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어깨뼈가 비틀리며 기괴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카일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단지 입술을 악물었을 뿐이다. 온각을 소실한 탓에 불에 타는 듯한 뜨거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뼈가 으스러지고 근육이 찢겨 나가는 압각과 통각은 척수를 타고 뇌하수체를 직접 타격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잡았다…… 잡았다고, 이 가짜 지배자 놈!"

고르곤이 시뻘건 피침을 뱉으며 웃었다. 그의 외눈에 광기가 번뜩였다. 비상 축전기의 마지막 전류로 구동하는 강철 아귀는 카일의 쇄골을 부수고 심장을 쥐어짤 기세였다.

카일의 시선이 고르곤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수동 비상 차단 밸브가 보였다. 그러나 뻗을 수 있는 팔은 이미 고르곤의 아귀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지렛대를 쓰지 않는 이상, 인간의 완력으로 이 유압식 손아귀를 벌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카, 카일 님!"

뒤쪽에 서 있던 요한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발은 바닥에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인간성을 부르짖던 선동가는 정작 눈앞에서 벌어지는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제 한 몸 사리기에 급급했다. 요한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가 잘게 떨렸다.

그 순간, 바닥을 기어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레나였다.

녀석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고르곤의 거대한 군화 발치로 기어갔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극도의 공포가 그녀의 얇은 어깨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고르곤 님, 제발……!"

레나의 목소리가 찢어지듯 갈라졌다. 그녀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납작 엎드렸다. 완벽한 굴복이자 추악한 구걸이었다.

"저는 기계만 고칠 줄 아는 천재 정비공입니다! 저 학자 놈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함정을 만들었어요! 저를 살려주시면 당신의 기갑 슈트를 완벽하게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고르곤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자신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약자의 모습은 학살자의 비틀린 자존감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하하하! 그래, 기술자가 필요하긴 하지! 저 오만한 학자 놈의 목을 따고 나면, 네년은 내 전용 노예로 삼아 주마!"

고르곤이 카일을 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카일의 짓눌린 어깨에서 빠드득하는 소리가 커졌다. 폐가 압박받아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카일은 레나를 보았다.

공포에 질려 우는 레나의 눈동자 깊은 곳에 서린, 지독할 정도의 생존 본능을 읽었다. 그녀는 카일의 가스라이팅에 뇌리 깊숙이 지배당한 도구였다. 카일이 죽으면 자신 또한 이 지옥 같은 열차에서 미끼로 던져져 비참하게 죽을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레나의 손이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오른손이 바짓단 아래, 양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8화에서 카일이 그녀의 소지품을 검사할 때 묵인해 주었던 물건이 있었다. 레나가 최후의 생존을 위해 몰래 숨겨두었던 안구 파괴용 극독 스프레이였다. 카일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빼앗지 않았다.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일회용 도구의 칼날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레나가 무릎을 꿇은 채 고르곤의 거구 위로 상체를 불쑥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고르곤 님! 감사합니……."

말끝이 차갑게 굳었다. 비굴하던 눈빛이 순식간에 독기로 가득 찼다.

"……는 개뿔이!"

쉭!

레나가 양말 속에서 꺼낸 소형 스프레이의 분사구를 고르곤의 얼굴을 향해 치켜들었다.

고르곤의 증기 헬멧은 전면이 강철 장갑으로 덮여 있었지만, 외부를 관측하기 위한 얇은 유리 슬릿과 열기 배출을 위한 미세한 환기 구멍이 뚫려 있었다. 레나는 그 좁은 틈새를 정확히 노렸다.

치이이익!

누런 빛을 띤 고농도의 부식성 안구 파괴 독가스가 좁은 슬릿 안쪽으로 분사되었다. 레나의 손가락은 방아쇠를 부술 듯이 끝까지 움켜쥐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고르곤이 비명을 질렀다.

유독성 액체는 슬릿을 통과해 그의 하나 남은 외눈에 정확히 명중했다. 기화된 극독이 안구의 점막과 시신경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고르곤의 눈에서 치이익 소리와 함께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내, 내 눈! 눈이 타들어 간다! 끄아아악!"

