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에 질린 레나가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려 손을 뻗자마자, 제13칸 최후방 해치 너머에서 금속성 포성이 울렸다.
쿠콰콰쾅!
귀를 찢는 폭음이 13칸 전체를 강타했다. 열차 바닥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좌우로 흔들렸다. 천장에 매달린 녹슨 지지대들이 삐걱거리는 비명을 질렀고, 누런 먼지와 그을음이 눈송이처럼 쏟아졌다. 해치 틈새로 밀려들던 뜨거운 고압 증기가 포압에 밀려 반대 방향으로 흩어졌다.
돌진하던 정찰대의 거구들이 충격파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크악!"
선두에 섰던 사내의 유압식 회전 드릴이 바닥 철판을 긁으며 불꽃을 뿜었다. 뼈를 깎는 듯한 쇳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포탄은 후방 해치 바로 바깥쪽, 제14칸과의 연결 통로 상부에 명중한 것이 분명했다. 무너져 내린 철골과 장갑판 더미가 해치 입구를 집어삼키며 거대한 장벽을 만들었다.
정찰대의 진입로가 순식간에 차단되었다. 연기와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았다.
카일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요동치는 불빛 아래, 바닥의 압력 게이지를 집요하게 쫓고 있었다. 바닥의 헐거운 배수 밸브 틈새로 흘러나오던 오일이 포격의 진동으로 인해 더 빠르게 번져 나가고 있었다. 게이지의 바늘은 여전히 바닥을 기었다.
카일은 침을 삼켰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침에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인 대장의 힘을 발휘해 정찰대원을 해체했던 대가였다. 미각이 완전히 소실된 설포는 그저 젖은 가죽 조각처럼 둔탁하게 씹힐 뿐이었다. 그러나 카일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생존이라는 절대적인 명제 앞에서 미각 따위는 무가치한 장식품에 불과했다.
"레나 바실리에프."
카일이 나지막이 불렀다.
바닥에 엎드린 채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레나가 어깨를 잘게 떨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은 검은 기름때와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예, 예! 학자님!"
"일어나라. 그리고 배선반의 수압 밸브 상황을 보고해라."
"아, 압력 게이지가... 전혀 안 올라와요. 하부 배수 밸브 나사가 헐거워져서 수압이 그리로 다 새고 있어요. 지금 당장 고치지 않으면 다음 격발은 불가능해요!"
레나의 목소리는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그녀는 카일이 자신을 쓸모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저 무너진 철문 너머로 던져질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카일은 무너진 해치 잔해를 차갑게 응시했다. 잔해 너머에서 쇠를 두드리는 둔탁한 충격음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고르곤의 정찰대가 잔해를 치우고 다시 진입하려는 신호였다. 포격은 그들에게 영토를 양보하라는 경고이자, 동시에 본격적인 침공의 서막이었다.
"저 잔해가 완전히 뚫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18분이다. 레나, 너는 지금부터 후방 감시 카메라의 회선을 복구해라. 그리고 저 해치 틈새의 움직임을 1초도 놓치지 말고 감시해라."
"하, 하지만 배수 밸브를 먼저 고쳐야 함정이..."
"밸브는 내가 직접 통제한다. 너는 네 눈과 귀가 여전히 내 요새에 유용하다는 것을 증명해라. 손끝이 멈추는 순간, 너는 저 무너진 장벽의 완충재로 들어간다."
카일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온기도 없었다. 레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그녀는 배선반을 향해 기어가다시피 움직였다. 손가락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것도 잊은 채, 구리 전선들을 광적으로 꼬아 붙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공포는 카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히 작동하고 있었다.
* * *
포성의 여파는 제13칸 내부를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몰아넣었다.
영민들은 좁은 통로에 모여 서로를 밀치며 비명을 질렀다. 벽을 두드리는 소리,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절망에 찬 욕설이 좁은 철제 방에 갇혀 공명했다. 그 공포의 중심에는 요한 베일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다 죽어! 저 학자 놈은 우리를 방패막이로 쓰고 혼자 탈출할 생각이야!"
