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시야의 오른쪽 구석, 사선으로 파고드는 노란색 가죽 구체가 잔상을 남기며 낙하한다.

공기 저항을 뚫고 회전하는 공의 표면이 망막에 박히는 순간, 뇌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단 0.1초. 머릿속에 구축된 ‘코트의 지배자 시스템’이 파란색 예측 궤적을 허공에 길게 그려 냈다.

[예측 낙하지점: 우측 후방 1.4미터.] [수신 불능 영역 진입률: 92%.]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몸을 비트는 찰나, 우측 어깨 깊은 곳에서 유리 파편이 척수까지 긁어내리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다. 전생에서 어깨 관절막이 완전히 뜯겨 나가던 그날 밤의 감각이 완벽히 재현되고 있었다.

“백승우! 뒤야!”

리베로 이지한의 외침이 고막을 때렸지만, 승우는 시선을 공에서 떼지 않았다.

상대 세터 강희제의 노림수는 명백했다. 경기 전 관객석 먼발치에서 캠코더를 삼각대에 고정해 둔 채, 승우의 어깨 회전 각도와 견착 타점을 집요하게 클로즈업하던 녀석이었다. 승우가 오른쪽 깊숙이 밀려드는 공을 처리할 때 오른쪽 어깨를 미세하게 안쪽으로 움츠린다는 사실을 기어이 간파해 낸 것이다.

강희제는 승우의 신체적 한계를 데이터로 확신하고 이 무자비한 사선 유도 딥 패스 서브를 찔러 넣었다.

‘내 한계를 네까짓 놈이 규정해?’

승우는 이를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온 붉은 피가 턱 끝으로 흘러내렸다.

보통의 세터라면 이 상황에서 안전하게 언더핸드 리시브로 공을 높이 띄우는 타협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승우에게 타협은 패배와 동의어였다. 그는 몸을 돌려 공을 받아내는 대신, 한 걸음 뒤로 미끄러지듯 오른발을 디뎠다. 척추를 기형적인 각도로 꺾으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올렸다.

쩍, 하는 기괴한 마찰음과 함께 테이핑 아래의 피부가 찢어지는 감각이 직격했다.

어깨 관절을 무식하게 가로질러 찢어발기는 극심한 신경통이 어깨관절 전체를 불태웠다. 날개뼈 부근에서 우드득거리는 파열음이 고스란히 뇌로 전송되었다. 어깨 마모율을 줄여 줄 두꺼운 부상 보호대는 대기실 사물함에 처박아 둔 지 오래였다.

그 무거운 무용지물을 걸치고서는 손가락 끝에 닿는 공의 미세한 압력 변화를 0.1초 단위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험: 우측 견관절 가동 범위 초과.] [경고: 보호 장비 미착용으로 인한 마모 가속화 가동. 마모율 3배 적용.] [현재 어깨 마모율: 87.4%]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치며 경고창이 붉게 물들었다. 무시했다. 승우는 미끄러진 각도 그대로 두 손을 공중 낙하 궤도 접점에 정밀하게 고정했다.

피부 위로 땀방울이 비산하는 찰나, 손가락 끝에 가죽의 단단한 감촉이 닿았다.

오른팔 전체의 신경이 마비되어 무감각해지기 직전, 손목의 스냅만으로 공의 회전을 완벽히 죽였다. 그리고 튕겨 냈다.

“……!”

숨을 들이켜는 강희제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승우의 손끝을 떠난 공은 네트 상단을 스치듯 수평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공격수의 가슴 높이에서 급격히 속도가 줄어들며 멈춰 서는, 이른바 ‘옥죄는 배급’의 극치인 C퀵 속공 토스였다.

“뛰어, 천다원.”

목구멍을 찢고 나온 것은 격려가 아닌 가혹한 명령이었다.

