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으면 리허설 취소하시던가요. 뒤에 에이펙스 팀 리허설 대기 중이라 바쁩니다."
현장 스태프가 이죽거리며 뱉은 말은 야외 대기실의 싸늘한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흠집투성이인 고철 마이크를 든 백은우의 주먹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떨렸다.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들이받을 기세였다. 에이펙스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윈드브레이커를 입은 스태프들은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조롱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대 기획사의 위세 뒤에 숨은 잔인하고도 치졸한 텃세였다.
"이 개자식들이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은우가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찰나, 서연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서연의 가녀린 손가락이 은우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서연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끝에 닿은 한율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얇은 입술 끝이 비틀려 올라갔다.
"서연아, 마이크 연결해."
지극히 차분하고, 그래서 더 서늘한 목소리였다.
"피디님, 하지만 이건 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는 쓰레기……."
"연결하라고 했다."
한율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며 은우의 말을 잘라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정교하게 가공된 반무광의 메탈 재질 기기가 은빛 윤기를 흘렸다. 손바닥 절반 크기의 소형 송수신기. 한율이 사전에 직접 튜닝하고 개조한 특수 무선 기가헤르츠(GHz) 주파수 어댑터였다.
그는 민설아를 스쳐 지나갔다. 민설아의 몸 주변으로 흐르는 아우라가 한율의 망막에 잡혔다. 그것은 아름다운 음악적 파동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빙판처럼 차갑고, 곳곳이 쩍쩍 갈라져 균열이 간 탁한 청색 빛이었다.
기계적 보정이 없으면 평범한 대화조차 버거울 정도로 망가진 성대. 에이펙스의 최첨단 오디오 엔진이 실시간으로 주파수를 깎고 메워 가짜 목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한율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인공적인 보정의 한계치에 다다라 비명을 지르는 그 불완전한 청색 파동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민설아 실장. 에이펙스가 자랑하는 그 완벽한 시스템이, 과연 오늘 같은 개방형 야외 무대에서도 그 가짜 목소리를 온전히 감출 수 있을지 궁금하군."
한율이 낮게 속삭이자, 민설아의 포커페이스가 순간적으로 무너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저희 시스템은 완벽해요. 당신들의 그 초라한 장비와는 격이 다르죠."
"그래, 격의 차이가 뭔지 곧 알게 되겠지."
한율은 뒤돌아보지 않고 하우스 콘솔(FOH)이 위치한 통제 타워로 걸어갔다. 에이펙스 측 메인 엔지니어가 콘솔 앞을 가로막았지만, 한율은 거침없이 그의 어깨를 밀쳐냈다.
"비켜. 지금부터 이 구역의 주파수는 내가 통제한다."
"뭐, 뭐야? 당신이 뭔데 남의 콘솔에 손을 대!"
"하우스 엔지니어라면 이 콘솔의 메인 버스 포트가 비어 있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에이펙스가 대역폭을 독점하려고 깔아둔 멀티플렉서 장비가 오히려 신호 간섭에 취약하다는 것도 말이야."
한율의 손가락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지독한 인간 불신과 완벽주의가 만들어낸 집요한 기술적 분석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가지고 온 기가헤르츠 어댑터를 콘솔의 메인 버스 포트에 단단히 밀어 넣었다.
딸칵, 하는 기분 좋은 금속음과 함께 어댑터의 LED가 푸른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한율의 머릿속에서 강렬한 이명이 일었다. 귀를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시야가 극도로 선명해졌다. [공감각 레조넌스]가 발동한 것이다.
페스티벌 야외 광장 전체를 뒤덮고 있는 무형의 주파수 파동들이 형형색색의 빛줄기가 되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에이펙스가 설치한 최첨단 지향성 음향 수신 타워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호들은 거대하고 둔탁한 회색 그물망처럼 공중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완벽한 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소리들을 억누르고 뭉개버리기 위해 주파수 대역을 억지로 늘려놓은 상태였다.
"탐욕스러운 설계로군."
