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머리 위 1미터.

회전하는 단분자 톱날이 공기를 찢는 파열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렸다. 톱날의 열기에 마비되지 않은 왼쪽 뺨의 솜털이 비틀리며 타들어 갔다.

카일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의 시야 우측 하단에서 요한 베일이 도끼를 쥔 채 헐떡이고 있었다. 요한이 끊어버린 구리 배선 뭉치에서 청백색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동력 차단. 천장의 고압 전기 톱날은 요지부동이었다.

인간적 변수. 계산의 오차.

카일은 오차를 교정하기 위해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신체를 뒤로 꺾었다.

쿠우우웅!

장갑차의 조종석 해치가 거칠게 열리며, 거구의 도살자 고르곤이 플랫폼 바닥으로 직접 착지했다. 열차 바닥의 강철판이 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래로 움푹 가라앉았다. 고르곤의 어깨에 장착된 증기 분사구가 백색의 고압 가스를 뿜어내며 낙하 충격을 상쇄했다.

"쥐새끼가 기어 다니는구나!"

고르곤이 포효했다. 그의 목소리에 섞인 기계식 확성기의 하울링이 제13칸 전체를 흔들었다.

카일의 상체가 바닥과 평행에 가깝게 누웠다.

스치듯 지나간 융합 증기톱의 궤적이 제어 플랫폼의 강철 난간을 두부처럼 잘라냈다. 절단면에서 붉은 용융액이 흘러내렸다. 카일은 뒤로 쓰러지는 반동을 이용해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회전시켰다.

체중을 왼발에 싣고 가볍게 도약해 수동 레버의 지지대를 밟았다.

동시에 오른손 소매 안쪽에서 스프링 장치로 고정해 둔 고탄성 탄소강 송곳이 튀어나왔다. 카일의 손목이 세 번 미세하게 흔들렸다.

팅! 팅! 튀이잉!

송곳의 끝이 고르곤의 목덜미와 쇄골 사이, 기계 장치와 피부가 접합된 틈새를 정확히 세 차례 타격했다.

그러나 찌르는 감각은 없었다.

송곳은 고르곤의 가죽 피부에 닿는 순간 불꽃만 튀긴 채 미끄러졌다. 그의 피부는 단순한 살점이 아니었다. 경화된 철판을 가죽 밑에 이식한 기괴한 신체 개조의 결과물이었다.

"간지럽지도 않다!"

고르곤이 증기톱을 가로로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파열음과 함께 톱날이 카일의 허리춤을 향해 쇄도했다. 카일은 송곳을 거두지 않은 채, 지지대를 딛고 있던 왼발 끝에 힘을 주어 몸을 뒤로 날렸다.

서늘한 공기가 배를 스치고 지나갔다.

위이이이잉!

거대한 회전톱이 플랫폼 바닥의 철판을 갈아엎었다. 톱날이 강철을 파고들며 만들어낸 쇳가루와 불꽃이 분수처럼 사방으로 비산했다. 제어 플랫폼의 절반이 뜯겨 나가며 아래쪽의 고압 수조 구역으로 추락했다.

카일은 공중에서 균형을 잡으며 가볍게 착지했다.

그의 발끝이 닿은 곳은 제어 플랫폼에서 뒤쪽 연결 통로로 이어지는 좁은 협로의 입구였다.

폭 1.2미터.

두 명의 성인이 나란히 걷기조차 힘든 좁은 철제 복도였다. 카일은 상체를 꼿꼿이 세운 채 뒤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걸음걸이는 서두르는 기색 없이 일정했다. 매 걸음마다 정확히 80센티미터의 간격을 유지하는 기하학적인 백스텝이었다.

고르곤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수조 구역의 잔해를 밟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거대한 덩치는 좁은 협로에 들어서는 순간 좌우 벽면에 어깨 장갑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카일은 적의 크기와 이동 속도, 그리고 협로의 마찰 계수를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일부러 방어 외벽의 한 단계를 내어준 것이다. 넓은 플랫폼에서는 고르곤의 증기 추진력을 피하기 어렵지만, 이 좁고 긴 협로라면 그의 무지막지한 질주 능력은 오히려 스스로를 옥죄는 족쇄가 된다.

