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네 이놈, 민선우! 감히 찰방의 권위를 능멸하고 가문의 사당 앞에서 혓바닥을 놀려? 내 당장 가문의 가판을 열어 네놈의 대역 무도한 죄를 묻고, 그 뼈와 살을 갈아 저잣거리에 뿌릴 것이다!"

어젯밤, 어사대의 배종 서리가 선우의 서슬 퍼런 협박에 겁을 먹고 황급히 꼬리를 내리며 물러서려 했을 때, 민세형은 광포한 짐승처럼 울부짖었었다. 서출의 목을 당장이라도 비틀어 버리겠다는 기세로 온 마당이 떠나가라 소리치던 이복형의 고함은,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도 사당 앞뜰의 차가운 흙바닥 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민씨 가문의 종장들과 방계 어른들이 가죽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선우를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한 가닥의 자비도 없었다. 마당 한가운데 깔린 멍석 위에 홀로 선 선우는 오직 바람에 흔들리는 사당의 향나무 냄새만을 들이마시며 턱을 굳게 다물었다.

"서출 선우는 들으라."

상석에 앉은 종장 노인이 마른기침을 뱉어내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너는 종문의 보물인 청동 향로를 훔쳐 사사로이 처분하려 하였고, 어사대의 기밀문서를 탈취하여 조정의 권위를 능멸하였다. 게다가 어젯밤에는 가문의 적장자이신 세형 공에게 불경한 언사를 서슴지 않았으니, 이는 삼강오륜을 저버린 대역죄다. 이에 종문은 가택 대판을 통해 네놈을 족보에서 파내고, 법에 따라 장살하여 가문의 명예를 보존하고자 한다. 스스로 변명할 말이 있는가?"

단상 가장 높은 곳에 앉은 안주인 노씨는 단 한 마디도 거들지 않았다. 그저 화려한 자수 도포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채, 쥐새끼의 시체를 보듯 선우를 무심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녀의 품 안에는 이미 위조된 '묘청과의 내통 서신'이 숨겨져 있었다. 선우가 입을 열어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순간, 저 서신이 마당으로 던져질 터였다. 서경의 반역도당과 내통했다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고려의 그 어떤 법률도 서출의 목숨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선우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노씨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의 오른쪽 눈동자가 기이한 열감을 토해내며 욱신거렸다.

[사물서사 영안(史物書史 靈眼) 조회 가동] - 대상: 안주인 노씨의 소맷자락 속에 숨겨진 서찰 - 기밀 텍스트: "서출 민선우가 서경(평양)의 묘청 세력과 내통하여 개경의 황실을 전복하려 했다는 위조된 서신. 본 서신에는 예부의 위조 낙인이 찍혀 있으며, 가판 즉시 이를 증거로 제시하여 현장에서 장살(杖殺) 명분을 확보하려 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록이었다. 저들은 덫을 놓은 것이 아니라, 아예 낭떠러지를 파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선우는 슬며시 실소를 흘렸다.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는 그의 얼굴을 보며 민세형이 가증스럽다는 듯 손가락질을 해댔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 미쳤구나! 종장 어른, 저 미련한 서출 놈이 가문의 법도를 비웃고 있사옵니다. 당장 곤장을 쳐서 죄를 자백받으소서!"

"세형 형님."

선우의 목소리는 너무나 잔잔하여 오히려 사당 앞뜰의 소음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그는 품 안에서 붉은 비단으로 감싸인 두툼한 두루마리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도둑질이라 하셨습니까? 아니면 어사대의 권위를 능멸했다 하셨습니까?"

"저놈이 끝까지 시치미를 떼는구나! 네놈이 들고 있는 그것은 또 무엇이냐?"

민세형이 소리를 질렀으나, 선우는 그를 완전히 무시한 채 단상 위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서출 특유의 굴종이나 망설임이 전혀 없었다. 오직 행정의 칼날을 쥔 관료의 단호함만이 서려 있었다.

"이것은 가문의 사당 뒤편, 안주인께서 거처하시는 내당의 비밀 궤짝에서 나온 상속 문서들과 어사대의 공문서들입니다."

선우가 두루마리를 펼치자, 구경하던 방계 친족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것이 어쨌단 말이냐! 가문의 재산을 정리한 문서일 뿐이거늘!"