한율이 차갑게 혼잣말을 뱉으며 콘솔의 페이더를 정교하게 조정했다.
"서연아, 마이크 테스트 해봐."
무대 위에서 낡은 유선 마이크를 손에 쥔 서연이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한율이 콘솔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비록 마이크는 쇳소리가 나고 출력이 다 죽은 불량품이었지만, 한율의 어댑터를 통해 전송되는 주파수의 흐름이 서연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연이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가볍게 소리를 내었다.
"아, 아……."
그 작은 음성이 마이크의 다이내믹 카트리지를 통과하는 순간, 한율의 어댑터가 그 신호를 가로채 초고속으로 압축 및 변조했다. 8.2kHz 대역의 빈틈을 정확히 파고드는 주파수 조율.
치직, 거리는 소리 대신, 야외 광장 전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청명하고 맑은 울림이 터져 나왔다. 마치 꽉 막혀 있던 댐의 수문이 열리며 맑은 물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였다.
"어……? 소리가 나오잖아?"
비웃던 에이펙스의 현장 스태프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들이 일부러 먹통으로 만들어 놓은 마이크가, 메인 스피커를 찢고 나갈 듯한 압도적인 음압과 해상도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분명히 볼륨 레벨을 잠가 놨는데!"
스태프 중 한 명이 콘솔로 달려들려 했지만, 한율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 눈빛에 압도당한 스태프는 주춤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멍청하군. 아날로그 신호를 억누른다고 디지털 전송 대역까지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나? 에이펙스가 사용하는 오디오 엔진의 주파수 공유 알고리즘은 극단적인 대역폭 독점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어. 그 말은 즉,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공진이 일어나면 시스템 전체가 왜곡을 견디지 못한다는 뜻이지."
한율의 손끝이 콘솔의 이퀄라이저 노브를 미세하게 회전시켰다.
과거 강도진의 비밀 연구소 서버에서 확인했던 에이펙스 오디오 엔진의 치명적인 버그 데이터가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특정 가청 주파수 대역, 정확히 8.2kHz 부근에서 디지털 클리핑(음 깨짐)이 발생하면 피드백 루프가 형성되어 오디오 카드가 과부하로 타버리는 치명적인 결함.
"리허설이 아니라, 본 무대라 생각하고 불러라."
한율이 무선 인이어를 통해 서연에게 지시했다.
"지금부터 네 목소리가 저 거대한 가짜들을 무너뜨릴 거다."
서연은 눈을 감았다. 그녀의 심장박동이 한율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동조율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한율의 왼쪽 귀 뒤편에서 욱신거리는 가혹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린 피 맛이 올라왔다. 서연이 느낄 무대 위의 압박감과 육체적 피로가 두 배의 대가가 되어 그의 온몸을 짓눌렀다.
하지만 한율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가슴을 찢는 듯한 통증 속에서도 그의 눈은 오직 서연의 황금빛 아우라만을 쫓았다.
"시작해."
서연이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동시에, 야외 광장을 가득 메운 8만의 관객들이 루미너스의 컴백 무대를 보기 위해 숨죽였다. 에이펙스의 방해 공작으로 가장 열악한 시간대와 위치에 배치되었지만, 무대 위에 선 다섯 명의 멤버들에게서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전주가 시작되었다. 에이펙스가 자랑하는 최첨단 전동 지향성 음향 수신 타워들이 루미너스의 소리를 왜곡하고 묻어버리기 위해 거대한 기계음을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중을 가르는 회색빛 신호들이 루미너스를 향해 덮쳐왔다.
그러나 서연의 보컬이 시작되는 순간, 공간의 지배자가 바뀌었다.
"숨이 멎을 듯한 어둠 속에서—"
서연의 목소리는 단순한 음파가 아니었다. 그것은 밤하늘을 수놓는 거대한 황금빛 해일이었다. 한율의 어댑터를 거친 그녀의 주파수는 에이펙스가 장악한 음향 네트워크의 빈틈을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민설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에이펙스의 최첨단 음향 시스템 모니터에 빨간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장님! 주파수 대역이 이상합니다! 8.2kHz 대역에 엄청난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어요! 디지털 클리핑 경고가……!"
