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피로 물든 바닥 위에서 요한이 울분을 토하는 찰나, 고르곤의 철갑 정찰대가 부순 전방 해치 파편이 굉음과 함께 박살 났다.

날카롭게 찢어진 철판 조각들이 허공을 갈랐다. 쇳가루와 자욱한 분진이 어두운 통로를 메웠다. 흩날리는 강철 파편들은 벽면에 박히며 불꽃을 튕겼다. 영민들은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카일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허공을 가르는 파편의 궤적을 쫓았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 철편이 뺨에 얇은 붉은 선을 그렸지만, 눈꺼풀조차 떨리지 않았다. 머릿속의 계산기는 이미 작동을 시작한 상태였다.

적들의 진입 속도, 무기의 중량, 그리고 이쪽의 가용 자원.

카일은 주머니에서 감각이 무뎌진 오른손을 꺼냈다. 손가락 끝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온각이 완전히 소실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손끝의 감촉 대신 시각에 의존해 회색빛 기계식 제어 장치를 움켜쥐었다.

"모두 멈춰라."

카일의 건조한 목소리가 소란을 뚫고 낮게 깔렸다.

"식량 점거단,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자들. 지금 즉시 전방 3미터 지점으로 이동해라. 횡렬로 서서 벽 끝까지 채워라."

영민들의 비명 소리가 일순간 멎었다. 그들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적에 대한 공포보다 더 깊은 경악이었다. 카일이 가리킨 곳은 방금 해치가 박살 나며 적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바로 그 전선이었다. 무장도 하지 않은 알몸의 인간들을 가장 전방의 방패 기물로 배치하겠다는 명령이었다.

"미쳤어?"

요한이 쇳가루를 뱉어내며 소리쳤다. 그의 목에 굵은 핏대가 솟구쳤다.

"저 무시무시한 괴물들 앞에 사람들을 맨몸으로 세우겠다는 거냐! 방패로 쓰겠다고? 이 살인마 자식!"

요한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의 뒤에 웅크린 영민들의 눈빛에도 원망과 살기가 서렸다. 당장이라도 카일의 멱살을 잡고 늘어질 기세였다.

카일은 요한의 일갈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시오패스인 그에게 요한의 분노는 그저 소음 주파수의 상승에 불과했다. 카일은 천천히 제어 장치의 다이얼을 한 칸 돌렸다.

기이익.

바닥 아래에서 불길한 금속성 마찰음이 울렸다. 제13연결 칸의 후방 퇴로 구역 바닥 타일들이 미세하게 갈라지며, 그 틈새로 검붉은 열기를 뿜어내는 가시들이 솟구칠 준비를 마쳤다. 압착 유압 장치와 연결된 용암 가시 트랩이었다.

"선택권을 주지, 요한."

카일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네가 저들을 데리고 전방으로 가라. 15초 동안 그 자리를 유지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 후방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바닥 전체에 용암 가시를 격발하겠다. 피아 구분은 없다.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바닥에서 솟구치는 가시에 꿰뚫려 고기꼬치처럼 변할 것이다."

"너... 네놈이 정녕 인간이냐!"

"시간이 가고 있다. 12초."

카일은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들지도 않았다. 그의 머릿속 초침은 정확했다.

요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는 카일의 눈통자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협박도, 기만도 없었다. 오직 수치화된 판단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카일은 정말로 자신들을 모두 죽이고 적들과 함께 매장할 위인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요한의 이성적 방어선이 무너져 내렸다.

"움직여!"

요한이 피를 토하듯 영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앞으로 가! 제발, 살고 싶다면 저 앞의 선으로 가란 말이다!"

영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그들은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기묘묘한 열기와 앞쪽에서 들이닥치는 괴물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요한의 종용에 떠밀려 전방으로 밀려 나갔다.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줄을 지어 섰다. 공포에 질린 육체들이 만들어낸 나약한 인간 장벽이었다.

카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인간들은 더 이상 생명체가 아니었다. 적들의 진입 속도를 늦추고 동선을 좁히는 철저한 기하학적 장애물일 뿐이었다.

