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끝난 관객석의 광포한 열화 소리 뒤로, 갑작스러운 귀의 대출혈 반사를 겪은 한율이 양쪽 귀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끈적한 선혈을 부여잡은 채 완전히 주저앉았다.
웅웅거리는 이명조차 허락되지 않는, 완벽한 진공의 세계였다. 수만 명의 관객이 만들어내는 광포한 함성은 한율의 고막에 끝내 닿지 못한 채 산산조각이 났다. 눈앞의 시야가 검붉게 물들어 갔다.
한율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귓바퀴를 쓸어내렸다. 손끝에 닿은 것은 체온보다 조금 더 뜨거운, 점성이 강한 선혈이었다. 양쪽 귀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가 턱선을 타고 차가운 콘솔 패널 위로 뚝뚝 떨어졌다.
"아……."
입술을 달싹여보았지만, 자신이 뱉은 외마디 신음조차 스스로에게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잃어버린 세상은 지독하리만치 고요했고, 그 무음의 심연 속에서 한율의 무릎이 사정없이 꺾였다.
털썩.
차가운 콘솔 바닥에 주저앉은 그의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자신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서연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녀의 입술이 울부짖듯 움직이고 있었지만, 한율에게는 그저 소리 없는 무성영화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이윽고, 한율의 세계가 완전히 암전되었다.
***
사흘 뒤, 서울의 한 대형 병원 격리 중환자실.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한율의 얼굴은 핏기가 하나도 없이 창백했다. 인공호흡기와 복잡한 모니터 장비들이 그가 살아있음을 겨우 증명하듯 규칙적인 곡선을 그리며 깜빡이고 있었다.
"신경계의 극단적인 과부하입니다."
담당 신경외과 최고 전문의는 차트를 넘기며 무거운 목소리로 진단을 내렸다. 그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차가운 병원 복도에 내려앉았다.
"뇌의 청각 피질로 가는 신경 신호가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단순한 심인성 난청의 수준을 넘어섰어요. 달팽이관과 청신경 세포가 마치 고전압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타버린 상태입니다. 현재로서는…… 사실상의 완벽한 실청, 즉 전농 상태입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회복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 진단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병원 로비는 이미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에이펙스 엔터테인먼트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악의적인 헤드라인들이 실시간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단독] '루미너스의 메이커' 서한율 프로듀서, 쇼다운 직후 돌발성 실청으로 쓰러져…… 영구 장애 판정? [이슈] 천재의 몰락, 소리 잃은 서한율 프로듀서…… 루미너스의 컴백 활동 사실상 중단 위기. - '귀 먹은 프로듀서가 어떻게 곡을 쓰나?' 업계 관계자들 일제히 우려 표명.
커뮤니티와 SNS는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 헐, 서한율 진짜 귀 안 들린대? 대박…… 어쩐지 무대 끝나고 실려 가더라. - 루미너스 이제 겨우 빛 보나 했는데 프로듀서가 실청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임ㅠㅠㅠ - 에이펙스가 찌라시 퍼뜨리는 거 아니야? 타이밍 너무 수상한데ㅡㅡ - 근데 귀 안 들리는 프로듀서는 솔직히 끝난 거 맞지. 아무리 천재라도 소리를 못 듣는데 어떻게 디렉팅을 해?
중환자실 앞 대기실. 서연은 붉게 짓무른 눈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옆에는 루미너스 멤버들이 초조한 얼굴로 발을 구르고 있었다. 백은우는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 있었다.
"형이…… 우리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은우의 목소리가 물기 어린 분노로 가득 찼다.
"그 리믹스 곡, 내 쓰레기 같은 악보 낙서 메우느라 형이 밤새우면서 피 토하듯 작업했어. 내가 조금만 더 잘했어도, 우리가 조금만 더 완벽했어도 형이 저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한율이 쓰러질 당시 메고 있던 그의 가죽 가방에 머물러 있었다. 병원 측에서 인계해 준 그의 소지품이었다.
서연은 홀린 듯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쪽 깊숙한 곳에서, 한율의 개인 태블릿 PC와 작은 철제 보관함이 나왔다. 태블릿의 전원을 켜자, 화면 구석에서 불길하게 점멸하는 혈적색 경고등이 서연의 눈에 들어왔다.
[WARNING: Synesthesia Resonance Sync Rate 150% Exceeded] [신경계 누적 손상도: 98% - 즉각적인 동조 중단 권고] [경고: 영구적 청각 마비 및 신경 세포 괴사 위험]
화면에는 서연 자신의 목소리 주파수와 한율의 청각 신경이 실시간으로 동조하며 겪은 신체적 대가가 낱낱이 시뮬레이션 데이터로 기록되어 있었다. 서연이 무대 위에서 고음을 지르고,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한율의 뇌세포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보여주는 붉은 그래프들.
그리고 철제 보관함을 열자, 그 안에는 고장 난 보청기 배터리 수십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 아……."
서연의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두 배의 통증. 자신이 무대 위에서 느꼈던 미세한 성대의 피로와 숨 가쁨이, 한율에게는 청각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지옥 같은 고통으로 역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살리기 위해, 루미너스를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그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은 자신을 부수고 있었구나.'
서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태블릿 화면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오열은 길지 않았다. 눈물이 닿은 화면 위로, 한율이 남겨놓은 마지막 분석 파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번 쇼다운 무대에서 에이펙스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기술적 데이터들이었다.
