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음악 방송, <쇼! 뮤직 챔버>의 단독 오프닝 스테이지 초청.
그것은 해체 직전의 망돌이었던 루미너스에게 과분하다 못해 기괴할 정도의 파격적인 기회였다. 차트인이라는 기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날아든 이 청천벽력 같은 비보는 축제라기보다는 차라리 빙하시대의 입구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 비정상적인 호의의 배후에 에이펙스의 수장, 강도진의 뒤틀린 미소가 도사리고 있음을 서한율은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리허설 들어갑니다! 루미너스 대기하세요!"
방송국 복도는 아수라장이었다. 뛰어다니는 스태프들의 발소리, 귀를 찢는 듯한 무대 음향의 잔향, 그리고 타이트한 의상을 입고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돌 그룹들 사이에서 루미너스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곳은 대기실조차 아닌, 복도 한구석에 임시로 마련된 칸막이 뒤편이었다.
"피디님, 진짜 괜찮을까요? 저희가 이런 큰 무대의 오프닝이라니……."
리더 서연의 손가락바닥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며, 한율은 주머니에 꽂아 넣은 손을 꽉 쥐었다. 귀끝에서 웅웅거리는 이명이 가늘게 번지기 시작했다. 에이펙스의 입김이 닿은 이곳의 모든 공기가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무대 위에서 소리를 내는 건 너희다. 방송국 놈들이나 에이펙스가 아니라."
한율은 차갑게 쏘아붙인 뒤,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어 메인 조정실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이펙스의 강도진과 민설아가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리 없었다. 생방송 라이브라는 칼날 위에서 가수를 가장 확실하게 매장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음향을 망가뜨리는 것.
조정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매캐한 담배 연기와 기계 열기가 섞인 냄새가 한율의 코끝을 찔렀다. 콘솔 앞에 앉아 있는 메인 음향 감독의 어깨 너머로, 한율의 눈에 기이한 파동이 잡혔다.
[공감각 레조넌스].
한율의 시야가 순식간에 반전되며, 콘솔의 주파수 대역이 형형색색의 빛나는 줄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루미너스의 채널로 할당된 라인에서는 불쾌할 정도로 둔탁하고 썩은 회색빛 아우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루미너스 마이크 세팅, 하이(High) 대역 이퀄라이저를 왜 이렇게 깎아 놨습니까?"
한율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조정실의 공기를 가르자, 콘솔을 만지던 엔지니어의 손가락이 굳었다. 30대 후반의 엔지니어는 신경질적으로 헤드폰을 벗어 던지며 한율을 쏘아보았다.
"당신 뭐야? 외부인은 통제 구역에서 나가요."
"외부인이 아니라 루미너스 총괄 프로듀서 서한율입니다. 다시 묻죠. 컴프레서 스레숄드 값을 왜 -24dB까지 내렸습니까? 이 정도로 누르면 보컬 목소리가 먹먹하게 짓눌려서 생방송 때 가창력이 완전히 망가집니다. 초보적인 실수입니까, 아니면 의도적인 태만입니까?"
엔지니어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그의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언뜻 보이는 에이펙스 로고가 새겨진 고급 만년필. 한율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돈으로 매수당한 끄나풀의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이봐요, 서 피디님! 우리 방송사 장비랑 시스템은 이번에 에이펙스에서 기술 제휴를 맺은 최첨단 오디오 엔진을 씁니다! 우리가 알아서 하니까 간섭하지 마세요!"
엔지니어가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한율의 눈은 이미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에이펙스 라이선스 오디오 엔진'의 디지털 신호 체계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화면 구석에서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미세한 디지털 파형. 그것은 가청 주파수 대역의 끝자락에서 정밀하게 발생하는 기계적 노이즈였다. 일반적인 귀로는 잡아내기 힘들지만, 한율의 눈에는 선명한 핏빛 균열로 보였다.
"최첨단 엔진?"
