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피와 비명으로 가득해야 할 마계 침공의 현장.

하지만 그곳에 남은 것은 오직 고요한 정적뿐입니다.

그 어떤 흔적도, 마귀들의 잔인한 포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영혼 탈취’ 스킬로 영혼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아주 맛있게 탈탈 털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시스템: 히든 퀘스트 ‘아카데미 수호전’ 클리어!]

[시스템: 난이도 최악(Hell)의 마수 침공군을 완벽하게 격퇴했습니다!]

[시스템: 전공(戰功) 및 전리품 정산을 시작합니다.]

| 분류 | 획득 항목 | 상세 효과 | | :--- | :--- | :--- | | **장비** | 마왕의 군신(軍神) 반지 | 마력 회복량 +500%, 위압 오라 개방 | | **소모품** | 마계 총대장의 정수 (SS) | 복용 시 전 능력치 +20 (영구) | | **특수** | 영혼 수확 주머니 | 영혼력 충전율 100% 돌파 | | **칭호** | 아카데미의 그림자 지배자 |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 시 위력 +30% |

아이템 창에 가득 차오른 전설 등급의 전리품들. 보고만 있어도 국밥을 세 그릇은 든든하게 말아먹은 듯한 포만감이 온몸을 채웁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업적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당신 하나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악랄한 고인물인 당신이 가장 바라던 전개입니다.

***

따스한 햇살이 강의실 유리창을 통과해 나른하게 쏟아집니다.

"이 공식은 마법 장벽을 전개할 때 유용하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교수의 강의 소리가 감미로운 자장가처럼 사방에 울려 퍼집니다. 강의실의 가장 구석자리. 칠판에 적힌 위대한 마법 공식 대신, 책상 위에 엎어진 채 쿨쿨 잠꼬대를 하는 남학생이 있습니다.

툭, 흘러내리는 침. 헝클어진 털북숭이 머리칼.

낙제생이자 아카데미 최고의 게으름뱅이로 소문난 존재. 바로 당신입니다.

"야, 저 자식 또 잔다."

"어제 밤늦게까지 야설이라도 읽은 거 아냐? 저러면서 어떻게 기어들어 왔는지 몰라."

동기들의 한심하다는 눈빛과 유쾌한 비웃음이 당신의 뒤통수에 사정없이 꽂힙니다. 하지만 당신은 눈꺼풀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 고요한 평화를 만끽합니다.

어젯밤에 마왕군 스페셜 정예병 백여 마리의 멱살을 잡고 참수 투어를 돌고 온 몸입니다. 근육통은 최고급 도핑 포션으로 지웠지만, 쏟아지는 정신적 피로까지 완벽히 지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잠결에 슬쩍 한쪽 눈을 떠 스마트폰을 확인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번쩍이고 있습니다.

[속보] 어젯밤 ‘무명의 대마법사’ 등장, 마수 침공군 요새를 흔적도 없이 분쇄!

[댓글] 와, 대체 정체가 누구냐? 아카데미 학장 비밀 경호원 아니냐?

당신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리며 소매로 침을 쓱 닦아냅니다.

‘누구긴 누구야.’

바로 네 옆자리에서 세상모르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낙제생이지.

세상이 발칵 뒤집히든 말든, 세계관 최강의 마기 위치를 독점한 고인물은 그저 이 평화로운 이중생활이 즐거울 뿐입니다. 화려한 영웅의 업적은 어둠 속에 묻어둔 채, 낮에는 꿀 같은 휴식을 취하는 일상.

아무도 모르게 세계를 구원하고, 아무도 모르게 꿀을 빠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랭커가 아카데미를 지배하고 평화를 소유하는 위대한 방식입니다.

당신은 흐뭇한 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달콤한 단잠 속으로 깊이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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