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중에 흩어진 자색 연기 너머로 크로이츠의 붉은 레이저 표적기가 요한의 이마 중앙을 가리켰다.
피어오르는 화염의 열풍 속에서도 그 붉은 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레이저의 기원은 14칸의 어둠 속, 보이지 않는 저격수의 총구였다.
"히, 익……!"
요한의 목구멍에서 젖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조준점이 이마 한가운데를 짓누르자, 그의 무릎이 제멋대로 꺾였다. 살을 태울 듯 밀려드는 열기와 자색 가스의 매캐한 냄새가 폐부를 찔렀지만, 이마에 닿은 붉은 빛이 주는 공공연한 죽음의 예고 앞에서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요한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카일을 바라보았다.
카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깨 뼈가 탈구되어 비정상적인 각도로 늘어진 왼팔을 한 채, 오른손에 쥔 고주파 기계 도끼의 자루를 고쳐 쥘 뿐이었다. 온각을 상실한 카일의 뺨 위로 그을음과 피가 섞여 흘러내렸으나, 그의 눈동자는 화염의 붉은빛만을 건조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치익, 치이익.
요한의 발밑에 떨어져 있던 녹슨 무전기에서 거친 잡음이 일었다. 이윽고 그 소음 너머로, 기분 나쁠 정도로 맑고 격식 차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마이크 테스트. 잘 들리십니까, 제13칸의 위대한 학자님?]
가면 신사 크로이츠의 목소리였다. 연극 무대의 주역 배우처럼 정중하면서도 얇은 광기가 묻어나는 어조가 철판을 긁는 소리와 함께 통로에 울려 퍼졌다.
[당신의 그 조잡한 방화극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제 아름다운 자색 안개가 조금 빨리 연소되었군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우리 측 저격수의 조준선은 화염의 굴절율마저 계산에 넣을 정도로 정교합니다. 지금 당신의 그 소중한 '동료'의 이마에 맺힌 붉은 낙인이 보이십니까?]
무전기 너머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협상을 제안하지요. 14칸으로 통하는 방벽 제어 장치의 수동 기어를 복구하고 문을 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3초 뒤에 이 쓸모 있는 선동가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지는 광경을 감상하게 될 겁니다. 셋, 둘…….]
"카, 카일……! 제발……!"
요한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이마의 붉은 점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요한은 바닥을 기며 카일의 장화 끝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카일은 요한의 손길을 가볍게 피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의 시선은 요한의 얼굴이 아닌, 요한의 이마에 맺힌 붉은 레이저의 반사각을 향해 있었다.
"죽여라."
카일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화염의 파열음보다 더 차가웠다.
[……예?]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자는 쓸모없는 고기다."
카일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망설임도, 협박을 헤쳐 나가려는 유희적 태도조차 없었다. 그저 장부의 재고 목록에서 가치 없는 불량품을 지워버리듯 철저하게 건조했다.
"전투 능력 전무. 기술적 가치 전무. 영민들을 선동해 내부 분란을 일으키는 잠재적 위험 요인. 생존 자원을 소모하는 효율 저하의 주범. 내 계산에 따르면, 저 자가 아군 저격수의 탄환 한 발을 소모시키고 소멸하는 것이 현재 제13칸의 방어 효율을 0.04% 상승시키는 가장 유용한 가치다. 그러니 쏘아라."
"뭐……?"
요한의 입이 멍하게 벌어졌다.
피가 머리로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공포를 넘어선 모욕감과 배신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자신은 이 지옥 같은 열차 안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런데 이 소시오패스 학자에게 자신은 그저 탄환 한 발과 맞바꿀 가치밖에 없는 '쓸모없는 고기'에 불과했다.
요한은 카일의 눈을 보았다.
그 눈에는 증오도, 경멸도 없었다. 오직 철저한 무관심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요한은 전율했다. 눈앞에 서 있는 존재는 인간의 외피를 쓴 통제 기계였다. 절대로 타협할 수 없고, 감정으로 흔들 수 없는 무자비한 강철 장치 자체였다.
[하, 하하하……! 정말이지 지독한 괴물이군!]
무전기 너머에서 크로이츠가 실성한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감정도, 도덕도 없는 학자라니. 예술적 가치가 전혀 없군요.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뇌수를 뿜으며 죽어가는 동료의 시체를 보고도 그 차가운 표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지.]
타앙!
화염을 뚫고 날카로운 총성이 대기를 찢었다.
요한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죽음이 들이닥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탄환은 요한의 머리를 관통하지 않았다. 요한의 이마 바로 옆, 철제 바닥에 틀어박힌 탄환이 불꽃을 튀기며 튕겨 나갔다. 경고 사격이었다. 크로이츠는 요한을 죽여 카일의 심리를 흔들고 싶어 했기에, 정말로 인질을 곧바로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카일은 그 총성이 울리는 순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머릿속은 더욱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탄환의 입사각 14도. 화염으로 인한 공기 밀도 변화에 따른 굴절율 1.02. 철골 구조물의 정렬선과의 오차 범위 3cm 이내.'