민세형이 비웃었으나, 단상 위의 종장들과 특히 안주인 노씨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해갔다. 선우의 손에 들린 문서의 가장자리에는 붉은색 낙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고려율 제구십팔조, 공음전과 음서의 상속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가문의 상속 문서는 반드시 형부와 어사대의 정식 압관(押官)을 거쳐 조정에 보고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한 문서는 모두 사사로운 사문서 위조로 취급되어, 가산 몰수와 유배형에 처해지지요."

선우가 서찰 한 장을 높이 치켜들었다.

"여기 찍힌 압관인을 보십시오. 어사대의 공식 인장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인장이 찍힌 날짜는 3년 전 중추절입니다. 당시 어사대에서 이 문서를 결재한 장령은 다름 아닌 '소정(蘇靖)' 대인입니다."

사당 한구석, 가문의 가택 대판을 참관하며 선우의 사법 처리를 묵인하려 앉아 있던 중년의 사내가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어사대 장령 소정이었다. 그는 민씨 가문의 뒷배이자, 안주인 노씨와 혼인 동맹으로 얽힌 핵심 인물이었다.

"네, 네놈이 감히 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느냐! 그것이 어쨌단 말이냐!"

소정이 고함을 질렀으나, 그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선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소정을 쏘아보았다. 그의 뇌리 속에서 영안이 제시한 정보들이 정교한 격자무늬처럼 맞물려 들어갔다.

[사물서사 영안(史物書史 靈眼) 추가 정보 회수] - 어사대 장령 소정의 가문 혼인 뇌물 고리: 3년 전 중추절, 민씨 가문의 공음전 50결을 소정의 처남 명의로 불법 이전하는 대가로, 소정은 민씨 가문의 음서 비리를 묵인하고 위조된 상속 문서에 어사대 압관인을 도용하여 날인함. 이는 고려율 '사승(師承) 간 사사로운 증여 금지법' 및 '어사대 관인 무단 도용죄'에 해당하여 발각 시 참형에 처해질 수 있음.

"소정 대인, 이 상속 문서가 통과된 날, 대인의 처남이신 김씨 가문으로 개경 동쪽의 전답 오십 결이 무상으로 증여된 기록이 여기 있습니다. 당시 민씨 가문의 가주께서 대인의 가문과 사승(師承)의 관계를 맺으며 '감사의 표식'으로 보낸 서찰도 함께 말입니다."

선우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마당을 울렸다.

"사승 간의 사사로운 재물 거래를 금하는 고려율과, 어사대 관인을 도용하여 가문의 사문서를 공문서로 위조한 행위. 이 두 가지가 조정에 상소로 올라간다면, 과연 어사대 대간들이 이를 묵과하겠습니까? 아니면 대인의 목이 먼저 날아가겠습니까?"

"이, 이…!"

소정은 숨을 들이켜며 비틀거렸다. 선우가 내밀고 있는 서류들은 단순한 협박용 쪼가리가 아니었다. 거래의 날짜, 토지의 필지 번호, 그리고 어사대 압관인의 미세한 균열 자국까지 완벽하게 일치하는 명백한 탄핵 증거였다. 이것이 판부사나 어사대부의 손에 들어가는 날에는 가문 전체가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터였다.

사당의 어두운 그늘 아래,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민수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경이로움과 두려움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그저 가문에서 멸시받던 서출 오라비가 아니었다. 가문을 지탱하던 거대한 어사대의 카르텔이 오라비의 입에서 나오는 율법의 자구 몇 개에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수연은 자신이 그동안 가문의 뒤안길에서 모아왔던 가십과 비밀들이, 선우의 손안에서는 어떻게 무서운 무기로 탈바꿈하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이 사람이다.'

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가문에서 소모품으로 버려져 이름 없는 안방의 귀신이 되느니, 저 냉혹하고 철저한 오라비의 그림자가 되어 그가 설계하는 세상의 판도에 동참하리라. 여관(女官)이 되어 조정을 뒤흔드는 권력을 쥐겠다는 그녀의 오랜 야망이, 선우의 등 뒤에서 비로소 구체적인 형태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니! 저 미친놈의 헛소리를 듣지 마십시오! 당장 저놈의 입을 찢어버려야 합니다!"

민세형은 판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날뛰었다. 그는 품을 뒤적여 선우를 쳐 죽일 명분이 될 위조 서신을 꺼내려 했다.

"닥치지 못할까!"

벼락같은 고함이 사당 마당을 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선우가 아니었다.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던 어사대 장령 소정이었다. 소정은 핏발 선 눈으로 민세형을 노려보며 단상 아래로 뛰어 내려왔다.

