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주상 전하께서…… 독약에……!"

전령의 목을 찢는 듯한 비명이 서경벌의 차가운 밤공기를 갈랐다.

선우의 눈앞이 순간 붉은 한 길로 물들었다. 안구 가장자리에서부터 차오른 뜨거운 열기가 망막을 태울 듯이 번져 나갔다. 사물서사 영안(史物書史 靈眼)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폭주하듯 가동되고 있었다.

[비상 경고: 역사 개변의 여파로 개경 황궁 내 잔존한 대위국 세작들의 행동이 12일 앞당겨짐.] [현재 인종의 독살 시도 진행률 72%.] [역풍(歷史回歸) 발동: 황제가 시해될 경우, 고려 조정은 즉시 붕괴하며 북방 여진 세력의 대대적인 남하 시기가 5년 앞당겨짐. 이에 따른 나비효과로 몽골의 발흥 역시 가속화됨.]

"끄윽……!"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비린 혈향이 치밀어 올랐다. 선우는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으나, 손가락 틈새로 검붉은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귀가 먹먹해지며 주변의 말 울음소리와 군사들의 웅성거림이 점차 아득한 수중의 소리처럼 멀어졌다.

역사의 흐름을 억지로 비튼 대가. 육신을 갉아먹는 역풍의 고통이 전신을 난도질했다. 하지만 선우는 흐려지는 시야를 억지로 부여잡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여기서 인종이 죽는다면, 그가 구축해 온 모든 행정적 개혁과 화포 군대는 외세의 말발굽 아래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선우 어른! 정신 차리십시오!"

한길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선우는 한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차가운 음성으로 명령을 내렸다.

"한길."

"예, 예! 말씀하십시오!"

"너는 화포 부대를 이끌고 서경 성문 앞을 철저히 봉쇄해라. 단 한 놈의 반군도 성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묶어 두는 거다. 만약 포위를 푸는 자가 있다면, 군율에 의거해 즉시 참하겠다."

"하지만 개경의 전하께서는 어찌하시려고……!"

"내가 간다."

선우는 소맷자락으로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품 안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어사대 인장을 꺼내 들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군기감의 최정예 기병 오백을 차출한다. 지금 즉시 개경으로 직진한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니었다. 법과 명분, 그리고 궁중에 심어 둔 가장 은밀한 덫을 가동할 시간이었다.

***

그 시각, 개경의 대궐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황제 인종이 머무는 강안전(康安殿)의 문턱 앞에는 무거운 탕약 사발의 냄새와 피비린내가 뒤섞여 풍겼다.

"어의, 주상 전하의 기색이 어째서 이리 급변하시는가?"

동궁삼사(東宮三師)의 어른이자 친서경파의 거두인 좌사간이 수염을 파르르 떨며 다그쳤다. 침상에 누운 인종은 안색이 흙빛으로 변한 채 가쁜 호흡만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이미 검푸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전하의 고질적인 한열(寒熱)이 도진 탓이옵니다. 신이 올린 탕약은 기혈을 보하는 약재들로만 구성되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차도가 있을 것이옵니다."

어의 조윤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강안전의 무거운 목조 문이 거칠게 열렸다. 은색 여관(女官) 의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인이 상궁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어전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왔다. 민수연이었다.

"어의의 군신(君臣) 관계는 이미 끊어진 지 오래이거늘, 누굴 속이려 하십니까."

수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무슨 무례냐!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여관 따위가 소란을 피우는가! 당장 저년을 끌어내라!"

좌사간이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으나, 수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매 안에서 붉은 비단으로 묶인 두꺼운 장부 한 권을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장부가 펼쳐지며 수십 명의 상궁과 내관들의 이름, 그리고 그 옆에 적힌 막대한 액수의 전(錢)과 은(銀)의 내역이 드러났다.

"이것은 개경 내의 흥국사와 사찰 세력들이 궁중의 상궁들에게 상납한 뇌물 장부입니다. 그리고 그 돈의 종착지는 바로 어의 조윤, 당신의 사가였지."

수연의 날카로운 손가락이 어의를 가리켰다.

"묘청의 서경 역당들이 사찰의 지하 비밀 금고를 통해 개경으로 흘려보낸 자금이다. 어제 전하께 올린 탕약의 찌꺼기에서 비소(砒素)의 독성이 검출되었다. 조윤, 네놈이 바로 서경의 세작들과 내외통하여 전하를 독살하려 한 역적이다!"

