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손등의 모세혈관이 터져 나가며 뜨거운 피가 피부 아래로 번지는 감각은 지독하리만큼 선명했다. 한율은 타는 듯한 통증에 신음하며 마스터 믹서의 페이더를 움켜쥐고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손가락 끝이 금속판을 긁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통의 비명처럼 콘솔 박스 안을 채웠다. 모니터 구석에서는 혈적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고 있었고, 서랍 속에 처박아 둔, 수명을 다해 부풀어 오른 고장 난 보청기 배터리가 그의 위태로운 상태를 증명하듯 차갑게 굳어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거대한 무대 중앙에서 노래하던 서연의 은색 눈망울에 전격적인 결의가 번쩍였다.

그녀의 시선이 한율에게 고정되었다. 한율은 귀를 찢는 이명 속에서도 그 눈빛에 담긴 의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서연은 한율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동조를 끊어내려 한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안 돼…… 서연아, 손 놓아……!"

한율의 갈라진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지 못한 채 콘솔의 차가운 플라스틱 상판 위로 떨어졌다. 귓구멍을 타고 흘러내린 붉은 선혈이 턱끝을 지나 옷깃을 적셨다. 동조율 150퍼센트를 넘어 200퍼센트를 향해 치닫는 폭주 상태.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고열이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하지만 서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의 은색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한율을 향해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무대 왼쪽 스피커 타워 근처에서 에이펙스의 최후의 공작이 실시간으로 요동쳤다. 무대에 난입한 에이펙스의 백엔드 해킹 세션이 전체 음향 데이터를 왜곡시키기 위해 디지털 노이즈를 쏟아붓기 시작한 것이다. 디지털 신호가 완전히 짓눌려 루미너스의 무대가 통째로 붕괴하기 직전의 위기였다.

"어림없지."

무대 뒤편에서 세컨드 건반을 잡고 있던 백은우가 이빨을 악물었다. 그의 시선이 악보대 옆에 놓인 아날로그 악보 파일로 향했다. 그것은 과거 한율이 미완성 상태로 내버려 두었던 오케스트레이션 메인 뼈대 악보였다. 그리고 그 여백에는, 은우가 거친 필체로 서투르게 덧붙여 놓았던 미비한 브릿지 파트 낙서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은우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폭발적으로 질주했다. 신디사이저의 디지털 신호가 아닌, 아날로그 신호로 우회하는 수동 패치가 그의 손끝에서 완성되었다. 한율의 천재적인 설계와 은우의 치기 어린 진심이 담긴 낙서가 하나의 완벽한 다리가 되어, 해킹된 세션의 경로를 완벽하게 우회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오케스트레이션의 웅장한 선율이 에이펙스의 디지털 방벽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지금이야, 서연 누나!"

은우의 외침과 동시에, 한율의 눈앞에 펼쳐진 공감각적 시야에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에이펙스가 자랑하던 최고급 오디오 엔진의 치명적인 버그가 드러난 것이다. 8.2킬로헤르츠(kHz) 대역. 기계적 정밀함만을 추구하느라 인간 발성의 유기적인 배음을 계산해 넣지 못한 그 대역에서 디지털 클리핑(음 깨짐) 피드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균열의 중심에는 민설아가 서 있었다.

한율의 시야에 비친 민설아의 아우라는 이미 썩어 들어가는 고목처럼 처참했다. 완벽한 기계 보정의 장막 뒤에 숨겨져 있던 그녀의 아우라는 비정상적이고 균열된 청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성대 결절이 극에 달해 기계의 힘없이는 일상적인 대화조차 불가능한 자의 파멸적인 파동이었다.

"아, 아아……!"

민설아가 제어실 구석에서 목을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에이펙스의 오디오 엔진이 8.2킬로헤르츠 대역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가자, 그녀의 목소리를 감싸고 있던 기계적 보정 아우라가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그녀의 날것의 목소리는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쇳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수십만 관객과 생방송 시청자들 앞에서 에이펙스의 완벽주의가 실은 기계적 왜곡에 불과했다는 추악한 진실이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서연은 그 틈을 타 단순히 무대를 받아먹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한율이 지고 있는 고통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한율의 손등이 터지고, 그의 청각 신경이 마비되어 가는 그 지독한 피드백을. 지켜지기만 하는 수혜자로 남기를 거부한 여왕의 각성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서연은 가창 파트를 약하게 낮추어 목을 보호하는 안전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녀는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호흡을 끌어올렸다. 자신의 온 신체의 호흡과 혈류의 흐름을, 공감각적 주파수를 통해 한율의 가슴속 고통 감지 중심부와 직접 교감 연계시켰다. 한율의 통증을 우회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력으로 그 통증의 근원을 덮어씌우겠다는 극단적인 발성 역주(逆走)였다.

