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피디님, 방금…… 그거 뭐예요?"

의심과 걱정이 뒤섞인 서연의 목소리가 좁은 녹음실 조정실 안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한율의 코트 주머니, 정확히는 붉은 피가 번진 손수건 모서리를 향해 조금씩 뻗어왔다.

한율의 귓가에는 사나운 폭풍우 같은 이명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삐이이- 하는 고주파의 소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렸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는 울컥거리며 비릿한 철분의 맛이 계속해서 차올랐다. 서연이 무리하게 짜낸 고음의 대가가 한율의 신경계를 타고 두 배의 고통으로 역류한 결과였다.

이대로 들킬 수는 없었다.

그녀가 이 잔혹한 등가교환의 법칙을 알게 된다면, 다정하고 책임감 강한 성정의 서연은 두 번 다시 마이크 앞에서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할 터였다. 스스로를 검열하고, 목소리를 사리며, 결국에는 무대 위에서 영영 빛을 잃어버릴 것이다.

한율은 턱 끝까지 차오른 신음을 억누르며, 뻗어오던 서연의 손목을 부드럽게 낚아챘다.

덥석, 잡힌 손목에 서연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피디님?"

한율은 대답하는 대신 가볍게 힘을 주어 그녀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가느다란 몸이 힘없이 딸려와 그의 가슴팍 근처에 닿았다. 비릿한 피 냄새를 덮기 위해, 한율은 반대쪽 손을 들어 올려 서연의 뺨을 슬그머니 쓰다듬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그녀의 피부는 노래를 마친 직후라 터질 것처럼 뜨거웠다. 발갛게 상기된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살포시 쓸어내리며, 한율은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은밀하고도 깊은, 오직 그녀만을 담아내는 시선이었다.

"너무 열심히 노래하느라, 네 숨만 가쁜 게 아닌 모양이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서연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한율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는 것은 서연뿐이 아니었다. 한율 역시 고통과 긴장감으로 맥박이 요동치고 있었다.

"내 심장 소리까지 너한테 전해진 모양이야. 숨이 차서 그래.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하지만 방금 피 냄새 같은 게……."

"네가 방금 지른 초고음 때문에 대기 중의 산소가 부족해진 탓이겠지. 내 코가 좀 예민해서 기분 탓일 거다."

한율은 서연의 뺨을 만지던 손을 내려 그녀의 턱을 가볍게 치켜올렸다. 두 사람의 거리가 숨결이 닿을 만큼 좁혀졌다. 서연의 조밀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시선이 한율의 단단한 입술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 사이를 방황했다.

방금 전까지 품었던 의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밀려드는 낯선 설렘과 당혹감이 서연의 얼굴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네 목소리에나 집중해."

한율은 천천히 손을 거두며 한 걸음 물러섰다. 손끝에 남은 온기가 아쉬운 듯 서연은 제 뺨을 만지며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겨우 위기를 넘겼지만, 한율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시야가 흐릿해지며 서연의 주변을 둘러싼 황금빛 아우라가 붉은색 실선으로 엉켜 드는 것이 보였다. 공공각 레조넌스의 경고 신호였다. 서연의 성대에 무리가 갈수록, 자신에게 가해지는 피드백은 영구적인 실청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한율은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드는 아픔으로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루미너스의 컴백 타이틀곡 'Resonance'는 이제 막 뼈대를 갖추었을 뿐이다. 서연의 보컬이 완성되지 않으면 이 곡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될 터였다.

그는 냉정함을 가장하며 콘솔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방금 지른 브릿지 파트, 소리는 시원했지만 최악이야."

차가운 독설이 떨어지자 서연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조금 전의 핑크빛 기류는 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엄격한 프로듀서와 절박한 보컬의 관계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목을 조여서 만드는 고음은 일회성에 불과해. 라이브 한 번 하면 네 성대는 그대로 가루가 될 거다. 내가 원하는 건 귀를 찌르는 고음이 아니라, 청자의 심장을 울리는 공명이야."

