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철커덩! 콰콰쾅!

거친 쇠사슬이 붉은 천막 위를 사정없이 옥죄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토해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충격에 포장마차 전체가 크게 휘청거렸다. 선반 위에 나란히 올려두었던 사기그릇들이 요란하게 부딪치며 비명을 질렀고, 찌개용 뚝배기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비천한 이방인의 쓰레기 마차를 당장 끌어내라! 세금을 내지 못하는 자는 이 영지에 발을 붙일 수 없다!"

천막 너머로 기스바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고 새어 들어왔다. 횃불의 벌건 불그림자가 얇은 포장마차 천을 투과해 어지럽게 춤을 추었다. 밖을 에워싼 서늘한 살기와 제국 사병들의 거친 숨소리가 사방에서 가슴을 조여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사지가 마비될 법한 위기였다.

하지만 이방인 요리사 이지원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입가에 싱글벙글한 미소를 띠었다. 위기가 턱끝까지 차오를수록 가슴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방어기제가 어김없이 작동한 것이다. 지원은 평소보다 세 배는 빠른 손놀림으로 하얗고 깨끗한 면포를 쥐고 조리대 위를 쓱쓱 닦아내기 시작했다. 손끝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만큼은 봄바람처럼 나긋나긋했다.

"어머나, 귀한 손님들이 떼거지로 몰려오셨네요. 예약도 없이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들이닥치시면 곤란한데 말입니다."

조리용 집기를 정돈하는 지원의 눈동자가 카운터 구석에 놓인 낡은 가죽 장부로 향했다.

그것은 평범한 장부가 아니었다. 이 세계와 원래 세계의 경계를 허물며 그에게 다가온 '차원 유랑 장부'였다. 지원의 머릿속에 과거의 서늘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이 포차를 처음 맡았을 때, 장부의 첫 페이지에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던 가혹한 경고문.

[경고: 정산 기한 내에 새로운 손님의 '진실한 영혼의 치유 기록'을 올리지 못할 시, 포장마차는 영원히 빛이 들지 않는 절대 고립의 허공 속에 조난당함.]

그 조난의 공포는 매일 밤 지원의 목덜미를 사늘하게 짓누르던 가장 큰 족쇄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영원히 길을 잃고 굶주려 갈 뻔했던 무력한 나날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원은 왼손을 뻗어 장부의 표지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스르륵 가죽 표지가 열리며,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은은한 비취색 마력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장부의 물류 페이지 상단에는 기적처럼 채워진 정산 수치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누적 영혼의 낙찰금: 45,000 Point] [연료 상태: 완충 (100%)] [조난 경보: 해제됨. 차원 유랑 포차의 모든 방어 및 유틸리티 시스템이 정상 작동합니다.]

지난밤, 만성 마력 폭주로 죽어가던 하프엘프 베아트리체가 차가운 동치미 국수 한 그릇을 비워내며 흘렸던 그 뜨거운 눈물. 그 영혼의 정산이 완료되면서, 마차를 옥죄던 조난의 사슬은 이미 완벽하게 풀려 있었다. 이제 장부에는 사병 오십 명쯤은 가볍게 비웃어줄 수 있는 방대한 에너지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우리 마차가 겉보기엔 좀 허술해 보여도, 뼈대는 아주 튼튼하거든요."

지원이 장부의 빈 공간을 가볍게 톡 두드렸다.

[시스템 작동: '포차 방어막 무적 기능'을 전개합니다.] [소모 포인트: 2,000 Point]

그 순간, 천막 밖에서 거대한 쇠도끼를 치켜든 사병들의 기합 소리가 울렸다.

"이따위 천 쪼가리, 단숨에 찢어발겨 주마! 끌어내!"

시퍼런 도끼날이 붉은 천막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쇠사슬을 쥔 사병들이 일제히 줄을 잡아당기며 마차를 통째로 뒤집으려 힘을 쓰던 바로 그 찰나였다.

*웅웅웅웅!*

포장마차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는가 싶더니, 천막 표면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 은빛 장벽이 아지랑이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한데 모아 벼려낸 듯한 투명하고 견고한 결계였다.

깡! 콰아앙!

도끼날이 허공에 닿는 순간, 맑고 투명한 유리창에 돌을 던진 것 같은 굉음이 광장에 휘몰아쳤다. 사병들의 무지막지한 철제 도끼가 은빛 장벽에 부딪히자마자 장난감처럼 사방으로 부서져 나갔다. 부러진 쇠날의 파편들이 밤공기를 가르며 흩어졌다.