"이, 이 무슨 망발을……! 증거도 없이 감히 나를 모함하는구나!"

조윤이 펄쩍 뛰며 소리쳤으나, 격분한 수연의 뒤편으로 어전의 문이 완전히 박살 나며 부서져 내렸다.

쾅!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강안전 내부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선두에는 차가운 철갑을 두르고 가슴에 어사대의 붉은 압관인을 새긴 사내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서, 민선우가 가죽 장화를 디디며 걸어 들어왔다.

"증거를 원하는가?"

선우의 목소리가 어전의 대들보를 흔들었다. 그의 손에는 이미 피로 물든 서신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어사대 장령의 권한으로 명한다. 조윤을 즉시 포박해라."

"민선우! 네가 서경벌에 있어야 할 놈이 어찌하여 이 신성한 어전에 군사를 몰고 와 난동을 부리는 것이냐! 이것은 명백한 대역죄다!"

좌사간을 비롯한 친서경파 대신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가로막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병들과 궁궐 수비대를 믿고 기세를 올리려 했다.

선우는 그들을 비웃듯 품 안에서 누런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어 올렸다.

"대역죄라 하였는가? 진정 대역죄를 지은 자들이 누구인지 이 자리에서 가려보자."

선우의 영안이 조정을 채우고 있는 역당들의 머리 위를 훑었다. 그들의 이름 뒤로 더러운 이권의 사슬들이 붉은 실체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복선 회수 1: 민씨 가문 상속 문서와 어사대 압관인의 불법 사승(師承) 카르텔] 선우는 가문 내에서 압수했던 상속 문서를 대신들의 면전에 내던졌다.

"좌사간 송영, 그리고 형부시랑 김의. 너희들은 민씨 가문의 전 가주와 결탁하여 어사대의 공식 압관인을 위조하고, 공음전과 가문의 상속 재산을 불법으로 탈취하여 서경의 군자금으로 송금했다. 어사대 내부의 사승 카르텔을 이용해 법망을 피해 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대신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들이 수십 년간 묶어왔던 혈연과 사승의 비밀 동맹이, 선우의 영안 앞에서는 아무런 방어벽도 되지 못했다.

"그, 그것은 단순한 가문 내부의 거래일 뿐이다! 국가의 대사와는 무관하다!"

"무관하다라."

선우는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럼 이것은 어떠한가?"

[복선 회수 2: 사찰 화장터 초석 퇴적 농축 수집법의 법적 소유권 제한 규정 및 자금 횡령] "너희들은 개경과 서경의 사찰들이 화장터와 가축 분뇨를 통해 불법적으로 초석(질산칼륨)을 채굴하고 있던 것을 묵인해 주는 대가로, 사리탑 무단 중수 비용이라는 명목 하에 수만 관의 은을 상납받았다. 고려 율법 제32조, '국유지 외의 사찰 영지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광물과 초석의 소유권은 조정의 군기감에 영구 귀속된다'는 규정을 교묘히 왜곡하여 사찰의 소유로 인정해 준 자들이 바로 너희들이다!"

선우가 제시한 정밀한 행정 문서와 율법 조항들 앞에서는 그 어떤 유학적 명분론도 힘을 쓰지 못했다. 법리의 완벽한 맹점을 찌르는 칼날에 대신들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이 모든 비리의 종착점은 단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

선우가 마침내 인종의 침상 앞으로 걸어가, 기절 직전인 황제의 품에서 나온 비단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서경파의 거두 정지상에게 보낸 인종의 비밀 밀지였다.

[복선 회수 3: 인종이 정지상에게 내린 밀지의 허위 조항 폭로] "여기에 적힌 주상 전하의 수결과 도장은 진짜다. 하지만 너희 서경파는 전하께서 '서경 천도와 연호 사용을 윤허하셨다'고 대내외에 선포하며 군사를 일으켰지. 하지만 영안으로 판독한 이 밀지의 실제 내용은 전혀 다르다."

선우가 밀지를 펴 보이며 그 위에 적힌 기밀 텍스트를 소리 높여 읽었다.

"'단, 개경 문벌의 반발을 무마할 명분을 서경 파벌이 제시할 것을 조건으로 함.' 주상 전하께서는 서경 천도를 조건부로 승인하셨을 뿐이다! 너희들은 전하의 조항을 고의로 은폐하고, 전하께서 무조건적인 천도와 사대 폐지를 명령하신 것처럼 조서를 위조하여 백성을 선동하고 대위국을 참칭했다!"

