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철문이 닫히며 남긴 묵직한 진동이 취조실 바닥을 타고 올라와 발끝을 흔들었다. 공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외등은 미세한 고주파 이음을 내며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냈다.

지훈은 고개를 숙인 채 손목에 닿아 있는 플라스틱 마스터키의 감각에 신경을 집중했다. 수갑의 톱니바퀴가 거칠게 살을 파고들어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통증보다 손끝의 감각이 더 선명했다. 한태성이 남기고 간 그 얇은 플라스틱 카드는 그의 손목 안쪽에서 차가운 구원의 밧줄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문밖에서 태성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렸다.

"감시 카메라 상시 확인하고, 면회는 일절 금지한다. 서장님 지시 떨어질 때까지 독방에 쳐넣어."

"예, 알겠습니다!"

부하들의 절도 있는 대답과 함께 복도를 따라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취조실의 먼지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뇌 세포를 자극했다.

태성이 지시한 '감시 강화'는 역설적으로 수사 1과 동료들에게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라는 지시였다. 그 매뉴얼의 틈새를 지훈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서울 서부경찰서 수사 1과의 감시 카메라 순환 주기는 정확히 45초마다 한 번씩 사각지대를 만든다. 특히 취조실 내부의 동축 케이블 신호가 제어실의 모니터로 전송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1.2초의 딜레이가 있었다.

지훈의 두 눈이 서서히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뇌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열감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시야가 사각형의 격자선으로 쪼개지며, 방 안의 모든 물리적 구조가 3D 홀로그램의 형태로 뇌리에 박혔다.

[범죄 설계도(The Blueprint) 가동] - 대상 구역: 서부경찰서 지하 취조실 및 복도 - 장애물: 철제 수갑(K-type), 디지털 도어락, 복도 감시 카메라 3기 - 탈출 경로 연산 중……

머릿속에서 푸른 선들이 수갑의 내부 스프링 구조를 역추적했다. 태성이 채운 수갑은 겉보기엔 단단히 조여진 듯했으나, 고정 핀의 세 번째 기어가 맞물리지 않은 채 걸쳐져 있었다. 태성이 일부러 남겨둔 틈새였다.

지훈은 손가락 끝을 교묘하게 비틀어 수갑 안쪽에 끼워진 마스터키의 모서리를 고정 핀의 틈새로 밀어 넣었다. 왼쪽 어깨가 탈구된 탓에 팔을 조금만 움직여도 뼈가 어긋나는 비명이 척수를 타고 올라왔다.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입술 사이로 비린 피 맛이 번졌지만,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팅.

미세한 쇠붙이 마찰음과 함께 수갑의 오른쪽 고리가 허무하게 풀렸다. 지훈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풀린 쇠사슬을 왼손으로 움켜잡았다. 이어서 왼쪽 수갑마저 마스터키의 얇은 엣지로 갈퀴를 밀어내며 완벽하게 해제했다.

자유로워진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목에는 시퍼런 피멍과 함께 쇠독이 올라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지훈은 취조실 문으로 다가갔다. 디지털 도어락의 리더기 옆으로 마스터키 카드를 슬며시 밀어 넣었다. 마그네틱 선이 접촉면에 닿는 순간, 띡 하는 가벼운 비프음과 함께 잠금장치가 풀렸다.

그는 문을 아주 미세하게 열고 바깥 동태를 살폈다. 복도는 이상할 정도로 적막했다. 형광등 하나가 수명이 다했는지 깜빡이며 바닥에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보안 센서 작동 순서 무력화 경로 탐색] - 1구역 카메라 회전각: 좌향 15도 (잔여 시간 8초) - 2구역 열감지 센서: 한태성의 조작으로 일시적 테스트 모드 전환됨 (감도 20% 저하)

지훈은 소리 없이 복도로 몸을 던졌다. 동료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완벽한 보안의 공백이었다. 그들은 지훈을 쫓는 척하면서도,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최적의 통로를 열어두고 있었다.

