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무거운 쇳소리가 거칠게 대지를 뒤흔든다. 백가장의 사내들이 일제히 보폭을 맞춘다. 그들의 전신을 단단히 감싼 것은 강철이다.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가 날카롭게 회전한다. 증기갑주(蒸氣甲冑)의 배기구가 굉음을 울린다. 뜨겁고 흰 증기가 사방으로 거칠게 뿜어진다. 철갑을 두른 정예 보병들이 전열을 정비한다. 그 기세는 거대한 움직이는 철벽과도 같다. 겨울의 살벌한 칼바람조차 고열에 꺾인다. 이를 지켜보던 무인들이 겁에 질려 퇴각한다. 철과 화약의 절대적 우위가 증명되는 순간이다.

이 증기갑주는 기체의 압력 배가 원리를 띤다. 소형 화로의 열원으로 유체를 고압 팽창시킨다. 다단식 실린더가 완력을 수십 배로 증폭한다.

당신의 가슴 속에 이식된 기계 내단이 요동친다. 인체와 무구가 융합된 비정상적 내공이다. 기맥을 관통하는 고압의 열기가 맥박을 친다. 가공할 에너지가 등줄기를 타고 뻗어 나간다. 눈앞의 철갑군단은 당신의 손끝에 부려진다.

바로 그때, 저 멀리 지평선의 빛이 흐려진다. 검붉은 연무 같은 살기가 전장을 혼탁하게 덮는다. 기이한 파음과 함께 스산한 음풍이 불어 닥친다. 사파의 거두인 신비한 마교(魔敎)의 군세다. 수백 명의 흑의 무인들이 산등성이를 메운다. 경공(輕功)을 펼친 고수들이 허공을 도약한다. 그들의 음습한 안광은 탐욕으로 번득인다. 백가장의 독보적인 증기 무구를 빼앗기 위함이다. 강호의 판도를 뒤엎을 기술을 탐낸 야욕이다.

마교의 선봉장이 백색 도를 뽑아 지휘한다. 그의 손끝에서 칠흑의 마기가 뿜어져 나온다. "천한 쇳덩이를 부수고 비기를 찬탈하라!" 그의 서슬 퍼런 포효에 마인들이 일제히 달린다. 대지가 격하게 동요하며 먼지바람이 인다. 철갑보병들이 방패를 지면에 박아 버틴다. 압력판의 수치 침은 이미 한계점을 가리킨다. 밀폐된 증기 보일러가 굉음을 터뜨리기 직전이다. 피차간의 거리는 이제 백 걸음 안팎이다. 더는 망설일 찰나의 시간도 허락지 않는다. 당신은 차가운 눈빛으로 전황을 내려다본다. 보병들의 무력으로 적의 선봉을 궤멸할 것인가. 아니면 지하에 대기 중인 은밀한 비책을 꺼낼 것인가. 당신의 오른손이 천천히 기동 레버로 향한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