한율이 차갑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엔지니어를 거칠게 밀쳐내고 콘솔 위로 손을 뻗었다.
"이거 수입산 초고가 엔진 맞지. 그런데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 특정 고음역대 주파수가 동시에 몰릴 때, 디지털 클리핑(음 깨짐)이 발생하면서 무대의 모든 사운드를 일순간에 찢어발기는 버그가 존재하거든."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가 반년 넘게 아무 문제 없이 쓴 장비야!"
"그건 너희가 기계적으로 보정된 립싱크 음원만 틀어댔으니까 모르는 거지. 진짜 날것의 고음 라이브가 꽂히는 순간, 이 엔진의 연산 장치는 과부하로 터져 나가게 되어 있어."
한율의 손가락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디지털 콘솔의 매트릭스 라우팅을 우회시키고, 루미너스의 채널을 에이펙스 오디오 엔진의 필터가 아닌, 아날로그 다이렉트 아웃풋 라인으로 강제 전환했다. 동시에 수동으로 주파수 대역을 재조율하기 시작했다.
서연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황금빛 주파수 영역. 그리고 백은우의 단단한 미들 톤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줄 블루 톤의 베이스 라인. 한율의 손길 아래에서 혼탁하던 아우라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눈부신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자, 이제 다시 들어봐."
한율이 페이더를 올리자, 모니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루미너스의 리허설 음원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청명함과 타격감으로 온 조정실을 가득 채웠다. 마치 물속에 잠겨 있던 스피커를 지상으로 끌어올린 듯한 압도적인 음질이었다.
"어…… 어?"
엔지니어는 멍한 얼굴로 모니터 화면과 한율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대기업이 제공한 억대의 시스템을, 단 몇 초 만에 아날로그 바이패스 방식으로 완벽하게 무력화하고 최상의 사운드를 뽑아낸 천재의 솜씨 앞에 그는 아무런 말도 얹지 못했다.
"한 번만 더 장난질하다 걸리면, 에이펙스한테 돈 받은 내역서랑 이 오디오 엔진의 결함 보고서, 언론사에 그대로 뿌릴 줄 알아."
한율은 싸늘한 경고를 남긴 채 조정실을 나섰다. 등 뒤로 엔지니어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
무대 뒤, 생방송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방송국 곳곳의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었다.
"출연 팀들 무대 뒤로 정렬하세요! 다음 루미너스 스탠바이!"
스태프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무대 뒤의 어둠 속으로 루미너스 멤버들이 들어섰다. 메인 무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조명과 관객들의 함성이 어둠 속까지 스며들어 그들을 위협했다.
서연의 상태가 이상했다. 그녀는 마이크를 쥔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심장이 터질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3년 동안의 무명 시절 동안 겪었던 무수한 무관심, 그리고 오늘 실패하면 정말로 끝이라는 압박감이 그녀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었다.
한율의 시야에 비친 서연의 아우라는 폭풍 속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잿빛이었다. 이대로 무대에 올라갔다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거나, 호흡이 꼬여 최악의 방송 사고를 낼 것이 자명했다.
"서연아."
한율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서연은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허공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극도의 무대 공포증이 그녀의 오감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남은 시간은 단 1분.
한율은 주저 없이 걸음을 옮겨 서연의 등 뒤로 다섰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앗……!"
따뜻하고 단단한 가슴이 서연의 작은 등덜미에 밀착되었다. 서연의 몸이 본능적인 놀람으로 굳어졌지만, 이내 그녀의 귓가로 낮고 깊은 한율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숨 쉬어. 내 호흡에 맞춰."
한율은 서연의 가느다란 어깨를 지시하듯 꾹 누르며, 자신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가라앉는 리듬을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서연은 등에 닿은 그의 심장 박동을 느꼈다. 거칠고 불규칙하던 그녀의 심장이, 한율의 차분하고 강인한 박동의 궤적을 따라 서서히 싱크율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피디님……."
