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1시 42분, 제3수술실]
"손 떼고 뒤로 물러서십시오! 무단 침입 및 불법 의료 행위 혐의로 연행하겠습니다!"
보안요원의 거친 외침이 밀폐된 수술실의 공기를 무겁게 찢었다. 완강한 힘이 선우의 가슴팍과 어깨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짙은 네이비색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뿜어내는 거친 가죽 냄새와 땀 냄새가 멸균된 수술실의 알싸한 소독약 향을 사정없이 흐트러뜨렸다. 선우의 턱밑 3센티미터 앞까지 치고 들어온 삼단봉이 푸르스름한 형광등 불빛을 받아 차갑고 살벌하게 번뜩였다. 수술실 안의 공기가 일촉즉발의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다.
"당장 끌어내! 저 미친 새끼가 환자 몸에 무슨 짓을 더 하기 전에 당장 쫓아내란 말이다!"
박태경이 마스크 너머로 침을 튀기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핏발 선 눈동자에는 질투와 공포, 그리고 기괴한 안도감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선우가 이대로 수술실에서 끌려 나가기만 하면, 환자의 죽음은 온전히 '무면허 시술자의 난입으로 인한 사고'로 덮어씌울 수 있을 터였다. 비열한 계산이 그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선우는 자신을 억누르는 우악스러운 손길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깊고 고요한 심연 같았다. 오히려 그의 오른손 손가락 끝은 수술복 주머니 속, 민도현이 건네준 묵직한 USB의 모서리를 아주 천천히 쓸어내리고 있었다.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배후를 밝혀낼 열쇠이자, 이 거대한 카르텔을 무너뜨릴 첫 번째 뇌관. 선우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이봐요, 이선우 씨. 얌전히 따라 나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여기서 더 소란을 피우면 업무방해에 주거침입까지 추가됩니다."
보안 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선우의 팔을 비틀어 꺾으려 거칠게 힘을 주었다.
"그 손 치우시죠."
나직하지만 수술실 안의 모든 소음을 단숨에 제압하는 목소리가 철문을 넘어 울려 퍼졌다. 육중한 이중 철문이 스르륵 미끄러지듯 열리며, 한수아가 걸어 들어왔다. 단정하게 묶어 올린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등장에 수술실 내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한 수석? 네가 갑자기 여긴 왜 들어오는 거야? 지금 수술실이 난장판이 된 게 안 보여?"
박태경의 눈썹이 잔뜩 일그러졌다.
수아는 박태경을 완전히 본체만체하며, 선우의 팔을 붙잡고 있는 보안요원들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성강대학병원 보안 규정 제14조, 응급 환자의 생명이 위급하고 집도의의 정상적인 집도가 불가능한 초응급 상황 시, 현장 의료진의 재량에 따라 외부 전문의를 협진 초빙할 수 있다. 다들 이 규정 모르십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저놈은 5년 전에 면허가 정지된 범죄자야! 협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박태경이 삿대질을 하며 가로막았다.
"이선우 선생님의 면허는 지난달 보건복지부 행정처분 취소 소송 승소로 공식 복권되었습니다. 행정상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는 정식 전문의라는 뜻입니다."
수아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의사 신분증과 함께 개인 태블릿 PC를 꺼내 보안 팀장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원장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긴급 임시 협진 승인서'가 띄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 환자, 우필용 의원님의 실제 담당 주치의이자 어시스트인 제가 정식으로 협진을 요청한 분입니다. 제 신분과 직위를 걸고 보증한 분이니, 당장 그 더러운 손 치우세요."
보안요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주춤거렸다. 부원장의 외동딸이자 흉부외과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고 영향력 있는 수석 레지던트인 한수아의 권위는 보안팀으로서도 결코 가볍게 무시할 수 없는 무게였다. 보안 팀장은 삼단봉을 슬그머니 내리며 뒤로 물러섰다.
"한수아! 너 지금 제정신이야? 감히 내 수술실에 저런 살인마 새끼를 끌어들여 놓고 나한테 대들어?"
박태경이 참지 못하고 수아의 앞을 턱 가로막으며 으르렁거렸다. 목에 핏대가 시퍼렇게 돋아 있었다.
"살인마라뇨, 박 교수님. 단어를 똑바로 선택하셔야죠."
