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고려의 어리석은 백성들아! 그리고 개경의 개가 된 군사들아!"

서경 성벽의 가장 높은 장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청의 음성은 성벽 아래 벌판을 가득 메운 진압군의 고막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의 홑옷 자락이 야풍에 펄럭일 때마다, 성벽을 따라 배치된 수천 개의 횃불이 일제히 푸르스름한 백색의 불길을 뿜어냈다. 지독한 인(燐)의 탄내가 바람을 타고 군영까지 밀려왔다.

선우는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피를 삼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비릿한 쇠 맛이 뇌수를 자극했다. 역사를 바꾼 대가로 가해지는 '역풍(歷史回歸)'의 형벌은 그의 폐부를 난도질하고 있었으나, 두 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심각한 역사 왜곡 감지: 개경 정변의 조기 진압으로 인한 나비효과 발동.] [금나라 황제 완안오걸수(完顏吳乞買)의 고려 전면 침공 결정. 금나라 대군 8만이 국경을 돌파함.] [예상 도착 시간: 48시간 이내.]

망막을 찢고 들어오는 붉은 경고창의 텍스트가 선우의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금나라의 8만 철기군이 압록강을 건너 이리로 오고 있다. 묘청이 외치는 '구원병'은 단순한 허풍이 아니었다. 역사의 톱니바퀴가 그의 손끝에서 어긋나며 초래된 잔인한 현실이었다.

"선우 어른, 저 불빛은 도대체……."

옆에 선 한길이 마른침을 삼키며 서경성의 백색 불꽃을 응시했다. 거친 손으로 괴철을 두드리던 야철장의 우두머리조차, 밤하늘을 기괴하게 물들인 백색 광명 앞에서는 본능적인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반적인 장작이나 기름으로는 결코 낼 수 없는, 저승의 귀화(鬼火) 같은 빛깔이었다.

선우는 손가락을 뻗어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의 눈가에 핏줄이 돋아나며, 사물서사 영안(史物書史 靈眼)의 붉은 안광이 서경 성벽 위 묘청의 발밑을 정밀하게 투시하기 시작했다.

[사물서사 영안 작동: 묘청의 '여래현성단(如來現聖壇)'] - 제작자: 서경 흥국사 승장(僧匠) 혜소 및 서경 도령(都領) 조광의 연합 - 구성 물질: 뼈가루(인) 20근, 구운 조개껍데기 분말 15근, 유황 7근, 은가루 및 활석 가루 - 작동 원리: 성벽 뒤편에 숨겨진 여덟 개의 대형 은판(銀板) 반사경을 통해 횃불의 빛을 한곳으로 모으고, 풀무를 이용해 미세하게 빻은 은가루와 광석 인화 물질을 대기 중에 살포하여 빛의 굴절을 유도함. 이를 통해 백성들에게 여래의 광배(光背)가 강림한 듯한 착시를 일으킴.

"여래의 강림이라."

선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묘청이 백성들을 선동하기 위해 준비한 천명(天命)의 실체는 결국 정교하게 기획된 광학 사기극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사기극의 가장 깊은 곳에는, 그가 개경에서부터 추적해 온 거대한 음모의 파편이 박혀 있었다.

선우는 가사 상태에 빠진 듯한 차가운 음성으로 곁의 한길을 불렀다.

"한길."

"예, 어른."

"저들이 뿜어내는 가짜 광명의 본질은 뼈를 태워 얻은 황화 인과 유황의 연소다. 은판으로 빛을 굴절시키고 활석 가루로 연기를 고정해 여래의 형상을 꾸며내고 있어. 저 조잡한 연극이 완성되는 순간, 성 안의 십만 민초들은 정말로 하늘이 저들을 돕는다 믿고 결사전으로 나올 것이다."

한길이 넓은 이마를 찌푸리며 성벽 위의 불길을 뜯어보았다. 그의 눈빛에 장인 특유의 집요함이 깃들었다.

"뼈 가루와 은판이라니, 중놈들이 머리를 굴렸군요. 바람의 방향과 습도를 맞추느라 애를 먹었을 겁니다. 저 연소 반응은 습도가 높거나 특정 산성 물질이 닿으면 순식간에 불꽃의 색이 변하고 그 강도가 죽어버립니다. 백색 광명이 아니라 시커먼 연기 구덩이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방법이 있나?"

"있습니다. 지난번 군기감에서 주조하다 남은 황화 철 가루와 석회, 그리고 구리 가루를 배합한 특수 투하 탄환을 포에 실어 장대의 제단에 직격시키면 됩니다. 질산칼륨의 농도가 높은 초석 가루를 겉에 입혀 폭발력을 더하면, 저들이 살포한 은가루와 인이 반응하기도 전에 산소를 전부 빨아들이며 시커먼 흑연과 악취만 남기고 터질 겁니다."

