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생방송 축하 꽃가루가 스튜디오 가득 흩날리는 와중, 무대 뒤 어둠 속 복도에서 축하 인사를 건네려던 한율이 돌연 입에서 검붉은 선혈을 쏟아내며 그 자리에서 털썩 고꾸라진다.

"피……? 피잖아, 이거! 피디님! 정신 차려 봐요, 제발!"

서연의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은 점성이 강한 붉은 피였다. 바닥에 스며드는 붉은 자국 위로 생방송 무대의 환호성이 멀리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대기실 복도의 은은한 조명 아래, 한율의 아우라는 평소의 차갑고 투명한 청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불에 타들어 가는 종이처럼, 끝자락부터 바스러지며 거무스름한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서한율! 내 말 안 들려? 눈 좀 떠 봐요! 제발……!"

서연의 비명이 좁은 비상구 복도를 찢었다.

기자들이 몰려오기 전, 루미너스의 메니저와 스태프들이 비상구 문을 가로막고 가이드라인을 쳤다. 경호원들의 통제 속에서 한율은 간신히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이송되었다.

위용거리며 밤의 도심을 가르는 구급차 내부.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좁은 공간에서 서연은 한율의 차가운 손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한율의 뺨은 핏기가 가셔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갑고 창백했다. 산소마스크 너머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거친 호흡이 가냘프게 유리를 흐려놓았다.

"왜 말 안 했어요……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눈물이 한율의 손등 위로 툭툭 떨어졌다.

서연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도진이 뱉어낸 그 잔인한 확신에 찬 말들. 그리고 한율이 자신을 바라보던 그 아픈 눈빛.

자신이 무대 위에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를 때마다, 고음 파트에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전율을 느낄 때마다, 한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고통을 고스란히 두 배로 나누어 짊어지고 있었다. 동조의 대가. 싱크율의 대가. 신뢰와 사랑이 깊어질수록 서로의 주파수가 완벽히 포개어질수록, 그 기적의 이면에는 한율의 청각을 갉아먹고 신체를 찢어발기는 잔혹한 등가교환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 때문에…… 내가 부른 노래가 당신을 죽이고 있었어.'

서연의 목구멍에서 억눌린 오열이 터져 나왔. 목이 쉬어 갈라진 소리가 구급차의 쇠벽을 타고 쓸쓸하게 맴돌았다. 한율의 손가락끝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며, 서연은 가슴을 짓누르는 죄책감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의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져 갈 때, 자신은 무대 위에서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웃고 있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가슴을 후벼팠다.

"내가 안 부를게요. 이제 노래 안 해도 돼. 그러니까 제발…… 귀 막지 마요. 소리를 잃어버리지 마요……."

그녀는 한율의 손을 제 이마에 대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구급차의 거친 시동 소리에 묻혀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

대학병원 응급실의 커튼 너머는 지옥처럼 분주했다. 각종 의료 기기가 맥박을 체크하며 날카로운 경고음을 뱉어냈다.

"이관 기능의 급격한 훼손입니다. 심인성 난청 상태에서 과도한 뇌 기능 과부하와 급성 스트레스가 겹쳐 청신경 세포가 고사하기 일보 직전이에요. 지금 당장 절대 안정을 취하고 모든 음향 자극을 차단하지 않으면, 영구 소실로 이어집니다. 아시겠습니까?"

의사의 엄중한 경고를 들으면서도, 침대 머리를 짚고 일어서려는 한율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그의 귀에는 지금 거대한 폭포수가 쏟아지는 듯한 이명만이 가득 차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눈앞의 의사가 입을 벙긋거리는 모양새만으로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뿐이었다.

"서한율, 누워 있어라. 진짜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냐?"

진료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백은우가 한율의 어깨를 짓눌렀다. 평소 자존심 세고 틱틱대던 은우의 눈가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은우는 한율의 멱살을 잡듯 옷자락을 꽉 쥐었다.

"당신이 우리 살려놓고 정작 지는 귀 병신 돼서 나가떨어지겠다고? 그딴 개 같은 꼴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봐. 누워 있어, 제발!"

한율은 은우의 손을 힘없이 쳐냈다. 그리고 침대맡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서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한율의 손이 천천히 움직여 서연의 뺨을 감쌌다. 거칠고 마른 손가락끝에 서연의 뜨거운 눈물이 닿았다.

순간, 한율의 머릿속을 맴돌던 거친 이명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익숙한 아우라의 파동이 시야를 채우기 시작했다. 황금빛. 그러나 지금은 깊은 슬픔으로 인해 파랗게 멍든 황금빛 아우라가 서연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윤서연."

한율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낮았다. 제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아 평소보다 더 느릿하고 단단하게 힘을 주어 발음했다.

"울지 마. 네 탓이 아니야."

"피디님……."

"내 귀가 멀든 말든, 그건 내가 선택한 음악의 값어치다. 난 단 한 번도 내 선택을 후회한 적 없어."

"하지만 나 때문에 피를 토했잖아요! 내가 노래를 하면 당신이……!"

서연이 한율의 손을 잡고 소리쳤다. 한율은 그녀의 입모양을 읽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통증과 함께 뜨거운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독선적이고 완벽주의자였던 자신이, 타인을 믿지 못해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자신이, 이제는 이 아이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제 청각을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이것은 미련한 짓이었고, 자학적인 집착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생애 처음으로 마주한 진짜 '음악'이었다.

"루미너스의 다음 무대…… 서머 페스티벌이다. 내가 마감 지어야 해."

한율이 링거 바늘이 꽂힌 손으로 침대 시트를 움켜쥐며 단호하게 말했다.