"막아! 당장 리미터를 걸어서 차단해!"
민설아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서연의 가창이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고음역대, 그리고 에이펙스 시스템의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하는 정확히 8.2kHz 주파수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나를 깨워준 너의 목소리로—!"
서연이 온 힘을 다해 지른 고음이 야외 광장을 찢었다.
그 순간, 에이펙스의 최첨단 오디오 엔진이 비명을 질렀다. 8.2kHz 대역에서 발생한 폭발적인 디지털 클리핑 피드백이 전동 지향성 음향 수신 타워의 회로를 타고 역류했다.
파지직! 지지직!
귀를 찢는 듯한 기계적 파열음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
수십억 원의 물량 자금을 투입해 설치했다던 에이펙스의 최첨단 전동 지향성 음향 수신 타워들이, 단 한 송이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주파수 공명 앞에서 무참히 과부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타워의 상단부에서 불꽃이 튀었고, 내부 회로가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확산되었다.
펑! 펑!
연쇄적으로 터져 나가는 음향 장비들의 폭음 소리와 함께 에이펙스의 시스템은 완전히 침묵했다. 기계적 보정에 의존해 겨우 소리를 내고 있던 민설아의 주변 아우라는 완전히 흩어져 재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아, 연기가 피어오르는 무대를 넋 나간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아아아아아—!"
에이펙스의 거대한 철옹성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아수라장 속에서, 오직 루미너스의 무대만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율이 완벽하게 통제권을 쥔 보조 음향 시스템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오직 서연의 목소리를 백만 배로 증폭시켜 광장 전체에 뿌려대고 있었다.
8만의 관객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대형 기획사의 첨단 기기들이 허무하게 터져나가는 장관과, 그 폐허 위에서 독야청청 빛나는 루미너스의 완벽한 라이브. 그것은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마비시키는 기적과도 같은 연출이었다.
서연은 무대 아래에서 자신을 지탱해 주고 있는 단 한 사람, 한율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애틋했다. 한율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그가 자신을 위해 치르고 있는 고통을 멈추게 하겠다는 주도적인 구원의 의지가 서연의 노래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서연은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며, 한율의 영혼을 향해 노래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두 사람만의 주파수가 완벽한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언제나 너의 곁에서, 내가 너를 부를게."
마지막 솔로 파트가 8만 관객의 심장을 관통하며 웅장하게 끝을 맺었다.
폭풍 같은 침묵 뒤에, 광장이 떠나갈 듯한 광포한 열화와 함성이 무대를 덮쳤다. 루미너스의 완벽한 승리였다. 에이펙스의 비열한 음모는 오히려 루미너스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가장 화려한 불꽃놀이가 되어 타버렸다.
하지만 무대 뒤, 어둠이 짙게 깔린 콘솔 타워의 구석진 자리.
"헉……! 하아, 하아……."
한율은 콘솔 테이블을 붙잡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동조율 150% 돌파. 서연이 무대 위에서 뿜어낸 압도적인 에너지와 성대의 긴장감이, 두 배의 피드백이 되어 그의 신경계를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렸다. 머릿속이 거대한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 윽……!"
한율이 신음하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압력의 변화와 함께, 고막을 찢는 듯한 무서운 이명이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시야가 흐려지고, 광장의 거대한 함성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며 물속으로 가라앉듯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툭. 투둑.
차가운 콘솔 패널 위로 붉은 액체가 떨어져 내렸다.
한율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귀를 만졌다.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뜨겁고 끈적한 선혈이었다. 그의 양쪽 귀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턱 끝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입술 틈새로 새어 나온 고백은 그 어떤 소리도 되어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은 완벽한 무음의 심연 속으로 침몰했다.
한율의 무릎이 꺾였다. 차가운 콘솔 바닥으로 주저앉는 그의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무대 위에서 자신을 찾으며 달려오는 서연의 실루엣이 절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