"도망치느냐, 쥐새끼!"

고르곤이 증기톱을 앞세우며 협로로 진입했다. 벽면의 철판이 그의 어깨 장갑에 긁히며 소름 끼치는 금속음을 내질렀다.

카일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백스텝으로 고르곤과의 거리 5미터를 완벽하게 유지하며 농락했다. 고르곤이 톱을 휘두를 때마다 카일은 단 몇 센티미터의 차이로 궤적을 벗어났다.

마치 미리 그려진 선 위를 걷는 것 같은 기하학적인 무위(無爲)였다.

한편, 협로 너머의 제13칸 후방 공동 구역은 아수라장이었다.

"플랫폼이 무너졌다!" "도망쳐! 앞 칸의 괴물이 직접 들어왔어!"

영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쪽 연결 칸으로 달아나려 했다. 그들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고, 서로를 밀치며 아우성쳤다.

그 혼란의 중심에 레나가 서 있었다.

그녀는 녹슨 파이프 렌치를 양손으로 움켜쥔 채, 도망치는 영민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얇은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서, 멈춰! 이 바보들아!"

레나가 악에 받친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도망치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저 학자 놈이 우리를 그냥 보내줄 것 같냐고!"

영민들의 발걸음이 주춤했다.

레나는 양말 속, 발목 부근에 닿아 있는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최후의 수단으로 숨겨둔 안구 파괴용 극독 스프레이 용기였다. 카일이 이 독의 존재를 묵인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쓸모를 증명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자, 도망치지 말라는 사슬이었다.

"저 괴물한테 죽기 전에, 도망치는 순간 저 학자 놈이 우리를 트랩의 고기방패로 던져버릴 거야!"

레나가 렌치로 바닥의 철판을 강하게 내리쳤다. 댕그랑 하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공동 구역에 울려 퍼졌다.

"살고 싶으면 무기를 잡아! 저 학자가 깔아놓은 방어선 뒤에서 버티는 게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광기에 가까운 생존 본능이 담겨 있었다. 카일의 공포 정치가 심어놓은 지배의 효과였다. 영민들은 카일이라는 더 거대한 공포에 굴복해, 눈앞의 도살자에게 맞서기 위해 무기를 쥐기 시작했다.

협로 안쪽.

카일은 여전히 백스텝을 밟으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지이잉.

그의 시야 가장자리에 흐릿한 검은 연무가 피어올랐다. 살인 대장(Ledger of Homicide)의 인터페이스가 붉게 깜빡이며 경고음을 보냈다.

[ 시스템 경고: 영혼 파동 누적으로 인한 감각 손실 진행률 87% ] [ 온각(溫覺)의 영구 소실이 임박했습니다. ]

눈가에 나타난 연무는 대장에 남은 감지 기능이 얼마 머지않았음을 서늘하게 통고하고 있었다.

카일은 자신의 왼쪽 뺨을 만져보았다. 방금 전 고르곤의 증기톱 열기에 그슬려 가죽이 벗겨진 뺨이었다.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뜨거움도, 따가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도가 사라진 세계.

카일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가락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감각의 소실은 그에게 공포를 주지 못한다. 오직 생존을 위한 계산의 정밀도를 높일 뿐이었다.

쿵! 쿵! 쿵!

고르곤이 협로의 벽면을 온몸으로 부수며 거리를 좁혀왔다. 부서진 철판 조각들이 그의 발밑에서 찌그러졌다.

"이제 끝이다, 학자 놈!"

고르곤이 어깨의 증기 밸브를 최대로 개방했다.

피이이이이익!

폭발적인 고압 증기가 협로를 가득 채웠다. 고르곤의 신체가 순간적인 추진력을 얻어 탄환처럼 직진했다. 1.2미터 폭의 협로 전체를 메우며 돌진하는 거구의 폭력 앞에서는 그 어떤 백스텝도 무용지물이었다.