한길의 설명은 정량적이었고 막힘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어른, 그런 특수 탄환을 만들기 위한 고순도의 초석은 개경의 군기감 창고에도 재고가 부족합니다. 사찰의 화장터에서 흙을 긁어모아 정제하는 법은 아직……."

"그 걱정은 접어두어라."

선우가 소맷자락에서 누렇게 바랜 문서 한 장을 꺼내어 한길의 눈앞에 던졌다. 사찰 화장터의 초석 농축 독점권에 관한 법적 소유권 규정이 적힌 문서였다.

"이것은…… 개경 흥국사와 서경 파벌이 장악하고 있던 화장터 초석 퇴적 농축 수집법의 소유권 문서가 아닙니까? 법적으로 사찰의 소유라 손을 대지 못한다고 하셨던……."

"과거의 법이 그러했다면, 지금은 아니다."

선우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내가 개경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형부의 '무주지 몰수 및 군수 특별 징발령'을 발동했다. 불교계와 결탁하여 이 문서를 소유하고 있던 개경 문벌들의 사리탑 무단 중수 비리와 횡령죄를 낱낱이 밝혀내어 가문을 적몰(籍沒)했지. 이제 이 고려 땅의 모든 사찰 화장터와 그곳에서 산출되는 초석의 독점권은 법적으로 우리 군기감과 진압군의 소유다. 개경에서 가져온 정제 초석 백 근이 이미 군수 마차에 실려 있다."

한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법률의 맹점을 파고들어 불교계의 기득권을 통째로 강탈하고, 그것을 군수 자원으로 즉각 전환해 낸 선우의 행정력에 장인은 전율을 느꼈다.

"즉시 주조를 시작하겠습니다. 가마의 온도를 철이 녹기 직전까지 올리고, 석회와 황화 철의 배합을 일대 삼으로 맞추어 탄환을 깎겠습니다. 한 시진이면 충분합니다."

한길이 군영의 야철장들을 향해 달려가자, 밤공기를 깨뜨리는 망치 소리와 달궈진 쇠붙이의 비명이 고요한 서경벌에 울려 퍼졌다.

***

동이 터 오기 직전, 서경 성벽 아래에는 묘청의 '여래 강림'을 목격하기 위해 도성 내의 민초들과 하급 병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성벽 위에서 묘청은 참칭한 연호인 '천개(天開)'를 외치며 백성들의 신앙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보아라! 하늘이 개경의 역적들을 징벌하시기 위해 이 땅에 여래의 도성을 세우셨다! 주상전하께서도 서경의 천명이 진짜임을 인정하시고 내게 친히 밀지를 내리셨거늘, 어찌 너희가 의심하느냐!"

묘청이 품에서 황금 비단으로 감싼 밀지 한 통을 꺼내어 높이 치켜들었다. 성벽 아래의 백성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통곡했다. 임금의 밀지가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반역 행위는 구국의 성전(聖戰)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진압군의 선두에서 말 한 필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안장에 올라탄 선우의 손에는 한 장의 거대한 벽보가 들려 있었다. 그의 뒤편으로 어사대의 깃발을 든 기수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서경의 군민들은 지각을 열고 내 말을 똑똑히 들어라!"

선우의 음성은 맑고 차가웠으며, 전장에 퍼진 어떤 무인의 사자후보다도 기괴할 정도로 명징하게 귀에 꽂혔다.

"너희가 우러러보는 저 묘청이라는 자가 들고 있는 밀지의 실체를 밝히겠다."

선우가 벽보를 펼쳐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선전물이 아니었다. 개경 어사대의 공식 압관인(押官印)이 선명하게 찍힌 조정의 공식 격문이었다.

"이것은 임금께서 정지상에게 내리셨던 밀지의 원문 사본이다. 영안으로 밝혀낸 밀지의 진실을 내 친히 읊어주지."

선우가 벽보를 가리키며 율법을 낭독하듯 읊조렸다.

"‘서경 천도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고 도성 내의 치안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독자적인 연호 사용은 불가하며 만약 이를 사칭할 시 전하의 모든 윤음은 무효로 돌아간다.’ 저 밀지의 뒷부분에는 이 조항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었다. 묘청, 네놈은 임금의 도장이 찍힌 앞부분만을 남겨두고 뒷장의 단서 조항을 찢어버려 백성들을 기만했다. 이는 고려 율법 제삼십이조, '어새 및 조서 위조 참칭죄'에 해당하여 삼족을 멸하는 대역죄다!"

성벽 위 조광과 하급 관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저, 저 자가 어찌 밀지의 숨겨진 조항을 알고 있는가?"

"거짓말이다! 어사대의 공식 인장이 찍힌 격문이라니, 개경의 역당들이 문서를 위조한 것이다!"

묘청이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선우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소매에서 또 다른 묵직한 문서를 꺼내 들었다.

"위조라 하였느냐? 이 어사대 격문에 찍힌 압관인의 형상을 보아라. 이 인장에는 민씨 가문의 상속 문서에 새겨져 있던, 어사대 장령 소정과 개경 문벌 간의 불법 사승(師承) 카르텔의 독특한 각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개경의 어사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법리적 정통성을 확보했기에 이 격문을 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너희가 믿는 저 밀지야말로 옥새를 도용한 가짜다!"