"으, 으악?!"

"이게 무슨 일이야! 손이, 내 손이!"

강력한 반동에 힘을 쓰던 사병들이 뒤로 나자빠졌다. 마차를 꽁꽁 묶고 있던 거대한 쇠사슬 역시 튕겨 나가는 탄성을 이기지 못하고 뱀처럼 요동치며 사병들의 발목과 몸통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커헉!"

"내 다리! 다리가 꼬였어!"

오십여 명의 장정들이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지며 진흙바닥 위를 꼴사납게 굴렀다. 그들이 들고 있던 횃불들이 바닥에 떨어져 빗물 고인 웅덩이 속에서 치익 소리를 내며 꺼져갔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풍경을 보며, 지원은 조리용 집게를 든 채 혀를 쯧쯧 찼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거봐요. 제가 다친다고 조심하라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성격들이 참 급하셔."

하지만 제국의 사병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기스바인의 매서운 눈초리를 의식한 대장급 사병이 진흙투성이가 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이, 이방인 놈이 사악한 마법을 쓴다! 모두 검을 뽑아라! 마차 안으로 직접 들이닥쳐 놈의 목을 베어라!"

부러진 도끼를 버린 사병들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고 포차의 입구를 향해 돌진하려 했다. 가죽 장막으로 가려진 좁은 포차 입구는 그들에게 아주 손쉬운 사냥터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원은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조리대 위에는 큼직한 무쇠 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솥 안에서는 오늘 낮에 멜리사와의 비밀 거래를 통해 양껏 공수해 온 조선 대파와 육쪽마늘, 그리고 붉다 못해 검붉은 빛을 띠는 태양초 고춧가루가 펄펄 끓는 기름 속에서 맹렬하게 볶아지고 있었다.

이 요리의 정체는 바로 '불맛 낙지볶음'이었다.

본래 이 재료들은 하프엘프들의 몸속에 쌓인 마력 오염 찌꺼기를 해독하기 위해 엄선된 비책이었다. 무색무취의 마력 독소를 정화하는 대파와 마늘의 알싸한 성분은, 한국식 고춧가루의 화끈한 매운맛과 만나면 상상을 초월하는 가공할 시너지 효과를 내뿜었다.

"날씨도 쌀쌀한데, 우리 식당 특제 불맛 향기나 한번 맡고 가시죠."

지원이 가볍게 윙크를 하며 펄펄 끓는 무쇠 솥의 무거운 뚜껑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동시에 조리대 하단에 장착된 마력 환풍기의 스위치를 '역송풍'으로 강하게 올렸다. 평소라면 냄새를 밖으로 빼내야 할 환풍기가, 이번에는 반대로 포차 내부의 열기와 연기를 천막 입구 쪽으로 사정없이 뿜어내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악!*

솥뚜껑이 열리자마자, 붉은 지옥의 불꽃을 응축해 놓은 듯한 검붉은 연기 폭풍이 광장 전역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것은 평범한 연기가 아니었다. 알싸한 육쪽마늘의 엑기스와 눈이 멀 것 같은 캡사이신 성분이 고온의 무쇠 솥에서 타오르며 만들어진, 그야말로 '생화학 무기' 수준의 매운 연기 융단이었다.

"콜록! 쿨럭! 컥!"

가장 먼저 포차 입구로 통과하려던 사병이 단 한 모금의 공기를 들이마시자마자 목덜미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끄아악! 눈, 내 눈이 타들어 간다!"

"공기가, 공기가 매워! 숨을 쉴 수가 없어!"

매운 연기는 안개 낀 광장의 습기를 머금고 더욱 무겁고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횃불을 들고 기세를 올리던 사병들이 이제는 칼을 내팽팽개치고 자신들의 얼굴을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눈물과 콧물이 진흙과 범벅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개처럼 엎드려 흙바닥을 긁어댔다.

"이, 이게 무슨 독가스냐! 이방인이 비열하게 독을 풀었다!"

"살려줘! 숨이 안 쉬어져!"

오십 명의 장정들이 무기를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눈물 흘리는 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기세등등하던 제국의 사병들은 간데없고, 그저 매운 고춧가루 연기에 혼쭐이 나 훌쩍거리는 어린아이들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저 멀리 안개 낀 광장 구석에서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슬럼가 주민들과 하프엘프들이 하나둘 모습을러 드러냈다.

