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맹교(盟郊)의 달빛은 유난히도 시려, 기왓장 끝에 매달린 이슬마저 검날의 푸른 예기(銳氣)를 닮아 있다. 당신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천하를 호령하는 무림맹의 심처(深處). 한때 의형제라 불렀던 추풍검 맹서우가 흘린 피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은원(恩怨)의 종착지인 대전의 문이 무겁게 열린다.

옥좌에 앉은 무림맹주 공손백(公孫百)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의 안면에 어린 비열한 미소는 깊은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독사의 눈빛과도 같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백결. 은거한 검신이 속세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올 줄은 몰랐다."

맹주의 조소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연단 뒤의 비단 막이 서서히 걷힌다. 그 뒤에 드러난 참혹한 광경에, 당신의 가슴 속에서 요동치던 검의 맥동이 서늘하게 식어간다.

그곳에는 당신이 사투를 끝내고 돌아가려 했던 변방의 작은 서당, 그 마당에서 글을 읽던 가장 어린 제자들이 결박당한 채 꿇어앉아 있다. 티 없이 맑던 아이들의 눈동자는 공포로 짓눌려 있고, 스승의 이름을 부르짖던 작은 목덜미에는 시퍼런 참도(斬刀)들이 무정하게 겨누어져 있다.

"이 무슨 금수만도 못한 짓이냐."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당신의 음성은 분노조차 담지 못해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그것은 강호의 비정함에 수없이 단련된 자만이 낼 수 있는, 사멸(死滅)의 예고와도 같다.

맹주는 낮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 쇳소리가 대전의 거대한 들보를 흔든다.

"투서기기(投鼠忌器)라 하였다. 그 위풍당당하던 검신의 기세도 겨우 초야의 똥강아지새끼들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구나. 자라나는 싹을 자르는 것은 나의 도(道)이거늘, 원망하려거든 네놈의 날개 아래 숨은 죄를 원망하거라."

맹주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아이들의 목덜미에서 선혈이 실금처럼 베어 나온다. 아이의 가녀린 비명이 장엄한 대전의 허공을 갈기갈기 찢는다.

"검을 버려라. 그리고 스스로 단전(丹田)을 격쇄해라. 일각의 유예도 없다. 네놈의 기맥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이 아이들의 목숨은 사신의 손안에서 노닐 뿐이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대전 안, 오직 당신의 가슴 속에 깃든 천외천의 검패만이 잔잔한 떨림을 일으킬 뿐이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무릎을 꿇고 거짓 투항의 기회를 엿볼 것인가, 아니면 기만책에 휘둘리지 않고 찰나의 예기로 공간을 접어 베어버릴 것인가. 당신의 손끝에서 흘러내린 기운이 차가운 낙엽처럼 바닥을 구른다. 선택의 시간은 강물처럼 무심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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