압도적인 고통에 괴물이 몸부림쳤다. 시야를 완전히 잃은 고르곤은 이성을 잃고 허공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그 충격으로 카일의 어깨를 쥐고 있던 강철 손아귀가 마침내 풀렸다.

툭.

카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왼쪽 어깨가 완전히 탈구되어 비정상적인 각도로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오른팔만으로 바닥을 짚고 신속하게 일어섰다.

"레나, 비켜라."

카일의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차분했다.

레나는 가스를 분사하자마자 바닥을 굴러 고르곤의 사정거리 밖으로 도망쳤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고르곤은 눈을 감싸 쥔 채 사방으로 증기톱을 휘두르고 있었다. 웅웅거리는 톱날이 열차의 철벽을 긁으며 불꽃을 튀겼다. 그 파괴력은 여전히 위협적이었지만, 눈이 먼 괴물은 더 이상 카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카일은 비틀거리며 제어 플랫폼의 비상 수동 레버로 향했다. 오른손으로 레버를 움켜쥐었다.

이곳은 제13연결 칸의 중앙 방어선이었다. 바닥 아래에는 침입자들을 일격에 꿰뚫기 위해 설계된 유압식 압착 가시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카일은 고르곤의 발 위치를 계산했다.

왼발은 3번 구획의 철판 위. 오른발은 4번 구획의 경계선.

"수치 오류 없음."

카일이 레버를 힘껏 당겼다.

쿠구구구둥!

열차 바닥이 진동했다. 고르곤이 딛고 있던 철판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그 틈새에서 두껍고 날카로운 강철 유압 가시 세 개가 고속으로 솟구쳐 올랐다.

슉! 슉! 슉!

"크헉?!"

강철 가시들은 고르곤의 거대한 허벅지와 복부를 관통했다. 기갑 슈트의 하부 장갑은 상부에 비해 얇았다. 기계의 강한 압력으로 밀려 올라온 가시는 뼈와 살을 관통하고 천장을 향해 뻗어나갔다. 고르곤의 거구가 공중에 고정된 채 대롱대롱 매달렸다.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고르곤은 아직 죽지 않았다. 괴물 같은 생명력이었다.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하늘을 향해 피를 토했다.

"카일…… 카일 에버하르트! 네놈을 찢어 죽이겠다! 내 부하들이…… 14칸의 지배자들이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고르곤의 앞으로 걸어갔다. 어깨의 통증이 뇌를 찌르고 있었지만, 그의 걸음걸이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널브러져 있던 부러진 강철 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끝부분이 날카롭게 찢겨 나가 사선 모양의 날이 선 무기였다.

카일은 고르곤의 목덜미를 응시했다.

기갑 슈트의 헬멧과 가슴 장갑이 연결되는 부위. 그곳은 목의 움직임을 위해 가죽과 얇은 철 그물망으로만 보호되어 있는 유일한 구조적 약점이었다.

"동력 상실. 시야 차단. 지지대 무력화."

카일이 중얼거렸다.

"너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고르곤."

"닥쳐라! 이 가짜 학자 새끼가……!"

스각!

카일이 오른손에 쥔 강철 파이프를 고르곤의 목 틈새로 깊숙이 찔러 넣었다.

서걱거리는 불쾌한 마찰음과 함께 날카로운 철판이 목뼈를 관통했다. 고르곤의 목소리가 컥 하는 단말마와 함께 멈췄다.

카일은 온 힘을 다해 파이프를 비틀었다. 유압 가시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고르곤의 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이윽고 뼈가 완전히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쩌적.

카일이 파이프를 아래로 강하게 내리치자, 마침내 고르곤의 거대한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쿠웅.

바닥에 부딪힌 머리는 몇 번 더 구르다 카일의 구두 끝에 멈췄다. 단면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와 철판을 적셨다.

동시에 카일의 눈앞에 푸르스름한 환영이 펼쳐졌다.

뇌리가 쪼개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살인 대장(Ledger of Homicide)에 새로운 정보가 기록됩니다.』 『피해자: 도살자 고르곤』 『사인: 경추 분쇄 및 참수』 『획득 데스 포인트(DP): 1,500DP』

그와 함께 고르곤이 죽기 직전 느꼈던 정신 파동이 카일의 뇌로 다이렉트로 침투했다.

