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Tachycardia! 빈맥 발생! 혈압 급격히 저하! 80…… 60…… 45……!]

바이탈 모니터의 경고음이 수술실 전체를 찢어발길 듯 울려 퍼졌다.

"혈, 혈압이 안 잡힙니다! 대동맥 파열입니다! 이대로는 5분도 못 버팁니다!"

마취과 의사의 날카로운 비명이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웠다. 석션 팁으로 피를 빨아내도 소용없었다. 찢어진 대동맥 활(Aortic arch)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선혈이 박태경의 페이스 쉴드를 사정없이 적셨다.

"석션! 석션 더 세게 안 해?! 피가 안 보이니까 봉합을 못 하잖아!"

박태경의 목소리가 볼썽사납게 갈라졌다. 프롤렌 바늘을 쥔 그의 오른손은 마치 사시나무처럼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설픈 메스질 한 번이 불러온 대참사였다.

박태경은 철저히 간과하고 있었다. 2화에서 이선우가 우필용 의원의 관상동맥 우회술을 집도하며 차트에 명기해 두었던 치명적인 경고를 말이다.

['환자 우필용의 가계도 및 생체 조직 검사 결과, 극히 드문 유전성 결합 조직 취약성 확인. 미세 동맥벽의 급격한 부식 징후가 관찰되므로, 직계 비속의 혈관 박리 및 절개 시 통상적인 압력의 30% 이하로 극도로 섬세하게 접근할 것.']

그것은 우필용 의원 가문에 흐르는 유전적 결함이자, 선우가 남겨둔 완벽한 경고등이었다. 그러나 박태경은 선우가 작성한 수술 기록을 '낙하산 새끼의 잘난 척'이라 치부하며 읽어보지도 않은 채 휴지통에 처넣었다.

그 오만이 지금 우필용 의원의 어린 딸의 가슴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프롤렌…… 프롤렌 4-0 줘! 빨리!"

박태경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찢어진 혈관 조직에 바늘을 들이밀었다.

서걱.

바늘이 닿자마자 썩은 고목나무 껍질처럼 혈관벽이 뭉개지며 구멍이 더 크게 벌어졌다. 유전적으로 약화된 동맥벽은 일반적인 봉합사의 장력을 전혀 견디지 못했다. 건드릴수록 조직이 찢겨 나가는 지옥 같은 악순환이었다.

"아, 안 돼…… 왜 이래? 왜 혈관이 다 으스러지는 거야?!"

박태경의 눈동자가 극도의 공포로 뒤흔들렸다. 그의 머릿속에 자신의 의사 면허가 날아가고, 강진엽 이사장의 충견 자리에서 쫓겨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환상이 스쳤다.

유리창 너머 참관실은 아수라장이었다.

딸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모습을 본 우필용 의원이 미친 사람처럼 유리창을 두드리며 비명을 질렀다.

"내 딸 살려내! 이 살인마 자식들아! 당장 수술 멈춰!"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며 수술실 내부의 참상을 실시간으로 기록했다. 라이브 세션으로 전국에 중계되는 화면에는 피칠갑이 된 박태경의 멍청한 얼굴과 붉은 피로 물든 수술 포만이 가득했다. 참관실 한구석에 서 있던 강진엽 이사장의 얼굴은 이미 시체처럼 푸르스름하게 질려 있었다.

그 절망의 한복판.

수술실의 자동문이 거칠게 열렸다.

스르륵, 쾅!

녹색 수술 가운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두 손을 가슴 높이로 올린 채 들어서는 사내.

이선우였다.

그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이 모든 파멸적인 상황을 몇 수 앞서 내다보고 있었던 바둑기사처럼.

선우는 주저하지 않고 수술대로 걸어왔다. 그의 시선이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박태경에게 꽂혔다.

"비켜."

"이, 이선우……? 네가 왜 여기 들어와! 이건 내 수술이야! 나가!"

박태경이 악에 받쳐 소리쳤지만, 선우는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퍽!

선우가 거칠게 어깨로 박태경을 밀쳐내며 집도의 자리를 차지했다. 힘없이 밀려난 박태경은 혈액이 낭자한 바닥 위로 볼썽사납게 미끄러지며 나자빠졌다. 엉덩방아를 찧은 박태경이 헐떡이며 선우를 올려다보았지만, 선우는 이미 환자의 열린 흉강 내부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셀버 세이버(Cell Saver)¹) 흡인 속도 최대로 올려. 마취과, 에피네프린 1밀리그램 주입하고 볼륨 빨리 채워."