늘 제국군의 군화 발소리만 들려도 골목 구석으로 숨어 떨던 그들이었다. 마력 무기력증에 걸려 초점 없는 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하프엘프들도, 매콤하면서도 알싸한 대파와 마늘의 향기가 콧끝을 스치자 묘하게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막혀 있던 마력 순환계가 알싸한 향기만으로도 움틀거리는 기분이었다.

"저, 저것 봐. 제국 녀석들이 질질 짜고 있어."

"그 무서운 사병들이 고작 붉은 연기 마시고 개처럼 기어 다니네!"

주민들 사이에서 풋, 하고 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웃음은 이내 봇물 터지듯 번져나가 광장 전체를 가득 메웠다.

"아이고, 나리들! 세금 걷으러 오셨다가 눈물콧물 다 짜내시네!"

"포차 점장님의 매운맛이 아주 제국의 기상에 딱 맞나 봅니다!"

늘 억눌려 지내던 슬럼 주민들의 가슴속 체증이 단숨에 내려가는 듯한 시원한 조소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주민들의 비웃음 소리가 커질수록, 바닥을 기어 다니는 사병들의 얼굴은 매운맛과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원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솥 안의 낙지볶음을 커다란 접시에 예쁘게 담아내며 중얼거렸다.

"거봐요, 우리 집 대파랑 마늘이 참 몸에 좋다니까요. 막힌 콧구멍도 뻥 뚫리고 말이죠."

유쾌하고 통쾌한 웃음소리가 밤안개를 따스하게 녹여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도망치고 자빠진 사병들의 잔해 너머에서 묵직하고 차가운 마찰음이 다시 한 번 광장을 얼려버렸다.

*고오오오오.*

안개 속을 헤치며 나타난 것은, 보랏빛 마력석이 기괴하게 빛나는 제국의 고급 마력 마차였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피처럼 붉은 외투를 어깨에 걸친 사나이가 품위 있게 걸어 나왔다.

영지 지배인, 기스바인이었다.

그는 코를 쥐고 있던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으며, 매운 연기 속에서도 끄떡없는 마력 방어막을 온몸에 두른 채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시퍼런 냉기를 뿜어내는 '마력 봉인 수갑'이 들려 있었다. 기스바인의 서늘한 눈빛이 포차 안의 지원을 향해 곧장 내리꽂혔다.

"천한 쥐새끼가 감히 제국의 군대를 희롱하는구나."

기스바인이 수갑을 가볍게 흔들자, 철컥거리는 금속음이 고요해진 광장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기스바인의 구두 굽이 광장의 젖은 돌바닥을 디딜 때마다, 서늘한 보랏빛 파동이 잔물결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가 내뿜는 오만한 마력의 압박감에, 조금 전까지 웃어재끼던 슬럼가 주민들의 웃음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사람들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다시 어둠 속으로 웅크려 들었다.

지원은 손에 쥔 무쇠 솥뚜껑을 가볍게 내려놓았다. 탕, 하고 둔탁한 철제 음이 울리자 기스바인의 눈썹이 가볍게 꿈틀했다. 지원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마치 아주 반가운 단골손님이라도 맞이하듯 양손을 비벼댔다.

"어이쿠, 영지 지배인 대인께서 이 누추한 포장마차까지 친히 발걸음을 해 주셨네요. 매운 연기가 눈에 매우실 텐데, 안쪽으로 들어오셔서 따뜻한 둥굴레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닥쳐라, 비천한 이방인 놈."

기스바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온기도 없었다. 그는 품속에서 붉은 인장이 찍힌 두꺼운 양가죽 문서를 꺼내 들었다. 제국의 엄격한 서체로 쓰인 법령서였다.

"루미나 제국 상법 제37조. 허가받지 않은 아인종 구역에서의 상행위는 반역죄에 준하며, 즉각적인 재산 압류 및 영구 추방에 처한다. 또한, 오늘부로 이 구역의 특별 치안 유지 명목 하에 영지 통행료를 기존의 열 배로 인상한다."

"열 배요?"

지원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아무리 위기 상황에서 웃는 방어기제를 가진 그라 할지라도, 열 배라는 터무니없는 액수에는 속이 쓰려올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으로 장부의 정밀 경영 계산기가 빠르게 굴러갔다. 현재 마차에 남아 있는 실물 은화와 멜리사를 통해 확보한 유통 자금을 전부 털어 넣어도, 열 배로 뛴 통행료를 매달 내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장부의 정교한 물류 시스템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악질적인 합법적 착취 앞에서는 이윤을 남기기 어려웠다.

