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을 찢어발길 듯한 백색광이 쏟아졌다.
수십 개의 강력한 LED 손전등이 내뿜는 빛줄기는 천장의 어두운 철골 틈새를 샅샅이 파헤쳤다. H-beam의 좁은 틈새에 엎드린 지훈의 뺨 위로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차가운 불빛을 받아 은빛으로 번뜩였다.
"잡아! 천장 위에 쥐새끼가 있다!"
악에 받친 외침이 밀폐된 선박 수리소 안을 어지럽게 울렸다. 쇠파이프가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마찰음과 거친 군화 소리가 수리소 내부의 가설대 위로 쏟아져 들어왔다. 지훈은 이를 악물었다. 왼쪽 어깨 관절이 어긋난 부위에서 타 들어가는 듯한 통증이 척수를 타고 뇌리까지 뻗쳐 올라왔다. 신체 기능은 이미 정상치의 절반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부근이 욱신거렸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병적으로 창백한 얼굴의 민수현이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녀석의 왼손이 버릇처럼 소매 가장자리를 더듬고 있었다. 은색 커프스단추를 시계 방향으로 두 번, 반시계 방향으로 한 번. 초조함과 살의가 극도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저 유일무이한 운동 틱장애.
지훈의 감각이 극도로 좁아지며 주변의 소음이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먹먹해졌다. 대신 눈앞의 시야가 급격히 차가운 청색조로 물들기 시작했다.
'범죄 설계도'의 기동이었다.
머릿속에서 가공할 속도로 연산이 시작되었다. 망막 위로 푸른색 3D 선들이 수리소 전체의 구조를 징수 대장처럼 꼼꼼하게 도식화해 나갔다. 선박 수리용 임시 가설대와 천장을 지탱하는 H-beam의 연결 고리들이 격자무늬로 쪼개졌다. 구조물들의 중량, 지지력, 그리고 한계 하중이 실시간으로 계산되어 숫자로 떠올랐다.
그 푸른색 홀로그램의 오른쪽 아래 구석, 정렬이 맞지 않는 노이즈처럼 미세하게 깜박이는 녹색 글자가 보였다.
[User-designed 1092]
매번 연산을 돌릴 때마다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디버깅 태그. 마치 이 거대한 인지 계측 시스템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이식된 것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차가운 녹색 빛이 지훈의 뇌리 깊은 곳을 자극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비밀을 탐구할 시간이 없었다.
밑에서 가설대를 타고 기어오르는 사내들의 수만 해도 서른 명이 넘었다. 그들이 디디고 선 철제 아시바 가설대는 노후화된 공장의 벽면에 앙카 볼트 몇 개로 아슬아슬하게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연산 완료: 임시 가설대 한계 하중 임계치 94.2%] [구조적 취약점 3개소 감지]
지훈의 시선이 가설대 하단, 벽면과 접합된 세 군데의 녹이 슨 지지 볼트로 향했다. 저곳이 구조 전체를 지탱하는 척추였다.
"거기서 얌전히 기어 내려와라, 쥐새끼야!"
민수현의 부하 하나가 가설대 최상단에 발을 디디며 사냥개처럼 짖어댔다.
지훈은 대답 대신 몸을 굴렸다. H-beam의 좁은 날개 위를 평형수처럼 미끄러지며, 탈구된 왼쪽 어깨를 바닥에 강하게 부딪쳤다.
우득!
뼈가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며 끔찍한 파열음이 폐부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입술을 깨물어 막았다. 비릿한 피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지훈은 오른손으로 천장 크레인에 연결되어 있던 굵은 쇠사슬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무게를 실어 허공으로 도약했다.
타깃은 벽면의 첫 번째 지지 볼트였다. 추락하는 운동 에너지를 고스란히 실어, 군화 굽으로 앙카 볼트의 머리를 정확하게 걷어찼다.
깡-!
벼락같은 쇳소리와 함께 첫 번째 볼트가 떨어져 나갔다. 구조물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가설대 전체가 비명을 지르듯 뒤틀렸다. 삼십여 명의 사내들이 서 있던 가설대 판판이 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 어어?!"
