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공방의 낡은 나무 문틈 사이로, 겨우내 숨죽였던 한낮의 햇살이 가늘게 길을 내며 들어온다. 그 온기를 따라 사르륵 일어나는 먼지들이 은하수처럼 반짝인다. 당신은 손때 묻은 작업대 위에 가만히 손끝을 얹는다. 세월을 버텨낸 거칠고 단단한 나무의 질감이 손가락 끝을 타고 심장 깊은 곳까지 잔잔한 고동으로 전해진다.

그 옆방향으로 한 발짝 물러선 자리에 지후가 서 있다. 그의 투박한 손가락이 당신의 손끝에서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멈추어 있다. 가만히 허공을 맴도는 그의 손길에는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조심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닿을 듯 말 듯한 그 짧은 거리가, 어쩌면 온전히 메우지 못한 지난 시간의 깊이일지도 모른다.

"한꺼번에 다 되돌릴 수는 없겠지."

지후가 낮게 읊조린다. 억지로 부풀리지 않은, 담담하고도 가라앉은 목소리가 공방의 나뭇결 사이로 낮게 스며든다. 그는 당신의 시선을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고요히, 당신이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풀고 등을 돌려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조용히 기다려 줄 뿐이다.

당신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늘 긴장으로 팽팽하게 굳어 있던 그의 턱선과, 고독한 슬픔을 담고 있던 눈꼬리가 쏟아지는 보랏빛 채광 아래서 아주 조금은 유순해져 있다. 한때 서로를 할퀴었던 가시 돋친 오해들은 비 내린 뒤의 흙처럼 단단하게 가라앉아 있다.

당신은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그의 손등 옆에 가만히 나란히 놓는다. 스치는 구름 같은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지후의 넓은 어깨가 가볍게 들썩인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의식을 치르듯 천천히 손바닥을 뒤집어 당신의 손가락 끝을 여리게 감싸 안는다. 맞닿은 살결을 타고 흐르는 온기는 뜨겁지 않지만, 깊은 내면의 한기마저 사르르 녹일 만큼 아늑하다.

"그래도, 같이 걸을 수는 있으니까."

당신의 고백이 먼지 쌓인 공방 구석구석을 다정하게 흔든다.

마당 구석, 오래된 깨진 화분 틈새로 연초록빛 새싹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모진 겨울의 한파를 견뎌내고 끝내 틔워낸 그 여린 이파리는, 두 사람이 이제 막 발을 내딛기 시작한 서툰 약속의 모양을 닮았다. 단번에 모든 서운함을 지울 수는 없겠지만, 매일 조금씩 소소한 계절의 온기를 나누어 가지며 서로의 보조를 맞춰가기로 당신은 마음을 굳힌다.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불어온 나지막한 봄바람이 지후와 당신의 머리카락을 한데 부드럽게 뒤섞으며 지나간다. 아프게 스쳐 간 상처의 계절 너머로, 기어이 도래한 온기 속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자아내는 숨결은 이제 더는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푸른 잎사귀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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