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잡았다, 이 새끼야."

낮게 깔린 지훈의 목소리가 민수현의 귓전을 날카롭게 긁었다.

민수현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잘게 흔들렸다. 지훈의 목덜미를 움켜쥔 그의 손가락끝이 파르르 떨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이 그의 척수를 타고 빠르게 기어올랐다. 민수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왼쪽 손목으로 시선을 내렸다.

극도의 불안과 초조함을 느낄 때마다 제어할 수 없이 튀어나오던 버릇. 손가락 끝으로 왼쪽 손목의 은색 커프스단추를 신경질적으로 만지작거리는 미세한 운동 틱 장애. 지훈은 그 사소한 움직임의 주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하고 있었다. 민수현이 거짓을 꾸며내고 알리바이를 조작하려 할 때마다 커프스단추를 만지는 빈도가 1.2초 간격으로 좁혀진다는 사실을, 지훈은 이미 간파한 지 오래였다.

"너, 설마……."

민수현이 굳어버린 입술 사이로 신음 같은 말을 뱉었다.

그 순간, 심문실 천장 구석의 어둠 속에 교묘하게 은닉되어 있던 초소형 카메라가 파란색 불빛을 깜빡였다. 서부경찰서 내부 통신망의 보안 장벽을 뚫고 들어간 해킹 프로토콜은 이미 가동을 끝마친 상태였다. 민수현이 테이블을 들이받고 지훈의 목을 조르며 쏟아낸 살인 협박, 그리고 백야회의 추악한 불법 생체 실험에 대한 자백은 단 1초의 지연도 없이 대한민국 주요 언론사의 사회부 기자단 단체 대화방과 구독자 수백만의 시사 스트리밍 채널로 실시간 송출되었다.

"이게…… 무슨 짓거리야!"

민수현이 기겁하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일시에 가셨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자신의 설계가, 지훈이 파놓은 더 거대하고 정교한 함정에 통째로 삼켜졌음을 깨달은 자의 절망이었다.

쾅!

심문실의 철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한태성을 선두로 한 서부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민수현! 현 시간부로 협박 및 폭행, 그리고 불법 생체 실험 교사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태성의 굵직한 목소리가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형사들이 민수현의 팔을 뒤로 꺾어 제압하자, 그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비명을 질렀다.

"이거 놔! 내가 누군지 알아? 백선우 대표님이 너희 같은 삼류 견찰 새끼들을 가만둘 것 같아? 강지훈! 네놈이 날 감히……!"

민수현이 바닥에 짓눌린 채 바둥거렸으나, 형사들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수사 1과 형사들은 겉으로는 지훈을 추격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백야회의 숨통을 끊을 결정적 순간을 기다려온 이들이었다. 태성은 민수현에게 수갑을 채우며 지훈을 향해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는, 그리고 고맙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그러나 지훈은 그 신호에 응답할 수 없었다.

"아…… 윽!"

머릿속을 송곳으로 후벼 파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몰려왔다. 시야가 온통 푸른색 노이즈로 뒤덮였다.

징- 징- 징-

지훈의 시야각 우측 하단에 푸른색 3D 홀로그램 경로들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민수현의 동선과 심리 궤적을 연산하기 위해 뇌의 가용 영역을 극한까지 끌어다 쓴 부작용이었다. 뇌세포가 타들어가는 서늘한 감각과 함께, 시야 구석에 노이즈처럼 깜빡이는 문자가 보였다.

[User-designed 1092]

초록색으로 빛나는 그 디버깅 태그를 보는 순간, 지훈의 척추를 타고 차가운 전율이 흘렀다. '1092.' 그것은 지훈 자신의 옛 경찰 군번 조합이었다. 타인이 이식한 저주이자 족쇄인 줄만 알았던 이 괴물 같은 '범죄 설계도' 시스템이, 실은 과거의 자기 자신이 직접 프로그래밍하고 이식한 자해형 덫의 핵심 코드였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깨달음의 대가는 가혹했다.

머릿속에서 소중한 기억의 파편들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기억의 방에 불을 지르고 쓸어 담는 듯한 상실감. 지훈의 눈동자에서 온기가 빠르게 증발했다. 감정이 지워진 자리에 오직 냉혹한 기계적 논리만이 들어찼다.

