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으으으으.
열차의 상부 배기 덕트가 쇠가 긁히는 비명과 함께 역방향으로 회전했다. 14칸의 제어 장치가 강제로 기류를 뒤흔든 결과였다. 뚫린 구멍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것은 무겁고 축축한 자색 안개였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듯 가라앉는 가스는 기묘하게도 달콤한 아몬드 냄새를 풍겼다.
"콜록! 컥, 으윽……!"
바닥에 쓰러져 있던 요한이 가장 먼저 목을 움켜쥐었다. 그의 기도가 타들어 가듯 수축했다. 젖은 옷가지로 황급히 코와 입을 틀어막았지만, 자색 안개는 이미 피부의 모공을 타고 신경망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철판 바닥에 닿은 안개가 쉬익 소리를 내며 붉은 녹을 만들어 냈다. 단순한 독가스가 아니었다. 신경을 마비시키고 살을 썩히는 부식성 기화 가스였다.
카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야 사방이 자색 장막으로 가려졌다. 호흡기를 통해 들어온 가스가 허파꽈리를 자극했으나, 카일의 뇌는 통증을 비정상적인 경로로 처리했다. 이미 고르곤을 해체하고 살인 대장에 기록하는 과정에서 그의 온각과 미각은 완전히 소실된 상태였다. 가스가 기도를 태우는 뜨거운 열감도, 신경을 갉아먹는 날카로운 통증도 그의 뇌에는 그저 무미건조한 자극 신호일 뿐이었다.
공포를 유발하는 신경 독소 역시 그의 소시오패스적 뇌 구조 앞에서는 무력했다. 편도체가 작동하지 않는 그에게 환각 가스는 아무런 허상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공기 밀도 대비 낙하 속도 초속 0.4미터. 폐쇄 공간 내 완화 시간 120초.'
카일은 머릿속으로 오직 수치만을 계산했다. 가스가 완전히 차오르기 전에 환기 경로를 차단하거나 가스의 성질을 바꾸어야 했다.
"아, 아아…… 아니야. 오지 마……."
바닥에서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극독 스프레이로 용병 부대장을 처치했던 레나였다. 그녀는 바닥을 기어 다니며 허공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가스에 포함된 강력한 환각 성분이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기억을 끄집어낸 것이 분명했다.
"미샤……? 미샤니? 안 돼, 뒤를 봐…… 기차가, 기차가 오고 있어!"
레나가 비명을 지르며 카일의 발목을 붙잡았다. 차가운 기계 부품을 만지던 그녀의 손끝에는 피와 먼지가 섞여 있었다. 그녀는 카일의 가죽 장화를 꽉 움켜쥔 채, 마치 구원줄이라도 잡은 양 매달렸다. 가녀린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제발…… 제발 동생을 구해줘요. 카일 씨, 제발…… 다 할게요. 기계도 고치고, 함정도 만들 테니까…… 제발……!"
울부짖는 목소리가 젖어 들어갔다. 그녀의 눈물과 콧물이 카일의 바지 밑단을 적셨다.
카일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감정 없는 무기질의 눈동자가 레나의 일그러진 얼굴을 응시했다.
그녀의 정비 능력은 요새의 유지 보수에 필수적이다. 가치가 높은 자산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통제 불능의 공황 상태에 빠져 그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손실이자 장애물이었다. 그의 행동 원칙은 언제나 단순했다. 이익은 극대화하고, 손실은 배제한다.
퍽.
카일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구두 앞코로 레나의 손목을 걷어찼다. 무자비한 충격음과 함께 그녀의 손가락이 장화에서 떨어져 나갔다.
"아악!"
레나가 손목을 감싸 쥐며 바닥을 굴렀다. 충격으로 인한 물리적 통증이 일시적으로 환각을 찢어발겼다. 그녀의 눈에 초점이 고통과 함께 되돌아왔다.
"정신 차려라, 레나."
카일의 목소리는 자색 안개보다 더 차갑고 건조했다.
"네 동생은 이미 3년 전에 죽었다. 지금 네 손이 붙잡아야 할 것은 내 바짓가랑이가 아니라 기계 도구다.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는 도구는 즉시 폐기된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잊었나?"
레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포가 환각을 밀어내고 그녀의 이성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러질 듯한 손가락을 꽉 쥐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허공에 투명한 책장을 펼쳤다.