네트 왼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천다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원은 승우의 기형적으로 조여진 어깨 모양과 비틀린 상체를 똑똑히 보고 있었다. 저 상태에서는 절대로 토스가 올라올 수 없다고 판단해 반박자 늦게 스타트를 끊으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허공에 뜬 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원의 가장 이상적인 타점 궤적 위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여기서 뛰지 않으면 너는 내 코트 위에 설 자격이 없다’고 협박하는 독재자의 채찍질 같았다.

“이 미친 새끼가……!”

다원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다원의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승우가 지난 몇 달 동안 뇌가 타들어 가는 통증을 견디며 다원의 도약 높이, 근육의 수축 속도, 심지어 착지 시의 피로도까지 완벽하게 계산해 주입한 최적의 데이터가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덕분이었다.

다원이 지면을 박찼다.

쿠웅! 하는 무거운 파열음과 함께 다원의 신체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송곳처럼 날카롭게 뻗은 다원의 시야에 승우가 설계한 단 하나의 사각지대가 보였다. 한울공고의 블로커들이 채 따라붙기도 전에, 승우가 계산해 낸 수비 빈 지대 최강의 0.1초 점이 빛나고 있었다.

빡-!

다원의 손바닥이 공을 짓뭉개듯 내리쳤다.

공은 한울공고의 코트 정중앙, 리베로의 양발 사이를 그대로 관통하며 코트 바닥에 내리꽂혔다. 쾅! 하는 굉음이 체육관 바닥을 울렸고, 선을 넘은 공은 관객석 2층 난간을 때릴 기세로 튀어 올랐다.

“점수, 태성고!”

주심의 시그널과 함께 관중석에서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앗! 저걸 저 자세에서 올린다고?!” “방금 세트 플레이 봤어? 백승우 몸이 완전히 꺾였는데 토스 정확도가 미쳤잖아!”

관중석 귀빈석에 앉아 있던 대한배구협회 기술위원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들은 연신 노트를 가로지르며 승우의 움직임을 분석하기 바빴다.

“조율이나 타협이 아니야. 저건 공격수의 최적 타점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강제로 도약시키는 독재적인 배구군. 공격수가 공에 맞춘 게 아니라, 세터가 설계한 궤적에 공격수의 몸이 강제로 끌려 들어갔어. 완전히 산술적인 정량 계산의 산물이야.”

코트 위에 내려앉은 천다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완벽한 타점. 손끝에 남은 묵직한 타구감은 소름 끼칠 정도로 짜릿했다. 자신을 도구처럼 부리는 승우의 태도에 매번 치가 떨렸지만, 이 손맛을 보고 나면 도저히 그 배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다원이 승우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어이, 독재자. 방금 그건 0.1초만 늦었어도 내 발목이 나갔을 거다.”

“하지만 성공했지.”

승우는 차갑게 대꾸하며 오른팔을 슬그머니 내렸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승우의 어깨 속 통증 제어 타이머가 극한의 제로 영역에 도달했다는 증거였다.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이명처럼 울려 퍼졌다.

[경고: 뇌 신경 과부하 92% 돌파.] [경고: 시각적 UI 매핑 유지 시간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때, 승우의 어깨를 묵직한 손길이 감싸 쥐었다. 리베로 이지한이었다. 지한은 아무 말 없이 승우의 등 뒤로 다가와 그의 유니폼 안쪽을 억세게 잡아당겼다.

경기 전, 탈의실에서 지한이 유독 무겁게 가위질을 해 가며 승우의 어깨를 조여 놓았던 스포츠 테이핑이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한은 승우의 가방 깊숙한 곳에서 발견했던 전용 진통제 수류 팩을 떠올리고 있었다. 승우가 어깨를 잃어가며 이 코트를 지배하려 한다는 사실을, 지한은 이미 알고 있었다.

“버텨라, 백승우.”

지한이 승우의 귓가에 낮게 읊조렸다.

