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풍진(風塵) 속으로 이어져 마침내 거대한 누각 앞에 멎습니다. 용봉객잔(龍鳳客棧). 이름은 용과 봉황을 일컬어 화려하나, 실상은 무림맹의 귀와 눈이 되어 강호의 기밀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거미줄의 중심이자 맹의 전초기지입니다. 처마 끝에 매달린 붉은 청사초롱이 밤바람에 흔들리며 어두운 바닥에 붉은 피 같은 그림자를 쓸쓸히 드리우고 있습니다.
당신은 짓눌러 쓴 삿갓 아래로 객잔의 창 너머를 응시합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천외천(天外天)의 검패가 맥박치듯 차갑게 전율합니다. 서당의 낡은 책장에 묻어두었던 피의 기억이, 마침내 주인을 알아보듯 검신(劍神)의 가슴속에서 깨어난 까닭입니다.
시끌벅적한 주연(酒宴)의 소음 너머로, 당신의 시선이 한 사내의 등 뒤에 박힙니다. 금사로 찬란하게 수놓아진 무림맹의 도포를 걸치고, 거만하게 비단 잔을 기울이는 노인. 백발을 단정히 비녀로 묶었으나 그 눈망울에는 여전히 피비린내 나는 잔혹함이 무서리처럼 서려 있는 자. 바로 과거 당신의 가문을 한 줌의 재로 만들었던 참극, '혈화참(血花斬)'을 직접 이끌었던 무림맹의 호위 장로입니다.
그의 태평한 고소(苦笑)가 바람을 타고 흘러나와 당신의 귀를 찌릅니다. 죄를 지은 자는 낙양의 진미를 즐기며 천하의 태평을 논하고, 억울하게 쓰러진 당신의 혈육들은 구천을 떠돌며 찬 구름으로 흩어진 강호의 잔인한 모순. 당신의 메마른 입술 사이로 서늘한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강호의 가을은 이토록 깊어가는데, 원수의 목숨은 어찌 이리도 완고하게 붙어 있는가.
사위는 소란스럽되 당신구 소매 속의 손끝은 빙판처럼 차갑게 식어 갑니다. 검을 뽑지 않아도 바람이 먼저 그 예기를 알아차려 객잔 앞을 지나던 낙엽들이 소리 없이 반으로 갈라져 내립니다.
원수는 한 치 앞의 죽음도 짐작하지 못한 채, 술잔에 비친 달을 보며 잔인한 흥취에 젖어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가증스러운 목숨을 거두어 가문의 영전에 바치는 일뿐. 기만으로 가득 찬 이 객잔의 지붕 위에서 어둠을 기다려 그림자처럼 스며들 것인가, 아니면 천둥 같은 기세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그의 비겁한 심장을 정면으로 꿰뚫을 것인가.
칼바람이 당신의 옷자락을 매섭게 스치고 지나갑니다. 당신의 손이 천천히 품 안의 검병을 찾아 쥐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