"강 형사님! 정신 차리세요!"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온 한 여성이 지훈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얗고 가녀린 손가락, 극도로 긴장했을 때 안경테 가운데를 치켜올리는 버릇을 가진 여자. 정신분석의 서은우였다.

지훈은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차갑고 텅 빈 눈빛이었다.

"……당신은 누구지?"

지훈의 입에서 나온 건 건조하고 낯선 음성이었다.

은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지훈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충격이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훈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설계도의 과도한 연산 비용으로 인해 자아를 유지해 주던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기억들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대로 둔다면 지훈은 오직 논리와 살의만 남은 괴물로 완성될 터였다.

"지훈 씨, 제 말 들려요? 나예요. 서은우라고요!"

그녀가 지훈의 뺨을 감싸 쥐었지만, 지훈의 눈에는 그 어떤 감정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 지훈은 그저 눈앞에 서 있는 인간의 생체 신호를 무미건조하게 분석할 뿐이었다. 심박수 분당 110회, 동공 확장, 호흡 불안정. 눈앞의 여자는 방해물인가, 아니면 제거 대상인가. 지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굽이치며 폭력성을 드러내려 했다.

"태성 씨! 빨리 도와줘요! 이대로 두면 지훈 씨는 정말로 자아를 잃어버려요!"

은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태성은 민수현을 형사들에게 인계한 뒤, 무거운 표정으로 지훈의 반대편 어깨를 부축했다.

"가자. 서 박사가 말한 그곳으로."

* * *

서울 외곽의 한적한 숲속에 자리 잡은 은우의 개인 연구소이자 비밀 치료실. 사방이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방 안에는 오직 단 하나의 핀조명만이 지훈의 머리 위를 비추고 있었다. 실내의 온도는 낮았고, 명도는 어두웠다. 서늘하고 가라앉은 공기가 방 안을 지배했다.

지훈은 가죽 의자에 결박된 채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뇌는 여전히 폭주 중이었다. 푸른색 홀로그램 연산선들이 눈앞에서 끊임없이 얽히고설키며 그의 자아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지훈 씨, 내 목소리에 집중해요."

은우가 지훈의 주위에 뇌파 측정 센서를 부착하며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녀의 손끝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훈을 살려야 한다는 집념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당신의 뇌 심부에 강제로 억압된 우회 경로를 활성화할 거예요. 당신이 스스로 설계한 'User-designed 1092' 프로토콜에는 자아가 완전히 붕괴하기 직전, 최후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을 거예요. 당신은 결코 괴물이 되기 위해 이 덫을 놓은 게 아니니까."

은우는 신경 안정제를 지훈의 정맥에 조심스럽게 주사했다. 차가운 약물이 튜브를 타고 지훈의 팔뚝으로 흘러들어갔다.

"정신 분리 요법을 시작합니다. 지훈 씨, 눈을 감고 내 목소리의 궤적을 따라오세요."

지훈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어둠. 칠흑 같은 심연 속에서 지훈은 홀로 서 있었다. 사방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의 데이터 스트림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 폭풍의 중심에서, 지훈은 자기 자신과 마주했다. 거울처럼 마주 선 또 다른 강지훈. 하지만 그 거울 속의 지훈은 피칠갑을 한 채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네가 정말로 그를 죽이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어? 네 안의 분노를 기억하잖아. 넌 원래 괴물이야.'

내면의 폭력성이 형상화된 거울 속 자아가 지훈의 귓가에 속삭였다. 극심한 자기의심이 파도처럼 밀려와 지훈의 영혼을 잠식하려 했다. '내가 진짜 죽인 건 아닐까.' 아르카디아 요양원에서 마주했던 피비린내 나는 현장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 어둠을 뚫고 은우의 목소리가 에코처럼 울려 퍼졌다.

"기억해요, 지훈 씨. 당신이 형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날을.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은우의 목소리는 단순한 청각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훈의 뇌 심부에 새겨진 원초적인 정의의 기억 조각들을 자극하는 파동이었다.