"앗……!"

좌사간 송영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들이 쥐고 있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황제를 압박할 명분이었던 밀지가 도리어 자신들의 목을 베는 날카로운 단두대로 변해버린 순간이었다.

"황제를 독살하려 한 대역죄인들이다. 어사대 사병들은 들어라."

선우의 음성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 자리에서 서경 역당들과 내외통한 가담자 전원을 체포하여 지하 감옥에 수감하라. 저항하는 자는 즉시 참형에 처한다."

"사, 살려주십시오! 장령 어른! 저희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어의 조윤이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울부짖었다. 방금 전까지 황실의 권위를 등에 업고 기고만장하던 대신들이, 선우가 내민 법리와 명분의 그물망에 걸려 비명을 지르며 포박당했다. 어사대 사병들이 그들의 관대를 벗기고 칼자루를 목에 겨누자, 어전은 순식간에 역당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졌다.

선우는 수연에게 눈짓을 보냈다. 수연은 대기하고 있던 진짜 어의들을 불러들여 인종의 입에 해독제를 흘려 넣기 시작했다.

"전하, 눈을 뜨십시오. 개경의 역당들은 모두 소탕되었습니다."

선우가 인종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인종은 가늘게 눈을 뜨며 선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피 묻은 검을 쥔 서자 민선우에 대한 깊은 공포와, 동시에 자신을 구원해 준 자에 대한 맹목적인 의존성이 교차하고 있었다.

황실의 음모는 완벽하게 제압되었다. 왕권을 강화하려던 나약한 군주는 이제 민선우라는 거대한 권력의 부속품으로 전락했음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

그날 밤, 개경을 장악하여 황실의 안전을 확보한 선우는 한 시도 지체하지 않고 다시 서경의 본진으로 회군했다. 말의 발굽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달린 끝에, 그는 마침내 대포들이 배치된 서경 성문 앞 군영으로 복귀했다.

"선우 어른! 무사하셨군요!"

한길이 달려와 그를 맞이했다. 선우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고, 가끔씩 터져 나오는 기침에는 핏방울이 섞여 있었으나 그의 눈빛만큼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서경의 동태는 어떠한가?"

"이상하리만큼 조용합니다.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화포를 쏘아 성벽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선우는 서경성의 거대한 장벽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에 잠긴 성벽 위는 고요했다. 하지만 그것은 폭풍 전야의 불길한 침묵이었다.

그 순간, 성벽의 가장 높은 누각 위로 홑옷을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묘청이었다. 그의 머리칼은 바람에 미친 듯이 날리고 있었고, 눈동자는 광신적인 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고려의 어리석은 백성들아! 그리고 개경의 개가 된 군사들아!"

묘청의 목소리가 내공을 실어 서경벌 전체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늘의 뜻은 거스를 수 없다! 대위국의 천명은 이미 정해졌느니라!"

그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자, 성벽을 따라 배치되어 있던 수천 개의 횃불이 일제히 점화되었다. 그런데 그 불꽃의 빛깔이 기괴했다. 일반적인 붉은 불꽃이 아니었다. 푸르스름하면서도 차가운 백색의 불길들이 성벽 전체를 뒤덮으며 밤하늘을 기괴하게 물들였다.

백린(白燐)의 불꽃이었다.

"보아라! 금나라의 대제국이 우리 대위국의 대업을 지지하여, 십만 구원병을 파견하였다! 그들의 선봉대가 이미 압록강을 건너 이 서경을 향해 진격하고 있도다!"

묘청의 광기 어린 선서와 함께, 백색 불꽃들이 성벽 아래로 떨어지며 지독한 연기와 함께 타오르기 시작했다.

선우의 눈앞에 다시 한번 붉은 영안의 경고창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심각한 역사 왜곡 감지: 개경 정변의 조기 진압으로 인한 나비효과 발동.] [금나라 황제 완안오걸수(完顏吳乞買)의 고려 전면 침공 결정. 금나라 대군 8만이 국경을 돌파함.] [예상 도착 시간: 48시간 이내.]

선우의 심장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등 뒤의 황궁을 구한 대가로, 전방에 더 거대하고 참혹한 파멸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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