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가을 산바람은 쓸쓸히 불어와 당신의 빛바랜 청도포 자락을 흔듭니다.

서당에서 글을 배우던 어린 학동들이 당신의 등 뒤로 옹기종기 모여듭니다. 작고 미약한 손가락들이 마른 옷자락을 움켜잡는 감촉이 등줄기를 타고 시리게 전해집니다. 아이들의 눈망울에 고인 것은 순연한 공포이며, 숨길 길 없는 육신의 떨림입니다. 강호의 거친 풍랑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눈앞에 도사린 칼날은 재앙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의 길을 막아서서 도를 겨누고 있는 자들은 인근 산야를 노략질하며 천하게 연명하는 흑표채(黑豹寨)의 비적들입니다. 조잡한 쇠붙이에서는 비린 피 냄새와 묵은 먼지 향이 거칠게 풍겨오고, 그들의 안광에는 오직 탐욕과 천박한 살기만이 얼룩져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난한 시골 훈장과 어린 아이들은 한 줌의 금품을 뜯어내고 내버릴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돈이 될 만한 것은 모조리 내놓아라. 만일 한 푼이라도 숨긴다면, 네놈들의 얄팍한 목줄기를 끊어 이 산길의 거름으로 삼아주마."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비정하게 조소합니다. 흑표채 무리가 뿜어내는 가당치 않은 기세에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태로움이 숲길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 적막강산(寂寞江山) 속에서, 오직 아이들의 가쁜 숨소리만이 흐린 낙엽처럼 가냘프게 흩어집니다.

당신은 묵묵히 시선을 내리깝니다. 가슴 깊은 곳, 기연으로 복용한 만년삼의 영기가 기혈을 타고 도도히 흐르기 시작합니다. 가문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던 그날 이후로 굳게 닫혀 있던 천외천(天外天)의 검패가 맥박질할 때마다, 가라앉았던 무신의 투기(鬪氣)가 심장 한구석에서 사나운 용오름처럼 솟구치려 합니다.

이 미천하고 조잡한 악인들을 상대로 은거하던 무신의 지고한 신위(神威)를 가감 없이 드러내어 산천을 뒤흔들 것인가. 아니면 강호의 눈을 피하고 아이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그저 지나가는 삼류 무부의 조잡한 초식으로 이들을 조용히 쫓아낼 것인가.

당신은 손끝으로 가만히 소매 끝을 스칩니다. 아직 칼날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자연의 순리를 닮은 검기가 차갑고 고독한 월광(月光)처럼 손가락 사이에 고입니다. 당신의 고요한 눈동자가 천천히 적들을 향해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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