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으로 촘촘히 다져진 무림맹의 광장은 비정하리만큼 넓고 황량합니다. 밤하늘에 걸린 외로운 달마저 먹구름 뒤로 숨어버린 시간, 오직 당신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만이 적막한 대기를 흔들 뿐입니다. 서당의 낡은 혜저(鞋底)가 흙바닥에 닿을 때마다, 만물이 숨을 죽이고 한때 강호를 등졌던 검신(劍神)의 귀환을 경배합니다.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낙엽을 쓸던 빗자루 대신, 천하를 오색 빛으로 물들였던 천외천(天外天)의 신검.
기연의 영약으로 해금된 심법이 맥박을 타고 흐르자, 당신의 검끝에서 무형의 기운이 푸른 달빛처럼 번져나갑니다. 그것은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부드럽되, 그 칼끝이 닿는 곳마다 매서운 엄동설한(嚴冬雪寒)의 서리가 내려앉듯 적들의 목줄기를 소리 없이 거둡니다. 길목을 지키고 서 있던 수백 명의 호위 무사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합니다. 어둠을 찢는 곡소리마저 사치라는 듯, 차가운 쇠붙이가 살을 가르고 뼈를 부수는 소리만이 서정적인 가락처럼 사방에 흐를 뿐입니다.
살풍포호(殺風捕虎). 거센 학살의 대광풍이 불어닥치매, 백 장(百丈) 이내의 모든 생명이 갈가리 찢겨 붉은 피안개로 화해 흩뿌려집니다. 그들이 흘린 피는 대전 마당을 적시며 죽음의 호수를 이루고, 고금 제일의 철옹성이라 자부하던 무림맹의 웅장한성벽마저 성난 파도에 쓸리는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립니다. 켜켜이 쌓인 가문의 한(恨)이, 당신의 깊고 쓸쓸한 눈동자 속에서 마침내 붉은 강이 되어 흐르는 순간입니다.
천지를 진동케 하는 무형의 검력 속에서, 굳게 닫혀 있던 대전의 거대한 문이 부서지듯 열립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만인의 우두머리라 자부하던 무림맹주였습니다. 그러나 왕좌에서 기어 나온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위엄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부하들의 사체가 안개가 되어 사그라지고 단단한 벽돌이 가루가 되는 천재지변 같은 광경 앞에, 천하를 호령하던 맹주는 단지 목숨을 구걸하는 나약한 짐승에 불과했습니다.
"서, 설마…… 그때 살아남았던 그 검귀(劍鬼)란 말이냐!"
그는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진흙과 피로 얼룩진 대전 바닥을 개처럼 기어 나옵니다. 금선으로 장식된 도포자락이 피풍에 찢겨 나가고 머리관이 벗겨져 산발이 된 형색이 실로 처참합니다. 십수 년 전, 당신의 일족을 도륙하며 호탕하게 웃던 그 오만함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바람이 불어와 당신의 소박한 도포 자락을 흔드는 순간, 당신은 마침내 그를 발치 아래 내려다보며 검을 비스듬히 눕힙니다. 청풍명월의 고요함이 당신의 검날 위로 쓸쓸하게 내려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