당황한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지훈은 사슬의 탄성을 이용해 반대편 벽으로 몸을 날렸다.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볼트를 향해 쇠사슬 끝의 무거운 쇠갈고리를 연달아 후려쳤다.
쾅! 쾅!
정확하게 연산된 힘의 궤적이 약해진 결합부에 내리꽂혔다. 마지막 볼트가 끊어지는 순간, 삼십여 명이 올라서 있던 거대한 가설대 전체가 도미노처럼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으아아악!"
"떨어진다! 피해!"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가설대의 철판들이 서로를 짓누르며 붕괴했다. 삼십여 명의 사내들이 무기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붕괴하는 철골의 중심부로 휩쓸려 내려갔다. 그들이 딛고 있던 발판이 그대로 그들을 가두는 거대한 덫이 된 꼴이었다. 무거운 철제 파이프들이 바닥으로 쏟아지며 자욱한 회색 흙먼지와 고철 가루가 수리소 내부를 가득 메웠다.
단 한 번의 물리적 타격과 치밀한 하중 계산이 만들어낸, 폭력 없는 완벽한 제압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민수현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먼지 너머로 들려왔다. 그는 무너지는 철골 파이프 피하느라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의 왼쪽 손목 커프스단추가 먼지 구덩이 속에서 볼품없이 흙때를 뒤집어썼다.
지훈은 흙먼지가 가득한 공기를 뚫고 바닥으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의 손에는 민수현이 바닥에 쓰러지며 떨어뜨린, 낡고 묵직한 가죽 수첩이 들려 있었다.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지훈은 깨진 창문 틈새로 몸을 던져 수리소 밖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
수리소 뒤편의 외진 골목길. 전조등을 끈 채 시동만 걸려 있는 어두운 감청색 세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훈이 뒷좌석 문을 열고 몸을 들이밀자마자, 차는 비명 같은 마찰음을 내며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운전대를 잡은 서은우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백미러에 비쳤다. 그녀는 극도로 긴장했는지 연신 안경테 중앙을 손가락 끝으로 치켜올리고 있었다.
"다친 곳은요?"
은우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평소의 차분하고 빠른 말투와 달리 숨이 가빴다.
"어깨가 좀 안 좋습니다. 그 외엔 괜찮습니다."
지훈은 덤덤하게 대답하며 가죽 수첩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은우는 인적 드문 고가도로 밑 그늘에 차를 급히 세웠다. 그녀는 조수석에서 구급상자를 꺼내 뒷좌석으로 몸을 돌렸다. 소독약 냄새가 좁은 차 안의 차가운 정적을 가득 채웠다. 은우가 거즈에 소독약을 묻혀 지훈의 이마에 난 깊은 상처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차가운 약물이 닿자 지훈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참아요. 꿰매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병원에 갈 수는 없으니까."
"고맙습니다…… 서 박사님."
소독약을 바르던 은우의 손길이 그 순간 뚝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지훈은 그녀의 반응이 의아해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은우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이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가에 붉은 기가 빠르게 번져 나갔다.
"방금…… 뭐라고 불렀어요?"
"서 박사님…… 아니었습니까?"
지훈은 자신의 기억 속을 더듬었다. 그녀가 정신분석의라는 사실, 자신을 돕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한 지식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부르던 친근한 호칭, 그녀와 함께 나누었던 사소한 사담의 기억들은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머릿속의 '범죄 설계도'를 무리하게 구동한 대가였다. 시스템이 연산을 마칠 때마다 그의 뇌세포 한구석에 존재하던 소중한 기억의 파편들이 무작위로 지워진다. 이번에는 은우와의 벽을 허물어뜨리던 사소하고 도덕적인 기억들이 통째로 뜯겨 나간 것이 분명했다.
은우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안경을 벗어 거칠게 눈가를 훔쳐내는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맞아요. 서 박사. 그렇게 부르는 게 맞죠, 지금은."
그녀는 억지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다시 소독약을 묻힌 거즈를 지훈의 이마에 대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끝은 아까보다 훨씬 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지훈은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 감정조차 이성적인 논리 회로에 의해 빠르게 가라앉았다.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차가운 생존 본능과 배후를 향한 추적 의지만이 남았다.