카일은 뒤쪽의 수동 차단 벽 레버를 당겼다.

철컹!

두께 15센티미터의 강철 방폭 격벽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위에서 아래로 고속 하강했다. 고르곤의 돌진을 막기 위해 준비해 둔 최후의 물리 장벽이었다.

그러나 고르곤의 붉은 안광은 꺼지지 않았다.

고르곤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융합 증기톱의 출력을 극대화했다. 단분자 톱날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초고열의 백색 광을 뿜어냈다.

"이딴 쇠창살이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우구구구궁!

고르곤이 몸을 날리며 증기톱을 하강하는 격벽의 중앙으로 찔러 넣었다.

최후의 철제 방어벽이 톱날에 닿는 순간, 비명 같은 파열음과 함께 사방으로 붉은 쇳가루가 폭발하듯 튀었다. 단분자 톱날의 초고열 회전력은 두꺼운 강철판조차 견디지 못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파지직! 콰아아앙!

일도양단.

카일의 눈앞에서 15센티미터 두께의 철제 격벽이 수직으로 정확히 두 동강 나며 갈라졌다.

갈라진 철판의 틈새 사이로, 고르곤의 거대한 증기톱날이 카일의 코앞까지 밀고 들어왔다. 회전하는 톱날의 끝부분이 카일의 턱밑 5센티미터 앞에서 웅웅거렸다.

튀어 오르는 시뻘건 쇠불꽃이 카일의 무감각한 얼굴과 눈동자에 사정없이 흩날렸다.

튀어 오르는 시뻘건 쇠불꽃이 카일의 무감각한 얼굴과 눈동자에 사정없이 흩날렸다.

찰나의 지체도 없었다. 카일은 0.1초 만에 상체를 뒤로 눕히며 오른손을 뻗었다. 손끝에 걸린 것은 방금 잘려 나간 격벽의 날카로운 파편이었다.

지직!

붉게 달아오른 강철 파편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의 가죽이 타들어 가며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단백질이 타는 노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그러나 고통은 없었다. 뇌가 인지하는 감각은 오직 '압력'뿐이었다. 온각의 영구 소실이 완료되었음을 알려주는 신체적 반응이었다.

카일은 그 무감각을 이용해 타오르는 쇳조각을 고르곤의 오른쪽 어깨 뒤편, 과열된 증기 배관 틈새로 밀어 넣었다.

푸쉬이이이익!

지렛대의 원리로 배관의 이음새가 어긋났다. 통제력을 잃은 백색의 고압 증기가 고르곤의 오른쪽 안면을 향해 역류했다.

"크아아아악!"

기계 마스크 사이로 고르곤의 비명이 터져 나왔. 거구가 중심을 잃고 좌우 벽면에 부딪혔다.

카일은 반동을 이용해 협로의 출구로 몸을 날렸다. 가볍게 구르며 안착한 곳은 제13칸의 후방 공동 구역이었다.

"카일!"

레나가 렌치를 쥔 채 소리쳤다. 그녀의 등 뒤로 무기를 든 영민 수십 명이 잔뜩 긴장한 채 침을 삼키고 있었다.

반면 제어 플랫폼 모퉁이에 주저앉아 있던 요한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자신이 차단한 동력선 때문에 카일이 고르곤의 증기톱에 썰려 나가는 비참한 최후를 예상했으나, 카일은 상처 하나 없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오히려 괴물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비켜라."

카일이 나지막이 뱉었다. 그의 왼손 바닥은 검게 그을려 진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조차 없었다.

쿠구구궁!

협로의 벽면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고르곤이 젖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오른쪽 얼굴을 드러내며 기어 나왔다. 흘러내린 기계 오일과 붉은 피가 그의 철판 가죽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죽인다. 네놈 가죽을 벗겨 열차 뒤편에 매달아 주마!"

고르곤의 안광이 광포하게 타올랐다.

카일은 주위 상황을 0.5초 만에 재계산했다.