*복선 1의 회수*였다. 1화에서 영안으로 포착했던 민씨 가문의 상속 문서 속 어사대 압관인의 미세한 흠집과 불법 사승 동맹의 고리. 선우는 그 약점을 쥐고 어사대 장령 소정을 사냥개로 부렸으며, 마침내 개경을 장악한 후 어사대의 모든 법적 권한과 공식 인장을 완전히 수중에 넣었던 것이다.

조정의 공식 사법 기관이 발행한 격문과 치밀한 법리적 고발 앞에서, 성 안의 유생들과 하급 관리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밀지가…… 위조된 것이라고?"

"임금께서 우리를 역적으로 규정하셨단 말인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서경군의 대열이 요동쳤다.

***

"닥쳐라! 사특한 개경의 서출 놈이 감히 하늘의 뜻을 가리려 하는가!"

묘청의 눈이 핏빛으로 충혈되었다. 그는 성벽 위의 제단으로 달려가 지팡이를 높이 쳐들었다.

"여래께서 강림하시어 이 땅의 역적들을 쓸어버리실 것이다! 보아라! 천개의 빛이 대위국을 구원하리라!"

묘청의 신호에 따라 승려들이 일제히 풀무를 밟았다. 은판 반사경들이 회전하며 아침 햇살을 굴절시켰고, 성벽 위로 백색의 인화 물질이 뿌려지며 푸른 섬광이 일어났다. 하늘에 거대한 부처의 형상이 나타나는 듯한 기괴한 광경에, 백성들이 다시 한번 동요하며 무릎을 꿇으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선우가 차갑고 건조하게 손을 내렸다.

"발포하라."

콰아아앙!

진압군의 군영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세 문의 토법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한길이 밤새 주조한 특수 황화 인 탄환이 포구를 떠나 호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탄환은 정확하게 성벽 위, 묘청이 서 있는 '여래현성단'의 정중앙을 직격했다.

퍼어어어엉!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일어난 것은 여래의 광명이 아니었다.

탄환 내부의 황화 철과 고순도 석회가 묘청의 백린 가루와 반응하자마자, 대기 중의 산소를 격렬하게 빨아들이며 시커먼 흑연의 폭풍을 일으켰다. 이어서 일어난 화학적 연소는 묘청이 준비한 쌀겨 밀가루와 유황을 한데 뭉쳐 추잡한 악취를 풍기는 불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쿨럭! 컥! 이, 이게 무슨……!"

독한 유황 가스와 탄내에 질식한 묘청이 피를 토하며 제단 바닥을 뒹굴었다.

그들이 여래의 형상이라고 믿었던 거대한 천막과 마네킹이 불타오르며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짚과 가죽, 그리고 썩은 동물의 뼈로 조잡하게 기워 만든 가짜 부처의 형상이 불타는 쓰레기가 되어 흙먼지 속에 처박혔다.

"보아라."

선우의 목소리가 서경성 전체에 차갑게 내리앉았다.

"저것이 너희가 목숨을 바쳐 따르던 천명의 실체다. 화장터에서 훔쳐낸 백성들의 뼈가루와 유황으로 눈을 속이고, 임금의 밀지를 찢어 발겨 반역을 선동한 사기꾼의 말로다."

침묵이 서경성을 지배했다.

자신들이 신성한 성전에 참여하고 있다고 믿었던 서경의 민초들과 군사들은 눈앞에 떨어진 불타는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여래의 광명은 없었다. 오직 악취를 풍기는 썩은 뼈의 탄내와 기만당했다는 참혹한 현실만이 가득했다.

"속았다……."

어느 노병의 창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쇠붙이 소리를 냈다.

"우리가 속았어! 국사라는 자가 우리를 지옥으로 밀어 넣었구나!"

순식간에 성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분노한 민초들과 하급 병사들이 성문을 열기 위해 묘청의 친위대를 향해 칼을 뽑아 들었다. 성문을 열어 항복하려는 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자들 간의 처절한 내분이 성벽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우지끈!

성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리는 기정사실인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 성벽의 가장 깊은 전각의 문이 열리며 거대한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륵, 드르륵.

광기에 젖어 머리칼을 풀어헤친 묘청이 피투성이가 된 채 성벽 위로 거대한 목제 포차를 끌고 나왔다. 그것은 고려 황실의 금군(禁軍)만이 보유하고 있는 최후의 비밀 병기이자, 개경의 병기창에서 흘러 들어간 수백 발의 불화살을 장전한 '금군 신기전(神機箭)' 포차였다.

묘청이 횃불을 장전 구멍에 가져다 대며 미친 듯이 웃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성을 통째로 불바다로 만들어서라도 대업을 완수하리라!"

신기전의 도화선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화살촉이 선우가 서 있는 군영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