카일은 요한의 위치와 그의 비명 소리를 철저히 배경 소음으로 격하시켰다. 그의 망막 위로 살인 대장의 기하학적 궤적 선들이 붉게 도식화되기 시작했다.
저격수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숨어 있다. 하지만 레이저 표적기의 광선과 방금 발사된 탄환의 궤적은 역으로 발사 기점의 좌표를 명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14칸 하부 철골 보강재 뒤편. 높이 2.4미터 지점.'
카일의 오른손 가락이 미세하게 씰룩였다.
[살인 대장(Ledger of Homicide)이 침입자의 위치 정보를 분석합니다.] [확보된 기하학적 각도: 14칸 연결 통로 좌측 12시 방향.] [잔여 데스 포인트(DP): 200 DP]
자원이 부족했다. 고르곤을 해체하고 함정을 증축하는 데 너무 많은 포인트를 소모했다. 남은 200 DP로는 저격수를 직접 타격할 만한 초자연적 함정을 새로 생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미 설치해 둔 자원을 연동해야 했다.
카일은 발밑의 철판을 밟았다. 온각은 느껴지지 않지만, 구두창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으로 하부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14화에서 설계해 둔 '고압 미세 오일 누출 루프'.
이미 연결 통로 바닥에는 누출된 고인화성 오일이 가득했고, 카일이 일으킨 스파크로 인해 화염 지옥이 완성되어 있었다. 이 불길을 제어하여 적의 숨통을 조여야 했다.
카일은 눈을 감았다.
살인 대장의 인터페이스를 강제로 확장했다. 머릿속으로 차가운 바늘이 수만 개나 꽂히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살인 대장의 권능을 사용할 때마다 치러야 하는 정신적 대가였다. 뇌수가 끓어오르고 온몸의 신경이 비명을 질렀다.
'참아라. 통제되지 않는 변수는 오직 죽음뿐이다.'
카일은 고통을 이성으로 억누르며, 게헨나 열차의 철교 궤도를 관장하는 크로이츠 측의 전송 전자기 신호 파장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크로이츠가 무전기와 저격수의 레이저 조준기를 제어하기 위해 방출하고 있는 무선 주파수. 그것은 13칸과 14칸 사이의 좁은 틈새를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실이었다.
[대장 신호 분석기를 가동합니다.] [소모 포인트: 50 DP] [잔여 포인트: 150 DP]
[적대 세력의 전자기 신호 파장을 캡처했습니다. 주파수 대역 433MHz. 신호원 변조 방식 조율 중…… 완료.]
카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시야에 14칸 내부에서 발신되는 신호의 격자망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저격수의 무전기와 레이저 수신기가 어떤 주기로 데이터를 주고받는지 실시간으로 파악되었다.
"레나."
카일이 나직하게 불렀다.
언제부터인가 구석에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던 레나가 움츠러들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그을음과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내, 네! 카일 님!"
"13칸 하부 유압 밸브의 압력을 수동으로 12% 올릴 수 있겠나?"
"그, 그건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오일 누출량이 급증해서 불길이 이쪽으로 역류할 거예요! 우리까지 다 타 죽는다고요!"
레나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12%다."
카일은 그녀의 우려를 단 한 마디로 묵살했다.
"오일의 누출 속도가 빨라지면 기화 가스의 농도가 임계점에 도달한다. 그때 내가 신호 분석기로 저격수의 레이저 수신기에 과부하 신호를 송신할 것이다. 레이저 다이오드가 터지며 발생할 미세한 정전기 스파크가 기화 가스와 접촉하는 순간, 14칸 입구는 폭발한다."
레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일이 설계한 것은 단순한 방화가 아니었다. 적들의 장비 자체를 폭발의 기폭제로 사용하는 역공이었다.
"하지만…… 폭발의 충격파가 우리 쪽 방벽까지 타격할 거예요. 방벽이 버티지 못하면……."
"버틴다. 내가 방벽의 지지대를 150 DP로 강화할 것이니까."
카일은 주저 없이 살인 대장의 남은 자원을 전부 소모했다.
[방벽 보강 골조 강화에 150 DP를 소모합니다.] [잔여 포인트: 0 DP] [13칸 전면 방폭 문의 내구도가 180% 상승합니다.]
쿠구구궁!
방벽의 철골이 우그러지며 더욱 두껍고 기괴한 형상으로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레나. 3초 준다."
카일의 냉혹한 카운트다운에 레나는 사색이 되어 구석의 유압 수동 레버로 달려갔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녹슨 레버를 밑으로 끌어내렸다.
끼이이익!
하부 파이프가 비명을 지르며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바닥의 틈새에서 투명한 미세 오일이 안개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염의 열기와 만나 오일 안개가 급격히 기화되며 통로의 공기가 왜곡되었다.
[이 미친 자들이, 무슨 짓을……!]
무전기 너머에서 저격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크로이츠의 주파수를 침범해 흘러나왔다. 화염의 열기가 갑자기 급증하고 공기 중의 산소가 빠르게 희박해지는 것을 그들도 감지한 것이다.