눈이 녹아내리는 극악한 화상. 목뼈가 으스러지며 숨통이 막히는 질식감. 그리고 자신의 모든 영토를 잃고 사냥감에게 목이 잘린다는 지독한 패배감과 분노.

"……윽!"

카일은 무릎을 꿇었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귀에서 이명이 삐 소리를 내며 고막을 찢을 듯 울렸다. 뇌세포가 하나씩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는 간신히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이 살인 대장의 힘을 사용하는 대가였다.

자원이 쌓일수록, 적을 잔혹하게 도살할수록, 그의 인간적인 감각은 영구적으로 소실된다.

두통이 서서히 가라앉을 때쯤, 카일은 입안에서 기이한 이질감을 느꼈다.

자신의 입안에 고인 피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라면 비리고 쇠 냄새가 나야 할 선혈의 맛이, 그저 미지근한 액체에 불과했다. 카일은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묻은 피를 핥아보았다.

아무런 맛도 없었다.

단맛도, 짠맛도, 쓴맛도, 매운맛도 존재하지 않았다. 완전히 정제된 증류수를 머금은 것처럼 무(無)의 상태였다.

미각의 완전한 상실이었다.

2화에서 잃어버린 온각에 이어, 이제는 미각마저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카일의 얼굴에서 온기가 완전히 가셨다.

"……정말 효율적인 교환이군."

카일은 건조하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슬픔이나 분노도 섞여 있지 않았다. 감각의 상실조차 그에게는 생존을 위한 비용 계산에 불과했다. 1,500DP라는 거대한 자원을 얻은 대가치고는 감수할 만했다.

전장은 기괴한 침묵에 휩싸였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레나는 멍하니 카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만이 거칠게 허공을 맴돌았다.

요한과 영민들은 유압 가시에 꿰뚫린 고르곤의 시체와, 그 발치에 뒹구는 머리를 보며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들에게 고르곤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재앙이자 공포의 화신이었다. 그런 괴물이 고작 몇 가지 함정과 기만책에 걸려 허무하게 목이 잘렸다.

그리고 그 괴물을 도살한 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학자였다.

"카, 카일……."

요한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경외와 함께, 깊은 혐오와 공포가 서려 있었다. 인간을 도구로만 보는 이 소시오패스가 정말로 자신들의 구원자가 맞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었다.

카일은 그들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는 구두 굽으로 고르곤의 머리를 툭 차서 돌려놓았다.

"청소해라."

카일이 차갑게 명령했다.

"시체는 해체해서 쓸 만한 철판과 부품을 회수한다. 레나, 너는 기갑 슈트의 동력원을 분석해서 함정의 전력선에 연결할 방법을 찾아라."

"아…… 예, 예! 알겠습니다!"

레나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이제 카일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만이 남아 있었다. 그를 거스르는 자의 말로가 어떨지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반박할 명분도, 용기도 그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영민들은 침묵 속에서 사체 해체 작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공포가 만들어낸 완벽한 통제였다.

카일은 부러진 한쪽 어깨를 스스로 맞추기 위해 벽에 기대어 몸을 들이받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신음은 없었다. 그는 단지 옷무새를 정리하고, 살인 대장의 페이지를 넘기며 다음 방어선 구축을 위한 계산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위이이잉!

제13연결 칸의 끝자락, 다음 구역인 14칸으로 통하는 거대한 이중 격벽 기구에서 기괴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철컥, 철컥, 철컥!

바닥을 고정하고 있던 두꺼운 걸쇠들이 차례로 풀리는 소리였다.

카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14칸의 격벽은 내부에서 수동으로 열지 않는 한 결코 열릴 수 없는 구조였다. 그것은 14칸의 지배자가 강제로 잠금을 해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치이이익!

고압의 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20cm 두께의 방폭 문이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격벽 위에 매달려 있던 먼지 쌓인 녹슨 모니터 화면이 지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점화되었다. 회색 노이즈 너머로, 기괴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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