쿠우우웅!

통로 저편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울렸다. 자욱한 매연을 찢고 척후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몸에는 거친 징이 촘촘히 박힌 검은색 기갑 동력 슈트가 감겨 있었다. 조잡하게 용접된 철판 틈새로 더러운 증기가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손에 쥔 증기 기관 톱은 가래 끓는 듯한 불쾌한 소음을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열차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 영토가 그 기괴한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바닥은 이전 침입자들의 굳은 피로 검게 변색되어 있었고, 천장의 철골들은 카일의 권능에 의해 마치 기괴한 늑골처럼 비틀려 내려앉아 있었다. 이 좁고 폐쇄된 밀실은 침입자들을 환영하는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다.

"하하하! 뒤 칸의 쓰레기들이 쥐새끼처럼 모여 있구나!"

선두에 선 척후병이 거친 쇳소리로 웃어댔다. 그의 투구 틈새로 탐욕스러운 눈빛이 번뜩였다.

그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징 박힌 군화가 바닥의 철판을 짓밟을 때마다 웅장한 금속음이 제13연결 칸을 흔들었다. 그들은 전방에 일렬로 늘어선 영민들을 손쉬운 사냥감으로 판단했다. 그들의 단순한 뇌세포는 영민들의 배치 이면에 숨겨진 기학적 설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영민들은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우릴 버린 거야! 저 학자 놈이 우리를 고기방패로 던졌다고!"

"요한! 우리가 왜 저 괴물들의 톱날을 받아내야 하는 거지?"

요한 역시 이가 갈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카일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카일은 그들의 비난과 울부짖음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적들의 보폭과 이동 궤적만을 고정하고 있었다.

'보폭 1.2미터. 기갑 슈트의 무게로 인한 바닥 가속도 약 1.4배 증가. 현재 동선은 좌측 벽면에 60% 편중.'

완벽했다.

그들이 영민들의 육체 장벽에 도달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좁은 병목 지점이 있었다. 그곳의 바닥 아래에는 카일이 사전에 손을 써둔 장치가 숨겨져 있었다.

2화에서 인위적으로 헐겁게 조작해 둔 하부 배수 밸브 나사.

그것은 단순한 정비 불량이 아니었다. 그 배수 밸브는 상부의 유압 압착 가시 시스템과 연동된 압력 방출구였다. 나사가 헐겁게 풀린 틈새로 미세한 고압 오일이 유출되어 바닥을 미끄럽게 적시고 있었고, 동시에 그 공간은 내부의 압력을 일순간에 역류시켜 폭발적인 유압 가시를 분출할 수 있는 치명적인 설계점이었다.

카일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제어 장치의 붉은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멍청한 겁쟁이 자식들, 다 쓸어 담아주마!"

척후병들이 증기 톱을 치켜들며 영민들을 향해 도약하려 했다.

그 순간, 카일이 버튼을 눌렀다.

치이이이익!

헐거워진 배수 밸브에서 뿜어져 나온 고압의 가스가 역류했다. 압력 게이지가 위험 수위를 가리키며 붉게 타올랐다. 영민들의 발밑이 아닌, 오직 적들이 밀집한 바로 그 좁은 지점의 바닥 타일들이 일제히 뒤집혔다.

"어...?"

선두에 서서 거대한 도끼를 치켜들고 있던 정찰대 부대장이 불길한 감각에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무거운 철갑 군화 아래로, 헐거운 밸브 틈새에서 흘러나온 기름진 액체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미끄러운 기름 표면을 인지한 순간, 그의 몸이 뒤로 크게 휘청였다.

"이, 이게 무슨...!"

분노와 당혹감이 가득 찬 기함이 그의 헬멧 너머로 터져 나왔다. 균형을 잃은 거구의 부대장이 거대한 도끼를 허공에 휘두르며 제자리를 잡으려 발버둥 치는 순간이었다.

부대장의 거대한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균형을 잡으려는 처절한 몸짓이었다. 하지만 바닥에 깔린 윤활유는 가차 없었다. 육중한 기갑 슈트의 무게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

"격발."

