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야간 영업은 불법이다! 황무지 정화령 및 불법 아인종 집결 금지법에 의거하여, 이 무허가 마차를 즉시 압수하고 운영자를 체포한다!"
차가운 밤바람이 붉은 천막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포차 안의 아늑한 온기를 단숨에 앗아갔다. 문틈으로 들이닥친 기사들의 갑옷은 벼려진 칼날처럼 서늘한 은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선두에 선 기사의 가슴팍에는 루미나 제국 기사단의 상징인 붉은 사자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원은 순간 몸을 경직시켰지만, 이내 특유의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쥔 무쇠 웍을 행주로 싹싹 닦아내기 시작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불안감이 일렁였지만,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가 먼저 작동한 까닭이었다.
"아이고, 귀한 손님들이 이 누추한 곳까지 발걸음을 해주셨네요. 밖이 무척 춥지요? 안개도 많이 끼었는데 들어오셔서 몸 좀 녹이십시오."
지원은 넉살 좋게 웃으며 불판 위의 불길을 조금 더 키웠다. 화르륵 피어오르는 붉은 불꽃이 기사들의 차가운 흉갑 위로 따스한 오렌지빛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순간, 지원의 시야 한구석에서 오래된 책장을 넘기는 듯한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황금빛으로 빛나는 글씨가 떠올랐다.
[영혼의 낙찰금 정산 완료.] [단골 손님 '베아트리체'의 진실한 치유의 눈물이 기록되었습니다.] [소실 마일리지가 완충되었으며, 붉은색 조난 경보가 완벽하게 해제됩니다.] [마차 연료: 100% (안정)]
눈앞을 어지럽히던 붉은 경고등이 꺼지고, 늘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영원한 어둠 속의 조난'이라는 공포가 깨끗이 씻겨 내려갔다. 장부의 차가운 제약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오자, 지원의 손끝에 한층 더 여유로운 힘이 들어갔다. 이제 이 장부는 그에게 목을 조르는 덫이 아니라,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안식처의 열쇠였다.
"점장님, 조심하게. 저자는 기스바인의 오른팔이자 제국의 사냥개라 불리는 엘릭 기사단장일세."
옆자리에 앉아 있던 보부상 멜리사가 막걸리 잔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경계심으로 가늘어졌다. 멜리사는 이미 제국 기사단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법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 아래 아인종과 이방인의 고혈을 짜내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지원은 멜리사가 미리 귀띔해 준 정보 덕분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기스바인의 수하들이 정기적으로 황무지를 돌며 사설 통행료를 수금하고, 꼬투리를 잡아 상인들을 윽박지른다는 사실을 이미 머릿속에 넣어둔 터였다.
"체포라니요, 늠름하신 기사님 상대로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도망을 가겠습니까. 그나저나 먼 길 오시느라 시장하실 텐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따뜻한 밥 한 끼 드시고 말씀하시지요."
지원은 뚝배기대를 요란하게 정리하며 쾌활하게 말을 건넸다.
선두에 서 있던 기사, 엘릭은 무거운 투구 사이로 깊고 차가운 눈빛을 빛냈다. 그의 얼굴은 오랜 전장을 누빈 군인 특유의 굳은 살과 자잘한 흉터로 덮여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깊은 피로와 환멸이 깃들어 있었다. 엘릭은 지원의 실글벙글한 얼굴을 묵묵히 응시했다. 보통 제국 기사단이 들이닥치면 아인종이나 이방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거나 무릎을 꿇고 빌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검은 머리의 청년은 마치 동네 마실 나온 이웃을 대하듯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천막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냄새가 문제였다.
코끝을 찌르는 매콤하고 칼칼한 고추장 양념 냄새, 그리고 달콤하게 볶아진 양파와 알싸한 마늘 향이 섞여 뿜어내는 냄새는 기사들의 침샘을 가혹하게 자극했다. 하루 종일 황무지의 진흙탕을 구르며 딱딱하게 굳은 호밀빵과 누린내 나는 육포만 씹었던 그들에게, 이 냄새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기스바인 경의 명령을 수행하는 중이다. 이방인의 잡스러운 음식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다."
엘릭이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의 뒤에 선 부하 기사들의 시선은 이미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뚝배기로 향해 있었다.
"에이, 나라를 지키시는 분들이 굶으면서 일하시면 쓰나요. 제 장부에 '군인 우대'라는 조항은 없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히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지원은 얼른 뚝배기 밑에 가스불을 댕겼다.
