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공방의 낡은 나무 서랍을 열자, 오래 묵은 먼지 냄새와 함께 바랜 사진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후와 당신이 가장 눈부시게 웃고 있던 열여덟의 가을. 마침내 알게 된 비극적인 진실의 조각들은 아프도록 투명하여,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지후의 어깨는 생각보다 왜소해져 있고, 당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는 오랜 방황이 남긴 깊은 그늘이 져 있습니다.

당신의 떨리는 손끝이 사진 속 그의 얼굴을 아주 천천히 쓸어내립니다. 이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된 그의 침묵, 그 모진 긴 세월을 홀로 견뎠을 그 외로운 삶의 무게가 뒤늦게 가슴을 저미고 들어옵니다. 지후는 가만히 다가와 당신의 여윈 손목을 조심스럽게 쥐어봅니다.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조금 서늘하지만, 더없이 다정합니다.

"지후야." 당신이 부르는 나지막한 음성에 그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미안해. 너무 늦게 알아서." 말끝을 흐리는 당신을 향해, 지후가 쓸쓸하지만 단단한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아니야. 네가 아프지 않을 때 알게 되어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해." 짧은 대사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 위로, 두 사람이 함께 앓았던 그 고독한 계절의 바람 소리가 스쳐 지나갑니다. 서로를 붙잡았던 손귀의 힘이 아주 서서히, 모래성이 무너지듯 부드럽게 풀려나갑니다. 그것은 매정한 거절이 아닌, 서로를 위해 마침내 슬프지 않을 안녕을 건네는 약속의 제스처입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과거의 아픈 거울로 남겨두지 않기로 합니다. 가슴 밑바닥이 저릿하게 내려앉는 실연의 슬픔 속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맑은 평온이 머무릅니다. 진실을 품고 갈라서는 이 길이 서로에게 상처가 아닌 생채기 없는 추억이 되기를, 먼 훗날 빛바랜 미소로 그리워할 성숙한 안식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돌아서는 그의 등 뒤로 골목길을 채우는 저녁노을이 붉은 융단처럼 아스라하게 깔려갑니다.

우리의 이별은 더는 상처를 파고드는 칼날이 아닌, 서로의 가야 할 길을 먼발치서 조용히 비춰줄 단 하나의 시린 등불이 되어 가슴속 깊은 서랍 속에 고이 접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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