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가솔린 냄새가 콧등을 찔렀다.
회전하는 무쇠 톱날이 카일의 코앞까지 육박했다. 찰나의 순간, 카일은 척추를 뒤로 꺾었다. 은빛의 회전 궤적이 그의 속눈썹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끼이이이이익!
공기를 찢는 마찰음과 함께 톱날이 허공을 갈랐다. 가쁜 숨결과 함께 매캐한 매연이 카일의 얼굴을 덮쳤다. 살갗이 타들어 갈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카일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동요 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적의 거구는 톱날의 회전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쏠렸다.
카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손끝에 고여 있던 붉은 광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살인 대장 작동.' '사용 자원: 45 DP.' '대상: 제13칸 바닥 프레임 변형.'
쿠르릉!
녹슨 탄소강 철판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우그러들었다. 리벳이 튕겨 나가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침입자가 균형을 잡기도 전에, 그의 발밑에서 굵고 날카로운 강철 송곳이 솟구쳤다.
초속 30미터의 속도였다.
강철 송곳은 거구의 턱밑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푸스스, 콰직!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불쾌한 파열음이 밀폐된 열차 칸을 가득 채웠다. 송곳은 턱을 뚫고 들어가 두개골을 관통한 뒤, 정수리 위로 핏빛 끝을 드러냈다. 사내의 몸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전기톱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쇳소리를 냈다.
사내의 사지가 몇 번 경련하더니 이내 늘어졌다.
동시에 카일의 머릿속으로 해일 같은 충격이 밀려들었다.
"크윽……."
카일은 이를 악물었다. 턱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박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머릿속에서 방금 죽은 사내가 느낀 극렬한 고통이 그대로 재생되었다. 턱뼈가 바스러지고, 혀가 잘려 나가며, 뇌수가 창날에 헤집어지는 감각. 온 신경이 불타오르는 듯한 정신적 고문이 카일의 뇌를 사정없이 난타했다.
이것이 살인 대장을 기동하는 대가였다. 타인의 죽음을 기록할 때마다, 그들이 느낀 임종의 고통을 고스란히 육체로 받아내야 했다.
카일은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비린 피 맛도, 쇠 맛도 없었다. 혀끝의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미각의 완전한 상실이었다. 자원을 사용해 트랩을 기동하고 생명을 해체할 때마다, 그의 인간적 감각은 하나씩 영구히 소실되어 갔다.
하지만 카일의 표정은 여전히 무감각했다.
'미각의 상실. 생존에 지장 없음. 전투 효율성 저하율 0%.'
그는 머릿속의 고통을 차가운 수치로 치환하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죽은 사내의 시체에서 붉은 기류가 흘러나와 카일의 손끝으로 스며들었다.
'포인트 획득: 80 DP.' '현재 보유 자원: 95 DP.'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뒤쪽에서 대기하던 나머지 세 명의 침입자가 뒤로 주춤거렸다. 그들의 얼굴은 붉은 가죽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지만, 노출된 눈동자에는 명백한 경악과 공포가 서려 있었다. 동료가 단 한 번의 손짓에 바닥에서 솟구친 철골에 꿰뚫려 죽는 광경은 그들이 아는 상식 밖의 영역이었다.
"퇴각한다! 앞 칸으로 돌아가서 고르곤 대장에게 보고를……!"
그들이 몸을 돌려 깨진 방화문 쪽으로 달리려 했다.
카일의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갔다. 인간의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그에게, 적들의 공포는 그저 사냥을 용이하게 만드는 유용한 변수에 불과했다.
"이곳을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군."
카일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사용 자원: 50 DP.' '바닥 철골 구조물 2차 기형 변형.'
철커덕!
도망치던 자들의 발밑에서 철판이 살아있는 유기물처럼 꿈틀거렸다. 솟구친 얇은 강철 띠들이 그들의 발목을 뱀처럼 휘감아 쥐었다.
"악! 내 다리!" "안 돼, 안 돼! 풀어줘!"
바닥에 고정된 강철 띠들이 무자비하게 수축했다. 뼈가 바스러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침입자들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발을 빼내려 허우적거렸지만, 두껍게 용접된 열차의 프레임은 인간의 완력으로 찢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일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산책을 나온 학자처럼 우아하고 고요했다.
"살려줘! 우린 그냥 지시를 따랐을 뿐이야!" "살려주면 고르곤의 약점을 알려주겠다! 제발……!"