"대인, 아무리 그래도 열 배는 너무 과하십니다. 시장의 도리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도리? 짐승들과 어울리는 잡상인 놈이 감히 제국의 법률 앞 도리를 논하는구나. 당장 이 불법 마차를 넘기고 기어가든지, 아니면 저 수금단의 철퇴를 맞고 가루가 되든지 선택해라."

기스바인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안개 너머, 광장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대형 마차들의 천막이 걷히며 거대한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시커먼 무쇠로 주조된 세 문의 '마력 포격포'였다. 포구 끝에서 붉은색 마력 화약의 불꽃이 찌르르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단순한 철거 기병대가 아니었다. 아예 포장마차와 이 광장 모퉁이를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는 기스바인의 잔혹한 의지가 담긴 전쟁 병기였다.

포차 안쪽의 보이지 않는 구석, 나무 상자 뒤에 숨어 있던 상인 멜리사가 가슴을 쥐어짜며 지원에게 다급한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품속에 감춰둔 가죽 가방을 톡톡 두드렸다.

그 가방 안에는 지난밤 멜리사가 목숨을 걸고 빼돌린 비밀 서류가 들어 있었다. 기스바인이 황제 몰래 방랑 상인들과 슬럼가 아인종들에게 독점적으로 징수하여 사익을 채워온 '불법 사설 통행료 이중 장부'의 사본 족보였다. 멜리사의 눈빛은 명확했다. '지금 저 구두쇠 녀석의 약점을 터뜨려야 한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지원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저 이중 장부를 들이밀어 봤자, 눈이 뒤집힌 기스바인이 포격 명령을 내려 증거를 인멸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심문관과 제국의 정식 감시관들이 배석한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이 무법천지 황무지에서는 그 어떤 법적 증거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금은 일단 저 무지막지한 포격을 막아내고 놈들의 콧대를 꺾어놓는 것이 우선이었다.

지원은 슬그머니 주머니 속에서 차가운 금속을 만지작거렸다. 제국의 촉망받는 기사였던 엘릭이 두고 간, 금이 간 은빛 기사 펜던트였다. 그것을 만지는 지원의 손끝에 팽팽한 긴장감이 실렸다.

바로 그때였다.

*킁킁.*

"이 향기는……."

매운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 광장 한편에서, 웅크려 있던 하프엘프 베아트리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붉은빛 마력이 미세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 가득 찬 조선 대파와 육쪽마늘의 알싸한 해독 성분. 그것은 단순히 사병들을 쫓아내기 위한 연기가 아니었다. 바람을 타고 흘러간 매콤하고 알싸한 향기가 하프엘프들의 호흡기를 타고 들어가, 그들의 몸속에 깊게 엉겨 붙어 있던 마력 오염 찌꺼기들을 강제로 용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뜨거워져."

"마치 막혔던 샘물이 다시 터져 나오는 것 같아……."

무기력증에 빠져 초점 없이 누워 있던 하프엘프들의 손끝에서 은은한 푸른빛 마법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메말라 가던 은빛숲의 마력이, 지원의 요리가 뿜어낸 독특한 향을 통해 기적처럼 디톡스되며 깨어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 잃어버렸던 생기가, 그리고 제국을 향한 억눌린 분노가 서서히 차올랐다.

하지만 기스바인은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오만하게 웃으며 포격수들에게 손을 치켜들었다.

"마지막 기회다, 이방인. 무릎을 꿇고 마차의 열쇠를 바쳐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의 그 알량한 식당과 함께 이 더러운 아인종 놈들을 전부 잿더미로 만들어 주마."

지원은 조리대 위에 놓인 낡은 가죽 장부를 슬그머니 덮었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세상에서 가장 쾌활하고 속 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배인 대인, 죄송하지만 저희 식당은 연중무휴거든요. 그리고 예약 손님 외에는 자리를 내어드리지 않는 게 철칙이라서요."

기스바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건방진 놈이 끝까지 부질없는 고집을 부리는구나! 포격수들, 일제히 발포하라! 저 건방진 마차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려라!"

붉은 마력포의 구멍이 일제히 불을 뿜으려는 찰나, 광장의 대기 전체가 터질 듯한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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