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안개가 낮게 깔린 황량한 산길. 고목나무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달빛은 차디찬 서리 같다. 서당을 나선 당신의 발걸음 뒤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맑은 먹향(墨香)은 어느새 스러지고 황량한 강호의 흙먼지만이 소매 끝에 차갑게 엉겨 붙는다.
속세를 등진 지 십여 년. 한낱 노학사로 살아가던 당신의 단전 깊은 곳 적막을 깨트린 것은 기연의 영약이 일깨운 뜨거운 내력이자, 가슴 깊이 품어둔 천외천(天外天)의 검패였다.
사각, 사그락.
낙엽 밟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밤길이건만, 등 뒤에서 밀려드는 이물(異物)스러운 공기가 발길을 붙잡는다. 살기는 소리가 없고, 진정한 무인은 눈이 아닌 피부로 밤을 읽는다.
"…가던 길을 멈추어라."
어둠의 경계에서 스며 나온 일곱 개의 그림자. 검은 장포로 몸을 감싸고, 오직 살육의 업에 길든 자들의 안광만이 귀화(鬼火)처럼 번뜩인다. 무림맹주가 천하를 감시하기 위해 심어놓은 귀신 같은 손길, '칠살문(殺門)'의 수하들이다.
그들은 당신이 십 년 전에 사라진 천외천의 무신(武神)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뼈마디를 스쳐 가는 찰나의 기세를 포착한 칠살문의 고수들은 일순 숨을 멈춘다. 단순한 노인이 아니다. 눈앞에 선 존재의 어깨 너머로, 삼도천의 강물이 출렁이는 듯한 기묘한 위압감이 풍겨 나왔기 때문이다.
"독서(讀書)나 하던 늙은이가 지닐 기세가 아니군."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낮게 읊조리며 검 손잡이를 쥔다. 스르릉, 검날이 집을 빠져나오는 은밀한 쇳소리가 밤바람을 타고 가늘게 떨린다. 일촉즉발(一觸即發)의 순간. 어둠 속에서 벼려진 일곱 자루의 살검(殺劍)이 달빛을 흡수하며 기괴한 밤의 꽃으로 피어난다.
바람도 숨을 죽인 적막 속에서 당신은 서서히 깨어나는 검패의 기운을 느낀다. 한 번 휘두르면 폭풍을 부르고, 다시 한 번 휘두르면 천지가 비탄에 잠길 무형의 검기(劍氣)가 손가락 끝에서 소리 없이 요동친다.
이 손으로 다시 피를 묻히기 시작해 무림맹조차 깨닫지 못할 어둠 속에서 흔적도 없이 숨통을 끊을 것인가, 아니면 이 귀찮은 사냥개들을 붙잡아 맹주의 목구멍 앞까지 이르는 지름길을 가르쳐 달라 울부짖게 만들 것인가.
칠살문의 살수들이 일제히 지면을 박찼을 때, 당신의 단전이 얼음처럼 차갑게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