"하지만…… 이 파트의 감정을 살리려면 소리를 쥐어짜 낼 수밖에 없어요. 기교만으로는 그 절박함이 안 살아서……."

서연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항변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지고 싶지 않다는 고집과, 어떻게든 한율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한율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프로듀싱이었다. 자신의 감각이 완전히 붕괴하기 전에, 그녀에게 성대 손상을 최소화하면서도 최고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안전 보컬 메커니즘을 주입해야 했다.

"가슴을 열고, 공기를 아랫배 가장 깊은 곳까지 떨어뜨려."

한율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연에게 다가갔다. 그는 서연의 등 뒤에 서서 그녀의 옆구리와 갈비뼈 아래쪽에 손을 얹었다.

"여기에 가둔 압력을 척추를 타고 목뒤로 밀어 올린다고 생각해. 후두는 억지로 내리지 말고, 하품할 때처럼 자연스럽게 공간만 확보해.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네 몸이라는 악기를 울려서 밖으로 내보내는 거야."

그의 손길이 닿은 부위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연은 한율이 지시한 대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해보겠습니다."

다시 부스 안으로 들어간 서연이 마이크 앞에 섰다.

한율은 조정실 유리창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며 공감각 레조넌스를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면, 눈으로 소리를 보면 된다.

반주가 흘러나왔고, 서연이 노래를 시작했다.

시각화된 소리의 파동이 공기 중으로 뻗어 나갔다. 이전의 날카롭고 불안정하던 붉은색 파동이 아니었다. 한율이 알려준 호흡법을 적용하자, 서연의 아우라는 부드럽고 풍성한 황금빛 구체를 형성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아아아아-!"

브릿지 고음 파트.

그녀의 목소리가 확 트인 고속도로를 달리듯 매끄럽고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성대에 가해지는 마찰이 최소화되자, 한율의 목구멍을 짓누르던 통증도 기적처럼 잦아들었다. 완벽한 동조이자, 안전한 조율이었다.

콘솔의 레벨 미터가 터질 듯 요동쳤다. 헤드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는 그야말로 전율 그 자체였다. 단순한 고음이 아니라, 듣는 이의 영혼을 뒤흔드는 거대한 공명(Resonance).

"오케이. 컷."

한율이 인터콤 버튼을 눌렀다.

"완벽해. 이걸로 가자."

부스 안에서 서연이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한율은 귓가를 맴돌던 지독한 이명이 잠시나마 씻겨 내려가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

사흘 뒤.

루미너스의 컴백 타이틀곡 'Resonance'의 30초 분량 음원 티저가 공식 유튜브 채널과 SNS를 통해 배포되었다.

강도진이 이끄는 에이펙스 엔터테인먼트의 압박은 집요하고도 잔인했다. 그들은 루미너스의 컴백 소식이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주요 음원 플랫폼의 메인 배너 광고를 독점했고, 언론사들에 압력을 넣어 관련 보도자료를 철저히 묻어버렸다. 대형 기획사의 막강한 자본과 배급망 장악력 앞에서는 작은 신생 기획사의 마케팅 따위는 먼지처럼 사라질 판국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음악 그 자체가 가진 '힘'이었다.

한율이 공감각 레조넌스를 통해 설계한 'Resonance'의 사운드는 단순한 디지털 신호의 조합이 아니었다. 인간의 청각적 본능을 자극하고, 뇌 신경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입체적인 주파수의 향연이었다.