그는 고양이가 담장을 넘듯 유연하고 신속하게 지하 복도를 가로질렀다. 가쁜 숨소리조차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극도로 제어했다.

마침내 지하 2층의 가장 안쪽, 두꺼운 철문으로 가로막힌 '압수물 창고' 앞에 도달했다. 먼지가 자욱하게 가라앉은 문손잡이 위로 태성이 알려준 구역 표시가 보였다.

[B-14]

마스터키를 대자 육중한 철문이 스르륵 열렸다. 창고 내부는 서늘했고, 오래된 종이 상자와 쇠붙이 냄새가 뒤섞인 특유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지훈은 소리 없이 문을 닫고 내부로 진입했다.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서 지훈의 눈은 다시 한번 푸른색 궤적을 쫓았다. 선반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압수물 상자들 사이에서, 유독 먼지가 덜 쌓인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상자 표면에는 붉은색 마커로 'B-14'라고 갈겨써 있었다.

지훈은 지체 없이 상자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그의 전임 수사관들이 수집했던 사건의 단서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 혈흔이 묻은 헝겊, 그리고 그 가장 깊숙한 곳에 낡은 갈색 가죽 수첩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수첩을 꺼내 들었다. 손끝에 닿는 가죽의 질감이 차갑고 거칠었다. 한 장 한 장 넘기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정교한 필체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펼친 순간, 지훈의 손가락이 멈춰 섰다.

페이지 우측 하단, 날카롭고 삐침이 강한 서명 옆에 적힌 이름.

[민수현]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지훈의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분노와 적대감이 솟구쳤다. 동시에 머릿속을 강하게 내리치는 듯한 둔탁한 통증이 발생했다.

"으윽……!"

지훈은 급히 수첩을 움켜쥐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뇌세포가 하나씩 뜯겨 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열이 두개골 내부를 채웠다.

[범죄 설계도(The Blueprint) - 연산 대가 청구] - 핵심 단서 '민수현' 분석 완료. - 시스템 기동에 따른 프로토콜 활성화. - 기억 삭제 프로세스 개시……

머릿속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던 어느 날의 풍경이 보였다. 낡았지만 깨끗한 고아원의 마당. 아이들이 그의 소매자락을 붙잡고 매달려 있었다. 그들의 맑은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형사 아저씨, 다음에 올 때도 맛있는 거 사 와야 해요!' '약속한 거다? 진짜 꼭 와야 해!'

그 아이들의 얼굴, 그들의 해맑은 노랫소리, 자신이 그들을 지켜주겠노라 굳게 맹세했던 가슴 벅찬 온도가 머릿속에서 모자이크처럼 잘게 쪼개지기 시작했다.

"안 돼……!"

지훈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냉혹한 시스템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지이익- 하는 고주파 소음으로 변하더니, 이내 완전한 공백으로 분해되어 사라졌다. 그들이 불렀던 노랫소리의 멜로디도, 아이들의 이름도, 그들의 얼굴조차 하얗게 지워졌다.

남은 것은 오직 차가운 논리와 껍데기뿐인 지식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후원하고 지키려 했다는 사실 자체는 머리로 알겠지만,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한 도덕적 인과관계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지훈의 눈빛이 한층 더 서늘하고 무감각하게 가라앉았다. 그의 얼굴에서 인간적인 고통의 흔적이 씻겨 내려가고, 오직 목표만을 추구하는 사냥개의 냉혹함이 자리 잡았다.

"민수현……."

지훈은 수첩에 적힌 비정형 암호 코드를 노려보았다. 숫자의 배열과 알파벳의 기묘한 조합. 하지만 기억이 지워진 그의 뇌는 오히려 더 완벽하고 정밀한 연산 기계가 되어 있었다.

[암호 해독 완료] - 좌표: 인천 만석동 42-12 (폐선박 수리소) - 대상: 백야회 하청 지지 및 자금 세탁 처

지훈은 수첩을 품에 넣고 창고를 빠져나왔다. 경찰서의 경비 시스템은 여전히 그의 탈출을 인지하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었다. 동료들이 열어둔 완벽한 탈출로를 통해, 지훈은 밤의 어둠 속으로 유령처럼 스며들었다.