“네 등 뒤는 내가 어떻게든 지킨다. 그러니까 너는 코트 위에서 쓰러지더라도 네 배구를 해.”

승우는 대답 대신 입꼬리를 올렸다. 고맙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 지옥 같은 파트너십의 규칙이었다.

경기판의 숫자가 숨 가쁘게 교차했다. 한울공고의 반격은 매서웠다. 강희제는 승우의 부상 부위를 집요하게 흔들었고, 태성고는 승우의 초인적인 볼 배급과 이지한의 육탄방어로 응수했다. 세트 스코어는 2대 2. 경기는 마침내 마지막 5세트, 그것도 물러설 곳 없는 막다른 골목까지 치닫고 있었다.

전광판의 붉은 숫자가 요동쳤다.

[24 : 24]

숨이 턱 끝까지 찼다. 관객들의 함성은 이미 거대한 소음의 장벽이 되어 고막을 짓눌렀다.

승우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코트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오른팔은 이미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지 조차 분간하기 힘들었다. 억지로 신경을 이어 붙여 놓은 듯한 감각만이 어깨관절 끝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강희제가 네트 너머에서 승우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상대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겠다는 잔인한 안광이 안경 너머에서 번뜩였다.

승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을 들어 올린 순간, 시야를 가득 채우던 푸른색 시스템 창이 갑자기 붉은빛으로 폭발하듯 점멸하기 시작했다.

[!!! 치명적 위험 경고 !!!] [시스템 허용 가동 한계 시간 초과.] [우측 상지 신경망의 영구 마멸 단계 진입까지 남은 시간:]

[10초] [9초] [8초……]

뇌를 관통하는 극심한 두통과 함께 승우의 시야가 흐려졌다. 5세트 마지막 1점을 앞둔 듀스 상황. 영구 마비라는 파멸의 카운트다운이 마침내 승우의 심장부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7초]

“리시브!”

한울공고의 서브는 잔인할 정도로 정교했다. 공은 네트 상단을 스치듯 흐르다 급격히 낙하하는 플로터 서브(Floater Serve)였다. 회전 없이 공기 저항에 따라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구질. 리시브 라인을 뒤흔들기 가장 좋은 무기였다.

이지한이 무릎을 코트 바닥에 쓸며 몸을 던졌다.

퍽!

가슴팍으로 받아낸 공이 허공으로 높게 솟구쳤다. 하지만 흔들린 회전 탓에 궤적이 네트 쪽으로 지나치게 밀착되어 흘렀다. 세터가 처리하기 가장 까다롭다는 ‘네트 밀착 볼(Net-tight ball)’이었다. 조금만 타이밍이 늦어도 상대 블로커에게 다이렉트 킬을 허용하거나, 패스 오버(Net Over) 반칙이 선언될 수 있는 외줄 타기 같은 상황.

네트 너머의 강희제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뻗었다.

“잡았다, 백승우.”

강희제의 지시에 따라 한울공고의 미들블로커 두 명이 승우의 전면으로 빠르게 시프트(Shift)했다. 승우의 무너진 오른쪽 어깨로는 네트에 붙은 공을 뒤로 길게 빼는 백토스를 구사할 수 없다는 확신에 찬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승우가 오직 전방으로만 공을 밀어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투인원(2-in-1) 블로킹 벽을 견고하게 구축했다.

[5초]

시야가 붉은색 경고등으로 깜빡이며 사물의 윤곽이 일그러졌다. 어깨 관절 속에서 뼈와 뼈가 직접 부딪히는 듯한 둔탁한 마찰음이 고스란히 뇌세포를 난도질했다. 오른팔은 이미 감각이 소실되어 허공에 뜬 남의 살덩이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승우의 뇌는 멈추지 않았다.

‘아직이다.’

승우는 이지한의 리시브가 만드는 공의 포물선을 0.1초 단위로 쪼개어 분석했다. 그리고 머릿속 데이터베이스에서 이전 예선전과 비디오 분석을 통해 축적해 두었던 단 하나의 단서를 끄집어냈다.