수아가 메스처럼 예리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박태경의 가슴을 찔렀다. "환자의 하대정맥 파열을 인지하고도 제대로 된 지혈 조치 없이 수술실을 이탈하려 하신 분이 누구신지, 여기 있는 어시스트들과 스크럽 간호사들이 전부 눈을 뜨고 목격했습니다. 만약 이대로 이선우 선생님을 쫓아내고 환자가 사망한다면, 그 사법적 책임과 언론의 비난은 집도 포기를 선언한 박 교수님께 고스란히 돌아갈 텐데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무, 뭐라고……?"
박태경의 얼굴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수아의 말은 뼈를 관통하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우필용 의원은 현 정권의 막강한 실세였다. 그의 사망 원인이 집도의의 집도 포기와 방치로 밝혀지는 순간, 자신의 의사 인생뿐만 아니라 목숨줄까지 날아갈 터였다. 박태경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선우는 두 사람의 치열한 대치를 가만히 지켜보며 어깨를 가볍게 털어 억류의 잔재를 털어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수술대 위에 누워 위태롭게 심전도 모니터를 흔들고 있는 우필용 의원의 개복 부위로 향해 있었다.
"시간이 없다. 한수아, 석션 준비해."
선우의 냉막한 명령이 떨어졌다. 수술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그의 지배하에 놓였다.
"예, 선생님."
수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흡인기를 손에 쥐고 수술대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
[오후 11시 47분, 제3수술실]
선우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망막 뒤쪽에서부터 찌릿한 고열과 함께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눈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이가 갈렸지만, 선우는 겉으로 단 한 줌의 신음도 흘리지 않았다. 그의 시야 가장자리가 서서히 타들어 가는 검은 안개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경고: '신의 안목' 활성화.] [안구 후방 혈류 차단 진행 중.] [시신경식(視神經蝕) 발생: 가시광선 인지 능력 2.0% 추가 영구 상실.] [현재 누적 시력 손상률: 2.0%]
눈앞이 한 차례 붉은 핏빛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극도로 가시화된 초고해상도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우필용 의원의 복강 내부가 마치 3D 홀로그램처럼 선우의 시야에 매핑되었다. 혈관의 미세한 흐름, 신경의 분포, 그리고 세포의 미세한 떨림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시퍼렇게 피가 고여 있는 후복막 공간 너머로, 찢어진 하대정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액이 형광색 푸른 빛으로 아른거렸다. 하지만 선우의 시선이 멈춘 곳은 찢어진 하대정맥이 아니었다.
'이건…… 단순한 파열이 아니군.'
하대정맥 바로 옆을 지나는 거대한 복부대동맥의 벽면이 기묘한 오렌지빛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은 괴사가 아니었다. 세포 조직이 스스로 붕괴하며 급격히 변성되는 부식 징후였다. 일반적인 메스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마른 가을 낙엽처럼 바스러질 정도로 약해진 상태였다.
[분석 완료: 미세 동맥벽 급격 부식 가문 유전성 조직 괴사 징후.] [상태: 대동맥 벽의 두께가 정상 대비 15% 이하로 감소.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5분 내 자연 파열 가능성 매우 높음.]
의장부의 데이터베이스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선우의 머릿속에 이식했다. 단순한 고혈압이나 노화로 인한 동맥경화가 아니었다. 유전적으로 혈관 벽의 콜라겐 합성이 결여되어 발생하는 극히 희귀한 동맥벽 약화 현상이었다.
만약 박태경이 평소처럼 거칠게 클램프를 물렸거나 정중선 개복술을 진행하며 대동맥 주변을 거칠게 압박했다면, 그 자리에서 대동맥이 문자 그대로 폭발하며 환자는 즉사했을 터였다. 박태경의 무지가 환자를 살릴 뻔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박태경 교수가 만진 부위 주변의 결합 조직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어. 핀셋과 나일론 5-0 가져와."
선우의 목소리는 한 치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기계음 같았다.
"무슨 소리야? 대동맥은 외관상 아무 문제도 없잖아! 지금 하대정맥 봉합하기도 바쁜데 거긴 왜 건드려! 일부러 수술을 지연시켜서 환자를 죽이려는 수작이지?"
뒤에서 박태경이 비명을 지르듯 딴지를 걸었다. 그의 평범한 눈동자로는 대동맥 벽의 미세한 부식 징후가 보일 리 만무했다.