"이걸 분석해야 합니다."
지훈이 무릎 위의 가죽 수첩을 가리켰다.
"민수현의 수첩이에요? 그 자가 쉽게 흘릴 인물이 아닐 텐데."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수첩,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닙니다."
지훈은 수첩의 가죽 표지를 손끝으로 쓸었다. 일반적인 가죽의 질감이 아니었다. 표지 내부가 묘하게 무겁고 빳빳했다.
지훈은 눈을 감고 다시 한번 뇌 속의 '범죄 설계도'를 가동했다. 이번에는 외부 공간이 아닌, 손끝에 닿은 물질의 내부를 연산하기 시작했다. 푸른색 홀로그램 선들이 가죽 수첩의 단면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가죽 표지 내부, 미세하게 코팅된 얇은 자성 물질이 감지되었다. 무작위로 배열된 것처럼 보이는 미세한 자철석 입자들이 특정한 패턴을 그리며 정렬되어 있었다.
'자성 기록 매체…….'
과거의 기술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아날로그적이기에 디지털 수사망에 걸리지 않는 완벽한 은폐 방식이었다. 지훈은 스마트폰의 자이로 센서와 지자기 센서를 수첩 표면에 가까이 가져갔다.
스마트폰 화면에 노이즈가 발생하더니, 설계도 시스템이 수첩 표면의 자성 패턴을 실시간으로 읽어 들이기 시작했다. 푸른색 인터페이스가 맹렬하게 점멸하며 데이터를 디코딩해 나갔다.
[데이터 복원 중…… 12%…… 45%…… 89%] [복원 완료. 음성 데이터 추출 성공.]
스마트폰의 스피커에서 치직거리는 백색 소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내, 지훈의 귀에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변조되었지만, 특유의 호흡과 발음 습관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목소리였다.
강지훈 본인의 목소리였다.
- "이 음성을 듣고 있다는 건, 네가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린 후겠지."
지훈의 손가락이 굳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은우 역시 숨을 멈춘 채 화면을 바라보았다.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는 서늘할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 "이 설계도는 상실의 무덤 위에 세워진 네 유일한 구원이다. 의심하지 마라. 네가 괴물이 된 것이 아니라,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덫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뿐이니까."
과거의 자신, 즉 'User 1092'가 남겨놓은 음성이었다. 백야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스스로 기억을 지우고 자신을 살인 용의자로 만드는 극단적인 '자해형 덫'을 설계했던 과거의 강지훈.
- "기억해라. 민수현은 꼬리에 불과하다. 뱀의 머리는 네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곳, 그 심연 속에 꽈리를 틀고 있다. 진짜 목적지는……."
음성이 갑자기 거친 노이즈와 함께 끊어질 듯 흔들렸다. 지훈은 스마트폰을 꽉 쥐었다. 거울처럼 매끄러운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눈동자에는 푸른색 설계도의 빛이 감돌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더 이상 인간의 온기를 품고 있지 않았다. 마치 껍데기만 남은 기계처럼 차갑고 건조했다.
과거의 자신이 설계한 이 가학적인 시련을 통과할 때마다, 자신은 과연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진짜 괴물이 되어 파멸할 것인가.
스피커에서 마지막 단어가 흘러나왔다.
- "……아르카디아 요양원."
단어가 완성되는 순간, 스마트폰 화면 전체가 붉은색 경고등으로 물들었다.
[경고: 데이터 소스 영구 폐기 프로토콜 활성화.] [메모리 손상율 100%]
수첩 내부의 자성 입자들이 미세한 전류에 의해 완전히 흐트러지며 가죽 표면이 미미하게 뜨거워졌다. 단 한 번의 재생만 허용된 일회성 보안 장치였다. 음성 드라이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훈은 타들어 가는 수첩의 냄새를 맡으며 어둠을 응시했다.
아르카디아 요양원.
백야회의 심장부이자,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기억의 조각이 봉인된 거대한 지옥. 그곳이 자신을 기다리는 진짜 덫의 종착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