선우의 낮고 단호한 음성이 수술실의 공기를 단숨에 장악했다. 우왕좌왕하던 간호사들과 마취과 의사가 귀신에 홀린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이선우 선생! 대동맥 벽이 완전히 부식되어 있어서 봉합 침을 넣는 족족 찢어집니다! 이건 인공혈관으로 대체하기 전엔……."

마취과 의사가 절망적인 어조로 말했으나, 선우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신의 안목, 기동.'

뇌리의 심부에서 무언가 퓨즈가 끊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스파크가 일었다.

윽.

선우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양쪽 안구 안쪽에서 뜨거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휘몰아쳤다. 안구 후방의 미세혈관들이 터져 나가며 시신경을 갉아먹는 감각. 좌측 시야 외곽이 전보다 한층 더 짙은 암흑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시력 2%의 영구적 손실.

하지만 그 어둠의 대가로, 선우의 시야에 기적이 펼쳐졌다.

으스러진 대동맥 벽 주위로 선명한 형광색 빛무리들이 피어올랐다. 단순한 붉은 피의 바다가 아니었다. 찢어지고 뭉개진 조직 속에서, 아직 괴사하지 않고 유전적 변형을 견뎌내며 탄력을 유지하고 있는 '생존 혈관 조직'의 미세한 맥락들이 형광 초록색 선으로 뚜렷하게 도드라졌다.

박태경의 눈에는 그저 썩은 고기처럼 뭉개진 핏덩이로 보였겠지만, 선우의 안목에는 완벽한 봉합 경로가 삼차원 지도로 그려지고 있었다.

"프롤렌 5-0(Prolene 5-0)²). 아니, 6-0로 가져와."

"6-0요? 그건 너무 얇아서 이 압력을 견디지 못합니다!"

소아외과 수술에나 쓰이는 극미세 봉합사를 요구하자 스크럽 간호사가 경악했다.

"조직이 약할수록 실이 얇아야 마찰력을 줄이고 추가 파열을 막을 수 있어. 잔말 말고 줘."

선우의 서늘한 목소리에 간호사가 서둘러 바늘을 건넸다.

선우는 홀더를 쥐었다. 그의 손끝은 기계보다 더 정밀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단 1마이크로미터의 미세한 진동조차 허용하지 않는 천재의 손길.

'여기다.'

형광빛이 가리키는, 대동맥 외막의 가장 견고한 초록색 지점.

선우는 바늘을 미끄러뜨리듯 밀어 넣었다.

서걱, 하는 기분 나쁜 파열음은 없었다. 물 흐르듯 부드럽게 바늘이 조직을 통과했다.

"어……?"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박태경의 입에서 바보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찌를 때는 무부부 부서지던 혈관벽이, 선우의 메스와 바늘 끝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유연하게 결합하고 있었다.

그 순간, 참관실의 강진엽 이사장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이 수술실의 라이브 화면이 그대로 송출된다면, 박태경의 의료 사고와 함께 성강대학병원의 신뢰도는 나락으로 떨어질 터였다. 반면 이선우가 수술을 성공시킨다면 그의 병원 내 입지와 지분 영향력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송출 끊어. 당장 방송 송출 중단하라고 지시해!"

강진엽이 비서의 덜미를 잡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그 음모의 움직임을 이미 예측한 인물이 있었다.

수술실 한편에서 세컨 어시스트로 대기하고 있던 한수아였다. 그녀는 선우의 집도 시작과 동시에 수술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수술실 구석에 위치한 감시 제어반 콘솔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딸깍! 딸깍!

수아는 주저 없이 수동 물리 차단 스위치를 내리고 이중 시큐리티 키를 잠가 버렸다.

"한수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참관실의 스피커를 통해 강진엽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아는 참관실의 유리창 너머 강진엽을 차갑게 응시하며 인터컴 마이크를 켰다.

