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00:12:05 — 지하 3층, 심층 아카이브 룸 앞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건 엄연한 불법 감금이에요!"

한수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두꺼운 철문을 뚫지 못하고 콘크리트 벽면을 짓눌렀다.

두께 10센티미터에 달하는 특수 방화문 앞을 가로막은 검은 양복의 사내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보안팀장의 명찰을 단 사내가 무전기를 귀에 가져다 대며 차갑게 읊조렸다.

"이사장님의 특별 지시입니다, 한 교수님. 소아 병동 관련 기밀 자료 유출 혐의로 정식 감사가 시작될 때까지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실 수 없습니다. 통신 장비도 전부 회수하겠습니다."

"이 권한 없는 강제 처분에 대해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묻겠어요. 비켜요!"

수아가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을 주었지만, 사내들의 거구는 거대한 벽처럼 그녀를 가두고 있었다. 이미 수아의 개인 가방과 연구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그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강진엽이 보낸 사냥개들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녀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

그 순간, 아카이브 룸 천장의 형광등이 거칠게 깜빡였다.

치직, 치지직―!

날카로운 전자음과 함께 지하 복도 전체를 밝히던 백색광이 일제히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복도를 집어삼켰다. 보안요원들이 당황해 손전등을 꺼내 들려던 찰나,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아카이브 룸의 전자기식 도어록이 완전히 해제되었다.

"뭐, 뭐야? 비상 전력은 왜 안 들어와?"

보안팀장이 무전기를 두드려 대는 순간, 어둠 속에서 낮고 단단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구두굽이 대리석 바닥을 찍는 규칙적인 소리. 그 소리만으로도 복도를 가득 채우던 압박감이 단숨에 역전되었다.

"내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어둠을 가르고 나타난 것은 이선우였다. 그의 손에는 스마트폰 화면의 푸른 빛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내들이 손전등 불빛을 선우의 얼굴로 집중시켰지만, 선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이선우 교수? 여긴 비인가자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물리력을 쓰겠습니다!"

보안팀장이 품속에서 가스총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선우는 그들의 위협 따위는 애초에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귓가에 꽂힌 무선 이어폰을 톡톡 건드렸다.

"도현아. 지하 3층 블록 전체 전력 차단 유지해. 비상 발전기 수동 전환 단자도 락(Lock) 걸어두고."

[이미 조치 끝났습니다, 형님. 보안실 메인 서버 우회해서 전력 제어 장치 아예 태워버렸어요. 복구하려면 최소 한 시간은 걸릴 겁니다.]

스마트폰 너머로 민도현의 경쾌한 타이핑 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사내들을 향해 서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들은 대로다. 지금 이 구역의 모든 감시 카메라는 꺼졌고, 너희가 자랑하는 전자 장비는 무용지물이야.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위에서는 알 방법이 없다는 뜻이지."

"이새끼가 진짜……! 잡아!"

보안요원 두 명이 동시에 선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선우는 그들의 움직임을 이미 읽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은 사내들의 체중 이동과 무게중심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해 냈다.

선우는 가볍게 몸을 틀어 첫 번째 사내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대로 관절을 꺾어 내리누르며, 반동을 이용해 두 번째 사내의 명치에 팔꿈치를 박아 넣었다.

"억……!"

비명과 함께 사내들이 바닥으로 뒹굴었다. 의사로서 인체의 해부학적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우에게, 일반적인 타격은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고통을 주는 정밀한 시술과도 같았다.

선우는 신음하는 사내들을 밟고 지나쳐 철문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불안감에 떨고 있던 한수아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가자, 한수아."

"이선우…… 너 정말 미쳤어? 이사장한테 빌미를 주면 어쩌려고……!"

"빌미는 저들이 먼저 준 거야. 쥐새끼처럼 숨어서 자료나 훔치려는 놈들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

선우는 수아의 손을 이끌고 어두운 복도를 거침없이 질주했다. 비상구 계단을 향해 달리는 그의 등 뒤로, 보안팀장의 악에 받친 고함이 메아리쳤다.

***

### 00:23:40 — 소아 병동, 긴급 구역 비상계단

"잠깐만, 선우야. 잠깐만 서 봐."

지하 3층을 벗어나 지상 1층의 한적한 비상계단에 도달했을 때, 수아가 선우의 손을 뿌리치듯 멈춰 섰다.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선우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비상구 통로의 붉은 유도등 빛이 선우의 얼굴에 기괴한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수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선우의 멱살을 잡듯 가까이 다가섰다.