오늘의 요리는 칼칼한 국물이 자작하게 깔린 '돼지 짜글이'였다. 붉은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장에 큼직하게 썬 돼지 전지살을 넣고, 조선 대파와 육쪽마늘을 아낌없이 다져 넣었다. 대파의 흰 뿌리 부분에서 우러나온 달큰한 즙과 마늘의 알싸한 향이 고기의 잡내를 완벽하게 잡아내며 주방 안을 가득 메웠다.
이 대파와 마늘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지원이 마차의 특수 발주로 들여온 이 영양 가득한 채소들은 하프엘프들의 몸속에 쌓인 탁한 마력 찌꺼기를 용해하고 순환계를 정화하는 특별한 해독 성분을 품고 있었다. 포차 안을 가득 채운 알싸하고 개운한 마늘 향은, 차가운 제국의 이념에 가로막혀 숨죽이고 있던 이들의 가슴속 응어리까지 녹여버릴 듯이 강렬했다.
지원은 가마솥 뚜껑을 열었다.
*치이익―!*
하얀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갓 지은 가마솥 쌀밥의 구수하고 단내가 천막 안을 부드럽게 감쌌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을 놋쇠 대접에 고얗게 퍼 담은 지원은, 그 옆에 보글보글 끓으며 시뻘건 거품을 내뿜는 돼지 짜글이 뚝배기를 정갈하게 받쳐 엘릭의 앞에 내려놓았다.
"비벼 드셔도 좋고, 따로 드셔도 좋습니다. 일단 한 입 드셔 보시지요."
붉은 고추장 양념이 고기 속까지 쏙쏙 배어들어 붉은빛을 띠는 돼지고기, 그리고 푹 익어 흐물흐물해진 대파와 감자가 자작한 국물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엘릭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투구 너머로 보이는 그의 목젖이 크게 출렁였다. 제국의 기사로서 아인종과 이방인을 더러운 짐승으로 여기고 배척해야 한다는 서약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뼛속까지 시려 오는 황무지의 추위와 지독한 허기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단장님... 이건 정말 참기 힘든 향입니다."
뒤에 선 부하 기사가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엘릭은 천천히 투구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드러난 그의 얼굴은 예상보다 훨씬 젊었으나, 눈가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지원이 건넨 숟가락을 쥐었다. 그리고 붉은 국물과 고기, 대파를 듬뿍 떠서 윤기가 흐르는 하얀 쌀밥 위에 얹었다.
쓱쓱 비벼 한 입 크게 입으로 가져가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우물, 우물.*
뜨거운 밥알과 쫄깃한 돼지고기가 입안에서 어우러지며 폭발적인 감칠맛을 선사했다. 매콤하면서도 끝맛이 깔끔한 고추장의 매운맛이 혀끝을 탁 치고 지나가자, 뒤이어 마늘과 대파의 깊은 풍미가 입안 전체를 개운하게 감싸 안았다.
"윽...!"
입안에 가득 차는 뜨끈한 온기에 엘릭은 순간 숨을 멈췄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었다. 지독하게 맵고 칼칼한 이 국물은, 차가운 황무지의 바람을 맞으며 꽁꽁 얼어붙어 있던 그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을 뜨겁게 지폈다. 온몸의 혈관이 확장되며 굳어 있던 근육들이 사르르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고향의 어머니가 끓여주던 소박한 감자 수프의 온기가 떠올랐다. 기사단이라는 명예로운 직함 뒤에 숨겨진 추악한 약탈과 아인종 학살, 제국의 일방적인 정의에 회의를 느끼며 밤마다 괴로워하던 그의 상처받은 영혼을, 이 칼칼하고 소박한 뚝배기 한 그릇이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엘릭의 눈가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는 흘러넘치려는 눈물을 억제하려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거칠게 숟가락질을 해댔다.
*탁, 탁, 탁.*
놋쇠 대접과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천막 안을 채웠다. 엘릭은 말없이 짜글이 국물을 밥에 붓고 슥슥 비벼 뚝배기 바닥까지 닥닥 긁어먹었다. 머리끝에서부터 땀방울이 맺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이 땀인지, 아니면 차마 보이지 못한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부하 기사의 물음에도 엘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붉어진 눈시울을 손등으로 거칠게 훔쳐낼 뿐이었다. 제국의 법과 정의를 수호한다는 긍지는 이미 기스바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눈앞의 이 이방인 요리사는 자신들을 체포하러 온 군인에게조차 아무런 대가 없이 이토록 따뜻하고 정직한 온기를 나누어 주는데, 자신들이 행해온 짓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깊은 무력감과 부조리가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엘릭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은 허리춤에 찬 검 자루를 쥐고 있었지만, 검을 뽑을 의지는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위를 정리하는 척하며, 품 안에서 은밀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사르릉.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엘릭의 가슴팍에 매달려 있던 은빛 펜던트 하나가 테이블 밑, 어두운 구석의 먼지 쌓인 틈새로 툭 떨어졌다. 금이 가고 낡았지만 제국 기사단의 고결한 맹세가 깃들어 있는 그림자 기사의 증표였다. 지원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지만, 모르는 척 쾌하게 그릇을 거두어 갈 뿐이었다.