"이사장님, 본 수술은 VVIP 환자의 생명이 걸린 중대 사안이며, 사전에 체결된 프레스 콘퍼런스 약정에 따라 임의로 송출을 중단할 경우 대외 신인도에 치명적인 법적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의료 사고의 은폐 시도는 병원 이사회 전체의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수동 제어권을 고정합니다."

"이 건방진 년이……!"

강진엽이 유리를 깨부술 듯 주먹으로 쳐댔지만, 수동으로 락이 걸린 방송 송출 라인은 외부의 디지털 신호로는 절대 끊을 수 없었다.

전국의 의학 전문가들과 언론사, 그리고 실시간 중계를 지켜보던 수만 명의 대중의 눈앞에 이선우의 경이로운 봉합술이 고스란히 생중계되고 있었다.

선우의 손놀림에는 거침이 없었다.

바늘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뿜어져 나오던 시뻘건 혈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티스(Teeth)³. 타이고(Tie)⁴."

짧고 차가운 명령어만이 고요한 수술실을 채웠다.

선우는 신의 안목이 제시하는 형광색 매듭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내며, 찢어진 대동맥 활을 인공 편포(Dacron patch)⁵)로 덧대어 가며 완벽하게 재건해 나갔다. 혈관벽의 압력을 분산시키는 고도의 테크닉이었다.

마치 현악기를 연주하는 마에스트로처럼, 선우의 손가락 사이에서 봉합사가 우아한 궤적을 그리며 얽혀 들었다.

[BP 70…… 90…… 110…… 정상 범주 진입!] [Sinus Rhythm(동방결절 리듬) 복귀!]

바이탈 모니터의 붉은 경고등이 꺼지고, 청아하고 규칙적인 녹색 파형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혈압 안정화되었습니다! 출혈 완전히 잡혔습니다!"

마취과 의사가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수술실 내부의 의료진들 사이에서 안도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참관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있던 우필용 의원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을 바라보는 선우의 눈동자는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의 시야 가장자리는 이전보다 더 넓은 암흑으로 덮여 있었다. 왼쪽 눈의 시야각이 확연히 좁아진 것이 느껴졌다. 욱신거리는 두통이 관자놀이를 때렸지만, 선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의 안구 속에서 조용히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의장부(醫帳簿) 업데이트 완료] [VVIP 직계 비속 구명 성공 : 신뢰도 포인트 15,000점 획득] [성강대학병원 미발행 주식 지분율 2.1% 추가 확보 (누적 지분율 4.3%)] [적대 세력의 치명적 과실 현장 입증 성공]

선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시력을 내던진 대가는 확실하게 돌아왔다. 이사장 강진엽의 목줄을 쥘 사슬이 한층 더 단단해진 것이다.

선우는 천천히 메스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피로 붉게 물든 라텍스 장갑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 장갑이 박태경의 구두 앞코를 적셨다.

여전히 바닥에서 떨고 있던 박태경은 넋이 나간 얼굴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선우가 그에게 다가갔다. 구두 굽 소리가 수술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박태경의 바로 앞에 멈춰 선 선우는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박태경의 귓가에 대고, 오직 둘만 들을 수 있는 낮고 잔인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다음 청문회 주인공은 너야, 박태경."

박태경의 동공이 강하게 흔들렸다.

"네 목숨과 면허, 둘 다 내 손에 있으니까. 얌전히 기다려라."

선우가 몸을 일으켜 수술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열린 문틈 사이로, 참관실에서 분노와 공포로 휩싸인 채 자신을 노려보는 강진엽 이사장의 매서운 눈빛이 꽂혔다. 선우는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

1) 셀버 세이버(Cell Saver): 수술 중 발생하는 출혈을 모아 여과한 뒤 환자에게 다시 수혈해 주는 자가 수혈 장치. 2) 프롤렌 5-0(Prolene 5-0): 매우 미세한 혈관이나 얇은 조직 봉합에 사용되는 얇은 비흡수성 봉합사. 숫자가 클수록 실이 얇음. 3) 티스(Teeth): 조직을 잡을 때 사용하는 이빨 모양의 돌기가 있는 무치형 또는 유치형 포셉. 4) 타이고(Tie): 봉합사를 묶어 매듭을 짓는 행위. 5) 인공 편포(Dacron patch): 찢어지거나 약해진 혈관벽을 보강하기 위해 덧대는 인조 합성 섬유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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