"에이펙스가 어떤 짓을 꾸미든, 난 너희를 가장 높은 곳에 세울 거다. 내 귀가 완전히 닫히는 그 순간이 오더라도, 내 마지막 소리는 너의 목소리여야 하니까."

비장미 넘치는 한율의 선언에 은우는 마른세수를 하며 욕설을 삼켰고, 서연은 입술을 깨물며 그의 손을 더욱 세차게 쥐었다. 한율은 환자복을 입은 채로도 오직 서연의 커리어와 루미너스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제 몸이 부서져 나가는 것보다, 서연의 영혼이 담긴 노래가 세상에 닿지 못하고 묻히는 것이 그에게는 더 큰 죽음이었다.

그때, 응급실의 TV 화면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속보: 대세 아이돌 '루미너스', 신곡 데보 버전 해킹 및 불법 복제 의혹 제기…… 원작자는 따로 있나?]

기사의 헤드라인을 본 은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미친 새끼들이 결국 일을 저지르네."

은우의 이빨 사이로 불꽃이 튀었다.

***

강도진은 에이펙스 엔터테인먼트 사장실의 넓은 가죽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최측근이자 기술적 사운드 분석가인 민설아가 차가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수십억이면 언론사 입을 막고 여론을 돌리기에 충분한 액수지."

강도진이 잔을 흔들며 비열하게 웃었다.

"루미너스가 지상파에서 우리 애들을 꺾었다고 좋아 날뛸 때가 아니야. 대중은 음모론에 가장 약하거든. 천재 프로듀서 서한율이 사실은 불법 해킹 툴을 사용해 에이펙스의 비공개 세션을 복제해서 곡을 만들었다…… 아주 그럴싸한 그림 아닌가?"

민설아는 묵묵히 태블릿을 조작했다. 그녀의 안경 너머로 비치는 눈빛은 기계처럼 무미건조했다. 그러나 한율의 눈에 비쳤던 그녀의 아우라는 실상 전혀 다른 상태였다.

과거 한율은 민설아의 아우라에서 비정상적으로 균열된 청색 빛을 포착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완벽한 수학적 사운드를 지향하는 그녀가 사실은 심각한 성대 결절과 아티스트들의 기계적 음정 보정 한계에 부딪혀 내부적으로 철저히 무너져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파동이었다. 에이펙스가 자랑하는 '완벽한 빅데이터 음악'의 실체는, 실상 기계적 왜곡과 영혼이 거세된 껍데기에 불과했다.

"민 실장. 이번 서머 페스티벌 합동 라이브 무대 준비는 차질 없겠지?"

강도진의 질문에 민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오디오 타워 시스템 세팅은 완료되었습니다. 저희 에이펙스의 최신 오디오 엔진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야외 대출력 환경에서도 완벽한 주파수 제어가 가능합니……."

그러나 민설아의 보고 도중,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떫은 갈라짐을 보였다. 그녀의 목을 감싸고 있는 흐릿하고 균열된 청색 아우라가 순간적으로 붉게 번뜩였다.

그녀의 완벽주의 가면 밑바닥에는,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기술적 결함과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특히 에이펙스의 오디오 엔진은 고대역 주파수에서 디지털 클리핑(음 깨짐) 버그가 존재했다. 한율은 일찍이 이 결함을 간파하고 있었다. 에이펙스가 루미너스를 표절이라는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내리려 할 때, 한율은 오히려 그들의 기술적 오만함을 역이용할 무기를 다듬고 있었다.

"표절 시비로 루미너스의 여론을 차단하고, 이번 페스티벌에서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겠습니다."

민설아의 얼음 같은 목소리에 강도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다음 날 아침.

루미너스의 소속사 정문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수십 명의 취재진과 카메라맨들이 입구를 겹겹이 에워쌌고, 에이펙스의 여론 공작에 선동된 일부 안티 팬들이 보낸 하차 촉구 화환과 피켓들이 도로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윤서연 씨! 표절 의혹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서한율 피디가 에이펙스의 데이터를 불법 해킹했다는 조작 의혹이 사실입니까?" "지상파 1위도 결국 조작된 음원으로 얻은 결과물입니까?"

소속사 정문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는 마치 굶주린 맹수들의 이빨 같았다. 스태프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서연아, 절대 나가면 안 돼. 지금 나가면 기자들 밥밖에 안 돼!"

소속사 실장이 서연의 팔을 붙잡았지만, 서연은 단호하게 그 손을 뿌리쳤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상처받기 쉬운 무명 아이돌의 그것이 아니었다. 한율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청각을 걸었다면 이제는 자신이 무대의 주인이 되어 그를 지켜야 할 차례였다. 도망치는 프로듀서의 뒤에 숨어 보호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남지 않겠다고, 그녀는 이미 다짐했다.

서연은 은우가 건네준 무선 마이크를 손에 꽉 쥐었다.

"서연아!"

은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연은 단단한 걸음걸이로 소속사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유리문이 열리고, 차가운 아침 공기와 함께 수십 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그녀의 얼굴을 향해 터져 나왔다.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빛 속에서, 서연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렌즈들을 응시했다.

그녀는 천천히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소란스럽던 기자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전격적인 라이브 카메라가 가동되었고, 중계 화면은 실시간으로 전국에 송출되기 시작했다.

"루미너스의 리더, 윤서연입니다. 저희 음악과 서한율 프로듀서님을 향한 비열한 음해에 대해, 지금 이 자리에서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연의 목소리가 맑고 단단하게, 그 어떤 왜곡도 없이 대기 속으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병실 침대에 누워 모니터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한율의 귀에, 닫혔던 청각을 뚫고 들어오는 선명한 황금빛 주파수가 다시금 고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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