엘릭은 지원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 속에 깊은 경고와 신뢰의 빛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방인."
엘릭은 짐짓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냉정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식은 잘 먹었다. 하지만 제국의 법은 엄연한 법이다."
그는 품 안에서 붉은 인장이 찍힌 가죽 영수증 경고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던졌다.
"기스바인 님께서 내일 당장 이곳 안개의 황무지 전체의 영지 통행료를 기존의 3배로 인상하라는 격문을 내리셨다. 지불하지 못할 경우, 내일 저녁을 기해 이 무허가 마차의 강제 철거를 개시할 것이다."
엘릭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그의 눈빛은 테이블 밑에 떨어진 펜던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제국 기사단의 무력 철거에 대비해 자신이 보내는 무언의 도움의 손길이자, 기스바인의 더러운 세금 폭탄에 맞서 싸우라는 보호 동맹의 신호였다.
"이 경고장을 가벼이 여기지 마라. 내일은 오늘처럼 좋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엘릭은 투구를 깊게 눌러쓰고 몸을 돌렸다.
"철수한다."
그의 명령에 부하 기사들이 아쉬운 듯 짜글이 뚝배기를 쳐다보며 서둘러 천막 밖으로 걸어 나갔다.
*철컥, 철컥.*
강철 갑옷 소리가 멀어지고 밤바람이 잦아들자, 포차 안에는 다시 고요한 온기만이 감돌았다.
멜리사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뻗어 엘릭이 남겨두고 간 금이 간 은빛 펜던트를 집어 올렸다. 그녀의 눈이 크게 동그래졌다.
"이건... 제국 그림자 기사단의 증표잖아? 단장급 기사만이 지닐 수 있는 신분증일세. 이걸 두고 가다니... 점장님, 그 냉혈한 기사가 자네에게 목숨을 빚진 셈이군."
지원은 펜던트를 건네받아 손바닥 위에서 굴려 보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속에서 엘릭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지원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쾌활하게 웃어 보였다.
"세금 삼 배라니, 기스바인이라는 영감님은 참 욕심도 많으시네요. 하지만 우리 식당 문을 닫게 두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지원의 가벼운 농담 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기스바인의 악랄한 통행료 인상 압박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내일 저녁이면 이 평화로운 포장마차를 짓밟기 위해 제국의 군화가 들이닥칠 것이다.
지원은 장부를 펼쳤다. 장부의 물류 페이지에는 멜리사와 계약한 식재료들의 수량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멜리사 씨, 내일은 대파와 마늘을 평소보다 세 배는 더 준비해야겠어요. 아주 매운맛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흥, 내 장사 밑천을 털어서라도 도와주지. 그 기스바인 녀석의 콧대를 꺾어놓을 수만 있다면 말이야."
두 사람은 포차 안의 붉은 등불 아래에서 조용히 잔을 맞부딪쳤다.
***
다음 날 저녁.
황무지의 하늘은 피처럼 붉은 노을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주황빛과 보랏빛이 뒤섞인 비장한 색감이 안개 낀 광장 위를 수채화처럼 덮어씌웠다. 하루 종일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이 흐르던 안개의 황무지 광장에, 마침내 지옥의 파열음 같은 소리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타다닥! 타다닥!*
말발굽 소리가 광장의 돌바닥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붉은 천막의 포장마차 유리창 너머로, 횃불의 붉은 불빛들이 어지럽게 일렁였다. 안개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횃불을 높이 든 기스바인의 무장 사병 오십여 명이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코를 쥔 채 마차를 노려보는 기스바인이 서 있었다.
"비천한 이방인의 쓰레기 마차를 당장 끌어내라! 세금을 내지 못하는 자는 이 영지에 발을 붙일 수 없다!"
기스바인의 날카로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장 사병들이 거대한 쇠사슬을 질질 끌며 포장마차를 향해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철커덩! 철컥!
차가운 쇠사슬이 붉은 천막 천을 사정없이 휘감으며 포차를 사방에서 동여매기 시작했다. 마차가 거칠게 흔들리고, 주방 안의 식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위기가 눈앞으로 닥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