"장, 장령 대인? 어찌 저 서출 놈의 협박에…"

"이 무지하고 어리석은 놈이 감히 누구를 속이려 드느냐!"

소정은 단숨에 민세형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의 손끝이 공포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선우의 손에 든 저 문서들이 조정에 상소되는 순간, 자신은 물론 가문 전체가 역모에 준하는 죄로 다스려질 것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민씨 가문의 꼬리를 잘라내야 했다. 아니, 이 모든 비리를 민세형 개인의 일탈로 몰고 가야만 자신이 살 수 있었다.

"너희 민씨 가문이 사사로이 어사대의 관인을 위조하고, 그것도 모자라 무고한 자를 대역죄로 몰아 죽이려 하였구나!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네놈이 품고 있는 그 서찰, 당장 내놓아라!"

소정은 민세형의 품으로 손을 찔러 넣어 위조된 묘청의 서신을 강제로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서신에 찍힌 예부의 인장을 확인하자마자, 그것을 사정없이 짓밟으며 소리쳤다.

"예부의 인장마저 위조된 가짜로다! 민세형, 네놈이 감히 국법을 능멸하고 사사로이 위조 서신을 만들어 종친을 살해하려 하였으니, 이는 명백한 도공(徒刑, 유배형)에 처할 중죄다! 여봐라, 어사대 배종들은 당장 이 자를 포박하라!"

"장령 대인! 이 무슨 짓이옵니까! 어찌 저 서출의 농간에 놀아나 저를 결박하려 하십니까! 어머니! 어머니, 살려주십시오!"

민세형은 사방으로 침을 튀기며 발악했으나, 소정의 서슬 퍼런 서리들이 그를 흙바닥에 무참히 짓눌렀다.

마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가문의 수장들과 종장들은 어사대 장령이 도리어 가문의 적장자를 결박하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넋을 잃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안주인 노씨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의 화려한 자수 도포가 힘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았다. 선우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고, 그 안에는 승리의 기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철저히 계산된 행정적 승리만이 그 자리에 고요히 고여 있을 뿐이었다.

노씨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는 선우가 쥐고 있는 저 문서들을 묻어야만 했다. 적장자인 세형을 희생시키더라도 가문의 멸문은 막아야 했다.

"…그만두어라."

노씨의 떨리는 목소리가 마당에 가라앉았다.

"선우야.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선우는 품에서 또 다른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이미 그가 전날 밤 완벽하게 작성해 둔 '가산 분할 및 신분 독립 청원서'였다.

"가문에서 저를 도둑으로 몰았으니, 더는 이 가문의 성을 쓰고 살 이유가 없습니다. 고려율 구례에 따라, 서출이라 할지라도 가문의 비리를 고변하여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을 시에는 독립된 가호(家戶)를 개설하고 가산의 삼분의 일을 분할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 가산 분할 증서에 서명하십시오."

노씨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붓을 들었다. 그녀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가문의 전답과 재산 중 삼분의 일이 서출의 손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으나, 거부할 명분도, 힘도 없었다.

붓끝이 종이 위에 닿고, 이윽고 노씨의 붉은 인장이 찍혔다.

선우는 완성된 문서를 들어 올렸다. 가문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자적인 이권과 재산을 쥔 자유인이 되는 첫 단계가 완성된 것이다.

"이것으로 가문과의 인연은 끝입니다."

선우가 차갑게 선언하며 문서를 품에 넣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끈거리는 열감이 오른쪽 눈에서부터 시작되어 그의 온몸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크윽…!'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식도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에 선우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허파가 쪼그라들고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멀리서 수연의 비명이 들려왔으나, 그의 귀에는 그 소리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하게 웅웅거릴 뿐이었다.

눈앞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며 온 세상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이것이… 역풍(歷史回歸)인가.'

역사의 궤적을 비틀어, 원래 소멸했어야 할 서출 민선우가 가문의 대판에서 승리하고 독립을 쟁취한 대가. 세계의 인과율이 그의 육체를 향해 무서운 복수극을 시작한 것이다.

욱, 하며 목구멍을 타고 뜨거운 액체가 역류했다.

선우는 입을 틀어막았으나, 손가락 틈새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바닥에 조각조각 떨어지는 핏방울들은 검다 못해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시각과 청각이 급격히 멀어져 가며, 그의 몸이 차가운 흙바닥을 향해 쓰러졌다. 가산 분할 증서를 쥔 그의 손끝이 경련했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북방의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불길한 환영이 그의 눈동자에 스치듯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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