"닥치고 보고나 있어. 네 그 무식함과 얄팍한 안목이 환자를 두 번 죽이는 꼴을 보기 싫다면."
선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갑게 일갈했다. 그는 메스를 고쳐 잡았다. 시야의 좌측 가장자리가 검은 장막에 가린 것처럼 완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선우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에 그려진 완벽한 궤적이 그의 손끝을 흐트러짐 없이 인도하고 있었다.
서것도 아니고, 스르륵 하는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선우의 손끝이 대동맥 외막을 미세하게 박리해 들어갔다. 아주 정교
하고도 신속한 박리였다. 0.1밀리미터 단위의 오차조차 허용하지 않는 메스 끝이 흐물거리는 대동맥 외막을 부드럽게 긁어냈다.
"성강 전산망 백업본…… 확실히 챙겨 뒀겠지."
선우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수술 필드에서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예?"
수아가 흡인기 팁을 조절하며 반문했다. 선우의 뜬금없는 혼잣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대답하는 대신 속으로 차갑게 읊조렸다. 복도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을 민도현과, 그가 쥔 USB 속 원본 데이터를 떠올렸다.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불법 임상시험의 증거.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위해선, 우선 이 무대에서 완벽한 권위를 증명해야 했다.
"더블 암 프롤렌 5-07) 수처 준비해."
"네, 여기 있습니다."
수아가 신속하게 실을 건넸다.
선우의 손놀림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바늘이 공중에서 짧은 호를 그리며 스쳐 지나갈 때마다, 무너지기 직전이던 대동맥 벽이 인공 패치와 함께 단단하게 맞물려 들어갔다. 마치 미리 짜인 정밀한 회로를 납땜하는 기계처럼 정교했다.
"미친…… 저 속도가 말이 돼?"
박태경의 턱관절이 딱딱 부딪히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단순히 빠른 것이 아니었다. 대동맥의 외막만을 얇게 떠서 주변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집도 기술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석좌교수들조차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겨우 흉내 낼 수 있는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5년 전, 병원에서 쫓겨나기 전의 이선우보다도 몇 단계는 더 진화해 있었다.
수아는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꼈다.
'괴물이다.'
선우의 무표정한 얼굴과 흔들림 없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환자에 대한 숭고한 인류애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완벽한 결과를 도출해 내겠다는 냉혹한 집념과, 자신을 억누르려 했던 적들을 단숨에 짓눌러 버리겠다는 오만한 독기였다. 그 압도적인 실력 앞에 수아는 미묘한 경외감과 함께 소름치도록 차가운 전율을 느꼈다.
***
[오전 12시 05분, 제3수술실]
"대동맥 보강 완료. 이어서 하대정맥 본 봉합 들어간다."
선우가 지혈 鉗子(포셉)를 든 손을 가볍게 꺾었다.
그의 좌측 시야는 이미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황반 주변부의 미세혈관들이 파열되며 발생한 흑점이 점차 중심부를 향해 침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안구 내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압박감과 통증이 뇌를 깨부술 것처럼 날카롭게 찔러왔다.
'겨우 이 정도 부하로 흔들릴 순 없다.'
선우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시력이 소실되는 속도보다, 이사회의 숨통을 끊어놓는 속도가 더 빠르면 그만이었다. 제 몸을 불살라 복수를 완성하겠다는 파괴적인 완벽주의가 그의 이성을 더욱 차갑게 벼려냈다.
"하대정맥 클램프 오프(Clamp-off)8) 합니다."
수아가 긴장된 목소리로 고했다.
스르륵.
혈관을 옥죄고 있던 금속 겸자가 풀리자, 거대한 혈류가 봉합된 하대정맥과 보강된 대동맥을 통과해 세차게 흘러갔다.
1초, 5초, 10초…….
단 한 방울의 혈액도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수술실을 가득 채웠던 붉은 피의 홍수가 마침내 멈추고, 환자의 복강 내부는 완벽하게 정돈된 평화를 되찾았다.
삐비빅, 삐비빅.
위태롭게 요동치던 심전도 모니터의 파형이 이내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사인파를 그리며 안정을 찾았다.
"혈압 회복됩니다! SBP 110에 70. 맥박 분당 78회, 안정적입니다!"