요한의 극렬 추종자 중 한 명인 덩치 큰 사내, 마크가 소리쳤다. 그의 선동에 동조한 십여 명의 영민이 무기를 들고 움직였다. 그들의 손에는 녹슨 파이프, 렌치, 낡은 식칼 등이 들려 있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제13칸 중앙부에 위치한 식량 창고였다.
그곳은 13칸 영민들이 한 달 동안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인 합성 단백질 블록과 정화수가 보관된 심장부였다. 열차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식량을 확보해야 해! 저 미친놈에게 우리 목줄을 맡길 순 없다!"
마크를 선두로 한 무리가 식량 창고의 두꺼운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내부에 있던 배급 담당자를 사정없이 밀쳐내고, 안쪽에서 철제 빗장을 걸어 잠갔다.
쿵! 쿵! 쿵!
그들은 창고 안의 무거운 쇠상자들을 끌어다 문뒤에 쌓아 올렸다. 순식간에 견고한 바리케이트가 완성되었다. 철문 틈새로 그들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요한 베일은 뒤늦게 무릎을 꿇고 기어와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카일의 구두 굽에 짓눌렸던 그의 관자놀이에서는 여전히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식량 창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마크! 미쳤어? 문 열어! 이런 식으로 분열하면 다 같이 죽는단 말이다!"
요한이 문을 두드렸으나, 안쪽에서 돌아온 것은 날카로운 안티의 목소리였다.
"시끄러워, 요한! 당신의 그 잘난 평화주의가 우리에게 밥을 먹여 줬어? 저 학자 놈은 괴물이야! 저놈이 식량을 통제하면 우리는 굶어 죽거나 미끼가 될 뿐이라고!"
통로에 모여 있던 다른 영민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식량이 점거당했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죽음의 선고와 같았다. 아수라장이 된 통로 뒤편에서, 규칙적이고 건조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벅. 벅. 벅.
군중이 좌우로 갈라졌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공포에 질린 영민들이 카일의 앞길을 비켜섰다. 카일의 손에는 검은색 가죽 표지의 살인 대장이 들려 있었고, 그의 눈빛은 짙은 안개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카일은 식량 창고의 거대한 철문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땀을 흘리며 서 있는 요한 베일을 흘긋 보았다.
"카일."
요한이 이빨을 악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사람들을 굶겨 죽일 작정이었겠지. 네가 우리를 도구로만 보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 식량은 모두의 것이다. 저들을 설득할 시간을 다오. 내가 문을 열게 하겠다."
카일은 요한의 감정적인 호소를 완전히 무시했다. 그는 군중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웅성거리던 소음들을 단숨에 잠재울 만큼 건조하고 명확했다.
"제13칸의 현재 식량 재고는 총 1,420kg이다."
카일이 숫자를 입에 담았다.
"우리 칸의 생존자 수는 42명. 인간이 생존을 위한 최소 대사량을 유지하며 방어벽 보수 작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하루 배급량은 인당 300g이다. 즉, 하루에 총 12.6kg의 식량이 소모된다."
영민들은 카일의 입에서 나오는 무기질적인 수치에 압도되어 숨을 죽였다.
"이 속도라면 우리는 112일 동안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침공이 없을 때의 가정이다. 침공이 시작되면 칼로리 소모량은 1.5배로 증가한다. 방어 계획에 기여하지 않는 자에게 식량을 배급하는 것은, 열차의 한정된 동력을 허공에 낭비하는 것과 같다."
카일은 살인 대장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따라서 배급 공식을 전면 수정한다. 배급은 오직 '기여도'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함정의 철골을 나르는 자에게는 하루 300g, 배선을 정비하는 자에게는 400g을 지급한다. 그리고..."
카일의 시선이 식량 창고 철문을 향했다.
"점거를 모의하거나, 방어 작업에 참여하지 않고 태업하는 자에게는 0g이다."
"미친 소리 하지 마라!"
요한이 소리쳤다.
"저 안에는 아이를 가진 부모도 있고, 다친 사람도 있어! 기여도라니? 일을 못 하는 사람은 굶어 죽으라는 거냐? 너는 인간도 아니다!"