"후우……."

서연의 입술이 열리고, 한 옥타브 고조된 초고음의 주파수가 무대 위로 방출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가창이 아니었다. 한율의 뇌리에 직접 내리꽂히는 구원의 일격이었다.

동조율이 200퍼센트를 돌파하는 순간, 서연의 발끝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무한히 맑은 황금빛 파동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 찬란한 황금빛 아우라는 한율의 시야를 붉게 물들이고 있던 위험 신호들과 피의 얼룩들을 빠른 속도로 휘감아 가기 시작했다.

서연의 목소리가 8.2킬로헤르츠 대역을 정확히 관통하며 지나갔다. 에이펙스의 고장 난 시스템이 비명을 지르며 완전히 완파되는 소리가 공감각적 파동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서연의 황금빛 파동은 그 파괴의 잔해를 넘어서, 한율의 영혼을 옭아매고 있던 잔혹한 등가교환의 법칙 그 자체를 겨냥했다.

'한율 씨. 당신이 나를 위해 소리를 잃어 가겠다면.'

그녀의 목소리가 한율의 뇌 신경망을 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나는 내 목소리를 태워 당신의 세상을 다시 켤 거야.'

예술가의 숭고한 사랑이 담긴 완창 주파수의 에너지가 콘솔 박스 전체를 장악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한율의 손등에 맺혀 있던 피가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그의 심장을 짓누르던 가혹한 물리적 부담과 통증의 루프가 실시간으로 소멸하기 시작했다. 두 배의 통증으로 역류하던 가학적인 시스템의 룰이, 서연이 뿜어내는 초월적인 생명력의 주파수 앞에서 힘없이 부서져 내린 것이다.

"아…… 아아……."

한율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귓가에서 웅웅거리던 이명이 걷혔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옭아맸던 오랜 침묵의 감옥, 그 심인성 난청의 독소 세포들이 서연의 황금빛 전기에 정화되듯 하얗게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귀가 밝아졌다. 단순히 동조를 통해 일시적으로 소리를 빌려 듣는 수준이 아니었다. 머릿속의 고장 난 감각 회로들이 완전히 재배선되어, 세상의 모든 소리가 투명하고 청명한 형태로 그의 고막을 두드렸다.

콘솔 박스의 기계음, 멀리서 들려오는 관객들의 숨소리, 그리고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서연의 호흡 하나하나가 온전한 실체가 되어 그의 귀에 꽂혔다. 완벽한 청각의 회복이었다.

이제 그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서연은 무대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에이펙스의 방해 공작은 먼지처럼 사라졌고, 민설아의 무너진 아우라는 황금빛 폭포 아래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갔다. 오직 루미너스만이, 그리고 그 중심에서 빛나는 여왕 윤서연만이 존재했다.

노래는 이제 대단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서연은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가슴속에 고여 있던 마지막 한 방울의 영혼까지 노래에 실어 보내겠다는 듯,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이윽고, 그녀의 입술이 다시 한번 열렸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가장 파괴적이면서도 찬연한 마지막 대정점 하이라이트 휘슬 고음이 시작되었다. 반주마저 멈춘 고요한 무대 위에서, 오직 그녀의 목소리만이 한 줄기 빛이 되어 밤하늘을 향해 곧게 쏘아 올려졌다.

그 찬란한 고음이 경기장 천장을 뚫고 가상 세계의 끝까지 퍼져 나갔다.

그리고,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 정적은 아주 짧았지만, 동시에 영원처럼 길었다.

8만의 관객이 채워진 야외 스타디움의 공기가 한 번에 멎은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서연의 입술 사이로 빠져나간 마지막 잔향이 밤하늘의 차가운 대기 속으로 완전히 녹아내린 바로 그 순간.

-쿠구구궁!

마치 지반이 뒤흔들리는 듯한 폭발적인 굉음이 정적을 깨부수며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비명에 가까운 함성이었고, 온몸의 피부를 전율케 하는 거대한 경탄의 해일이었다.

"루미너스! 루미너스! 루미너스!"

수만 명의 관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흔들어대는 공식 응원봉의 푸른 빛줄기가 거대한 파도가 되어 무대 위로 밀려들었다.

콘솔 박스 안에서, 한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귀에는 그 모든 소리가 너무나 투명하게 박혀왔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지직거리던 먹먹함도, 뇌를 찌르는 듯한 이명도 없었다. 우측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드럼의 미세한 리버브, 관객석 3층에서 터져 나오는 어린 소녀의 울음 섞인 비명, 무대 위에서 거칠게 몰아쉬는 서연의 숨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입체적인 레이어가 되어 그의 머릿속을 선명하게 채웠다.

