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들어 가는 가죽 냄새가 좁은 차 안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스마트폰 액정 위로 붉은색 경고등이 명멸하는 순간, 지훈의 시선은 백미러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사내의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푸른빛을 띤 안구가 미세하게 떨렸으나,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과부하에 걸린 기계의 진동에 가까웠다.
"방금 그 목소리……."
서은우가 조심스럽게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았고, 단어들은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지훈 씨 본인의 목소리가 맞아요. 성대 진동수와 발음할 때의 기류 마찰음이 98% 일치해요. 과거의 당신이 이 모든 상황을 예견하고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렸다는 뜻인데, 이게 의학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기억을 소거하면서까지 이런 덫을 놓는 건 자해를 넘어선 광기예요."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스마트폰의 잔열을 느끼며, 그는 뇌리를 스치는 푸른색 잔상을 응시했다.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노이즈처럼 깜박이는 문자열이 보였다.
[User-designed 1092]
그 정체불명의 디버깅 태그가 영하의 성에처럼 지훈의 망막에 달라붙어 있었다. 타인이 이식한 저주라고 믿었던 범죄 설계도가 실은 자신의 손으로 새겨 넣은 낙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 의심이 싹을 틔우자, 가슴 언저리에서 차가운 통증이 밀려왔다. 자신이 설계한 덫에 걸려 제 발로 파멸을 향해 걸어가는 꼴이라니.
"아르카디아 요양원."
지훈이 그 이름을 나직하게 읊조렸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온기가 차가운 차창에 닿아 하얗게 흐려졌다 이내 사라졌다.
"거기가 종착지야."
***
사흘 뒤.
서울 북부의 침엽수림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가로등 조차 듬성듬성 박힌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침엽수림의 뾰족한 실루엣 너머로 성곽처럼 우뚝 솟은 아르카디아 요양원의 외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밤안개가 지면을 기어 다니는 요양원의 외관은 요양시설이라기보다는 삼엄한 감옥에 가까웠다. 사설 경비업체의 검은색 차량들이 10분 간격으로 외곽을 순찰하고 있었고, 정문에는 최첨단 안면 인식 스캐너가 설치되어 있었다.
"후방의 설비 제어실로 통하는 통로가 유일한 틈새예요."
은우가 차량 조수석에서 태블릿 PC를 두드리며 속삭였다. 긴장했는지 가느다란 손가락이 안경테 가운데를 가볍게 치켜올렸다.
"매주 목요일 밤마다 지하 보일러 및 공조 시스템 정기 점검이 있어요. 마침 오늘 밤이 그날이고, 위장 신분증과 작업 지시서는 확보해 뒀지만…… 경비원들의 눈을 피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예요. 백야회의 사설 경비들은 단순한 용역이 아니니까요."
지훈은 이미 은색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어깨의 탈구 통증은 서은우가 처방해 준 강력한 진통제 덕분에 둔탁한 무감각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여기서 기다려."
지훈이 차 문을 열며 말했다.
"지훈 씨,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설계도에 어긋나는 변수는 없어.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짐 같은 말을 남긴 채, 지훈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박혔다. 요양원 후방의 철망 펜스 앞에 멈춰 선 지훈은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의 스위치가 켜지는 느낌과 함께, 관자놀이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열이 시작되었다.
[범죄 설계도(The Blueprint) 가동] [주변 물리적 지형 및 전자기 흐름 분석 중……]
눈을 뜨자, 세상의 명도가 급격히 내려앉으며 푸른색 홀로그램 선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엑스레이 계측 프로토콜이 활성화되면서, 투터운 콘크리트 벽면 너머의 내부 구조가 투명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벽 속을 흐르는 고압 전류선, 환기구를 따라 순환하는 공기의 흐름, 그리고 지하 통제실의 배선 지도가 3차원 입체 그래픽으로 지훈의 시야에 펼쳐졌다.
'후방 통제실의 메인 배전반은 지하 1층 통로 우측 벽면에 위치.'
지훈은 설계도가 가리키는 푸른색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철망의 볼트가 느슨해진 틈새를 찾아내 가볍게 몸을 넘겼다. 발소리는 밤안개 속에 묻혀 단 한 데시벨의 소음도 내지 않았다.
통제실 배전반 후면에 도달한 지훈은 기계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벽면에 설치된 보조 시스템 콘솔의 액정이 희미한 녹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지훈은 은우가 건네준 해킹 칩을 콘솔의 USB 포트에 밀어 넣었다.
[내부 데이터 트래픽 우회 성공.] [요양원 VIP 거주구역 시스템 접근 중……]
화면에 복잡한 데이터 스트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지훈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요양원의 실시간 입원 환자 수용 한계 수치에 머물렀다.
'허가된 VIP 정원은 50명. 하지만 현재 활성화된 생체 신호 세서 리스트는 51개.'
수치가 조작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서류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 환자로 이 시설 깊은 곳에 은닉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지훈의 눈동자가 데이터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암호화된 데이터 블록을 설계도의 역추적 연산으로 해체해 나갔다. 뇌 세포가 소멸하는 특유의 찌릿한 통증이 정수리를 강타했다. 과거의 기억 한 조각이 또다시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감각이 느껴졌지만, 지훈은 이를 악물고 연산을 밀어붙였다.
마침내 드러난 숨겨진 차트 정보.
[환자 코드: VIP-0917] [실명: 강민우 (가명 등록)] [상태: 중증 인지 장애 및 기억 억제 임상 실험 대상]
'강민우.'