지훈의 머릿속에서 희미한 빛이 번쩍였다. 비가 내리던 날, 진흙탕 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아주던 온기. 자신을 형사의 길로 이끌어 주었으나 끝내 백야회의 음모에 희생되었던 은사의 따뜻한 잔소리. 그리고…… 낙엽이 흩날리던 어느 가을날, 서부경찰서 뒤편 공원에서 은우와 나누었던 대화.

'지훈 씨, 만약 이 수사 끝에 당신이 모든 걸 잃게 된다면요?' '상관없습니다. 내 기억이 다 타버려서 재가 된다 해도, 그놈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까 서 박사님, 내가 나를 잃어버리거든…… 반드시 나를 깨워주십시오.'

그것은 약속이었다. 과거의 강지훈이 스스로 기억을 지우기 직전, 서은우라는 인간에게 맡겨두었던 유일한 열쇠였다.

"지훈 씨! 제발 돌아와요! 으으윽……!"

은우의 목소리에 물기가 젖어들었다. 사력을 다한 오열이 치료실의 적막을 깨트렸다. 그녀는 지훈의 차가운 손을 꼭 쥔 채, 자신의 체온을 전달하려 애썼다.

그 순간, 지훈의 뇌파 그래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붉게 타오르던 경고등이 서서히 진정되며 녹색의 안정적인 파형으로 돌아왔다. 푸른색 설계도 홀로그램의 폭주가 멈추고, 'User-designed 1092' 태그가 부드러운 빛을 내며 지훈의 의식 깊은 곳으로 융합되었다.

스스로가 파놓은 잔혹한 시련의 덫을, 지훈은 마침내 제 힘으로 돌파해 냈다.

스윽.

지훈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기계적인 냉혹함이나 살귀의 광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쓸쓸하지만 깊고, 인간적인 정의감으로 가득 찬 형사 강지훈의 눈빛이었다.

"서 박사님."

낮고 차분한 목소리.

은우가 눈물이 고인 눈으로 고개를 들어 지훈을 바라보았다. 지훈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가볍게 쥐어 주었다.

"낙엽이 많이 지던 날이었죠. 내가 했던 약속,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지훈 씨……!"

은우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지훈은 비로소 자신이 괴물이 아닌, 인간 강지훈으로 돌아왔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자아의 주도권을 완벽하게 복원해 낸 감동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안도의 순간은 길지 않았다.

지훈의 머릿속 한구석에서,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단어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강민우.' 아르카디아 요양원 VIP 명부에서 보았던 그 이름. 백선우가 비밀리에 기억 주입 및 삭감 임상 실험을 실행하던 실험체이자, 지훈이 과거에 그토록 구하고자 했던 핵심 동료의 가명이었다. 백야회의 잔혹성은 여전히 아르카디아의 어두운 지하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꿈틀대고 있었다.

지잉- 지잉-

치료실 구석에 놓여 있던 태성의 대포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지훈은 결박을 풀고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 지훈아, 정신이 좀 드냐?

수화기 너머 태성의 목소리는 극도로 긴박해 보였다. 주변에서 사이렌 소리와 무전기 소음이 어지럽게 뒤섞여 들려왔다.

"태성 형. 무슨 일입니까?"

-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민수현이 생중계로 폭로당하자 백선우가 꼬리를 자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어. 방금 우리 강력팀에서 백선우의 은밀한 보관 기지 중 하나를 찾아냈다.

지훈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어디입니까?"

- 도심 외곽에 있는 폐쇄된 주차 타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백선우가 보낸 살인 청부 저격 저항 병력들이 그 주차 타워로 조직적으로 집결 중이라는 첩보가 들어왔다. 놈들이 보관 기지 안의 증거물들을 통째로 소각하고 탈출하려는 모양이야.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거친 호흡 소리가 상황의 위험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지훈은 천천히 자신의 왼쪽 어깨를 돌려보았다. 여전히 통증이 남아 있었지만, 뼈가 맞춰진 어깨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의자 옆에 놓아둔 가죽 재킷을 걸쳐 입으며 허리춤의 권총을 확인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그리로 가겠습니다."

지훈이 은우를 바라보았다. 은우는 걱정스러운 눈빛이었지만, 이내 굳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훈의 무사 귀환을 기도했다.

주차 타워에 몰려드는 의문의 저격 병력들, 그리고 그곳에 숨겨진 백야회의 마지막 증거. 지훈은 다시 한번 사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