메인 동력은 차단되었다. 천장의 톱날도, 바닥의 유압 압착 가시도 작동하지 않는다. 이 구역에서 고르곤을 저지할 유일한 방법은 바닥 해치 아래에 숨겨진 수동 유압 크랭크를 직접 돌리는 것뿐이었다.

크랭크를 돌려 압력을 채우는 데 필요한 시간은 정확히 7초.

고르곤이 이 거리를 좁혀와 자신을 양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초.

3초가 부족했다.

카일의 시선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요한에게 닿았다.

공포에 질려 사지를 떨고 있는 인간. 쓸모를 다한 도구이자, 시스템을 망가뜨린 변수.

카일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요한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카, 카일? 무슨...!"

요한이 반항할 틈도 없었다. 카일의 악력은 이성적 지배력만큼이나 단단했다. 카일은 요한의 신체를 고르곤의 돌격 경로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억!"

요한의 거구가 바닥을 굴렀다. 정확히 고르곤의 거대한 군화 앞이었다.

"방해물인가!"

고르곤이 달리는 기세를 멈추지 않은 채 증기톱을 아래로 비스듬히 꺾었다. 요한의 머리 위로 죽음의 궤적이 그려졌다.

그 3초의 공백 동안, 카일은 바닥의 강철 해치를 열고 상체를 집어넣었다. 어둠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는 수동 유압 크랭크가 손에 잡혔다.

"요한!"

그 순간, 레나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도약했다.

카일의 계산에 없던 돌발 행동이었다. 레나는 요한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요한이 죽고 나면, 다음 차례는 자신이라는 공포가 그녀의 뇌를 지배한 결과였다.

그녀는 달리는 와중에 오른쪽 바짓단을 걷어 올렸다. 양말 속에 숨겨두었던 소형 실린더를 뽑아 들었다.

안구 파괴용 극독 스프레이.

카일이 묵인했던 그녀의 최후 생존 무기였다. 레나는 고르곤의 거구 위로 몸을 날리며 밸브를 눌렀다.

치이이익!

보라색의 걸쭉한 독액이 고르곤의 온전한 왼쪽 눈을 향해 분사되었다.

"으아아악! 내 눈! 눈이!"

독액이 강철 가죽 사이의 점막을 파고들자 고르곤이 톱을 허공에 휘두르며 자지러졌다. 요한의 목숨을 앗아가려던 톱날이 궤적을 잃고 빗나갔다.

성공적인 기습이었다.

그러나 고르곤은 짐승이었다. 시력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그의 왼손이 허공을 맹렬하게 휩쓸었다.

퍽!

"아악!"

레나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고르곤의 거대한 철갑 손아귀가 레나의 가냘픈 허리를 그대로 쳐냈다. 그녀의 몸이 인형처럼 날아가 대형 배관에 처박혔다.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공동 구역에 공명했다.

스프레이 용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도르르 굴러갔다.

카일은 크랭크를 거세게 돌렸다.

서걱, 서걱.

녹슨 기어가 맞물리며 압력이 차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5초, 6초. 이제 한 바퀴만 더 돌리면 수조의 고압 피스톤이 격발될 터였다.

팅! 고로롱.

바닥을 구르던 알루미늄 극독 스프레이 용기가 하필이면 열려 있는 해치 틈새로 떨어졌다.

그리고 정확히, 카일이 돌리던 수동 크랭크의 기어 이빨 사이에 끼어들었다.

끼이이이익!

금속 용기가 짓겨지며 기어에 끼이자, 회전하던 크랭크가 뚝 멈춰 섰다. 무리한 힘을 가하자 황동 손잡이가 삐걱거리며 균열을 일으켰다.

압력 게이지는 95%에서 멈췄다. 격발 불가.

"카일... 에버하르트...!"

시력을 완전히 잃은 고르곤이 피와 독액이 섞인 눈물을 흘리며, 카일이 있는 해치 방향으로 증기톱을 치켜들었다. 웅웅거리는 단분자 톱날이 다시금 죽음의 진동을 시작했다.

카일의 손끝이 멈춘 크랭크 위에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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