그들의 절규가 밀폐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영민들은 이 기괴한 살육극을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카일이 눈앞의 살인귀들보다 훨씬 더 이질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카일은 대답 대신 품에서 날카로운 메스를 꺼냈다. 학자 시절 해부학 실습에서 사용하던 손때 묻은 도구였다.
사각.
카일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차가운 강철날이 적들의 목줄기를 정확하게 그어 내렸다. 분출된 피가 녹슨 철판 바닥을 붉게 적셨다. 그들이 바르르 떨며 숨을 거둘 때마다, 카일의 머릿속에는 그들의 절망과 식어가는 체온의 감각이 휘몰아쳤다.
그는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며, 그들의 죽음을 대장에 기록했다.
'포인트 획득: 총 150 DP.' '현재 보유 자원: 195 DP.'
풍족한 수확이었다. 이 자원이 있다면 다음 침공을 대비한 영구적인 살상 트랩을 설계할 수 있었다.
카일은 시체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전리품을 수거했다. 쓸만한 가솔린 통과 톱날 조각들을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바닥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열차 하부와 연결된 배수 밸브가 있었다.
카일은 품에서 주머니칼과 렌치를 꺼냈다. 그는 배수 밸브의 굵은 고정 나사에 렌치를 맞추었다. 그리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힘을 주어 돌렸다.
서걱, 서걱.
녹슨 나사산이 깎여 나가며 밸브가 인위적으로 헐거워졌다. 완전히 풀어내지는 않았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르면 틈새가 벌어져 내부의 고압 오일과 냉각수가 뿜어져 나올 수 있을 정도로만 유격을 두었다. (복선1 심음)
'이 장치는 고르곤의 정찰대가 밀고 들어올 때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유압 압착 가시의 격발 트리거로 이 오일 압력을 연동해 두면, 그들은 자신들이 밟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짓겨지겠지.'
카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의 차가운 얼굴에서는 미소조차 기계적인 각도의 뒤틀림에 불과했다.
그가 몸을 돌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온몸을 떨고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레나 바실리에프.
그녀의 손에는 기름때와 핏자국이 묻은 대형 스패너가 무겁게 쥐어져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완전히 초점을 잃은 채 카일의 구두 끝을 응시하고 있었다.
"너는 기술자라고 했지."
카일의 건조한 목소리가 레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레나는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나, 나는…… 기계라면 뭐든 고칠 수 있어. 엔진, 유압 밸브, 배선까지 전부 다. 제발, 제발 죽이지 마……."
그녀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호소했다. 이곳에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저 바닥에 뒹구는 시체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카일은 품에서 가죽 제본된 두꺼운 장부를 꺼냈다. 그것은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었다. 살인 대장의 부차적인 기능 중 하나인 '복종 계약서'였다.
그가 펜을 레나의 코앞에 내밀었다.
"서명해라."
"이, 이게 뭐지?"
"너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보증서다."
카일이 차갑게 말했다.
"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너의 신체와 노동력은 이 제13칸의 영구적인 수비 자산으로 귀속된다. 식량과 물은 네가 제공하는 효율성에 따라 차등 배급된다. 만약 지시를 거부하거나, 탈출을 시도하거나, 생산성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질 경우……."
카일은 발밑의 굳어버린 강철 송곳을 가리켰다.
"너는 즉시 해체되어 다음 트랩의 미끼 구획으로 배치된다. 동의하나?"
인간적인 배려나 따뜻한 구원은 없었다. 철저하게 고기와 노동력으로 환산된 노예 계약서였다.
레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카일의 눈에서 어떠한 자비심도 읽을 수 없었다. 눈앞의 남자는 인간의 탈을 쓴, 가장 정교하고 차가운 기계였다.
"서명하겠습니다……. 시키는 건 무엇이든 할 테니, 살려만 주세요."
레나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쥐었다. 종이 위에 그녀의 이름이 흘려 쓰였다.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계약서에서 희미한 붉은 광채가 피어올라 레나의 가슴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제 그녀는 카일의 허락 없이는 죽을 수도 없는 완벽한 도구가 되었다.
레나는 절망감에 휩싸여 제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복종의 의미로 카일의 구두 앞바닥에 이마를 대고, 떨리는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붙잡으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우우우웅ㅡ!
제13칸 최후방 해치 너머에서 웅장하고 묵직한 금속성 포성이 울려 퍼졌다.
