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쇠파이프가 궤적을 그리며 찢어지는 파열음을 냈다.

마크의 두 눈에 어린 살기가 나트륨등의 주황색 불빛에 번뜩였다. 허공을 가르는 철무기의 무게는 그의 체중 전체를 싣고 있었다. 피할 곳은 없었다. 뒤는 폐쇄된 식량 창고의 철문이 막고 있었고, 좌우는 비좁은 바리케이트 잔해로 막혀 있었다.

카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쇳덩이가 아닌, 마크의 오른쪽 어깨와 골반의 기울기에 고정되어 있었다.

공중으로 도약한 신체는 궤도를 수정할 수 없다. 물리 법칙은 정직하다. 마크의 무게중심은 이미 앞쪽으로 70도 이상 쏠려 있었다.

카일은 고개를 비틀어 피하는 대신, 오히려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파이프의 끝날이 카일의 귓가를 스치며 바람을 갈랐다. 금속성과 함께 살이 쓸리는 미세한 마찰음이 이명처럼 울렸다. 카일은 그 찰나의 순간에 마크의 품 안으로 깊숙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두 사람의 거리가 10센티미터 이하로 좁혀졌다. 마크의 거친 숨결과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카일은 오른발을 뻗어 마크의 디딤발 뒤축을 단단히 가로막았다. 동시에 왼손으로 마크의 솟구친 오른쪽 팔꿈치 관절을 아래에서 위로 강하게 쳐올렸다. 지렛대의 원리다. 마크의 하강 동력은 카일의 손끝을 타고 회전력으로 변환되었다.

"억...!"

마크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자신의 체중과 가속도를 이기지 못한 마크의 거구가 공중에서 한 바퀴 뒤틀렸다. 카일은 그의 가슴팍을 가볍게 밀어 균형을 완벽히 무너뜨렸다.

쿠웅!

육중한 파열음과 함께 마크가 바닥의 철판 위로 처박혔다. 머리부터 곤두박질친 그의 신체가 경련을 일으켰다. 깨진 철제 배관이 바닥을 뒹굴며 쨍그랑거리는 소음을 냈다. 마크는 찢어진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움켜쥐며 신음했다. 단 한 동작으로 상황은 정리되었다.

카일은 흐트러진 옷깃을 천천히 정리했다. 그의 맥박은 평소와 다름없는 분당 65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레나."

카일의 건조한 목소리가 좁은 통로에 울렸다.

"계속해라."

용접기를 쥔 채 얼어붙어 있던 레나가 흠칫 놀라며 침을 삼켰다. 그녀는 카일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서둘러 용접 마스크를 내렸다. 파란 불꽃이 다시 한 번 맹렬하게 튀었다. 치이이익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식량 창고의 해치 틈새가 붉게 달아오르며 녹아붙기 시작했다.

"안 돼! 멈춰! 제발!"

안쪽에서 문을 두드리는 손길이 점차 약해졌다. 산소가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통로 저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요한을 중심으로 모여든 무력 단원들이 무기를 쥔 채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사시미 칼, 급조한 쇠창, 녹슨 도끼 등이 들려 있었다. 식량 창고를 빼앗기고 동료들이 갇히자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카일! 당장 멈추지 않으면 네놈을 찢어 죽이겠다!"

단원 중 가장 덩치가 큰 사내가 도끼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의 목에 핏대가 거미줄처럼 돋아 있었다.

카일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식량 창고 앞에 놓인 철제 간이 협상 테이블 뒤로 천천히 걸어가 섰다. 그리고 양손을 테이블 위에 가볍게 얹은 채, 다가오는 이들을 응시했다.

침묵이 시작되었다.

카일은 한 마디의 변명도, 협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죽은 어류의 눈처럼 감정이 배제된 눈동자로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볼 뿐이었다.

"왜 말이 없어! 겁나냐? 어?"

도끼를 든 사내가 침을 튀기며 다가왔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묘하게 느려졌다.

카일의 기괴한 침묵은 불길한 징조였다. 이곳은 제13연결 칸이다. 카일이 지배하는 구역이었고, 그가 설치한 함정들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아는 사람은 오직 카일뿐이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는 학자의 태도는 단원들에게 무언가 덫이 작동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야, 잠깐만. 저 새끼 왜 저러고 있어?"