"요한 베일. 너의 가치관은 자원의 유한함을 고려하지 않은 비이성적 오류에 기반한다."
카일이 요한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식량 창고를 점거한 자들은 전체 생존율을 갉아먹는 기생충이다. 그들이 문을 잠그고 있는 시간 1시간당, 전체 배급량에서 10%씩 영구 차감하겠다. 너희가 저 기생충들을 옹호하고 방관할 때마다, 내일 너희 입으로 들어갈 배급량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다."
군중 사이에서 거친 동요가 일어났다.
"뭐라구?"
"야, 마크! 당장 문 열어! 너희 때문에 우리가 굶게 생겼잖아!"
"미쳤어? 당장 문 열어, 이 자식들아!"
조금 전까지 요한의 평화와 단결에 묵묵히 동조하던 영민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늑대처럼 변했다. 공포의 화살표가 카일이 아닌, 식량 창고를 점거한 마크 일당에게로 꺾인 순간이었다. 인간의 이기심과 생존 본능을 이용한 완벽한 이간질이었다.
철문 안쪽에서 마크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속지 마! 저놈이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야! 문 열면 우린 다 저놈의 덫에 치여 죽어!"
하지만 밖의 영민들은 이미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식량 창고 문을 향해 몰려들어 소리쳤다.
요한은 그 광경을 보며 절망 어린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카일은 그 혼란을 차갑게 관조하며, 머릿속으로 다음 계산을 가동했다. 그에게 타협이나 협상 같은 비효율적인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 * *
"레나."
카일이 조용히 불렀다. 배선반에서 감시 카메라 회선을 만지던 레나가 흠칫 놀라며 돌아보았다.
"예, 예!"
"식량 창고로 연결되는 외부 가스 밸브와 식수 파이프 라인을 차단해라."
그 말에 요한뿐만 아니라 주변의 영민들까지 경악했다.
"카일! 너 지금 무슨 짓을..."
"식량 창고는 밀폐 구획이다. 가스와 식수를 차단하면 내부 온도는 급격히 상승하고, 산소 농도는 4시간 이내에 한계치 이하로 떨어진다. 들어간 자들이 스스로 걸어 나오게 만드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카일은 레나에게 용접기를 가져오라고 눈짓했다.
"그리고 창고 해치의 수동 잠금 레버를 밖에서 용접해라. 저들이 안에서 마음을 바꾸더라도, 내가 허락하기 전에는 단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격리한다."
레나는 주춤거렸다. 용접기 불꽃을 켜는 그녀의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저 안에는 그녀와 알고 지내던 영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카일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용접기 손잡이를 꽉 쥐었다.
치이이익!
푸른빛의 고열 불꽃이 튀며 녹슨 철문에 닿았다. 튀어 오르는 불꽃이 어두운 통로를 기괴하게 밝혔다. 철이 녹아내리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안 돼! 멈춰! 이 살인마 자식아!"
안쪽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광적으로 변했다. 쿵! 쿵! 철판이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카일! 제발 그만해! 그들도 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요한이 카일의 옷자락을 붙잡으려 했다. 카일은 가볍게 손을 내저어 그의 손을 쳐냈다. 그의 눈은 오직 용접 불꽃의 궤적만을 쫓고 있었다. 철문이 밖에서 완전히 봉쇄되는 순간, 식량 창고를 점거한 기생충들은 완벽히 통제된 감옥에 갇히는 셈이었다.
그때였다.
바리케이트 틈새, 식량 창고 상부의 환기구 철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뜯겨 나갔다.
"으아아아!"
피와 그을음으로 범벅이 된 사내가 환기구 틈새로 몸을 던졌다. 마크였다. 그는 창고 안에서 질식해 죽기 전에 카일을 처단하겠다고 결심한 듯했다. 그의 두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입가에는 거품이 물려 있었다.
마크의 손에는 묵직하고 날카롭게 깨진 철제 배관 파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죽어, 이 악마 같은 학자 놈아!"
마크가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의 덩치가 카일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공중에서 치켜든 쇠파이프가 나트륨등의 주황색 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 궤적은 정확히 카일의 정수리를 향해 맹렬하게 내리꽂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