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하얗게 터져 나갈 때마다 아침 공기가 잘게 찢겼다.
피할 생각은 없었다. 윤서연은 마이크를 쥔 손가락끝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손등의 뼈가 하얗게 도드라질 만큼 강한 악력이었다. 렌즈 너머로 비치는 탐욕스러운 시선들, 당장이라도 한 조각 먹잇감을 뜯어내려는 듯한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소음이 되어 고막을 때렸다.
"윤서연 씨! 표절 의혹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에이펙스의 데이터를 해킹했다는 자극적인 루머가 돌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도 밝혀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질문이 아니라 확신을 유도하는 칼날들이었다. 서연은 호흡을 깊게 들이쉬었다. 폐부 깊숙이 차가운 공기가 들어가자, 복잡하게 뒤엉키던 머릿속이 일순간 투명하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정면의 메인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다. 은색 마이크 헤드가 그녀의 입술 바로 앞에 멈췄다.
"루미너스의 리더, 윤서연입니다."
노이즈가 가득하던 마이크 음향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가 깨끗하게 뻗어 나갔다. 잡음 하나 없이 맑고, 흔들림 없는 성조였다. 정문을 에워싸고 있던 취재진의 웅성거림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지금 전방위적으로 유포되고 있는 루미너스의 표절 의혹, 그리고 서한율 총괄 프로듀서님의 데이터 해킹 루머는 전부 사실무근입니다. 오히려 저희는 에이펙스 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하고 실행한 조직적인 음해의 피해자입니다."
"피해자라니요? 구체적인 증거가 있습니까?" 한 기자가 녹음기를 들이밀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서연은 주머니에서 접혀 있던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사법기관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공식 문서였다. 렌즈들이 일제히 그 종이 위로 포커스를 맞추며 셔터 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것은 오늘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된 '정보통신망 침해 및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고소장, 그리고 수사관 대동 영장 요구서의 사본입니다. 저희는 에이펙스가 루미너스의 음원 메타데이터를 무단으로 복제하고, 이를 역으로 표절이라 날조한 정황이 담긴 IP 접속 로그와 내부 메신저 기록을 이미 사법기관에 제출했습니다."
서연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망설임도 없었다.
"대기업의 자본과 거대 플랫폼의 권력 뒤에 숨어 한 아티스트의 영혼을 짓밟고, 중소 기획사의 땀방울을 도둑질하려 했던 비열한 공작은 이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루미너스는 그 어떤 조작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진실은 무대 위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명백히 밝혀질 것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기자들은 예상치 못한 정면 돌파와 법적 실체에 말문이 막힌 듯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실시간 라이브 중계창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미친... 맞소송 지르는 거 봐라 ㄷㄷㄷ 진짜 깡다구 장난 아니네] [영장 요구서까지 직접 까는 아이돌은 처음 본다ㅋㅋㅋㅋㅋ 진짜 떳떳한가 보네] [에이펙스 그동안 중소 다 죽이더니 드디어 임자 만남? 서한율 클래스 어디 안 가네] [윤서연 눈빛 봐라... 이게 진짜 리더지. 억까 존나 하던 렉카들 대가리 박아라]
여론의 판도가 단 몇 분 만에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
같은 시각, 병실의 정적 속에서 한율은 벽면에 걸린 TV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 속 서연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황금빛이었다. 그 투명하고 단단한 빛이 병실 안의 먹먹한 공기를 헤치고 들어와 한율의 고장 난 감각 회로를 두드렸다. 물속에 잠겨 있던 것처럼 이명이 웅웅거리던 귓가에 서연의 목소리가 선명한 주파수로 꽂혔다.
채널이 전환되며 에이펙스의 공식 입장 발표 화면이 스쳐 지나갔다. 화면에 비친 인물은 강도진의 최측근이자 수석 프로듀서인 민설아였다.
"저희 에이펙스는 과학적인 사운드 밸런싱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그녀가 마이크 앞에서 차가운 어조로 해명하는 순간, 한율의 눈이 가늘어졌다. 공감각 레조넌스의 시야 속에서 민설아의 아우라가 기괴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완벽하게 조율된 푸른빛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빙판 밑에 흐르는 오수처럼, 미세한 균열이 가득한 비정상적인 청색 빛이었다. 기계적인 보정 필터를 겹겹이 씌워 억지로 늘려놓은 주파수. 그 이면에는 성대 결절의 치명적인 손상 파동이 붉은 실핏줄처럼 엉켜 있었다.
'완벽주의라는 가면 아래 숨겨진 기계적 왜곡.'
한율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민설아가 자랑하는 그 정교한 탑백 히트곡들의 보컬은 실은 가창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기계로 기워 붙인 누더기 시뮬레이션에 불과했다.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고주파 대역을 소화하는 순간, 저 위태로운 청색 아우라는 유리처럼 깨져 나갈 터였다. 그것이야말로 에이펙스의 거대한 철옹성을 무너뜨릴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때, 병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어온 이는 백은우였다. 연습실에서부터 단숨에 달려온 듯,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은우는 한율의 침대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피디님."