[살인 대장(Ledger of Homicide)]
붉은빛을 뿜어내는 가상의 가죽 장부가 짙은 자색 안개 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보유 데스 포인트(DP): 200 DP]
현재 가스를 외부로 배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4칸의 압력이 너무 높다. 그렇다면 이 공간 내부의 물리적 법칙을 비틀어야 했다. 카일의 손가락이 장부의 페이지를 넘겼다. 13칸의 영지 내에서 작동하는 초자연적인 지배력이 그의 의지에 반응했다.
'환기구 주변의 연소 및 기화 가스 제어.'
[선택: 유독 기화 가스 열적 환산 (Thermal Conversion of Volatile Gas)] [소모 비용: 50 DP] [경고: 대장의 이능 가동 시, 영혼의 파동이 뇌세포를 직접 자극합니다.]
카일은 주저 없이 수락했다.
[50 DP가 차감됩니다. 현재 잔여 자원: 150 DP]
그 순간, 그의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뚫고 들어오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몰려왔다. 고르곤에게 도살당했던 수십 명의 영민들이 죽기 직전에 내질렀던 단말마와 비명이 그의 뇌척수액을 타고 역류했다.
"크윽……."
카일은 턱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입안에서 비린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이미 상실된 미각은 그것이 피인지 침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안구 뒤편이 타들어 가는 감각 속에서도 그는 눈을 부릅떴다.
웅웅웅!
철골 구조물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천장 배기 덕트 주변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열의 장막이 덕트 입구를 감싸 안았다.
치이이이익!
역류해 들어오던 자색 가스가 고열의 차단막에 닿자마자 급격히 열분해되기 시작했다. 독성 기화 물질들이 탄화되어 바닥으로 검은 가루가 되어 떨어졌고, 분해된 기체는 무해한 산소와 이산화탄소로 여과되어 13칸 내부로 퍼져나갔다.
숨 막히는 열기가 차내를 채웠으나, 더 이상 독가스는 추가되지 않았다. 이미 유입된 안개만이 바닥에 얇게 깔려 있을 뿐이었다.
"하아, 하아……."
요한이 젖은 천을 치우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스의 유입이 멈춘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방독면도 쓰지 않은 채, 그 지옥 같은 독무 속에서 멀쩡히 서 있는 사내를.
하지만 안심할 시간은 없었다.
스스슥.
철판을 스치는 미세한 마찰음이 들렸다. 13칸과 14칸을 연결하는 통로의 어둠 속에서, 은밀한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검은 가죽 슈트를 입고 해골 문양이 그려진 방독면을 착용한 자들이었다. 크로이츠가 보낸 선봉 습격조였다. 그들은 당연히 13칸의 생존자들이 독가스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소리 없이 뼈를 바르는 얇은 닌자 칼날이 쥐여 있었다.
선두에 선 습격자가 낮게 자세를 낮추며 연기 속을 보행했다. 그의 목표는 홀로 서 있는 카일의 등 뒤였다. 살수다운 극도로 절제된 발소리였다.
그러나 카일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카일은 감각의 일부를 잃었지만, 역설적으로 살아남은 청각과 공간 인지 능력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머릿속의 살인 대장이 영지 내로 침입한 생명체의 궤적을 실시간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스윽.
닌자 도가 카일의 목덜미를 향해 호선을 그리며 쇄도했다. 공기를 가르는 미세한 파열음.
카일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상체를 반 보 뒤로 비틀었다.
서늘한 칼날이 그의 깃털 옷깃을 간발의 차로 스쳐 지나갔다. 습격자의 방독면 너머로 당혹감에 흔들리는 눈동자가 비쳤다. 습격자가 칼날을 회수하기도 전에, 카일의 오른손이 그림자처럼 뻗어 나갔다.
콰직!
카일의 손가락이 습격자의 오른쪽 손목 관절을 정확하게 움켜쥐었다. 무자비한 악력이 뼈를 압착했다. 관절이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닌자 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습격자의 가슴팍으로 카일의 왼손이 파고들었다. 그는 떨어지는 칼날을 공중에서 낚아채 그대로 습격자의 턱 밑으로 밀어 넣었다.
푸학!
칼날이 방독면 하단의 고무 패킹을 뚫고 들어가 두개골 저편까지 관통했다. 검붉은 피가 칼날을 타고 카일의 소매 위로 쏟아졌으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터벅.