카일의 손가락이 기계식 제어 장치의 마지막 스위치를 내렸다.

쿠구구구궁!

열차 하부에서 고압 증기가 터지는 파열음이 발생했다. 2화에서 느슨하게 풀어두었던 배수 밸브가 한계를 넘었다. 압력이 역류하며 바닥의 철판들이 찢어지듯 솟구쳤다.

푸슉! 푸샤아악!

길이 2미터, 두께 15센티미터에 달하는 강철 가시들이 바닥을 뚫고 솟구쳤다. 유압식 압착 가시였다. 그것들은 정확히 정찰대가 밀집한 병목 지점을 관통했다.

"끄아아아악!"

강철 가시는 기갑 슈트의 두꺼운 장갑을 종잇장처럼 찢었다. 톱니바퀴가 부서지는 비명과 인간의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뒤섞였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냄새와 고온의 증기가 통로를 가득 채웠다.

단 3초 만에 척후병 다섯 명이 거대한 강철 가시에 꿰뚫려 허공에 매달렸다. 회전하던 증기 톱들이 바닥에 떨어져 불꽃을 튕기며 제멋대로 굴러다녔다. 붉은 피가 배수구로 폭포처럼 쏟아졌다.

영민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옥 그 자체였다.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카일이 자신들을 전방에 세운 것은 방패로 삼아 죽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직 적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 좁은 덫의 중심으로 몰아넣기 위한 '정밀한 미끼'로 사용한 것이었다.

요한의 다리가 풀렸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강철 가시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카일이라는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그의 영혼을 잠식했다. 이 학자는 인간의 목숨을 오직 기하학적 수치로만 계산하고 있었다.

[살인 대장(Ledger of Homicide)이 척후병 5인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데스 포인트(DP) 150 획득.]

머릿속에 기계적인 음성이 가차 없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척후병들이 죽기 직전 느낀 극심한 고통이 카일의 신경망을 타고 들어왔다. 뜨거운 증기에 살이 녹아내리는 감각. 강철 가시가 척추를 관통할 때의 끔찍한 파열감.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광기의 정신 파동이 카일의 전신을 덮쳤다.

카일의 왼쪽 눈에서 붉은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버텼다.

[대가 지불로 인해 온각(溫覺)의 소실이 심화됩니다.]

차가운 철제 제어 장치를 쥔 손가락에서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세상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무(無)의 공간이었다. 오직 시각과 청각만이 남아 그의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때였다.

"크... 끄학...!"

강철 가시에 가슴이 꿰뚫린 채 허공에 매달려 있던 정찰대 부대장이 피를 토해냈다. 그의 투구 사이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지만, 기갑 슈트의 생명 유지 장치가 강제로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부대장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에 달린 증기 엔진 제어 밸브를 움켜쥐었다.

치이이이이익!

그의 등 뒤에 달린 보일러 엔진이 비정상적인 고주파음을 내며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압력 바늘이 한계선을 넘어 위험 구역으로 치닫고 있었다.

"고르곤 대장님이... 너희를... 모두 찢어 죽일 것이다..."

부대장이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엔진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3초 뒤면 기갑 슈트의 고압 증기 탱크가 폭발한다. 이 좁은 연결 칸에서 그 정도 규모의 폭발이 일어나면 천장의 지지 철골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릴 터였다. 요새의 초석이 채 다져지기도 전에 매몰될 위기였다.

카일은 즉시 제어 장치의 비상 압력 방출 버튼을 누르려 했다. 그 버튼을 누르면 가시에 가해진 유압이 풀리며 부대장의 시체를 하부 선로 밖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살인 대장의 정신적 여파로 인해 전신 신경계가 일시적인 마비 상태에 빠진 것이다. 온각마저 소실된 그의 오른손은 그저 차가운 고깃덩어리처럼 허공에 굳어 있었다.

삑, 삑, 삑.

부대장의 가슴에서 폭발 임박을 알리는 경고음이 빨라졌다. 남은 시간은 단 2초였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