"눈 감아. 관객들도, 카메라 플래시도 다 잊어버려. 네가 소리를 내면, 내가 여기서 전부 받아낼 테니까."
그의 넓은 품 안에서, 서연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압도적인 안도감을 맛보았다. 차가운 얼음 성벽 같았던 남자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온 사방의 바람을 막아주는 든든한 요새가 되어주고 있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 서연의 영혼 깊은 곳에서 황금빛 아우라가 폭발하듯 피어올라 한율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것은 단순한 동조를 넘어선, 영혼의 결합이었다.
"가자, 윤서연. 가서 증명해."
한율이 천천히 팔을 풀며 그녀를 정면으로 돌려세웠다. 서연의 눈빛은 이전의 나약함을 지워내고, 오직 무대를 집어삼키겠다는 열망과 한율을 향한 애틋한 신뢰로 빛나고 있었다.
"네. 보여드릴게요. 우리의 음악을."
그녀가 마이크를 꽉 쥐고 무대 계단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스태프가 급히 한율에게 다가와 루미너스의 모니터용 리시버와 인이어 송신기를 건넸다.
"서 피디님, 이거 받으세요! 이제 무대 올라갑니다!"
장비를 건네받아 귀에 꽂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차디찬 소름과 함께, 머릿속을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서한율의 뇌를 관통했다.
"윽……!"
한율은 비명을 삼키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감각 동조와 피드백의 대가]. 서연과의 감정적 교감이 깊어지고 싱크율이 한계치에 다다를수록, 그녀가 무대 위에서 감당해야 할 모든 긴장과 육체적 고통이 그에게 두 배의 파괴력으로 리바운드되는 잔혹한 법칙.
귀에서 삐이- 하는 고주파의 이명이 굉음처럼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거짓말처럼 하얗게 지워졌다. 무대 위로 조명이 켜지는 소리도, 관객들의 함성도, 스태프의 외침도 없었다. 세계는 완전한 무소음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완벽한 실청(失聽)이었다.
무대 중앙에 선 서연이 한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그를 향해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었지만, 한율의 귀에는 오직 숨 막히는 침묵만이 휘몰아칠 뿐이었다.
소리가 사라진 세계는 잔인하도록 평화로웠다.
화려하게 쏘아지는 서치라이트, 웅장하게 들썩이는 관객들의 입모양, 드럼 스틱을 쥔 세션의 격렬한 팔뚝. 그 모든 것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서한율의 고막에 닿는 것은 오직 무겁고 축축한 침묵뿐이었다. 지독하리만치 고요한 심해의 밑바닥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피디님? 피디님, 괜찮으세요?!"
스태프가 그의 어깨를 흔드는 것이 보였다. 입술이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어떤 음성 신호도 한율의 뇌로 전달되지 않았다. 한율은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난간을 움켜쥐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이것이 대가였다.
서연의 얼어붙은 영혼을 녹이고 그녀와 완벽한 호흡의 싱크를 이뤄낸 순간, 그녀가 감당해야 했을 극도의 긴장감과 심장박동의 과부하가 한율에게 두 배의 통증과 완전한 청각 마비로 되돌아온 것이다. 눈앞이 핑 돌며 붉은 점들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때, 무대 중앙의 조명이 붉고 푸른빛으로 교차하며 루미너스의 컴백 타이틀곡, 'Resonance'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진동이 있었다. 무대 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둔탁한 베이스의 울림이 한율의 구두 밑창을 거쳐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 진동과 동시에, 한율의 시야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공감각 레조넌스].
소리를 잃어버린 암흑의 시야 위로, 형형색색의 빛나는 음파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강렬한 드럼 비트가 터질 때마다 무대 바닥에서부터 짙은 청색의 파동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백은우의 단단하고 묵직한 베이스 라인이 그 주위를 감싸 안는 은빛 줄기로 형상화되었다. 귀로 듣지 못하는 소리를, 그의 뇌가 시각이라는 극한의 감각을 통해 강제로 재구성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연이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그녀의 입술이 열리는 순간, 한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빛이었다.