카일은 시체를 바닥으로 밀어 던졌다. 그리고 왼손에 쥔 닌자 도를 가볍게 털어냈다. 혈흔이 자색 안개 속으로 흩뿌려졌다.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다른 습격자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었다. 그들의 방독면 너머로 숨길 수 없는 충격과 공포가 번져나갔다.
방독면도 쓰지 않은 인간이, 신경 독가스가 자욱한 구역에서 유령처럼 소리 없이 움직여 자신들의 일류 살수를 단 일격에 참살했다. 그것도 심박수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카일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서늘하고 건조한 눈빛이 어둠 속의 적들을 하나하나 꿰뚫었다. 그의 발소리는 일정했고, 호흡은 평온했다. 아무런 방해물도 없는 푸른 초원을 거니는 것처럼, 그는 자색 안개 속을 유령처럼 보행했다.
"다음은 누구지?"
카일이 나직하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흥분도 없었다. 그저 눈앞의 쓰레기를 치우려는 청소부의 건조함만이 깃들어 있었다.
그 기괴한 침착함이 습격자들의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냥터가 아닌, 괴물의 우리 안으로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습격자 두 명이 동시에 뒤로 물러서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그때였다.
스으으으…….
공기 중에 흩어져 있던 자색 연기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짙은 안개 장막을 뚫고, 가느다란 붉은색 광선 하나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핏빛처럼 붉은 레이저 조준경의 표적이었다.
광선은 바닥을 구르고 있는 레나의 머리를 지나,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아 있던 요한의 이마 정중앙에 멈추어 섰다.
빨간 점이 요한의 미간 사이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
요한의 신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마에 닿는 차가운 레이저의 감각이 그의 전신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안개 너머, 14칸으로 연결되는 어둠의 심연 속에서 가죽 장갑을 낀 손이 가볍게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 느리고 조롱 섞인 박수 소리였다.
"과연, 소문대로의 명작이군. 학자 선생."
낮고 우아한, 그러나 뱀의 기어가는 소리처럼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통로 전체에 공명했다. 가면 신사 크로이츠의 목소리였다.
"과연, 소문대로의 명작이군. 학자 선생."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가볍게 젖어 있었다. 조소와 흥분이 뒤섞인 음색이었다.
요한은 이마에 닿은 붉은 점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허공을 표류했다. 눈꺼풀이 잘게 떨렸고, 목덜미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죽음의 공포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요한 베일."
크로이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인간의 존엄을 외치던 선동가치고는 마무리가 초라하군. 학자 선생, 어떤가? 네 소중한 사냥개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광경을 감상할 준비는 되었나?"
카일은 요한을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붉은 광선이 뻗어 나오는 발원지, 14칸 연결 통로의 어둠 속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리 15미터. 각도 상향 12도. 조준경의 위치로 보아 저격수는 연결 통로 상부의 철제 프레임 뒤에 숨어 있었다.
"죽여라."
카일이 무감각하게 뱉었다.
"……뭐?"
요한의 고개가 굳은 채로 카일을 향했다. 그의 눈동자에 경악과 배신감이 서서히 차올랐다.
"그는 내 자산이 아니다."
카일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구두가 바닥에 깔린 자색 가루를 밟아 뭉개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오히려 내 통제에 균열을 내는 불확정 요소지. 공짜로 처분해 준다면 내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나?"
"카일…… 너, 어떻게……!"
요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카일의 눈에는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요한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을 살려두었던 것은 자비가 아니라, 그저 이용 가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치가 다한 순간, 자신은 버려지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어둠 속에서 크로이츠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하하! 정말이지 지독한 괴물이군. 인간의 뇌를 가졌으면서도 인간의 피가 흐르지 않아. 하지만 선생, 내 연극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네."
철컥.
기계음과 함께 요한의 이마에 맺혀 있던 붉은 점이 움직였다. 광선은 요한의 어깨를 지나, 바닥에 엎드려 숨을 헐떡이는 레나의 뒤통수에 안착했다.
레나의 신형이 굳어졌다. 그녀의 눈에 다시 극심한 공포가 서렸다.
"이 아이는 다르겠지?"
크로이츠의 목소리에 가학적인 유열이 가득 찼다.