"지금이다."
카일이 허공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보이지 않는 신호의 흐름을 움켜쥐는 듯했다.
살인 대장의 신호 분석기가 캡처한 주파수를 통해, 저격수의 레이저 표적기로 강력한 역전압 과부하 신호가 전송되었다.
치지직!
요한의 이마를 조준하고 있던 붉은 레이저 포인터가 기괴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어……?"
요한이 눈을 크게 뜬 순간.
퍼엉!
14칸 어둠 속에서 작은 파열음이 울렸다. 저격수의 총기에 장착된 레이저 조준경이 과부하로 폭발한 것이다. 극도로 미세한 정전기 불꽃이 공기 중에 가득 차 있던 고농도의 기화 오일 가스에 닿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콰아아아아앙!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14칸 입구 전체가 거대한 화염의 아가리에 삼켜졌다. 저격수가 서 있던 철골 보강재가 폭압에 찢겨 나가며 굉음과 함께 주저앉았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화염 속으로 사라지는 인간의 형체가 얼핏 보였다.
폭발의 충격파가 13칸을 향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으아아악!"
요한이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카일이 미리 강화해 둔 방폭 문은 그 파괴적인 충격을 묵직하게 버텨냈다. 철판이 비명을 지르며 안쪽으로 휘어졌지만, 끝내 뚫리지 않았다.
불길이 서서히 잦아들며 사방에 검은 그을음과 타버린 살점의 냄새가 진동했다.
카일은 비틀거리지도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어깨 부상 부위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죽은 자처럼 고요했다.
악랄한 인질 심리전도, 보이지 않는 저격수의 위협도, 소시오패스 학자의 기계적인 계산 앞에서는 한낱 수치적 변수에 불과했다. 카일은 적의 공격 수단을 역으로 이용해 그들을 화염 속에 박멸해 버렸다.
"쿨럭…… 쿨럭……."
요한은 그을음으로 뒤덮인 채 바닥을 기며 기침을 토해냈다. 그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카일을 올려다보았다. 공포가 그의 영혼 골수까지 스며들었다. 저 남자는 자신을 구한 것이 아니다. 그저 저격수를 죽이기 위한 효율적인 계산 과정에서 자신이 방해되지 않았기에 살려두었을 뿐이다.
그때, 타버린 무전기에서 지독한 잡음과 함께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침 소리, 그리고 옷자락이 타들어 가는 소리 너머로 크로이츠의 음성이 들렸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더 이상 아까와 같은 우아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독한 증오와 광기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카일…… 에버하르트……! 네놈이 정녕 인간이란 말이냐!]
카일은 대답하지 않고 끊어진 무전기를 내려다보았다.
[좋다. 네놈이 그토록 자랑하는 그 기계적인 이성이, 이 광경 앞에서도 유지되는지 보지.]
철컥.
무전기 너머로 무거운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윽고, 아주 작고 갸냘픈 흐느낌 소리가 수신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아이의 울음소리였다.
[13칸에서 도망쳐 우리 칸으로 넘어온 영민들의 자식이다. 이 아이의 목숨도 네놈의 그 잘난 계산기에는 수치로 기록되어 있겠지?]
화면 너머, 14칸의 쇠창살 틈새로 크로이츠의 모습이 어렴풋이 비쳤다. 그는 한 손에 피 묻은 칼을 든 채, 덜덜 떨고 있는 어린아이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었다. 아이의 목줄기에 서슬 퍼런 칼날이 닿아 있었다.
[이 아이를 살리고 싶다면, 지금 당장 무기를 버리고 방폭 문을 열어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의 그 차가운 눈앞에서 이 아이의 목을 썰어 발밑으로 던져주마! 선택해라, 학자! 이번에도 쓸모없는 고기라고 부를 텐가!]
요한의 눈이 뒤집혔다.
"안 돼……! 민이잖아! 영민들의 아이야! 카일, 제발 문을 열어! 저 아이는 아무 죄도 없어!"
요한이 카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레나 역시 사색이 된 채 카일의 눈치를 살폈다.
크로이츠는 승리를 확신한 듯 비열하게 웃었다. 아무리 소시오패스라 할지라도, 제13칸의 영민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할 터였다. 영민의 자식을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게 방치한다면, 카일의 공포 정치는 내부에서부터 붕괴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크로이츠가 놓은 마지막 심리적 덫이었다.
그러나 카일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가 향한 곳은 방폭 문의 개방 레버가 아니었다.
그 옆에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13칸과 14칸을 연결하는 물리적 결합 장치를 완전히 차단하고 폭파 분리하는 '최종 폐쇄 기어'였다.
카일은 기어에 손을 얹었다.
"내 목표는 오직 하나다."
카일의 목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외부 변수가 완벽하게 통제된 요새에서, 영원히 생존하는 것."
그가 거칠게 기어를 잡아당겼다.
철컥-!
열차 하부에서 육중한 기계음이 울리며, 13칸과 14칸을 잇는 거대한 쇠사슬과 연결 고리들이 일제히 풀려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