거칠고 반항적이기만 했던 은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품 안에서 구겨진 악보 뭉치를 꺼내 놓았다.
"이거... 기억하십니까?"
한율의 눈동자가 악보 위로 향했다. 과거에 자신이 쓰다 버린, 미완성의 어쿠스틱 오케스트레이션 메인 뼈대 악보였다. 실패와 배신의 기억이 서려 있어 어둠 속에 처박아 두었던 그 도안의 여백 위로, 연필로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쓴 오선지와 음표들이 덧붙여져 있었다.
"제가... 멋대로 손댔습니다." 은우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뚝 떨궜다. "피디님이 쓰신 그 웅장하고 슬픈 멜로디 뒤에, 도저히 어두운 결말을 붙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희의 목소리로, 피디님의 그 아픈 음악을 구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희망적인 브릿지 세션을 제 방식대로 추가해 봤습니다. 주제넘은 짓이라는 거 알지만..."
한율은 천천히 악보를 받아들었다. 서툰 낙서처럼 보였던 은우의 자필 음표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울림으로 형상화되었다.
어둡고 차가운 심연을 뚫고 올라와, 마침내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빛의 소리. 은우가 더한 브릿지는 한율의 상처를 치유하는 따뜻한 손길과도 같았다. 독선과 불신으로 가득했던 한율의 세계에, 동료의 진심 어린 유산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나쁘지 않군." 한율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아니, 제법이다. 백은우."
그 한마디에 은우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안도와 벅찬 감격이 그의 눈가에 맺혔다.
문이 다시 한 번 열렸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한달음에 달려온 서연이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머리칼은 땀과 아침 이슬로 조금 젖어 있었고, 뺨은 상기되어 있었다.
서연은 침대 옆 모니터 화면 구석에서 불길하게 점멸하는 혈적색 경고등을 발견했다. 한율의 심박수와 청각 신경 자극 수치가 한계치를 넘나들고 있었다. 한율의 귀밑에서부터 턱선까지 흘러내린 얇은 핏자국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피디님...!"
서연은 은우가 있는 것도 잊은 채 한율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떨리는 두 손이 한율의 귀를 부드럽게, 하지만 강하게 감싸 쥐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그를 격리하려는 듯한 필사적인 손길이었다.
"다시는..." 서연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그녀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한율의 환자복 깃을 적셨다. "다시는 나 때문에 당신 몸을 갈아서 소리를 만들지 마세요. 내 목소리가 당신을 아프게 하는 무기가 되는 건 싫단 말이에요..."
그녀는 참지 못하고 한율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품에 얼굴을 묻었다. 뒤이어 그의 목을 끌어안는 애절한 백허그로 이어졌다. 두 사람의 체온이 닿는 순간, 한율의 척추를 타고 따끔거리는 통증이 밀려왔다. 서연이 느꼈던 기자회견장에서의 극심한 압박감과 성대의 피로도가 감각 동조를 통해 두 배의 고통으로 전이되는 증상이었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이명과 청각 마비의 전조가 뇌를 찔렀다. 하지만 한율은 신음 소리 대신, 서연의 등을 단단히 마주 안았다.
"말했잖아." 한율이 서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목소리는 잠겼지만 단호했다. "네 목소리가 있는 곳이 내가 소리를 되찾는 유일한 세상이야. 그 대가가 무엇이든 난 기꺼이 지불해."
서연은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빛 속에서, 두 사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궤도에 함께 올라탔음을 직감했다.
그때, 병실 벽면에 걸린 TV 화면의 속보 자막이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속보: 에이펙스 강도진 대표, 루미너스에 정면 대결 제안... "다음 주 '서머 월드 페스티벌'에서 진정한 라이브 실력을 겨루자"]
화면 속 강도진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표절이니 음해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은 대중에게 피로감만 줄 뿐입니다. 마침 다음 주,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야외 축제인 '서머 월드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양사 모두 참여하는 만큼, 그 무대 위에서 어떠한 기계적 보정이나 음향 왜곡도 없는 '무제한 가용 음향 마이크 주파수'를 사용한 100% 리얼 라이브 쇼다운을 제안합니다. 진짜 실력자가 누구인지 대중 앞에서 직접 판가름 내시죠."
그것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다. 사상 최악의 라이브 압사 대결을 예고하는 선전포고였다.
야외 돔 경기장의 거대한 음향 타워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제한 주파수의 파동. 한율은 본능적으로 에이펙스의 오디오 엔진에 내재된 특정 가청 주파수 대역의 디지털 클리핑 버그를 떠올렸다. 그들이 그 결함을 숨긴 채 루미너스의 목소리를 찢어발기기 위해 음향적 덫을 놓았음을.