티저가 공개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 대기업 언론 통제 뚫고 나온 미친 퀄리티의 신곡 티저.gif ] - 야, 방금 트위터 실트에 뜬 루미너스 티저 들은 사람 있냐? - 헐 나 그냥 스크롤 내리다가 사운드에 홀려서 멈춤;; 이어폰 끼고 들었는데 소름 돋음. - 이거 프로듀서 누구임? 곡 퀄리티 미쳤는데? 공간감 오진다 진짜 내 머릿속에서 노래 부르는 줄. - 대박... 루미너스 그 망돌 맞음? 보컬 음색 황금빛 그 자체다. 30초 들었는데 노래 벌써 다 외움 ㅠㅠㅠ - 에이펙스에서 대놓고 묻으려고 기사 다 막았다던데, 대중들 귀는 못 막지 ㅋㅋㅋ 사운드가 깡패네.

댓글 피드는 쉴 새 없이 새로고침 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 "이것이 진짜 '귀호강'이다. 기계로 찍어낸 탑백 귀신 곡들이랑 차원이 다름." - "루미너스 리더 윤서연 맞음? 고음 올라갈 때 가슴 웅장해진다 진짜..." - "에이펙스 양아치 새끼들, 이렇게 좋은 곡을 묻으려고 했다고? 역풍 제대로 불어라."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공유와 입소문은 산불처럼 번져나갔다. 유튜브 쇼츠와 틱톡에서는 티저 음원을 활용한 챌린지 영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감정을 가장 강렬하게 자극하는 이 기적 같은 멜로디를 외면하지 못하고 피드 상단으로 끌어올렸다.

에이펙스가 구축해 놓은 견고한 빅데이터 독점 카르텔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피디님! 대박이에요!"

작업실 문이 부서져라 열리며 메인 보컬 백은우가 헐떡이며 뛰어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실시간 음원 차트 화면이 켜진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우리 이름이 있어요! 그리고 음원 사이트 핫100 차트에…… 74위로 진입했어요! 우리 데뷔하고 차트 인 한 거 처음이에요!"

뒤따라 들어온 멤버들이 서로를 껴안고 눈물을 터뜨렸다. 3년 동안 차트 구경조차 해보지 못하고 해체의 기로에 섰던 소통 불가의 무명 아이돌이, 오직 곡의 독보적인 중독성과 퀄리티 하나만으로 거대 기획사의 통제를 뚫고 차트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수치의 변화가 아니었다. 거대 자본이 주무르는 가요계의 룰을 인간의 진심과 천재적인 프로듀싱으로 깨부순 완벽한 대역전극이었다.

서연은 기뻐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조용히 걸어 나와 한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피디님…… 감사해요. 정말로……."

한율은 여전히 귀에서 들리는 먹먹한 이명을 견디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호들갑 떨지 마."

차가운 말투였지만, 그의 입꼬리는 아주 미세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자신의 음악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이 아이들이 세상에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음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작업실 구석에 놓여 있던 실장의 전화기가 자지러지게 울려댔다. 전화를 받은 실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가,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 네?! 정말입니까? 예! 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실장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얘, 얘들아……! 큰일 났다! 아니, 대박 났다!"

"무슨 일인데요, 실장님?"

서연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다음 주…… <쇼! 뮤직 챔버>에서 연락이 왔어! 메인 스튜디오 라이브 무대에…… 루미너스를 초청하겠대! 그것도 컴백 스페셜 단독 오프닝 스테이지로!"

"네?!"

작업실 안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지상파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쇼! 뮤직 챔버>는 에이펙스의 입김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방송사였다. 원래대로라면 루미너스는 출연 신청서조차 내지 못할 무대였다. 그런 곳에서 단독 오프닝 스테이지 라이브 초청장이라니.

기적 같은 기회 뒤로, 한율의 뇌리에 차가운 경고등이 켜졌다.

이것은 단순한 호재가 아니다. 에이펙스의 강도진이 이 폭발적인 반응을 잠재우기 위해, 루미너스를 가장 화려한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파멸시키려 파놓은 거대한 함정일 가능성이 높았다. 지상파 생방송 라이브. 실수 하나만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벼랑 끝의 무대.

한율의 시선이 서연의 얼굴에 머물렀다. 과연 이 무대는 구원일까, 아니면 파멸의 시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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