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가장 장엄한 솔로 서사의 도입부가 연주 없이 수놓아지기 직전, 병동을 빠져나온 한율은 자신의 모든 신체적 마비 장벽을 일순간 깨부수기 위한 파괴적인 초고농도 레조넌스 접속 스위치를 누른다.

딸깍.

손가락 끝을 타고 흐른 미세한 진동이 붉은 플라스틱 스위치를 아래로 꺾었다. 그 찰나, 귓가를 찢어발기던 기계음과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거짓말처럼 단절되었다. 완전한 침묵. 아니, 그것은 소리가 사라진 침묵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파동이 오직 빛의 형태로 치환되어 뇌리로 쏟아지는, 공감각적 해방의 시작이었다.

귓바퀴를 타고 흘러내린 끈적하고 뜨거운 액체가 턱 끝에 고였다가 콘솔 데스크 위로 툭, 떨어졌다. 붉은 혈흔이 페이더 위에 번졌지만 한율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양쪽 귀가 완전히 먹어 먹먹한 수중 세계에 잠겼음에도, 그의 망막에 비친 무대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무대 아래 대기석.

"아악! 내, 내 마이크 왜 이래! 소리 안 나와?!"

귀를 찢는 하울링과 함께 보정 필터가 완파된 순간, 민설아는 제 목을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 그녀의 생목소리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쇳소리가 나다 못해 갈라져 찢어진, 늙은 맹수의 단명하는 울음 같은 소리.

한율의 시야 속에서 민설아의 아우라는 더 이상 정교한 푸른빛의 기하학적 문양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계적 왜곡 없이는 단 한 소절의 노래도 부를 수 없는, 에이펙스 기술 완벽주의의 추악한 민낯을 폭로하듯 사방으로 균열이 간 청색 유리 파편처럼 날카롭게 바스러지고 있었다. 성대 결절을 숨기기 위해 데이터 보정 필터 뒤에 숨어 있던 가짜 예술가의 말로였다.

"저, 저게 민설아 진짜 목소리라고?" "미친, 대박…… 완전히 목 나갔잖아? 그동안 음원이고 라이브고 다 기계로 만진 거였어?" "에이펙스 진짜 소름 돋는다. 사기꾼들이었네!"

객석에서 시작된 술렁임은 순식간에 거대한 해일이 되어 경기장 전체를 집어삼켰다. 실시간 중계창의 채팅창은 초 단위로 수만 개씩 갱신되며 폭발했다.

[- 민설아 라이브 실화냐? 귀 썩는 줄;;] [- 보정 필터 터지니까 바로 쇳소리 나네ㅋㅋㅋㅋ 이게 에이펙스가 자랑하던 '천재 보컬'의 실체?] [- 루미너스는 생라이브로 음원 찢고 있는데 에이펙스는 기계 보정 없으면 노래도 못 하네. 진짜 역대급 사기극이다.]

강도진은 VIP석 난간을 움켜쥔 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손톱이 깨질 듯 힘이 들어갔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민 프로듀서! 당장 오디오 엔진 재부팅해! 세션 다 막아버려!"

그가 소리쳤지만, 에이펙스의 메인 오디오 타워는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태였다. 한율이 설계해 둔 8.2kHz 대역의 디지털 클리핑 피드백 루프. 에이펙스의 최첨단 오디오 엔진이 자랑하던 '완벽한 고음 역대 보정 알고리즘'은 주파수가 과부하되는 순간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설계된 치명적인 버그를 품고 있었다. 엔진 내부의 가상 회로들이 차례로 타들어 가며, 전광판의 시스템 상태창에는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디지털의 완벽한 붕괴. 그들이 자랑하던 빅데이터와 기계적 카르텔은 루미너스의 날것 그대로의 진심 어린 울림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강도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무대 감독의 덜미를 낚아채며 이빨을 드러냈다.

"백업 세션 돌려! 립싱크 가상 음원이라도 당장 송출해! 루미너스 마이크 꺼버리란 말이야!"

그의 명령에 따라 에이펙스의 기술진들이 다급하게 백업 디지털 세션을 무대로 밀어 넣으려 휠을 돌렸다. 루미너스가 가창하는 주파수 대역을 강제로 덮어쓰고, 기계음으로 무대를 난도질하려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 순간, 콘솔 박스 안의 한율이 차갑게 미소 지었다.

'도망갈 구멍 따윈 없어, 강도진.'

