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나랑 내기라도 해볼까?"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기 너머로 붉은색 경고음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귓가를 찌르는 이명이 가라앉기도 전에, 한율의 손에 쥐인 태블릿 화면이 어지럽게 명멸했다. 다음 주 개최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야외 축제, '서머 월드 페스티벌'의 주최 측 공식 통보서였다.

강도진은 비열했다. 그는 단순한 경쟁을 원치 않았다. 에이펙스가 보유한 무한 가용 음향 마이크 주파수와 압도적인 출력의 오디오 엔진을 활용해, 루미너스의 목소리를 무대 위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이른바 라이브 압사 대결. 에이펙스가 쏟아내는 압도적인 데시벨의 파도 속에서, 루미너스의 주파수를 데드존에 밀어 넣어 스스로 질식하게 만들겠다는 살인적인 선언이었다.

"압사라니……."

서연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지만, 그 안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한율의 태블릿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화면에 표시된 루미너스의 할당 채널은 에이펙스가 설계한 디지털 클리핑 데드존의 가장 깊숙한 심장부였다.

"피디님, 이 주파수 배정은 우연이 아니에요. 저들이 우리 목소리를 변조하고 뭉개버리려고 짠 판이에요."

"알고 있어."

한율이 마른침을 삼켰다. 목구멍에서 쇠 비린내가 났다. 귀를 짓누르는 압박감이 평소보다 무거웠다. 서연과의 싱크율이 높아질수록 서연이 겪는 육체적 피로와 성대 통증이 자신에게 두 배의 신체적 통증으로 전이된다는 저주 같은 법칙. 하지만 지금은 그 통증을 헤아릴 시간조차 부족했다.

한율은 병원 침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전원 음향 분광기를 끌어당겼다. 링거 바늘이 꽂힌 왼손등이 팽팽하게 당겨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분광기의 전원을 켜고 에이펙스의 최신 오디오 엔진 데이터를 화면에 띄웠다.

삐이이―.

녹색과 적색의 파형이 어지럽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에이펙스가 지닌 엄청난 성량 위주의 음향 출력 장비들. 그것은 단순한 스피커의 볼륨 문제가 아니었다. 특정 주파수 대역을 왜곡해 청중의 고막을 인위적으로 마비시키고, 그 대역을 제외한 다른 소리들을 강제로 묻어버리는 폭력적인 소리 장벽이었다.

"무한 가용 주파수라면서 실상은 주파수 대역의 독점이지. 지독하게 강도진다운 방식이야."

한율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분광기의 다이얼을 돌렸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머릿속 계산은 그 어느 때보다 명석하고 차가웠다. 에이펙스의 거대한 음향 장벽을 뚫기 위해서는 단순히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했다. 물리적인 성량으로는 대기업의 자본이 투입된 출력 장비를 이길 수 없다.

이길 방법은 단 하나, 공명 진폭이었다.

"서연아. 저들이 가하는 압력을 버티는 게 아니라, 그 압력의 틈새를 타고 흐르는 주파수의 바늘 끝을 만들어야 해. 소리를 쪼개고, 가장 날카로운 지점에서 공명을 일으켜서 저들의 소리 장벽 자체를 진동시키는 거야."

한율의 손가락이 태블릿 화면을 빠르게 훑었다. 수치들이 쉴 새 없이 나열되었다. 에이펙스의 음향 카르텔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공명 주파수의 좌표를 찾는 작업이었다.

그 순간, 한율의 시야에 에이펙스의 기술 데이터 시트 하나가 걸려들었다. 강도진의 최측근이자 기술 책임자인 민설아가 조율한 사운드 맵이었다. 한율의 눈이 가늘어졌다. [공감각 레조넌스]의 시각적 파동이 화면 너머의 데이터를 투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완벽해 보이는 에이펙스의 소리 장벽 이면에 숨겨진 기괴한 균열이었다.

"이건……."

한율의 눈앞에 민설아의 사운드 아우라가 형상화되었다. 그것은 얼어붙은 청색 빛이었다. 극도로 정교하고 수학적으로 계산된 차가운 푸른빛. 하지만 그 빛의 중심부에는 마치 유리창에 금이 간 것 같은 비정상적인 균열이 가득했다. 기계적인 보정으로 억지로 잡아 늘린 주파수의 한계 파동. 그리고 그 너머로 느껴지는 성대 결절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었다.

"민설아, 네가 만든 소리의 실체가 이거였군."

한율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는 완벽한 기계적 보정을 통해 에이펙스 소속 아티스트들의 가창력을 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성대가 버틸 수 없는 초고음역대를 디지털 정밀 보정으로 강제 왜곡한 결과물에 불과했다. 무대 위에서는 화려한 청색 아우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그 본질은 썩어 들어가는 성대 세포와 기계의 억지스러운 조화였다.

