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창가로 스며드는 노르스름한 가을볕이 당신과 지후 사이에 비스듬한 선을 긋습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더미가 하얗게 반짝이는 것조차 선명히 보일 만큼, 공방 안은 고요합니다.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맞은편의 지후를 바라봅니다. 가만히 내려놓은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습니다. 그 손가락 마디마디가 예전보다 눈에 띄게 거칠어져 있어, 당신의 심장 언저리가 낮게 웅성거립니다.

지후는 탁자 위에 놓인 낡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쌉니다. 온기를 찾는 듯한 필사적인 손짓입니다. 찻잔의 둥근 테두리를 따라 그의 마디 굵은 손가락이 맴돌다 멈춥니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마침내 고개를 들어 당신과 눈을 맞춥니다.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 속에 흔들리는 가을볕이, 그리고 그보다 더 위태롭게 흔들리는 당신의 실루엣이 담깁니다.

"늦어서... 미안해."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가릅니다. 짧은 한마디에 담긴 무게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그날, 네가 오해하게 두고 가버린 거... 내내 후회했어. 내가 너무 어렸고, 겁이 많았어. 네 마음에 그런 깊은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가장 아픈 흉터를 손에 쥐여준 건 나였지."

지후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립니다. 당신은 그의 마른 입술이 다물어지는 백색의 공간을 응시합니다. 오랫동안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음의 파편들이, 그의 목소리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며 툭툭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당신은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며 무릎 위에 놓인 치맛자락을 꾹 움켜쥔다.

"나... 한순간도 널 잊고 산 적 없어."

그의 고백이 공방 안의 오래된 나뭇결을 따라 부드럽게 퍼집니다.

"네가 모든 걸 잃고 힘들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이미 너무 늦어 있었어. 네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사실... 계속 널 찾고 있었어. 네가 어디서 숨을 쉬고 있는지,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정말 많이 헤맸어."

지후가 찻잔을 쥔 손에 힘을 주자, 찻물이 가볍게 출렁이며 맑은 파동을 그립니다. 그의 눈빛은 갈구하듯 투명하게 젖어 있습니다. 당신의 시선은 그의 간절한 눈빛을 떠나, 그의 손가락, 그리고 빛바랜 탁자 위의 나뭇결로 흩어집니다.

원망과 그리움, 그리고 오래전 머물러 있던 시간이 한데 뒤엉켜 가슴을 가득 채웁니다. 그가 건넨 진심 어린 사과 앞에서, 당신의 숨이 가만히 멎습니다. 어떤 온기는 너무 늦게 도착해, 얼어붙은 계절을 녹이지 못한 채 그저 발끝만을 가만히 적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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