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는 나무 작업대의 감촉이 유난히 서늘합니다. 한때는 지후의 온기가, 그리고 그의 다정한 손길이 닿았던 곳입니다. 이제는 그저 매끄럽고 차가운 무생물의 표면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가만히 손가락을 모아 얇은 셔츠의 깃을 쥐어짜 봅니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잘디든 떨림이 어깨를 타고 올라오지만, 당신은 그 진동을 의연하게 억누릅니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마주한 창밖의 풍경은 온통 기운을 잃은 잿빛입니다. 첫눈이 내린 뒤의 골목길은 하얗다기보다는 어둡고 눅눅하게 얼어붙어 있습니다. 지후가 멀리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며칠 전의 일입니다. 수소문조차 부질없을 만큼 아득한 곳으로 그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이야기. 당신의 입술 사이로 아주 가느다란 숨결이 흘러나오지만, 그것은 탄식도 그리움도 아닙니다. 그저 더 비워질 곳 없는 내면이 내뱉는 무의미한 공기의 흐름일 뿐입니다.
원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의 마지막 편지마저 불태우고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갔던 날들을 되짚어봅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쌓아 올렸던 거대하고 견고한 성벽은, 결국 지후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마저 영원히 가두어버리는 차가운 감옥이 되어 있었습니다. 상처조차 흉터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무뎌진 가슴이 되려 낯설게 다가옵니다. 아픔마저 느껴지지 않는 이 지독한 무감각함은, 끝내 그의 손을 매정하게 놓아버린 대가로 찾아온 형벌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정말로……."
작게 흘러나온 목소리가 텅 빈 공방의 적막한 공기 속으로 흩어집니다. 대사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오직 쓸쓸한 바람 소리뿐입니다. 지후가 남기고 간 마지막 온기가 머물던 자리를 물끄러미 응시합니다. 오해로 얼룩진 시간 속에서도 당신을 향해 잔잔하게 빛나던 그의 깊은 눈망울이 떠올라, 아주 잠깐 눈꺼풀이 잘게 흔들립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을 무참히 부스러뜨린 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거부였습니다.
매정하게 갈라섰던 첫사랑의 마지막 흔적마저 메마른 대지 위에서 완전히 타버린 지금, 당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완전히 소멸해 버린 낙원에서 당신이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린 메마르고 무채색인 세상뿐입니다.
겨울의 가장 깊은 품속에서, 다시는 봄을 기약하지 못할 얼어붙은 대지가 그렇게 소리 없이 슬픈 침묵을 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