한율은 화면 구석에서 점멸하는 시스템 폴더를 열었다. 그 안에는 정식 음원 등록조차 되지 않은, 거칠고 투박한 수작업 세션 파일 하나가 들어 있었다.

[Unfinished_Orchestration_Draft_04(Eunwoo_Edit).wav]

과거, 제멋대로 날뛰던 메인 대들보 백은우가 한율의 오피스텔 작업실에 무단으로 침입해 제멋대로 낙서해 두었던 미완성 악보의 브릿지 파트.

당시 한율은 "이 따위 쓰레기 같은 낙서는 악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며 은우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었다. 하지만 그 투박한 오선지 구석에는, 클래식의 규칙을 모두 파괴하면서도 오직 동료들을 향한 집착적인 진심과 열정만으로 가득 찬 독창적인 어쿠스틱 오케스트레이션의 뼈대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한율의 손가락이 마스터 믹서의 디지털 라우팅을 차단하고, 아날로그 오크 관현악 라이브 전송 세션의 다이렉트 채널을 개방했다. 은우의 낙서에서 자라난 그 미비한 브릿지 파트가, 지금 이 순간 에이펙스의 디지털 해킹을 무력화할 유일한 '아날로그 장벽'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우우웅-.

에이펙스의 디지털 보정 시스템이 루미너스의 목소리를 덮어쓰려던 찰나, 경기장 전체에 웅장하고도 고풍스러운 리얼 목관악기의 진동이 울려 퍼졌다.

디지털 신호가 아닌, 거대한 오크 나무의 울림통을 거쳐 나온 듯한 따뜻하고 묵직한 어쿠스틱 화음. 그것은 차갑고 기계적인 에이펙스의 주파수 대역을 완벽하게 밀어내며 무대 위 공백을 거세게 채워 나갔다.

"이, 이건 무슨 세션이지? 우리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파형인데?!" 에이펙스 음향 엔지니어가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다.

아날로그 오케스트레이션은 애당초 그들의 디지털 필터가 재단하거나 왜곡할 수 없는 영역의 주파수였다. 은우가 남긴 투박한 낙서는 한율의 천재적인 편곡을 거쳐, 에이펙스의 기계적 믹싱 시도를 단숨에 차단하고 박살 내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 있었다.

무대 위, 센터에 서 있던 백은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장엄한 목관악기와 어쿠스틱 현악의 선율. 그것은 자신이 과거 한율의 방에서 밤을 새우며 그렸던, 결코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할 줄 알았던 바로 그 멜로디였다.

은우의 입꼬리가 호기롭게 올라갔다.

"거봐, 피디님. 내 낙서가 최고라고 했잖아."

은우가 마이크를 움켜쥐며 거친 호흡과 함께 첫 소절을 쏘아 올렸다. 그의 강렬하고 날 선 보컬이 따뜻한 아날로그 오케스트레이션의 날개 위를 타고 날아올랐다. 기계적인 보정 따위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오직 인간의 성대와 열정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위대한 울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윤서연이 천천히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멀리 떨어진 콘솔 박스를 향해 있었다.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을 향해 남은 생명을 남김없이 쏟아붓고 있을 한율. 그의 고통이, 그의 사랑이, 공감각적 주파수를 타고 서연의 심장으로 고스란히 흘러들고 있었다.

'더 이상 당신 혼자 아프게 두지 않아.'

서연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녀의 몸 주변으로 피어오르는 황금빛 아우라가 전례 없는 밀도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아우라가 아니었다. 한율의 [공감각 레조넌스]와 완벽하게 싱크를 이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순도 100%의 주파수 파형이었다.

아날로그 클래식의 전율적인 협주 속에서, 서연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

반주가 멈추고, 오직 서연의 목소리와 리얼 오케스트레이션의 협주만이 흐르는 정적의 순간. 그녀의 고음은 경기장의 천장을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기계가 설계한 완벽함 따위는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의 목소리는 관객들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사정없이 뚫고 들어가 흔들어 놓았다.

온몸의 털이두 번 세 번 곤두서는 예술적 카타르시스.

데이터 공식으로 무장했던 에이펙스의 음악이 차가운 플라스틱 모형이었다면, 지금 루미너스가 선보이는 무대는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자연의 폭풍우와 같았다.

"와아아아아아-!" "루미너스! 루미너스!"

8만 명의 관객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누구의 지시도 없었다. 그것은 인간이 위대한 예술을 마주했을 때 본능적으로 터뜨리는 경외의 함성이었다. VIP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강도진은 다리가 풀린 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자신의 철옹성이, 자신이 평생을 바쳐 세운 빅데이터 독점 공식이, 단 한 명의 천재 프로듀서와 그가 길러낸 망돌의 진심에 의해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찬란한 영광의 이면에서.

