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공방의 귀퉁이, 지후가 남기고 간 낡은 열쇠고리가 놓여 있던 자리는 이제 텅 비어 있습니다. 며칠 동안 당신은 그의 흔적을 지우려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서랍 가장 깊은 곳에 밀어 넣은 열쇠고리처럼, 그에 대한 기억도 마음에 깊이 묻어두려 했습니다. 하지만 비워낼수록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는 죄책감은 서늘한 무게를 더해가며 당신의 숨통을 조여올 뿐입니다. 당신은 먼지 앉은 테이블 보의 끝자락을 손가락 끝으로 잘게 매만지며, 하릴없이 창밖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창문에 매달린 빗방울들이 이리저리 흐느끼듯 번져 흘러내립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거친 빗소리가 가슴을 툭툭 두드리는 밤입니다.

천둥소리가 먼 하늘을 가를 때마다, 공방의 낡은 나무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합니다. 당신은 마른침을 삼키며 얇은 가디건 자락을 여밉니다. 그 손끝등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차가운 빗물이 유리창을 매섭게 때리는 소리 사이로, 불현듯 이질적인 마찰음이 섞여 듭니다.

‘툭, 스르륵.’

나무 문에 무언가 무거운 것이 기대어 쓸려 내려가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습니다. 당신의 시선이 허공에서 그대로 굳어집니다. 빗소리에 묻혀 잘못 들은 환청이라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발걸음은 이미 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옷자락 너머로 그 가빠진 울림이 전해집니다.

당신은 떨리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습니다. 차가운 놋쇠의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목덜미를 서늘하게 적십니다. 조심스레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자, 사나운 밤바람과 함께 물기 어린 겨울 낙엽 같은 한기가 얼굴로 들이칩니다.

그리고, 그곳에 그가 있습니다.

가로등 불빛조차 빗줄기에 가려 희미한 그 어둠 속, 지후가 문턱에 기대어 쓰러져 있습니다. 빗물에 흠뻑 젖은 머리칼이 이마를 무겁게 덮고 있고, 늘 단정하게 곧았던 그의 어깨는 온기를 잃은 채 잔뜩 움츠러들어 있습니다.

"지후야……?"

당신의 갈라진 목소리가 거센 빗소리 속으로 가냘프게 흩어집니다. 그 이름을 애써 외면했던 시간의 거리만큼, 가슴속 깊은 울음이 쩡 하고 금이 가며 터져 나오는 듯합니다. 흙먼지와 빗물로 얼룩진 그의 손끝은 이미 하얗게 질려 차갑게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 손가락 마디마디에 매달린 빗방울들은 마치 그가 그동안 홀로 삼켜내야 했던 눈물처럼 보입니다.

당신의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며, 문 앞에 쓰러진 그를 향해 갈 곳을 잃고 헤맵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밀어내려 했던 과거와 외면할 수 없는 현재가 차가운 빗물 속에서 거칠게 뒤엉킵니다.

떨어지는 빗줄기는 닫힌 마음의 빗장을 두드리는 밤의 언어처럼 서럽게 공방의 문턱을 적셔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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