그리고 그 무대에서 서연과 싱크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면, 동조의 피드백으로 인해 한율의 청각 신경은 영구적으로 파괴될 위기에 처할 것이다. 목숨을 건 단 하나의 무대가 그들 앞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강도진의 불그스레한 입술이 화면 속에서 비열하게 늘어났다. 야외 페스티벌의 거대한 오디오 타워, 수만 명의 관중이 만들어낼 함성, 그리고 그 모든 소리를 장악할 에이펙스의 최신 음향 시스템. 그것은 공정한 대결이 아니었다.
한율은 침대 머리맡에 놓인 태블릿을 끌어당겼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화면을 터치하는 움직임은 거칠지 않았다. 일전에 분석해 두었던 에이펙스 오디오 엔진의 주파수 로그 파일이 어두운 화면 위로 차갑게 떠올랐다.
"이 새끼들... 미쳤군."
한율의 목덜미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화면 가득 붉은색 경고선으로 표시된 특정 가청 주파수 대역. 옥외 라이브 전용으로 출력 압력을 한계치까지 높일 때 발생하는 디지털 클리핑(음 깨짐) 버그 구역이었다. 에이펙스의 수석 프로듀서 민설아는 가창자의 목소리를 기계로 덧씌우는 보정 필터를 쓰기 때문에 이 클리핑 대역을 교묘하게 피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100% 날 것의 생목소리로 진성을 내지르는 루미너스는 달랐다. 서연이 고음역대의 절정 파트를 부르는 순간,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고주파의 디지털 소음이 그녀의 마이크 주파수를 직격할 터였다. 찢어지는 이음(異音)과 강렬한 피드백. 그것은 무대 위 아티스트의 성대를 물리적으로 찢어발기는 잔인한 덫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고통은 감각 동조의 법칙에 의해 고스란히, 두 배가 되어 한율의 고막으로 전이된다.
"피디님, 이 주파수 파형... 이상해요."
은우가 한율의 어깨너머로 화면을 들여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한율의 혹독한 디렉팅 아래에서 귀가 트인 은우 역시 심상치 않은 왜곡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일부러 이 대역을 열어둔 거잖아요. 대결이라는 구실로 우리 마이크 주파수를 이 데드존에 처박으려고..." "맞아."
한율이 입안에 고이는 비린 침을 삼켰다. 귀 깊은 곳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우리가 피하면 기권이고, 정면으로 부딪치면 목소리를 잃는다. 강도진다운 방식이지."
서연의 손이 한율의 떨리는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한율의 차가운 피부를 파고들었다. 서연은 한율이 보고 있는 화면과, 그의 귀밑으로 다시금 베어 나오는 붉은 핏방울을 번갈아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깊게 흔들렸다. 한율이 겪고 있는 감각 동조의 대가, 그리고 에이펙스가 파놓은 함정의 잔혹함을 그녀는 이제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피하지 않아요."
서연이 한율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눈가에 맺혔던 눈물은 어느새 증발하고, 그 자리엔 단단한 집념만이 남이 있었다.
"피디님이 가르쳐 주셨잖아요. 소리는 속일 수 없다고. 기계로 기운 거짓 목소리가 진짜를 이길 수는 없어요."
그녀는 한율의 손 위에 겹쳐진 은우의 악보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은우가 밤을 새워가며 덧붙인 희망의 브릿지 파트.
"은우가 만든 이 브릿지, 제가 부를게요. 에이펙스의 기계음이 찢어발기지 못할 만큼, 더 높고 단단한 주파수로 뚫고 나갈게요. 그러니까 피디님은..."
서연은 한율의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차가운 한율의 살결 위로 그녀의 뜨거운 고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절대 귀를 닫지 마세요. 제가 당신의 소리가 되어 줄 테니까."
그 주도적인 선언이 한율의 심장을 강하게 두드렸다. [공감각 레조넌스]의 영역 속에서, 서연의 황금빛 아우라가 은우의 악보와 공명하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푸른 불꽃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고통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마저 품어 안고 규격 자체를 깨부수겠다는 의지의 파동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시계는 그들의 결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이잉―.
한율의 개인 스마트폰이 거칠게 진동했다. 발신자 제한 표시로 걸려 온 전화. 한율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스피커폰을 켜자, 수화기 너머로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기계적인 베이스 음향과 함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도진이었다.
- "서한율. 네 귀가 아직 조금은 들리는 모양이더군."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음성이 병실 안의 공기를 얼려버렸다.
- "서머 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 주파수 대역 배정표가 방금 확정됐다. 네가 좋아하는 그 대단한 '공감각'인가 뭔가로 내 최신 오디오 엔진을 이길 수 있을지 기대하마. 아, 참. 네 리더의 성대가 먼저 터질지, 네 귓구멍이 먼저 막힐지... 나랑 내기라도 해볼까?"
뚝.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기 너머로 붉은색 경고음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동시에 한율의 태블릿 화면에 페스티벌 주최 측으로부터 온 공식 메일이 도착했다.
루미너스에게 강제로 할당된 마이크 주파수 채널. 그것은 에이펙스가 설계한 디지털 클리핑 데드존의 정중앙, 가장 파괴적인 대역이었다. 피할 길 없는 외통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