"너…… 너 눈이 왜 이래?"

"뭐가 말이지."

선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며 시선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수아의 손길이 더 빨랐다. 그녀는 선우의 턱을 붙잡아 붉은 유도등 쪽으로 돌려 세웠다.

선우의 왼쪽 눈.

동공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되어 있었고, 그 중심부에는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탁하고 하얀 막이 얇게 서려 있었다. 붉은 빛이 눈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대광반사(Light reflex)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동공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죽어 있는 유릿조각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너 지금 왼쪽 눈 안 보이지? 맞지?"

수아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눈물이 가득 고인 그녀의 눈동자에 선우의 망가진 눈이 비쳤다.

"수술할 때마다 눈을 쓰고 있었던 거야? 그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쓸 때마다 네 몸을 갉아먹고 있었던 거냐고!"

"복수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

선우는 냉혹하게 수아의 손을 떼어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강진엽을 끌어내리고 동생의 죽음을 밝힐 수만 있다면, 시력 따위는 사소한 연소재에 불과해. 내 눈 걱정할 시간 있으면 네가 가진 'ST-9' 임상 기록 원본이나 잘 지켜."

"선우야! 어떻게 그게 사소한 거야! 네가 장님이 되면, 그 복수가 다 무슨 소용인데!"

"장님이 되기 전에 끝내면 돼."

선우의 단호한 태도에 수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 어린 집착은 이미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파멸의 원동력이 오직 죽은 동생을 향한 가혹한 부채감이라는 사실이 수아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선우의 의장부(醫帳簿) 인터페이스가 그의 시야 한구석에 붉은 경고등을 띄웠다.

[경고: 긴급 상황 발생. 소아 병동 이민준(남/7세) 환자, 급격한 혈동역학적 붕괴 및 고열 발생. 생명력 수치 급감 중.]

동시에 선우의 무선 이어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도현이 아니라 소아과 수석 전공의의 음성이었다.

[이, 이선우 교수님! 소아 병동 402호 이민준 환아가 갑자기 심정지 직전까지 갔습니다! 체온이 41.5도까지 치솟았고, 혈압이 잡히지 않습니다! 박태경 교수님은 연락이 두절되었고,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선우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수아 역시 무선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온 소리를 들었는지 안색이 창백해졌다.

"민준이……? ST-9 임상시험 3군에 들어갔던 아이야. 설마 부작용이 벌써 시작된 건가?"

"생각할 시간 없어. 수술실로 간다."

선우는 망설임 없이 비상구 문을 밀치고 소아 병동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왼쪽 시야가 조금 전보다 한층 더 어두워진 것을 느끼면서도, 그의 발걸음은 단 1센티미터의 오차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

### 00:41:15 — VVIP 하이브리드 수술실

수술실 내부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환아 바이탈 어때?"

선우가 수술실로 들어서며 외쳤다. 이미 수술복을 갈아입은 한수아가 스크럽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하트 레이트(Heart rate, 심박수) 160회, 바이탈 사인 극도로 불안정해. 혈압은 60에 40까지 떨어졌어. 체온은 41.2도에서 내려갈 기미가 안 보여. 마취과에서는 이 상태로 전신마취를 진행하는 건 자살 행위라고 반대하고 있어!"

수아가 다급하게 차트를 넘기며 소리쳤다.

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며 박태경이 허겁지겁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허옇게 질려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이선우! 네가 왜 여기 있어? 이 환자는 내 환자야! 당장 나가!"

"당신 환자?"

선우가 박태경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당신이 강진엽의 지시를 받고 불법 임상 약물 'ST-9'을 투여한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야. 대동맥판막 치환술을 받은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소아 환자에게 그런 독약을 먹여? 미세 동맥벽 급격 부식 증세가 올 거라는 예상도 못 했나?"

"그, 그건…… 단순한 수술 후 감염 증세야! 패혈증이라고! 내가 알아서 치료할 수 있어!"

"닥쳐."

선우의 음성에 서린 살기에 박태경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패혈증 환자에게서 이런 속도로 대동맥 기부 괴사가 일어나는 줄 아나? 지금 아이의 심장 안쪽은 썩어가고 있어. 10분 안에 재수술을 시작하지 않으면 대동맥이 파열돼서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선우는 박태경을 무시하고 어시스트 서전들을 향해 명령했다.