콘솔 박스 안의 한율은 지옥 같은 고통의 심연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끄윽……!"

커다란 신음과 함께 한율의 손등 위로 타는 듯한 통증이 달렸다. 뚜두둑, 소리와 함께 손등의 모세혈관들이 차례로 파열되며 피부 아래로 붉은 피가 번져 나갔다. 동조율 150%를 초과하여 유지한 대가였다. 서연이 무대 위에서 내지르는 초고음의 성대 파열 리스크와 정신적 에너지가, 동조의 법칙에 의해 두 배의 파괴력으로 한율의 신경계를 짓밟고 있었다.

시야가 급격히 흐려졌다. 황금빛 아우라로 가득했던 세상이 붉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한율은 떨리는 손으로 마스터 믹서의 페이더를 붙잡으려 버텼다. 하지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끝이 미끄러지며 페이더 데스크를 찌르르 긁는 소리가 귓가를 흐릿하게 스쳤다.

툭.

결국 한율의 무릎이 꺾였다.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은 그의 시야 구석, 콘솔 모니터 화면에는 여전히 혈적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그가 서랍 속에 깊숙이 숨겨두었던, 수명을 다해 고장 난 보청기의 붉은 배터리 잔량 표시가 유령처럼 번뜩였다.

'여기까지인가…….'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암흑의 세계. 한율은 눈을 감으려 했다.

그때였다.

스피커의 진동마저 느껴지지 않는 고요 속에서, 무대 위 서연의 시선이 콘솔 박스의 유리창을 정확히 꿰뚫었다.

그녀의 은색 눈망울에 슬픔이나 두려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한율의 자가 파괴적인 헌신을 완전히 눈치챈 이의 전격적인 결의였다.

서연은 노래를 멈추지 않은 채, 천천히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보여줄게, 한율 씨. 내가 당신의 족쇄를 어떻게 부수고 나아가는지.'

그녀의 눈빛이 황금빛을 넘어, 한율조차 본 적 없는 미지의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빛이 황금빛을 넘어, 한율조차 본 적 없는 미지의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서연은 마이크를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성대가 찢어질 듯한 고음의 연속이었지만, 그녀는 목을 쥐어짜는 대신 호흡의 깊이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한율이 늘 강조했던, 복부 깊은 곳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진동의 정석적인 흐름. 하지만 그 흐름 속에는 한율조차 가르친 적 없는 기묘한 주파수의 변화가 섞여 있었다.

잉잉거리는 이명 너머로, 한율은 콘솔 데스크 밑바닥에서 요동치는 공감각의 파동을 보았다.

그것은 일방적인 수신이 아니었다. 서연의 아우라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불꽃이 한율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매번 한율의 영혼을 찌르고 들어오던 날카로운 붉은 낙인들이, 그 푸른빛의 장막 속으로 부드럽게 흡수되어 녹아내렸다. 동조율은 160%, 170%를 넘어 통제 불능의 영역으로 치솟고 있었지만, 전신을 찢어발기던 두 배의 통증이 기적처럼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상대의 고통을 흡수해 대신 짊어지는 수동적인 구원자가 아니다. 서연은 지금, 한율이 설계해 놓은 감각 동조의 일방적인 통로를 제 힘으로 뒤틀어 역방향으로 제어하고 있었다.

"이, 미친년이…… 당장 무대 내려! 전원 차단해!"

VIP석에서 미친 사람처럼 날뛰던 강도진이 난간을 타고 내려와 메인 배전반을 향해 달렸다. 그의 눈에는 이미 이성과 합리성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에이펙스의 데이터 독점과 기술적 완벽주의가 한낱 망돌의 라이브에 처참하게 조롱당하는 꼴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철컥!

강도진이 배전반의 메인 레버를 거칠게 아래로 내리눌렀다.

순식간에 경기장 천장의 수백 개 조명이 암전되었다. 거대한 암흑이 8만 관객의 시야를 덮쳤고, 무대 위로 흐르던 믹서의 디지털 신호가 완전히 끊겼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세션의 소리도 일제히 멈췄다.

"어? 정전이야?" "갑자기 왜 불이 꺼져? 방송 사고인가?"

관객석에서 당혹감에 젖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단 하나의 소리만큼은 죽지 않았다.