"기계로 기워 붙인 목소리는 결국 임계점을 넘으면 스스로 붕괴해. 아무리 출력을 높여도, 그 왜곡된 주파수의 틈새는 메울 수 없어."

한율이 분광기 화면의 특정 대역을 가리켰다. 8.2킬로헤르츠 대역. 에이펙스의 오디오 엔진이 자랑하는 왜곡 보정 장치의 사각지대이자, 이전에 한율이 발견했던 에이펙스 오디오 엔진의 고질적인 디지털 클리핑 버그가 맞물리는 최악의 균열점이었다.

"여기야. 이 균열점을 정확히 찌르면, 저들의 압도적인 출력은 오히려 자신들을 타격하는 부메랑이 된다."

집중하느라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한율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이명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분광기의 작동음조차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먹먹해졌다.

탁.

그때, 따뜻하고 작은 손 하나가 한율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서연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죽 그릇을 들고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일단 이것부터 드세요. 계산도, 분석도 몸이 버텨야 하는 거예요."

"서연아, 지금 그럴 시간이……."

"시간 있어요."

서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거절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숟가락으로 죽을 조심스럽게 떠서 입으로 불어 식힌 뒤, 한율의 입가로 가져갔다.

"아 하세요. 안 먹으면 태블릿 뺏어버릴 거예요."

한율은 기가 막힌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서연의 곧고 맑은 눈동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한율은 마지못해 입을 벌려 죽을 받아삼켰다. 따뜻한 온기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온몸의 신경을 부드럽게 이완시켰다.

"맛있네요, 그쵸?"

서연이 생긋 웃으며 다음 숟가락을 준비했다. 그 모습을 보던 한율의 눈에 서연의 신체 아우라가 들어왔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녀의 아우라 주변에, 미세한 붉은색 실선들이 얽혀 있었다. 최근 컴백 준비와 에이펙스의 압박 속에서 무리하게 연습을 거듭한 탓에 발생한 복근의 미세 파열과 후두 주위 근육의 가벼운 경련이었다. 서연은 한율이 걱정할까 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공감각 레조넌스]를 지닌 한율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지금 그녀의 복부와 성대 주변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으로 가득할 터였다. 그리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동조의 법칙에 의해 한율의 몸으로도 전이되고 있었다. 한율의 아랫배와 목구멍이 찌르는 듯 아파왔다.

"서연아."

한율이 죽을 삼키고는 서연의 손목을 잡았다. 서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 배랑 목…… 많이 아프지."

서연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그녀는 서둘러 시선을 피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숟가락을 움직이려 했다.

"아니에요. 그냥 조금 뻐근한 정도예요. 이 정도는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거짓말하지 마."

한율이 서연의 손에서 죽그릇을 받아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두 손을 꼭 쥐었다. 서연의 손바닥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극도의 긴장과 육체적 한계가 빚어낸 떨림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네 고통은 나한테 두 배로 들어온다고. 네가 숨기면 숨길수록, 나는 더 아파."

"아……."

서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오히려 한율을 더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녀의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미안해요. 나는 그냥, 피디님한테 짐이 되기 싫어서……."

"짐이 아니야."

한율이 서연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뺨에 닿았다. 차가운 그의 손가락과 대비되는 서연의 뜨거운 피부 온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리 와."

한율이 서연을 자신 쪽으로 살며시 당겼다. 서연은 저항하지 않고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며 한율의 품으로 다가왔다. 한율의 시선이 서연의 붉게 상기된 입술에 머물렀다.

두 사람의 숨결이 닿을 듯 가까워진 순간, 한율이 고개를 숙였다.

조심스럽고도 단단한 입맞춤이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 내려앉았다.

단순한 연정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영혼과 감각을 하나로 묶는 가장 완벽한 동조의 행위였다.

주화아아악―!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는 순간, 병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공명 주파수가 일제히 황금빛과 푸른 불꽃의 소용돌이로 변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율의 뇌리를 찌르던 날카로운 이명이 기적처럼 걷히며 세상에서 가장 청명하고 아름다운 소리들이 그의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

동시에 서연의 몸을 옥죄고 있던 복근의 통증과 후두의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율의 몸으로 흘러들던 두 배의 통증 역시, 서로의 깊은 신뢰와 애정이 만들어낸 완벽한 싱크 속에서 상쇄되어 부드러운 에너지의 순환으로 바뀌었다.

서연은 긴장이 풀린 듯 한율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그녀의 입에서 깊은 한숨과 함께 편안한 숨결이 흘러나왔다.

"……따뜻해요."

서연이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맑고 단단해져 있었다.

한율은 그녀의 등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단순한 스킨십이 아니었다. 이것은 능력을 더욱 정밀하게 보완하고, 서로의 고통을 억제하는 공생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아끼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감각 동조의 대가인 통증을 통제하고 오히려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이제 알겠어."

한율이 서연의 머리칼을 만지며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가 주파수를 완벽하게 맞추면, 저들의 소리 장벽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아. 오히려 저들의 거대한 출력을 역이용할 수 있어."