뒤에 서 있던 단원이 앞선 사내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함정인가? 주변에 뭐 설치해 둔 거 아냐?"

불안은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졌다. 10여 명의 단원들이 카일의 십여 걸음 앞에서 멈춰 섰다. 그들의 눈동자가 좌우로 거칠게 흔들렸다. 천장의 톱날 전선, 바닥의 배수구, 벽면의 철판 틈새를 훑는 그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카일은 여전히 가만히 서 있었다.

사실 그의 발밑에는 미회수된 장치가 하나 있었다. 하부 배수 밸브 나사. 침입에 대비해 인위적으로 헐겁게 조작해 둔 밸브였다. 카일은 구두 끝으로 바닥의 특정 지점을 아주 미세하게 툭 쳤다. 배수구 안쪽에서 끼이익 하는 작은 마찰음이 발생했다.

그 소리는 팽팽하게 당겨진 단원들의 신경줄을 사정없이 긁었다.

"우, 움직이지 마! 손들어!"

도끼를 든 사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광기에 질린 눈빛이었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 인간을 가장 빠르게 미치게 만든다. 카일은 이 심리적 공식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카일의 무력이 아니라, 카일이 숨겨둔 '알 수 없는 죽음'이었다.

"요한."

카일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너희의 생존 확률을 계산해 봤다. 현재 상태에서 너희가 나를 죽일 확률은 3.2%에 불과하다. 반면, 내가 너희를 제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2초다."

"개소리 마라! 우리가 쪽수로 밀어붙이면 너 같은 약골 학자 놈 하나는..."

"시간이 12초 경과했다."

카일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너희는 선제를 도발할 기회를 잃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일의 발끝이 테이블 아래 숨겨진 유압 수동 밸브 레버를 밟았다.

치이이이익!

고압의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열차 칸 내부를 찢었다.

"어? 발밑이...!"

단원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그들이 딛고 있던 바닥의 철판이 양옆으로 사정없이 벌어졌다. 10센티미터 넓이의 틈새가 벌어짐과 동시에, 그 아래 숨겨져 있던 유압식 압착 가시들이 스프링 튕기듯 솟구쳐 올랐다.

서걱! 콰득!

"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가!"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날카롭게 조율된 강철 가시들이 단원들의 발목과 정강이를 사정없이 관통했다. 일부는 가시가 뼈를 으스러뜨리며 박혔고, 일부는 벌어진 철판 틈새에 발이 끼인 채 유압 실린더의 압착력에 의해 뭉개졌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녹슨 바닥을 적셨다. 비릿한 혈향이 순식간에 통로를 가득 채웠다.

단원들은 무기를 떨어뜨린 채 바닥에 쓰러져 절규했다. 발목이 고정된 채 쓰러진 그들의 신체는 함정의 톱니바퀴에 걸린 인형처럼 무력했다. 단 몇 십 초의 침묵, 그리고 단 한 번의 조작으로 상황은 종결되었다.

요한은 이 참혹한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쇠파이프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카일... 너, 너는..."

요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카일은 피가 튀는 현장을 관조하듯 바라보았다. 그의 시야 우측 하단에 푸른색의 활자체 글씨가 떠올랐다.

[살인 대장(Ledger of Homicide) 활성화] [자원 획득: 데스 포인트(DP) +40] [현재 누적 DP: 100]

그와 동시에 카일의 머릿속으로 폭풍 같은 파동이 몰아쳤다.

"끄학...!"

카일은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을 꽉 움켜쥐었다.

으스러진 뼈의 통증, 살이 찢겨 나가는 극렬한 작열감, 미칠 것 같은 공포와 절망. 발목이 박살 난 단원들이 느끼는 생생한 고통이 영과 육의 경계를 넘어 카일의 뇌세포를 사정없이 난타했다. 머릿속이 달궈진 인두로 지져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눈앞이 붉게 물들고 숨이 턱 막혔다.