전기가 끊긴 마이크 대신, 백은우가 이끌던 리얼 아날로그 세션의 어쿠스틱 오케스트레이션이 어둠 속에서 고동쳤다. 전원 공급이 필요 없는 현악기의 활이 현을 긁어내렸고, 목관악기의 울림이 콘크리트 바닥을 타고 잔잔하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윤서연의 목소리가 백 마이크 없이 맨몸으로 경기장 전체를 메우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반주조차 흐릿한 정적 속에서, 서연의 생목소리가 아날로그 오케스트레이션의 선율을 디딤돌 삼아 허공으로 쏘아 올려졌다. 마이크가 꺼졌음에도 그녀의 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량은 경기장 구석구석까지 선명하게 가 닿았다.

어둠은 공포가 아닌, 오직 그녀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가장 완벽한 연출이 되었다.

관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미세한 불빛들이 순식간에 8만 개의 은하수가 되어 암전된 경기장을 은빛으로 수놓았다. 기계적 장치도, 화려한 조명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공간에서, 오직 은서연이라는 존재 하나가 우주의 중심이 되어 노래하고 있었다.

실시간 방송을 지켜보던 대중의 반응은 이미 경외를 넘어 집단적인 전율로 가닿아 있었다.

[- 소름 돋아서 팔에 닭살 돋음. 마이크 꺼졌는데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아.] [- 에이펙스가 전기를 끊었는데도 노래를 안 멈추네. 진짜 괴물들이다.] [- 이게 진짜 '루미너스'지. 기계로 사기 치던 에이펙스 보고 있냐?] [- 눈물 난다 진짜…… 이게 음악이지…….]

콘솔 박스 안, 바닥에 쓰러진 한율의 눈앞에서 붉은 경고등이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띵-. 띵-.

그 심장박동 같은 점멸 속에서, 서랍 틈새로 삐져나온 고장 난 보청기의 배터리가 보였다. 그것은 한율이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기한이자, 더 이상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라 단정 지었던 절망의 잔해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귓가에는 아무런 기계적 도움 없이도 서연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꽂히고 있었다. 심인성 난청의 두꺼운 고막을 뚫고 들어온 것은, 물리적인 음파가 아닌 공감각적 주파수로 정렬된 그녀의 영혼 그 자체였다.

'한율 씨. 똑바로 봐.'

서연의 아우라가 한율의 뇌리에 직접 말을 건네는 듯했다.

그녀는 한율이 지고 있던 고통의 무게를 고스란히 나누어 짊어지며, 무대의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한율의 난청을 유발했던 뇌의 닫힌 신경 회로들이, 서연이 쏘아 보내는 강력한 푸른 주파수의 진동에 반응하여 하나씩 강제로 개방되는 감각이 일었다. 머릿속이 번개라도 맞은 듯 찌릿하게 떨려왔다.

두 배의 신체적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투명하고 청명한 소리의 해일이 밀려들었다.

"하윽!"

한율은 가슴을 쥐어짜며 바닥을 짚었다.

들린다. 기계의 보정을 거치지 않은, 서연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가. 그리고 그 목소리를 감싸 안으며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은우의 아날로그 오케스트레이션이, 마치 오래전 잃어버렸던 영혼의 조각처럼 그의 귀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하지만 기적의 환희도 잠시였다.

동조율이 200%에 육박하는 극단적인 오버클록 상태. 한율의 청각이 회복되는 것과 정반대로, 무대 위 서연의 목소리 끝부분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것을 한율은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녀의 푸른 아우라 모서리가 붉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한율의 고통을 억지로 빼앗아 제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탓에, 서연의 성대와 신경계가 역류하는 피드백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무대가 끝나면, 서연의 목소리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안 돼…… 서연아, 멈춰……!"

한율은 목을 놓아 소리치려 했지만, 성대에서는 거친 쇳소리만 맴돌 뿐 제대로 된 문장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의 떨리는 손가락 끝이 마스터 믹서의 볼륨 페이더를 향해 뻗어 나갔다. 어떻게든 동조를 끊어야 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청력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쪽이 나았다.

그때, 무대 위에서 마지막 고음을 향해 치닫던 서연이 콘솔 박스를 향해 눈을 맞췄다.

그녀는 피를 토할 것 같은 목의 통증 속에서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율의 손이 페이더를 내리려는 순간, 서연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푸른 불꽃의 파동이 거대한 장벽이 되어 한율의 공감각적 시야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동조의 접속 권한마저 그녀가 주도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연은 자신의 영혼을 통째로 불사르듯,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가장 파괴적이고 장엄한 마지막 고음을 향해 목청을 열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