눈이 멀 것 같이 찬란한 황금빛 파동이 서연의 목소리를 타고 뿜어져 나와, 어두운 스튜디오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빛줄기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곧고 단단하게 뻗어 나가, 관객석의 모든 이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율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지금 생애 최고의 라이브를 선보이고 있다는 것을.
‘들려.’
귀가 아닌, 영혼으로 그녀의 노래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율의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 솟구쳤다. 망가진 자신을 통과해 나간 음악이,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온전한 빛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감동은 길지 않았다.
노래가 1절을 지나 클라이맥스로 향해 가던 그때, 한율의 시야 구석에서 불길한 징조가 포착되었다. 무대 위쪽, 메인 스피커와 송출 장비가 위치한 방향에서 기이하고 비정상적인 청색 균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이전에 분석했던 에이펙스 오디오 엔진의 버그 파동이 아니었다. 훨씬 더 인위적이고, 악의적인 흐름이었다.
‘송출 밸런스…….’
한율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조정실의 엔지니어를 겁박해 루미너스의 마이크 라인을 살려놓았지만, 에이펙스의 손길은 그보다 더 깊은 곳에 닿아 있었다. 그들은 방송국 전체 송출 시스템의 메인 리미터 값을 실시간으로 조작하고 있었다.
무대 위의 가수가 고음을 내지르는 결정적인 순간, 송출 볼륨을 강제로 한계치까지 끌어올려 강제적인 음 깨짐(클리핑) 현상을 유발하려는 수작이었다. 그렇게 되면 안방에서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귀에는 루미너스의 노래가 삑사리나 쇳소리로 들리게 된다. 가수의 가창력 부족으로 위장한, 가장 완벽하고 비열한 타살이었다.
"이…… 새끼들이……."
한율은 이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들리지 않는 귀를 부여잡은 채, 그는 다시 조정실을 향해 달리려 했다. 그러나 한 걸음을 떼기도 전에 무릎이 꺾였다. 뇌를 헤집는 듯한 두통과 함께, 뜨거운 액체가 코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툭. 툭.
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붉은 혈흔이었다. 과도한 레조넌스 동조와 실청의 충격으로 인해 모세혈관이 터져버린 것이다. 시야가 붉게 물들어가고, 사지가 납처럼 무거워졌다. 손끝 하나 까딱하기 힘든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고음을 쏟아내던 서연이, 관객석이 아닌 무대 아래의 스태프 구역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한율을 발견했다.
서연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녀의 영혼에서 뿜어져 나오던 아름다운 황금빛 아우라가 충격과 슬픔으로 일순간 어지럽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템포가 어긋나고, 호흡이 가빠지는 것이 시각적인 파동의 균열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방송 사고 직전의 궤도.
서연은 직감적으로 깨달아가고 있었다. 지금 한율이 흘리는 피가, 그리고 그의 초점 없는 눈빛이 오직 자신을 무대 위에 세우기 위해 치른 잔혹한 대가라는 것을.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며 목소리가 잠기기 시작했다. 무대 위를 가득 채웠던 황금빛 빛줄기가 사그라지며 암전의 위기가 코앞까지 닥쳐왔다.
모든 것이 무너지기 직전의 찰나, 서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눈빛이 무서운 집념으로 돌변했다. 그녀는 한율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그의 희생을 무가치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무대의 룰을 부수기로 결심한 듯 마이크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송출 장비의 균열이 완전히 터져 나가기 일보 직전, 서연은 약속된 파트를 벗어나 제멋대로 변칙적인 애드리브를 시작했다. 그것은 에이펙스가 설계한 기계적 주파수의 한계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목숨을 건 주파수 자가 조율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