이것이 살인 대장의 힘을 부리는 대가였다. 죽음의 가치를 자원으로 치환할 때마다, 타인의 마지막 고통을 온전히 받아내야 하는 가혹한 제약.

카일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턱관절에서 빠드득 소리가 났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듯이 꿈틀거렸지만, 그는 단 한 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이 통증 역시 수치화할 수 있는 자극에 불과하다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점차 두통이 가라앉으며 익숙한 감각의 상실이 찾아왔다.

오른손 끝이 이상했다.

카일은 테이블을 짚고 있던 오른손 손가락을 떼어보았다. 검지와 중지의 끝부분이 마치 딱딱하게 굳은 점토처럼 변해 있었다. 차가운 철제 테이블의 감각도, 손가락을 스치는 미풍의 온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한 무감각.

온각과 촉각의 영구적 소실이었다. 카일은 마비된 손가락을 무표정하게 굽혔다 폈다.

'인간의 영역이 또 하나 떨어져 나갔군.'

하지만 상관없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감각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이 통제된 요새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온몸이 석상처럼 굳는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카일은 마비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요한을 내려다보았다.

요한은 피웅덩이 속에 무릎을 꿇은 채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그의 하얀 셔츠는 동료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 괴물 같은 자식...! 네놈이 그러고도 인간이냐! 이들은 그저 배가 고팠을 뿐이다! 살고 싶어서 식량을 조금 나누자고 한 것뿐이라고! 어떻게... 어떻게 단 한 번의 자비도 없이 이럴 수가 있어!"

요한의 목소리에 서린 극도의 증오와 절망이 카일의 귀에 닿았다.

카일은 그의 감정적인 외침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규칙을 어기고 요새의 자원을 강탈하려 한 시점에서, 이들은 생존에 방해되는 '오류'일 뿐이었다. 오류는 즉시 제거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그것이 학자의 논리이자 이 열차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비는 자원이 부족한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태되는 사치품이다, 요한."

카일이 건조하게 대꾸했다.

"너희의 그 비이성적인 연대감이 결국 이 참사를 부른 것이다. 식량을 점거하지 않았다면, 규칙을 준수했다면 이런 고통을 겪을 일도 없었겠지."

"닥쳐! 네놈의 그 차가운 주둥이를 찢어버리겠어!"

요한이 바닥의 피 묻은 쇠파이프를 향해 손을 뻗는 찰나였다.

쿠우우우웅!

제13연결 칸 전체가 거대하게 흔들렸다. 강력한 충격파가 바닥을 타고 올라와 요한과 쓰러진 단원들을 옆으로 넘어뜨렸다. 천장의 나트륨등이 격렬하게 흔들리며 깜빡였고, 쇠사슬들이 요란한 금속음을 내며 충돌했다.

"뭐, 뭐야?!"

레나가 용접기를 떨어뜨리며 벽을 붙잡았다.

카일의 시선이 즉각 전방 해치 쪽으로 향했다. 열차의 진동 주파수가 달라졌다. 방금의 충격은 단순한 탈선이나 궤도 오류가 아니었다. 외부에서 가해진 인위적이고 파괴적인 타격이었다.

쾅! 쾅! 쾅!

이어지는 무거운 타격음. 전방 해치의 두꺼운 철판이 안쪽으로 둥글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볼트들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온다... 고르곤의 정찰대야!"

레나가 비명을 지르며 카일의 뒤로 숨었다. 그녀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예상보다 빨랐다. 식량 점거단의 폭동을 진압하느라 소비한 시간 동안, 외부의 적들이 이미 방어선을 돌파한 것이다.

카일은 주머니에서 마비된 오른손을 꺼냈다. 그리고 차갑게 식어버린 손가락으로 품 안의 기계식 제어 장치를 만지작거렸다. 머릿속의 계산기가 다시 빠른 속도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쿠와아앙!

마침내 전방 해치의 20cm 두께 방폭문이 굉음과 함께 박살 나며 안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날카로운 철제 파편들이 어두운 통로를 가득 메웠다. 자욱한 매연과 증기 너머로, 기괴하게 개조된 증기 기관 톱을 든 거구의 실루엣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