"인공심폐기(CPB) 준비해. 정중 흉골 절개(Median sternotomy)로 들어간다. 마취과, 전신마취 불가하면 국소 및 정맥 마취 병행해서 의식만 겨우 가라앉히고 시작해. 내가 5분 안에 캐뉼라 구획 정리 끝낸다."

"미쳤어!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박태경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지만, 수술실 안의 간호사들과 스크럽들은 이미 선우의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신의 안목, 기동.'

머릿속을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우뇌를 관통했다. 눈 뒤편의 미세혈관들이 터져 나가는 기분 나쁜 파열음이 이명처럼 들려왔다.

스슥―.

눈을 뜨자, 수술대 위에 누운 일곱 살 아이의 가슴팍이 투명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대동맥 근부와 판막 주변이 시커멓게 죽어가는 와중에, 특정 부위들이 형광색의 푸른 빛과 붉은 빛으로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였다. 붉은 빛이 도는 곳은 아직 살릴 수 있는 조직, 형광색 푸른 빛은 이미 ST-9의 부작용으로 괴사해 당장 잘라내야 할 영역이었다.

"메스."

선우가 손을 뻗었다. 수아가 신속하게 메스를 쥐여주었다.

서걱.

선우의 손끝이 움직이자마자 아이의 가슴뼈가 절개되고 흉강이 열렸다.

"석션(Suction, 흡인기)!"

흉강 내부를 가득 채운 혼탁한 삼출물과 피를 빨아들이자, 박동을 멈춰가는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보다 상태는 훨씬 심각했다. 대동맥 근부(Aortic root) 전체가 마치 젖은 종이 장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클램프(Clamp, 혈관 겸자) 주십시오."

선우는 대동맥을 겸자로 차단하고, 괴사된 조직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그의 메스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신의 안목이 제시하는 형광빛 경계선을 따라, 0.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썩은 부위만을 정밀하게 절제해 나갔다.

"포셉(Forceps)."

수아가 건넨 포셉으로 혈관벽을 고정하며, 선우는 인조 혈관을 이식하기 위한 봉합을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팅―!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이질적인 소리와 함께, 선우의 좌측 시야 하단이 순식간에 시커먼 어둠으로 뒤덮였다.

'……!'

선우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단순한 흐려짐이 아니었다. 좌측 하단 약 20도 각도의 구역이 마치 검은 먹물을 뿌려놓은 것처럼 완벽한 무(無)의 상태로 변해 있었다.

[알림: 시신경식(視神經蝕) 진행 가속화. 누적 시력 상실 18% 돌파. 좌측 하단 시야 영구 결손 발생.]

의장부의 냉혹한 시스템 경고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수술대 위의 환아는 물론, 자신의 왼손조차 보이지 않는 완벽한 사각지대(Blind spot)의 발생.

선우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바늘을 꿴 실을 통과시켜야 할 대동맥 후벽(Posterior wall) 부위가 바로 그 암전된 시야 속에 가로놓여 있었다.

"선우야? 왜 그래? 손이 멈췄어."

어시스트를 서던 수아가 선우의 이상을 감지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박태경이 뒤에서 비열하게 웃음을 흘렸다.

"거봐! 안 되는 거라고 했잖아! 지금 인조 혈관 봉합 부위에서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해! 이선우, 네가 환자를 죽인 거야!"

실제로 선우의 시야가 가려진 좌측 하단 봉합부에서 미세한 혈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야가 보이지 않으니 정확한 운침(運針)이 불가능했다.

선우는 이가 부러질 정도로 어금니를 악물었다.

'보이지 않는다면…… 감각으로 메운다.'

그는 눈에 의존하는 것을 포기했다. 손끝에 전해지는 0.05그램 단위의 미세한 장력, 그리고 수년간 수천 번의 수술을 거치며 뼈에 새겨진 공간 지각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동시에 오른눈으로 살아남은 우측 시야의 정보를 읽어 들여, 뇌 속에서 실시간으로 3D 입체 지도를 재구성했다.

"수아 너는 우측 어시스트에 집중해. 내 호흡에 맞춰서 실만 잡아줘."

"어? 어, 알았어!"

"봉합사 5-0 프롤린(Prolene) 추가."

선우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바늘을 밀어 넣었다.

스윽, 스윽.

