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만불사 사찰 뒤편, 대나무 숲길에는 잔혹한 비바람이 쓸고 간 뒤의 적막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발치에는 방금 전까지 무림맹주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오만하게 칼날을 겨누던 소맹주의 시신이 한 자루 부러진 목검처럼 진흙탕 속에 뒹굴고 있습니다. 당신의 검 끝에서 떨어진 검붉은 선혈이 대나무 잎사귀를 타고 흘러내려 둔탁한 소리를 냅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의 길은 이토록 차갑고 질척여서, 한때 강호를 호령하겠다 호언장담하던 젊은 무인의 생 또한 허망하게 사그라지고 맙니다.

당신은 차가운 가슴을 가라앉히며 허리를 굽혀 그의 품을 뒤적입니다. 화려한 금사로 수놓아진 가사 너머, 비단 안감 속에서 흘러나온 것은 온 주변의 온기를 단숨에 빨아들이는 듯한 음산한 서책 한 권입니다.

『혈음공(血陰功)』.

표지에 새겨진 주사(朱砂) 빛 글씨는 마치 굶주린 귀신의 눈동자처럼 어둠 속에서 붉게 일렁입니다. 서책을 가볍게 쥐었을 뿐임에도, 손끝을 타고 뇌리까지 전해지는 것은 피를 갈구하는 은밀하고도 달콤한 속삭임입니다. 천지의 음기와 죽은 자의 정혈을 강제로 취하여 제 내공으로 삼는 역천(逆天)의 마공. 무림맹이 겉으로는 마교의 잔재라며 그토록 멸절을 외치던 추악한 심법이, 정작 그들의 가장 깊숙한 품 안에서 고이 숨 쉬고 있었던 역설에 실소가 터져 나옵니다.

이 마기를 받아들인다면, 가문을 도륙하고 강호의 정의를 참칭한 맹주 일가를 그 어떤 위기 속에서도 확실하게 지옥으로 보낼 비장의 칼날을 쥐게 될 것입니다. 힘을 갈망하던 이들이 왜 끝내 마도(魔道)에 몸을 던져 파멸해 갔는지, 그 지독한 유혹의 무게가 무겁게 가슴을 짓누릅니다.

그러나 당신의 반평생을 지탱해 온 무진검(無盡劍)의 검의(劍意)가 심장 깊은 곳에서 거세게 반발합니다. 무진의 푸른 내력은 흐르는 맑은 물과 같고,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청명한 바람과 같아서, 이 탁하고 어두운 마기와는 결코 한 하늘 아래 섞일 수 없는 법입니다. 평생을 닦아온 도(道)를 버릴 것인가, 아니면 더러운 힘에 손을 대서라도 가장 철저한 복수를 완성할 것인가.

어둠이 깊어갈수록 대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는 울부짖는 원혼들의 비명처럼 커져만 갑니다. 당신은 피비린내 나는 비급을 움켜쥔 채, 깊은 침묵 속에서 검 자루를 쥔 손에 힘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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