그 이름을 보는 순간, 가슴 가득 원인을 알 수 없는 격렬한 통증이 솟구쳤다. 뇌 속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분노가 피어올랐다. 마치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난도질당한 듯한 더러운 기분이었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강민우의 데이터 프로필을 은밀히 개인 외장 하드로 복사했다.
그때였다.
복도 끝에서 구두굽이 대리석 바닥을 찍어 내리는 서늘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정교하고 규칙적인 발소리.
"이번 주 아르카디아 지하 실험실의 약물 투여량 보고서는 백선우 대표님께 직접 전달되었다."
가느다랗고 신경질적인 목소리. 민수현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백야회 소속의 사설 경비원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소형 열화상 감지기와 고주파 센서가 들려 있었다.
"벽면의 미세 진동 센서가 오작동을 일으켰다는데, 쥐새끼 한 마리라도 나온 건가?"
"단순한 전력 서지 현상으로 파악됩니다만, 방역 및 보안 점검을 다시 실시하겠습니다."
발소리가 기계실 방향으로 점점 가까워졌다. 거리 20미터.
탈출구는 없었다. 기계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그들의 시야에 정면으로 노출될 판이었다. 지훈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려 하자, 설계도가 실시간으로 경고음을 울렸다.
[경고: 심박수 상승으로 인한 신체 활동 흔적 감지율 40% 증가]
'이성을 잃지 마라. 냉정해져야 한다.'
지훈은 근처 철제 캐비닛 위에 놓인 청소부 복색의 덧가운을 빠르게 걸치고, 분무기와 수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기계실을 나와 복도 벽면에 걸린 대형 유화 앞으로 걸어갔다.
그림은 피카소풍의 기괴한 추상화였다. 푸른색과 검은색이 뒤엉킨 캔버스는 마치 지금 자신의 뇌 속을 표현한 것 같았다. 지훈은 그림의 모서리를 수건으로 천천히, 그리고 아주 정밀하게 닦기 시작했다.
복도 모퉁이를 돌어선 민수현과 경비원들의 시선이 지훈의 등을 향해 꽂혔다.
차가운 고주파 열 센서의 붉은 레이저 포인터가 지훈의 척추 라인을 따라 스르륵 올라왔다. 극도의 긴장감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지훈의 눈앞에 다시 한 번 푸른색의 3D 홀로그램 사각지대 맵이 펼쳐졌다.
[무인 감시 카메라 'A-3' 회전 주기: 4.2초] [열 센서 'T-9'의 굴절 오차 범위: 벽면으로부터 15도 각도] [현재 위장 상태의 신뢰도: 87%]
지훈은 설계도가 계산해 낸 완벽한 사각지대의 궤적에 몸을 맞췄다. 어깨의 각도를 미세하게 비틀어 열 센서의 레이저가 체온이 낮은 작업복 가운의 두꺼운 주머니 안감만을 비추도록 유도했다. 그의 손놀림은 청소 작업에 완전히 몰입한 노련한 인부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민수현이 지훈의 등 뒤 3미터 거리에 멈춰 섰다.
서늘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민수현의 왼쪽 손목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습관적으로 커프스단추를 만지작거리며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어이, 청소부."
지훈은 동작을 멈추지 않고, 고개만 비스듬히 숙였다. 목소리를 낮추어 둔탁한 노인의 어조를 흉내 냈다.
"예, 나리. 그림틀에 먼지가 앉아서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민수현의 차가운 시선이 지훈의 목덜미를 훑었다. 지훈의 피부 위로 돋아난 솜털이 그의 살기 어린 시선을 감지하고 꼿꼿이 섰다. 하지만 설계도의 통제하에 있는 지훈의 호흡은 단 1회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지하 1층 구역은 얼른 비워. 오늘 밤은 귀한 손님이 오시니까."
"알겠습니다요."
민수현이 경비원들을 거느리고 반대편 통로로 걸어갔다. 구두 소리가 멀어지는 순간까지도 지훈은 그림을 닦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지훈은 비로소 숨을 내쉬었다.
압도적인 은밀함. 자해형 덫의 설계자였던 과거의 자신이 심어놓은 이 무시무시한 이성적 계측 능력은, 그를 유령으로 만들어 궁지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지훈은 수건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지하 1층 실험 구역으로 통하는 육중한 강철 문 앞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그곳은 일반 요양원의 구역이 아니었다. 백야회의 심장부이자, 온갖 불법 기억 조작 수술과 인체 실험이 자행되는 아르카디아의 진짜 민낯이 숨겨진 곳이었다.
강철 문 옆에 부착된 도어록 콘솔에 복사한 터치 패널 우회 칩을 접촉시켰다.
삐빅.
[보안 등급: 1등급 승인 대기 중……]
녹색 신호등이 켜지며 문이 열리려던 찰나, 도어록 콘솔의 화면이 돌연 핏빛처럼 붉은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천장에 설치된 보조 스피커에서 기계적이고 차가운 여성 안내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비인가 단말기 접속 감지.] [수동 리셋 승인 코드를 입력하십시오.] [제한 시간 20초. 입력 실패 시 아르카디아 요양원 전체 구역이 록다운되며, 사설 타격대가 즉각 현장에 투입됩니다.]
[20…… 19……]
지훈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예상치 못한 시스템의 자체 방어 프로토콜이었다. 머릿속의 설계도가 미친 듯이 경고용 붉은색 홀로그램을 흩뿌리며 그의 뇌세포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18…… 17……]
사방에서 경보음이 울리기 직전의 폭풍전야 같은 침묵 속에서, 지훈의 손가락이 피를 흘리는 도어록 콘솔 위에서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