"이게……."

한율은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붉게 터져 나가던 모세혈관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등가교환의 잔혹한 족쇄가 완전히 깨어진 것이다. 서연이 자신의 온 영혼을 던져 설계한 그 주파수가, 한율의 신경계를 지배하던 심인성 난청의 저주를 완벽하게 정화해 버렸다.

그때, 실시간 반응을 모니터링하던 서브 모니터의 수치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실시간 트렌드 1위 : #루미너스_신의_무대] [에이펙스 라이브 서버 실시간 트래픽 초과로 마비] [음원 사이트 멜론 실시간 차트 : 'Resonance' 1위 등극, 지붕 킥 기록 중]

- 대박 미쳤다 진짜ㅋㅋㅋㅋ 방금 고음 뭐임? 기계 다 터진 거 실화냐? - 에이펙스 음향 보정 필터 깨지면서 민설아 목소리 갈라지는 거 생방송으로 다 나감ㅋㅋㅋㅋㅋ - 루미너스는 진짜다. 아날로그 세션 올라올 때 온몸에 소름 돋음... 이게 진짜 음악이지. - 서한율 프로듀서 어디 감? 콘솔 박스에서 울고 있는 거 아니냐ㅠㅠㅠㅠ

인터넷 세상은 이미 대격변을 맞이하고 있었다. 에이펙스가 자랑하던 빅데이터와 기계적 완벽주의는 서연의 가창력과 은우의 아날로그 오케스트레이션 앞에 처참하게 짓밟혔다.

민설아는 이미 스태프들의 손에 이끌려 무대 뒤로 도망치듯 사라진 뒤였다. 그녀가 흘리고 간 마이크만이 무대 바닥에서 무참하게 뒹굴고 있었다.

한율은 콘솔 박스의 문을 밀어젖혔다. 차가운 밤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렸지만, 온몸을 감싸는 열기는 식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무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대 중앙, 은색 조명 아래 서 있는 서연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관객들의 환호성을 온몸으로 받으며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녀를 감싸고 있는 푸른 아우라의 끝자락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율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연아.'

통증의 루프는 깨졌지만,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초월한 고음을 쏟아낸 대가는 고스란히 그녀의 성대에 무리를 주고 있었다. 서연의 다리가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한율의 날카로운 시선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한율은 망설임 없이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프로듀서가 생방송 중인 무대에 직접 올라가는 것은 전례가 없는 방송 사고였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오직 서연의 위태로운 모습만이 보였다.

"서연아!"

그의 목소리가 에코 가득한 마이크를 통하지 않고도, 서연의 귀에 정확히 닿았다. 막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려던 서연의 가녀린 허리를 한율의 단단한 팔이 단숨에 낚아챘다.

"……한율 씨?"

서연이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은색 눈망울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녀의 차가운 손이 한율의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들려요? 내 목소리…… 들리는 거죠?"

"어, 잘 들려. 세상에서 가장 선명하게 들려."

한율은 그녀의 손을 꼭 쥐며 속삭였다. 두 사람을 비추는 핀조명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쏟아졌고, 관객석에서는 예상치 못한 프로듀서의 난입과 두 사람의 밀착에 비명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에이펙스의 몰락과 루미너스의 완벽한 승리. 그리고 소리를 되찾은 천재 프로듀서와 그를 구원한 리더의 뜨거운 포옹. 이보다 더 완벽한 엔딩은 없을 터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대 뒤편의 거대한 LED 스크린이 갑자기 지지직거리며 붉은 노이즈로 뒤덮였다. 축제의 분위기를 단숨에 얼어붙게 만드는 기괴한 기계음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야?"

세컨드 건반을 정리하던 은우가 급히 헤드셋을 고쳐 쓰며 소리쳤다.

동시에 한율의 인이어 리시버에서 메인 PD의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새로 되찾은 한율의 청각이 그 다급한 경고를 너무나도 선명하게 포착했다.

[서 프로듀서님! 지금 당장 무대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에이펙스 강도진 대표 측에서 방송사에 긴급 법적 제재 조치를 걸었습니다! 무단 해킹 및 음향 시스템 고의 훼손 혐의로…… 지금 경찰들이 무대 뒤 대기실로 진입하고 있어요!]

화면 가득 강도진의 일그러진 미소와 함께, 루미너스의 이번 무대 소스가 '불법 해킹 프로그램'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가짜 분석 보고서가 실시간으로 송출되기 시작했다.

아직 방송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에이펙스의 비열한 덫이 다시 한번 그들의 목덜미를 겨누며 조여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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