그의 손놀림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빨라졌다. 시각을 잃은 대신, 그의 촉각과 청각, 그리고 신의 안목이 남겨놓은 잔상이 그의 손끝을 완벽하게 가이드하고 있었다.

"타이(Tie, 매듭)."

첫 번째 매듭이 지어졌다. 출혈이 멈췄다.

"두 번째 타이."

수아가 침을 삼키며 선우의 손놀림을 따라갔다. 그녀는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선우는 지금 보이지 않는 어둠과 싸우며 오직 감각만으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마지막 타이 완료. 클램프 해제합니다."

서서히 대동맥 클램프를 풀자, 인조 혈관을 통해 붉은 혈액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봉합 부위 어디에서도 단 한 방울의 누출도 없었다.

삐― 삐― 삐―.

불안정하게 요동치던 모니터의 심전도 곡선이 이내 규칙적이고 아름다운 파형을 그리며 안정되기 시작했다.

"하트 레이트 85회 정상. 혈압 110에 70으로 승압 확인되었습니다!"

마취과 의사의 감탄 섞인 외침이 수술실을 가득 채웠다.

수아는 주저앉을 뻔한 다리를 간신히 지탱하며 선우를 바라보았다. 선우는 메스를 내려놓고, 여전히 어둠에 잠긴 왼쪽 시야를 애써 숨기며 차갑게 박태경을 돌려세웠다.

"끝났다. 박태경 교수."

"이, 이럴 수가…… 이 상태에서 성공했다고?"

"이 환자의 수술 기록과 ST-9 투약 일지는 내가 확보했다. 이제 당신과 강진엽이 법정에서 어떻게 변명할지 기대하도록 하지."

선우는 피 묻은 장갑을 벗어 던지며 수술실을 나섰다. 그의 걸음걸이는 당당했으나, 그의 왼쪽 눈은 여전히 굳게 닫힌 어둠의 심연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

### 01:15:20 — 수술실 앞 복도

수술실 문이 열리자마자,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던 검은 양복의 사내들과 병원 행정처 직원들이 선우와 수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중심에는 이사장 강진엽의 직속 비서실장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붉은색 직인이 찍힌 공식 문서가 들려 있었다.

"이선우 교수님, 그리고 한수아 교수님."

비서실장의 목소리는 정중했으나 거부할 수 없는 압박감을 담고 있었다.

"방금 전 지하 아카이브 룸에서의 무단 난입 및 병원 보안 요원 폭행, 그리고 이사장실 직속 기밀문서 무단 반출 혐의가 확인되었습니다."

수아가 앞으로 나서려 했으나, 선우가 그녀의 앞을 한 팔로 막아섰다.

"그래서?"

"이사장님과 이사회의 긴급 결정입니다. 이선우 교수의 의사 직무를 이 시간부로 정지 처분합니다. 또한, 이번 사건에 대한 징계 및 처분을 결정하기 위해 '임시 주주총회 병합 이선우 의사 징계 청문회'를 소집합니다."

비서실장이 문서를 선우의 가슴팍에 들이밀었다.

"일시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일 뒤 오전 10시. 성강대학병원 메인 컨퍼런스 홀입니다. 만약 참석하지 않으실 경우, 모든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즉시 형사 고발 및 면허 취소 절차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선우는 문서를 받아들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지며 기괴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3일 뒤라……."

강진엽이 자신을 완전히 매장하기 위해 마지막 덫을 놓았다는 것을 선우는 잘 알고 있었다. 임시 주주총회와 병합된 청문회. 그것은 선우를 쫓아내는 동시에, 그가 가진 지분마저 무력화하려는 강진엽의 승부수였다.

하지만 선우의 머릿속 '의장부' 시스템은 전혀 다른 계산을 끝마치고 있었다.

[알림: 이민준 환아 수술 성공. 여론 신뢰도 포인트 15,000점 적립.] [확인: 현재 우호 지분율 12.5% 확보. 정보 권한 2단계 해금 완료.]

선우는 비서실장의 어깨를 툭툭 치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강진엽에게 전해라. 3일 뒤 청문회장은 내 장례식장이 아니라, 그 노인의 은퇴식이 될 거라고."

선우의 서늘한 선전포고를 끝으로, 복도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시력을 잃어가는 시한부 천재 외과의와 병원을 움켜쥔 거대 카르텔의 마지막 전면전이, 단 3일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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