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성냥갑을 긁는 거친 마찰음이 고요한 공방의 정적을 깬다. 당신의 손끝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 작은 불꽃이 피어올라 지후의 비뚤배뚤한 글씨가 적힌 편지 모퉁이를 무섭게 잡아삼킨다. 하얀 종이가 검게 오그라들며 붉은 불길을 토해내는 모습을, 당신은 미처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가만히 응시한다. 불꽃의 온기가 잠시 뺨을 데우는 듯싶더니, 이내 가느다란 흰 연기와 함께 모든 것이 차디찬 회색 재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진다.

손끝에 아주 작게 남은 화상 자국처럼, 마음에 남은 그의 흔적을 기어이 지워버렸다. 잔인할 만큼 선명했던 소꿉친구의 기억, 상처 가득한 어른이 되어 돌아온 그의 눈망울에 잠시 흔들렸던 마음의 한 자락까지. 그 모든 과거를 당신의 손으로 직접 소멸시켜 버린 순간이었다.

"…이제 됐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다짐은 공방의 높은 천장에 부딪혀 쓸쓸하게 되돌아올 뿐이다.

바람이 불어온다. 문틈 사이로 사정없이 비집고 들어오는 겨울의 외풍은 방금 전의 온기를 조롱이라도 하듯 사납다. 난로 하나 없는 공방의 공기는 순식간에 냉랭하게 얼어붙는다. 종이가 타들어 가던 그 짧은 찰나의 온기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손끝에서 스러진 재들이 미풍에 날려 바닥 구석으로 쓸쓸히 흩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당신의 어깨가 작게 떨리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 그의 편지를 쥐고 있던 손바닥이 지독하게 시리다. 온기를 잃어버린 빈손을 가슴팍에 가만히 얹어 보지만, 옷자락 너머로 전해지는 것은 얼어붙은 심장의 둔탁하고 느린 박동뿐이다. 그를 밀어내고 흔적을 지우면 이 지긋지긋한 미련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찾아온 것은 평온이 아닌, 가슴뼈 깊숙한 곳까지 쩍쩍 갈라지게 만드는 시린 고독이다.

먼지가 가라앉은 작업대 위에 손을 뻗어본다. 매끄러운 나무의 감촉 속에서도 지후의 다정했던 손길이 겹쳐 보이는 것만 같아, 당신은 소스라치며 얼른 손을 거둔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사방에서 들이치는 냉기가 당신의 온몸을 꽁꽁 묶어 세우는 것만 같다. 지후가 없는 이 공간은, 그저 텅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뼈아프게 다가온다.

흩어진 재를 쓸어 담으며 다시 그가 남긴 온기의 흔적이라도 찾아 헤매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남아 있는 모든 미련의 불을 끄고 이 냉기 속에 자신을 완전히 묻어버려야 할까. 당신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잃고 위태롭게 흔들린다.

재가 되어버린 온기 속에서 마음은 길을 잃고, 시린 계절의 한복판에 홀로 버려진 슬픔은 소리 없이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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