강희제의 치명적인 신체적 버릇.

강희제는 완벽한 분석형 세터였지만, 전방 블로킹 가담 시 양손을 뻗는 과정에서 미세한 좌우 불균형을 보였다. 상대 공격수의 타점을 예측하고 손을 뻗을 때, 그의 오른손 검지가 공이 정점에 도달하기 직전 0.08초 동안 미세하게 바깥쪽으로 열리는 반사 딜레이가 존재했다.

과거 대진공고의 서태진을 분석할 때의 프레임을 한울공고의 수비 라인에도 동일하게 매핑한 결과였다. 강희제가 제아무리 완벽한 기계처럼 굴어도, 인간인 이상 근육의 수축과 이완에는 찰나의 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0.08초의 틈이 네 무덤이다.’

[3초]

승우가 지면을 박차고 솟구쳤다.

허공에서 강희제와 승우의 시선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강희제의 두 손이 네트 너머로 단단하게 뻗어 나왔다. 승우의 옥죄는 배급을 정면에서 차단하겠다는 오만한 의지였다.

그 순간, 승우는 억지로 오른팔의 신경을 쥐어짜 내 손목을 꺾었다. 어깨의 신경이 완전히 끊어지는 듯한 극심한 환상통에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빨을 부러질 듯 악물며 소리를 삼켰다.

손가락 끝이 공의 가죽 표면에 닿았다.

강희제의 오른손 검지가 예측대로 미세하게 바깥으로 벌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승우는 공을 밀어내는 대신 손가락 끝의 감각만을 이용해 공을 반대 방향으로 튕겨 보냈다.

백토스였다.

그것도 어깨의 회전력을 전혀 쓰지 않고, 오직 손가락의 척력과 손목의 탄성만으로 공의 궤적을 180도 뒤틀어버린 기형적인 배급.

“뭐……?!”

강희제의 동공이 팽창했다.

승우의 손끝을 떠난 공은 한울공고 블로커들의 머리 위를 정확하게 관통하여,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네트 우측 후방의 빈 공간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곳에는 이미 승우의 무자비한 지시에 따라 반사적으로 도약하고 있던 라이트 공격수가 대기하고 있었다. 승우가 0.1초 단위의 수치 계산으로 억지로 쥐어짜 낸,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로 열린 한울공고의 사각지대였다.

[1초]

공격수의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며 공을 내리치기 직전, 승우의 망막을 가득 채우던 푸른색 시스템 UI가 거칠게 흔들렸다.

직- 지지지직.

수많은 예측선과 수치들이 노이즈와 함께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경고: 사용자의 신체적 한계치 도달.] [경고: 시스템 가동이 강제로 중단됩니다.] [어깨 마모율 99.9% 돌파. 신경망 영구 마멸 카운트다운 종료.]

암전(暗戰).

머릿속을 지배하던 모든 시각 정보가 한순간에 꺼져 버렸다. 암흑 같은 시야 속에서 승우의 오른팔이 힘없이 허공으로 떨어졌다. 관절 내부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무감각이 어깨 전체를 잠식해 들어왔다.

쿵!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승우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코트 위로 쓰러졌다. 오른쪽 어깨는 이제 자신의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굳어 있었다.

공격수의 스파이크 소리가 체육관을 흔들었는지, 혹은 블로커의 손에 걸렸는지조차 들리지 않았다. 귀가 먹먹해지는 이명 속에서, 승우는 오직 네트 너머로 굴러가는 공의 흐릿한 잔상만을 바라보았다.

이 한 번의 플레이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승우의 시야가 완전히 흐려지기 직전, 허공에서 공을 가로막기 위해 뻗어 나오는 한울공고 블로커들의 거대한 손바닥이 승우의 눈동자에 기괴하게 일그러진 형태로 비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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