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적막한 야삼경(夜三更)이다. 백가장(白家莊)의 퇴락한 정원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사방에서 장벽(墻壁)을 넘는 발소리가 들린다. 흑호방(黑虎幇)의 삼류 무뢰배 십여 명이다. 그들의 도검(刀劍)이 달빛을 받아 번뜩인다. 당신은 노후된 화덕 옆의 수동식 압력 밸브를 꽉 쥔다. 손끝에 철제 휠의 차가운 금속 감각이 전해진다. 적들이 마당 중앙에 발을 디딘다. 그 순간, 당신은 온 힘을 다해 회전 휠을 돌린다.

쿠구구구—! 지하에 매설된 연철(軟鐵) 도관이 비명을 지른다. 마당의 평평한 장석(長石) 틈새가 갈라진다. 그 틈으로 초고온의 천연 증기 폭풍이 분출된다.

고압으로 압축된 과열수는 대기 중에 방출되는 순간 체적이 천칠백 배로 팽창한다. 이 상변화(Phase transition)는 열에너지를 가공할 물리적 운동에너지로 폭발시킨다. 섭씨 백 도를 상회하는 기화열은 인간의 상피 조직을 순간적으로 파괴하여 사멸시킨다.

"아악! 내 눈! 내 얼굴이!" 살점이 익어가는 지독한 악취가 사방에 진동한다. 천지를 뒤흔드는 고열의 장막 속에 무뢰배들이 나뒹군다. 급조된 증기 덫의 위력은 실로 가공할 만했다. 운 좋게 화상을 피한 열댓 명은 기겁하며 패주한다. 습격은 막았으나, 승리의 기쁨은 짧다.

낙오된 적 하나를 생포하여 추궁한 결과는 참담하다. 이 덫에 걸려 격살당한 자 중에 방주의 친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혈육의 사망 소식에 미쳐버린 흑호방주(黑虎幇主)다. 그가 본진의 가용 전력을 모두 이끌고 총공세를 감행하려 한다. 일류 고수인 방주와 정예 무인 삼십 여 명이 당도할 터다. 그들이 백가장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살기를 분출하며 밀려오고 있다.

새벽이 오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단 한 시진(時辰). 가문의 낡은 토성(土城)방어벽으로는 일류 고수의 진각(震脚)을 감당할 수 없다. 단 한 번의 공세라도 허용하면 가문은 멸문이다. 당신은 화덕 방의 거친 기계 도면을 노려본다. 적들을 도륙할 확실한 공학적 수단이 필요하다. 차가운 이성이 강박적으로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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