***

인천 만석동의 밤은 깊고 비릿했다.

검붉은 바닷물이 썩은 목재와 철골에 부딪히며 음산한 소리를 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밤바람은 끈적한 소금기와 기름 냄새를 머금고 있어 호흡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지훈은 검은 가죽 재킷의 깃을 올린 채 폐선박 수리소의 외곽 울타리를 넘었다. 왼쪽 어깨의 탈구된 관절이 매 순간 비명을 질렀지만, 신경 차단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수리소 내부에서 희미한 불빛과 함께 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훈은 소리 없이 녹슨 철제 계단을 타고 올라가 천장 부근의 굵은 H-beam(철제 보) 위로 몸을 얹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천장 위는 아래의 동태를 살피기에 가장 완벽한 감시탑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리소 중앙, 커다란 가설 전등 아래에 둥근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주변으로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몰려 있었다. 도박판이었다. 칩이 오가고 거액의 수표가 펄럭이는 혼란스러운 현장.

그 중심에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가느다란 체구에 맞춤 제작한 듯한 값비싼 수트를 입은 사내. 그의 얼굴은 병적으로 창백했고, 입가에는 조소 섞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가 바로 백야회의 서열 2인자이자, 지훈의 기억을 송두리째 뒤흔든 장본인 중 하나인 민수현이었다.

"어이, 패 똑바로 돌려. 밑장 빼다 걸리면 손목아지만 날아가는 게 아니라고 낄낄."

민수현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칠판을 긁는 듯한 불쾌한 마찰음을 담고 있었다.

지훈은 천장의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머릿속의 '범죄 설계도'가 민수현의 신체 궤적을 징수 대장처럼 기록하기 시작했다.

[대상: 민수현] - 신체 특징: 우측 어깨의 비대칭, 왼쪽 손목의 미세한 떨림 포착. - 행동 패턴 분석 중……

민수현은 상대방이 패를 쥐고 고민하는 순간이나, 자신이 거짓 진술을 구상하듯 눈동자를 굴릴 때마다 기묘한 버릇을 보였다. 그는 왼쪽 손목에 채워진 은색 커프스단추를 만지작거리며 그것을 시계 방향으로 두 번, 반시계 방향으로 한 번 돌렸다.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었다. 극도의 불안감이나 초조함을 감추기 위해 뇌가 지시하는 미세한 운동 틱 장애였다.

'왼쪽 손목의 커프스단추…….'

지훈은 그 움직임을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켰다. 훗날 그를 심문실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저 틱 장애는 민수현의 논리적 알리바이를 무너뜨릴 가장 치명적인 무기가 될 터였다.

그때, 민수현의 뒤에 서 있던 덩치 큰 부하 하나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몸을 돌렸다. 그의 거대한 덩치가 선박 보강용으로 세워둔 두꺼운 철판의 모서리를 툭 건드렸다.

아차 하는 순간도 없었다.

깡-! 콰아앙-!

밀폐된 수리소 내부를 찢는 듯한 날카롭고 웅장한 굉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철판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내는 진동은 천장의 H-beam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어떤 새끼야?!"

민수현의 낄낄거리던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멈췄다. 그의 가느다란 눈매가 독사처럼 매섭게 찢어지며 천장을 향했다.

"위다! 천장 위에 쥐새끼가 있어!"

부하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주머니와 품속에서 강력한 LED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눈이 멀 것 같은 수십 개의 백색광 줄기가 어둠으로 가득했던 천장 철골을 향해 일제히 쏘아 올려졌다.

지훈이 엎드려 있던 좁은 H-beam 위로 한 치의 사각지대도 없는 잔인한 불빛들이 내리쬐었다. 빛 속에서 지훈의 검은 실루엣이 선명하게 노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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