게는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이 남자는 정말로 자신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미끼로 쓸 수 있는 존재였다.
요한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자존심과 신념이 공포라는 차가운 현실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주변의 영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제 카일을 '구원자'가 아닌, 자신들의 목숨줄을 쥐고 흔드는 '지배자'로 인식했다. 공포를 통한 완벽한 통제. 제13연결 칸의 절대적 권력은 이렇게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카일은 바닥에 흩어진 잔해들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쓸만 한 고철과 기갑 슈트의 파편들을 모으는 그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온각을 잃은 손가락은 차가운 쇳조각을 만져도 아무런 자극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의 뇌는 이미 다음 단계의 요새 개조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부대장의 찢겨 나간 가슴 보호대 부근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지지직... 지직...
반쯤 부서진 무전기였다. 붉은 불빛이 점멸하며 노이즈 섞인 목소리가 연결 칸의 고요를 깨뜨렸다.
카일은 걸음을 멈추고 무전기를 내려다보았다.
- ...들리나? 척후대. 상황을 보고해라.
무전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기괴했다. 성대를 금속으로 개조한 듯한, 쇠 긁는 소리가 섞인 거친 저음이었다.
지직거리는 노이즈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위압감.
- 제13칸의 쥐새끼들이 아직도 발악하고 있는 건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도살자 고르곤이었다.
카일은 허리를 숙여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그의 무감각한 손가락 끝이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지긋이 눌렀다.
"네 척후병들은 모두 죽었다."
카일의 건조한 목소리가 송수신기를 타고 넘어갔다.
무전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쇳소리 섞인 거친 기계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 쉭-, 쉭- 하는 인공 폐의 구동음이 무전기를 타고 무겁게 흘러넘쳤다.
그리고 곧, 광기 어린 폭소가 터져 나왔다.
- 하하하하!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내 사냥개들을 통째로 갈아 마신 놈이 있을 줄이야.
고르곤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흥분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잔혹한 유희였다.
- 기다려라, 학자 놈. 내 친히 네 13칸으로 들어가 주마. 네놈의 사지를 하나씩 잘라내고, 네가 만든 그 장난감 덫에 네놈의 목을 걸어주지.
무전기 너머에서 들리는 복수의 서약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들이닥칠 파멸의 예고였다.
카일은 무전기를 든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 대신, 새로운 사냥감을 분석하는 학자의 냉혹한 계산만이 흐르고 있었다.
송신 버튼에서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카일은 무전기 너머의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단순한 협박 뒤에 깔린 잡음.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금속성 타격음.
쿵, 쿵, 쿵.
초당 2회. 분당 120회의 고속 피스톤 운동. 게헨나 열차의 표준 규격 엔진이 아니었다. 상위 칸의 군용 중갑 열차에나 탑재되는 '철갑 멧돼지'급 고압 증기 기관의 구동음이었다.
카일은 머릿속으로 거리를 계산했다. 소리의 지연 속도와 진동의 전파 경로.
그들은 멀리 있지 않았다. 이미 제14칸의 연결 통로를 통과하고 있었다. 정찰대는 미끼에 불과했다. 본대는 이미 턱밑까지 와 있었다.
카일은 무전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군화 굽으로 가볍게 내리눌렀다.
콰직.
플라스틱과 기판이 으스러지며 비명 같은 소음이 멎었다.
"레나."
카일이 부르자, 레나가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그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예, 예! 카일 님."
"제14칸과의 연결 해치 차단벽, 수동 폐쇄 장치의 상태는?"
"그, 그건... 지난번 충격으로 유압 파이프가 휘어서 완전히 닫히지 않습니다. 최소 5센티미터의 틈새가 벌어집니다."
레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틈새라면 고르곤의 정예 기갑병들이 쇠지렛대로 비틀어 열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고쳐라."
"지금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부품도 없고, 도구도 전부 식량 창고 안쪽에..."
"도구는 필요 없다."
카일이 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허공에 떠 있는 붉은색 반투명한 대장(Ledger)에 닿아 있었다.
[가용 데스 포인트(DP): 350]
정찰대 5인과 부대장의 죽음으로 쌓인 막대한 자원이었다. 카일은 망설임 없이 대장의 기록을 갱신했다.
[데스 포인트 300을 소모하여 '제13연결 칸 후방 차단벽'을 강화합니다.]
[철골 재배치 및 분자 압착 공정을 개시합니다.]
지이이잉.
이형의 소음이 연결 칸 전체를 지배했다. 요한과 레나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바닥을 뒹굴던 척후병들의 기갑 슈트 잔해와 부러진 도끼날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석에 이끌리듯 후방 차단벽으로 날아간 철붙이들이 붉은 열기를 내뿜으며 녹아내렸다.
마치 살아 있는 점토처럼, 무수한 강철 가닥들이 차단벽의 틈새를 메우고 덧대어졌다. 5센티미터의 유격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두께 20센티미터의 방폭 문 위에 기괴한 형상의 철갑 돌기가 돋아나며 벽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요새 장벽으로 화했다.
"이게... 무슨..."
요한이 뒷걸음질 쳤다. 상식을 벗어난 광경이었다. 과학도, 연금술도 아니었다. 오직 죽음을 제물로 삼아 발현되는 불합리한 이능이었다.
카일은 그들의 경외와 공포를 즐기지 않았다. 그저 효율적인 가스라이팅의 도구로 삼을 뿐이었다.
"내 구역에서는 내 법칙이 지배한다."
카일의 목소리가 굳게 닫힌 차단벽에 부딪혀 무겁게 가라앉았다.
"살고 싶다면, 내 뒤에 서라. 대가는 네놈들의 절대적인 복종이다."
레나는 물론, 반골 기질이 강하던 요한조차 침묵했다. 그들은 카일이라는 괴물 없이는 단 1분도 버틸 수 없음을 직시했다.
그 순간이었다.
쿠우우웅!
방금 강화한 후방 차단벽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단순한 두드림이 아니었다. 거대한 쐐기가 강철 판을 뚫고 들어오는 듯한 파괴적인 충격이었다.
차단벽의 중앙부, 방금 결합한 철판의 한가운데가 둥글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고열의 푸른 불꽃이 틈새를 뚫고 뿜어져 나왔다.
초고온 플라즈마 절단기였다. 고르곤의 본대가 장벽을 통째로 녹여버릴 기세로 들이닥친 것이다.
치이이이익!
녹아내리는 쇳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차단벽 너머에서 쇠가 타들어 가는 냄새가 진동했다. 카일은 코끝을 찌르는 탄내를 맡았지만, 온각을 잃은 그의 피부는 열기를 느끼지 못했다.
그때, 녹아내리는 철판의 구멍 사이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밀려 들어왔다.
그것은 인간의 손이 아니었다. 기계식 실린더와 톱날이 장착된, 거대한 강철 집게발이었다. 집게발이 차단벽의 틈새를 움켜잡고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카, 카일 님! 장벽이 뚫립니다!"
레나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하지만 카일의 시선은 뚫리는 차단벽이 아닌, 자신들의 발밑을 향하고 있었다.
열차의 하부에서, 정체불명의 규칙적인 타격음이 다시금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무전기 너머가 아니었다.
그들이 서 있는 제13칸의 바닥 철판 바로 아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