"네 함정들을 보수하고 정비하는 유일한 기술자. 이 아이가 죽는다면 네가 자랑하는 그 요새의 이빨은 전부 빠지게 될 텐데. 선택해라, 학자 선생."
어둠 속에서 강철 문이 서서히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14칸으로 통하는 방폭 문이 폐쇄되고 있었다.
"저격수의 방아쇠가 당겨지기 전에 내 칸으로 넘어와라. 단, 조건이 있다. 기어와라. 개처럼 기어서 내 발등에 입을 맞춘다면, 저 여자의 목숨과 네 요새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비열하고도 확실한 굴복의 요구였다.
요한은 절망적인 눈으로 카일을 바라보았고, 레나는 이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카일의 처분을 기다렸다. 침묵이 13칸의 무거운 공기를 짓눌렀다.
카일은 멈춰 서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온각이 사라진 손끝은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머릿속의 계산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크로이츠는 심리전의 대가다. 기어 들어가는 순간, 대기하고 있던 함정과 살수들이 자신을 해체할 것이다. 살려둔다는 보장 따위는 애초에 계산에 넣을 가치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카일의 눈이 바닥의 철판 틈새를 향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13칸과 14칸을 연결하는 차체 하부였다. 그곳에는 지난 전투 이후 그가 정교하게 설계해 둔 장치가 있었다.
'고압 미세 오일 누출 루프.'
그가 살인 대장의 힘을 빌려 설치해 둔, 외부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이었다. 지금 그 틈새로 고인화성의 특수 오일이 소리 없이 흘러나와 차체 하부를 적시고 있었다.
카일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미각도, 온각도 잃은 무채색의 얼굴에 기괴한 균열이 생겼다.
"크로이츠."
카일이 닌자 도의 자루를 고쳐 잡았다.
"네 연극은 지루하다. 관객을 설득할 개연성이 부족해."
"무슨……?"
카일은 대답 대신 바닥에 떨어진 용병 부대장의 기계 도끼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움직임에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저격수도, 크로이츠도 아니었다.
카일이 기계 도끼의 가동 스위치를 거칠게 눌렀다. 도끼날이 고주파로 진동하며 스파크를 튀기기 시작했다. 그는 진동하는 도끼를 그대로 들어, 바닥의 철판 틈새—오일이 누출되고 있는 연결부 중심을 향해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며 거대한 전기 스파크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 불꽃이 차체 하부에 고여 있던 투명한 오일과 접촉하는 순간, 시야를 가득 채우는 붉은 화염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미친 자식!"
어둠 속에서 크로이츠의 경악 섞인 비명이 처음으로 울려 퍼졌다.
연결 통로 전체가 순식간에 화염 지옥으로 변했다. 불길은 고압 오일 라인을 타고 역류하며 14칸의 문턱까지 집어삼킬 기세로 치솟았다. 화가 난 불길이 자색 안개를 태워버리며 요동쳤다.
하지만 카일 역시 무사할 수 없는 거리였다. 폭발의 충격파가 카일의 전신을 덮쳤다. 온각을 잃은 카일은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충격으로 인해 뼈가 어긋나고 장기가 뒤흔들리는 타격은 고스란히 육체에 새겨졌다.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쿨럭……!"
카일은 비틀거리면서도 불길 너머를 응시했다. 불길에 가로막혀 저격수의 레이저 포인터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크로이츠의 습격조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성공적인 방어였다. 하지만 불길은 멈추지 않고 13칸의 전면부까지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인화성 오일의 연쇄 반응은 카일의 예상보다 더 격렬했다.
차체가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열차의 철골이 열기에 흐물거리며 주저앉기 시작했다.
"이, 이대로 가다간 우리도 다 타 죽어!"
요한이 불길을 피하며 비명을 질렀다.
카일은 피 묻은 입술을 닦아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불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불길을 잡지 못하면 13칸 자체가 궤도 위에서 소멸할 것이다. 그리고 불길을 잡기 위해서는 연결 부위를 완전히 끊어내고 14칸과의 분리를 지금 당장 실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분리 레버는 이미 불길이 소용돌이치는 화염의 중심부, 14칸의 바로 문턱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 레버를 당기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카일은 타들어 가는 철판의 진동을 느끼며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과연 그는 이 화염 지옥 속에서 살아남아 자신만의 요새를 고립시킬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