한율의 머릿속에서 완벽한 반격의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있었다.

에이펙스가 사용하는 야외 특설 스테이지의 거대한 전파 앰프 구조. 그것은 수십만 명의 관객을 압도하기 위해 설계된 초고출력 장비였다. 하지만 그 거대한 시스템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다.

"에이펙스의 오디오 엔진은 특정 고주파 대역에서 클리핑 버그가 발생해. 평소에는 기계적 보정으로 감추고 있지만, 야외 특설 스테이지의 거대한 전파 앰프와 결합해 출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면 어떻게 될까?"

서연이 한율의 품에서 고개를 들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스스로 울리는 소리에 시스템이 갇혀버리나요?"

"정확해. 고주파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가 발생하지. 마이크를 스피커에 가까이 가져다 대면 삐― 하는 고음의 굉음이 발생하잖아? 에이펙스의 시스템은 자체 버그 때문에 우리가 특정 주파수로 공명을 일으키면, 그 거대한 스피커 전체가 스스로 파괴적인 고주파 피드백을 일으키게 되어 있어."

강도진이 설계한 라이브 압사 대결의 판. 그 거대한 확성기 자체가 에이펙스의 목을 조르는 교수대가 될 것이었다.

"우리는 저들의 소리와 싸우는 게 아니야. 저들의 소리를 거울처럼 반사해서 스스로의 소리에 무너지게 만드는 거지."

한율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독선적인 완벽주의자였던 그가, 이제는 서연이라는 완벽한 파트너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덫을 놓기 시작한 것이다.

***

사흘 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야외 축제, '서머 월드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야외 특설 스테이지는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인파와 스태프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거대한 트러스 구조물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에이펙스의 최첨단 스피커 타워들이 위압감을 풍겼다.

"정말 엄청나네요……."

대기실 복도를 지나 무대 뒤편으로 향하던 백은우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손에는 한율과 함께 수정한 브릿지 악보가 꽉 쥐여 있었다. 루미너스 멤버들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결연함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그때, 저편에서 에이펙스의 스태프 유니폼을 입은 현장 음향 감독과 대여섯 명의 기술진이 거만한 걸음걸이로 걸어왔다. 그들의 중심에는 차가운 표정의 민설아가 서 있었다.

민설아는 루미너스 멤버들과 한율을 발견하자, 비웃음이 섞인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서한율 피디님. 병원 침대에서 벌써 일어나셨나 보네요."

민설아의 목소리는 기계적으로 조율된 듯 날카로웠다. 한율의 눈에 그녀의 주위에 감도는, 균열된 청색 아우라가 다시금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의 성대는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기계적 보정이 없으면 제대로 된 소리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민설아 실장. 네 걱정이나 하는 게 좋을 거다. 네 소리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거든."

한율의 담담한 독설에 민설아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그녀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뒤에 서 있던 현장 스태프에게 손짓했다.

"리허설 준비나 하죠. 에이펙스의 최신 엔진과 주파수 대역을 공유해야 하니, 루미너스 팀에게 맞는 '특별한' 장비를 준비했어요."

현장 음향 감독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루미너스 스태프의 손에 낡고 흠집투성이인 마이크 케이스를 툭 던지듯 건넸다.

"자, 여기 리허설 마이크입니다. 야외 무대라 혼선이 심해서 무선은 어렵고, 유선 마이크로 진행하셔야겠습니다. 아, 소리가 조금 작게 출력될 수도 있으니 목청껏 부르셔야 할 겁니다."

스태프가 건넨 마이크는 한눈에 봐도 내부 다이내믹 카트리지가 손상되어 소리가 거의 출력되지 않는, 폐기 직전의 불량 마이크 세트였다.

강도진의 지시를 받은 스태프들이 대놓고 루미너스의 리허설을 망치기 위해 공작을 부린 것이었다. 마이크 볼륨 레벨을 강제로 최소한으로 고정해 둔, 소리조차 나지 않는 쇳덩어리였다.

"이게 무슨 짓이야! 소리가 안 나오잖아!"

은우가 참지 못하고 마이크를 쥐며 소리쳤다. 하지만 현장 스태프들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싫으면 리허설 취소하시던가요. 뒤에 에이펙스 팀 리허설 대기 중이라 바쁩니다."

주변의 에이펙스 관계자들이 킥킥거리며 루미너스를 비웃었다. 리허설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어 무대 위에서 완전히 고립시키겠다는 비열한 수작.

그 압도적인 불이익과 위기 속에서, 서연이 천천히 마이크를 받아 쥐었다. 그리고 한율을 바라보았다.

한율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서연아, 마이크 연결해."

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완벽한 주파수의 조율은 이미 끝났고, 저들의 비열한 횡포는 오히려 한율이 설계한 파멸의 덫을 작동시킬 완벽한 방아쇠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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