마취과 의사의 상기된 목소리가 수술실의 무거운 정적을 깨뜨렸다. 어시스트로 참여했던 레지던트들의 입에서 안도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수술 성공률 100%.] [우필용 의원의 생명력 수치 급격 상승: 안정기 진입.] [의장부 포인트 정산 중…….] [적립 신뢰도 포인트: 2,500p] [성강대학병원 미발행 지분율 0.5%가 귀하의 계정으로 강제 귀속됩니다.] [현재 총 점유 지분율: 0.62%]
선우의 시야 너머로 푸른색 시스템 메시지가 어지럽게 명멸했다. 0.62%.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병원의 실세이자 정계의 거물인 우필용을 살려냄으로써 이사회를 뒤흔들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선우는 피 묻은 라텍스 장갑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나머지 뒤처리는 한 수석이 마무리해."
"예,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수아는 허리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그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으나, 선우는 그녀의 시선을 담아두지 않았다.
그는 등을 돌려 수술실 출구로 걸어갔다. 주저앉아 넋을 잃고 있는 박태경의 앞을 지나칠 때, 선우는 아주 잠깐 발걸음을 멈추었다.
"박 교수."
"……어, 어?"
박태경이 귀신이라도 본 듯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들었다.
"다음엔 예습 좀 하고 들어오지. 대동맥 벽이 다 삭아가는 것도 모른 채 칼을 대다니, 명색이 과장이라는 자리가 아깝군."
"이, 이선우 너……!"
"아, 그리고."
선우가 박태경의 귓가에 대고 오직 그만이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낮게 소리쳤다. "내 동생 차트 조작한 놈들이 누구누구인지, 조만간 청문회장에서 하나씩 지목해 줄 테니까. 목 씻고 기다려."
박태경의 동공이 극도로 수축했다. 선우는 그의 반응을 비웃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수술실 문을 열고 유유히 걸어 나갔다.
***
[오전 12시 15분, 성강대학병원 본관 12층 이사장실]
어두컴컴한 이사장실 내부, 오직 벽면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의 빛만이 방 안을 차갑게 비추고 있었다. 화면에는 제3수술실의 CCTV 녹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이선우가 보안요원들을 가로막고, 신들린 솜씨로 대동맥을 복원한 뒤 유유히 사라지는 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죽 소파에 깊숙이 묻혀 앉아 있던 이사장 강진엽의 손가락이 템포를 맞추듯 소파 팔걸이를 툭, 툭, 두드렸다. 그의 눈빛은 굶주린 독사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이선우……."
강진엽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이름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5년 전, 완벽하게 매장했다고 믿었던 사냥개가 이빨을 더 날카롭게 갈고 돌아왔다. 그것도 정계의 거물인 우필용을 자기 손으로 살려내며, 병원 내부의 지분과 명분을 동시에 거머쥐려는 속셈으로 말이다. 그대로 둔다면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거대 카르텔의 심장부가 통째로 뜯겨 나갈 것임이 자명했다.
딸깍.
강진엽이 책상 위의 인터콤 버튼을 눌렀다.
"박태경 과장, 지금 당장 이사장실로 올라오라고 해."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잠시 후, 땀에 흠뻑 젖은 채 사시나무 떨듯 떠는 박태경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강진엽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나직하게 명령했다.
"박 과장."
"예, 예! 이사장님!"
"이선우의 의사 면허가 복권되었다고 하더군. 한수아가 정식으로 협진 서류를 꾸몄고."
"그, 그게…… 한 수석이 멋대로 원장 직인을 도용해서……!"
"닥쳐."
단 한 마디에 박태경의 숨통이 턱 막혔다. 강진엽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박태경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자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합법적인 수단으로는 그놈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우필용 의원이 깨어나는 순간, 병원 내부의 권력 구도는 요동칠 테니까."
강진엽이 서랍에서 낡은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툭 던졌다.
"이선우의 약점을 찾아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놈이 다시는 메스를 잡을 수 없게 만들어라. 필요하다면…… 그 잘난 손가락 마디라도 전부 부러뜨려 놓던가."
강진엽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네가 이선우 대신 그 구덩이에 묻히게 될 거다. 명심해."
박태경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잔혹한 밀명을 마주한 그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 7) 프롤렌(Prolene): 혈관 봉합에 주로 사용되는 비흡수성 합성 봉합사. 8) 클램프 오프(Clamp-off): 혈류 차단을 위해 혈관을 잠가 두었던 겸자(클램프)를 제거하여 혈류를 다시 흐르게 하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