열차 전체가 미친 듯이 좌우로 요동쳤다. 바닥의 시체들이 굴러다녔고, 천장의 백열등이 격렬하게 깜빡이다가 이내 붉은색 비상 경고등으로 전환되었다.
위이이이이잉ㅡ! 위이이이이잉ㅡ!
경고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리는 가운데, 해치 너머에서 거대한 쇠사슬이 끌리는 듯한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카일의 회색 눈동자가 서서히 붉은 비상등 불빛으로 물들어갔다.
콰아아앙!
다시 한번 격렬한 금속 파열음이 울렸다. 제13연결 칸의 후방 격벽이 안쪽으로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리벳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날카로운 파편들이 철판을 두들겼다.
"히익! 뒤, 뒤쪽이야! 뒤에서도 놈들이 온다!"
구석에 몰려 있던 영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그들의 시선이 찌그러지는 후방 해치로 쏠렸다.
카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찌그러진 강철 판재의 곡률과 변형 속도를 정밀하게 관측하고 있었다.
'압력 가해 속도 초당 12밀리미터. 타격체의 질량 최소 3톤 이상. 단순한 인력이 아니다. 증기압을 이용한 파성추(Breaching Ram)다.'
상대의 장비 수준은 카일의 예상을 웃돌았다. 단순한 살인귀들의 난입이 아니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약탈대의 침공이었다.
"레나."
카일이 무릎을 꿇고 있는 기술자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번졌지만, 카일은 개의치 않았다.
"벽면의 제3배선반으로 가라. 거기서 수압 제어 레버의 안전핀을 뽑아."
"하, 하지만 거긴 압력이 가득 차서……."
"뽑아라."
카일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성공하면 살 확률이 40%로 올라간다. 거부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손에 해체된다. 선택해라."
레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피 묻은 대형 스패너를 움켜쥐고 배선반을 향해 달렸다. 공포가 그녀의 움직임을 강제하고 있었다. 훌륭한 도구의 시동이었다.
그때, 영민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거칠게 튀어나왔다. 요한 베일이었다. 그의 눈에는 카일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과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미친 학자 놈! 저 여자를 방패로 삼으려는 건가? 우리를 가두고 혼자 살아남을 속셈이지!"
요한이 카일의 덜미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카일은 가볍게 몸을 비틀어 그의 손길을 피했다. 동시에 요한의 오른쪽 무릎 뒤편을 구두 굽으로 강하게 내리찍었다.
퍽!
"크윽!"
요한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어졌다. 카일은 넘어진 요한의 머리를 밟아 바닥에 고정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찌그러지는 후방 해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요한 베일. 너의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은 전체 생존율을 22% 감소시킨다."
카일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 요한의 관자놀이가 녹슨 철판에 짓눌려 뭉개졌다.
"한 번만 더 내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소음을 내면, 너를 저 해치 안쪽의 완충재로 밀어 넣겠다."
요한은 이빨을 갈았지만, 카일의 발밑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한기에 질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주변의 영민들 역시 숨을 죽였다. 카일의 공포 정치가 그들의 목을 죄고 있었다.
쿠가강!
마침내 후방 해치의 중앙부가 완전히 찢겨 나갔다.
뜨거운 고압 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시야를 흐렸다. 증기 안개 너머로, 기괴한 철갑 투구를 쓴 거구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는 체인톱 대신, 열차의 장갑을 찢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유압식 회전 드릴이 들려 있었다.
도살자 고르곤의 정찰대였다.
"여기가 제13칸인가? 쥐새끼들이 바글바글하군!"
선두에 선 거구가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웃었다. 그의 드릴이 회전하며 뿜어내는 가솔린 매연이 대기를 오염시켰다.
카일은 레나를 바라보았다.
레나는 배선반 앞에서 벌벌 떨며 제어 레버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공포로 인해 굳어 있었다. 안전핀은 여전히 단단히 박혀 있었다.
동시에, 바닥의 헐거운 배수 밸브 틈새로 미세한 오일이 흘러나오는 것이 카일의 눈에 들어왔다. 수압이 채워져 격발되어야 할 유압 가시 트랩의 압력 게이지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압력 손실 발생. 격발 실패율 98%.'
예상치 못한 기계적 결함이었다.
거구의 정찰병이 드릴을 치켜들고 카일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드릴의 끝날이 회전하며 카일의 심장을 조준했다.
그 순간, 카일의 뇌리에 차가운 경고등이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