[에이펙스 오디오 엔진 분석 보고서] - 8.2kHz 특정 가청 주파수 대역 디지털 클리핑(음 깨짐) 버그 확인. - 해당 대역의 고주파 피드백 발생 시, 에이펙스 사운드 시스템 전체 과부하 및 파괴 유도 가능.
서연은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넘겼다. 그 뒤에는 민설아의 보컬 분석 데이터가 있었다.
- 민설아 아우라 분석: 비정상적이고 균열된 청색 빛 감지. - 진단: 심각한 성대 결절 및 기계적 피치 보정(Auto-Tune)의 한계 파동. - 결론: 라이브 무대에서 기계적 보정이 해제될 경우, 불협화음과 성대 파열로 인한 자멸 확정.
한율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에이펙스의 철옹성 같던 완벽주의가 실은 기계적 왜곡과 성대 결절을 감추기 위한 가짜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리고 서연의 8.2kHz 고음 주파수로 그들의 오디오 시스템을 완파해 진실을 폭로하는 치명적인 열쇠를 정교하게 설계했던 것이다.
그 결과, 쇼다운에서 에이펙스의 시스템은 완벽하게 터져나갔고 민설아의 망가진 목소리는 천하에 드러났다. 루미너스는 승리했지만, 그 완벽한 승리의 대가로 한율은 소리를 잃었다.
서연은 한율이 자신에게 선물했던 커스텀 마이크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은색 마이크 표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더 이상 나약하게 보호받기만 하던 망돌의 리더가 아니었다.
눈물이 마른 서연의 눈동자에 날카롭고 강인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율 씨."
서연은 들리지 않을 그의 이름을 나직하게 읊조렸다.
"당신이 나를 위해 지옥을 택했다면, 이제는 내가 당신의 가혹한 신인성 계약의 자물쇠를 완전히 부수겠어. 당신의 소리가 되어 줄게. 당신이 만든 이 무대를, 내가 끝까지 지켜내겠어."
그녀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망설임도 없었다. 한율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그를 깊은 심연에서 끄집어내겠다는 주도적인 구원의 의지가 서연의 전신을 지배했다.
바로 그때였다.
벅벅, 구두 굽 소리가 적막한 병원 복도를 거칠게 울렸다.
중환자실 앞 복도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검은색 수트를 빼입은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에이펙스의 수장 강도진이 거만한 걸음걸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비열하고 승리감에 도취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비키세요."
백은우가 가로막아 섰지만, 강도진의 경호원들이 무자비하게 그를 밀쳐냈다. 강도진은 중환자실 유리창 너머로 누워 있는 한율을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꼴 좋군, 서한율."
강도진은 품 안에서 두꺼운 서류 봉투를 꺼내 병실 앞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귀 먹은 프로듀서가 갈 곳은 쓰레기통밖에 없지. 안 그래?"
"무슨 짓이에요, 이게."
서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강도진을 쏘아보았다. 강도진은 서연을 내려다보며 비웃음이 섞인 어조로 뱉어냈다.
"윤서연 양. 현실을 직시해. 서한율은 이제 재기 불능이야. 소리를 못 듣는 작곡가가 무슨 수로 너희를 프로듀싱하지? 대중은 이미 그를 영구 장애인으로 낙인찍었어. 너희 루미너스도 결국 이대로 고사할 뿐이야."
강도진이 테이블 위의 서류를 톡톡 두드렸다.
"루미너스의 모든 IP 자산, 곡 권리, 그리고 서한율의 음악적 특허 일체를 에이펙스에 단돈 1달러에 양도하고 영구 은퇴하겠다는 서약서다. 여기 서명해. 그러면 서한율의 평생 치료비와 너희 멤버들의 위약금 정도는 내가 자비로 해결해 주지. 이게 너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단돈 1달러……?"
은우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이 악마 같은 새끼가 진짜……!"
"씁, 조용히 해. 쓰레기 같은 인생 구제해 주겠다는 대기업의 호의를 그렇게 매도하면 쓰나."
강도진은 오만한 눈빛으로 서연을 압박했다.
"서연 양, 네가 결정해. 서한율을 이대로 병실에서 썩어 죽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내 밑으로 들어와서 목숨이라도 연명하게 할 것인가. 선택은 빠를수록 좋겠지?"
강도진의 보좌관이 만년필을 꺼내 서연의 앞에 내밀었다. 사방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도진은 서연이 절망에 겨워 결국 무릎을 꿇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연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것은 조롱이자,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강도진의 눈썹이 꿈틀했다. 서연은 만년필을 받는 대신, 영원히 침묵할 것 같던 병실 문을 쾅 열고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강도진의 계약 위임장 서류를 거침없이 낚아챘다.
"어……?"
강도진이 당황해 한 걸음 다가서기도 전에.
스으으윽, 쩍!
서연은 망설임 없이 계약서를 반으로 찢어발겼다.
그녀의 손길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쩍, 쩍, 소리를 내며 종이 가루가 비산했다. 서연은 갈가리 찢어발긴 계약서 뭉치를 그대로 강도진의 오만한 면상 위로 사정없이 뿌려버렸다.
하얗게 흩날리는 종이 조각들이 강도진의 값비싼 수트와 얼굴 위로 흩어졌다.
"더러운 손 치워, 강도진."
서연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고혹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당신의 그 비열한 룰에 놀아날 것 같아? 서한율의 소리는 죽지 않았어. 내가 그의 귀가 될 거고, 내가 그의 음악을 세상 끝까지 울리게 할 거니까."
강도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분노로 일그러졌다. 파르르 떨리는 그의 눈동자 너머로, 서연은 병상에 누워 있는 한율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그 순간, 한율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