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빗줄기가 대지를 난타하는 소리는 흡사 수만 마리의 군마가 질주하는 듯 격렬했다.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뿌려지던 그 찰나, 마을 어귀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 기괴한 마찰음이 섞여 들었다. 삐걱거리는 수레바퀴 소리였다. 무림맹 소속 청운 검객 열 명이 처참하게 베인 채 수레에 실려 표국 정문으로 돌진해 들어왔다. 빗물에 씻겨 내린 붉은 피가 수레 밑바닥으로 폭포처럼 흘러내리며 표국의 진흙 마당을 적셨다.

"이, 이게 무슨……!"

독안매의 외눈이 크게 흔들렸다. 먹구름을 뚫고 내리친 번갯불이 수레 위를 하얗게 비추었다. 가슴팍이 통째로 함몰되고 목뼈가 꺾인 청운검객들의 시신은 방금 전까지 무림맹의 정예라 불리던 자들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몰골이었다.

"맹의 사냥개들이 사냥을 감행하기도 전에 시체가 되어 돌아왔구나."

혁린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신검 천뢰(天雷)가 낮게 웅웅거렸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색 전율이 빗방울을 닿기도 전에 증발시키며 하얀 김을 피워 올렸다.

"크하하핫! 겉껍데기만 요란한 풋내기 놈들이 죽은 게 무슨 대수냐! 진짜 사냥은 지금부터다!"

독안매가 가느다란 철사 줄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백소진의 목덜미를 휘감은 철사가 살을 파고들며 붉은 선을 그렸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으나, 혁린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린아! 나 신경 쓰지 말고 저 개자식들의 목을 베어 버려! 용호표국은 비굴하게 구걸하며 살지 않는다!"

"시끄럽다, 계집!"

독안매가 손목을 까딱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덜컹거리며 마당 한가운데 멈춰 섰던 수레의 밑바닥이 돌연 폭발하듯 부서져 내렸다. 시체들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검은 장포의 무인들이 귀곡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무림맹 철혈조 중에서도 가장 잔학무도하기로 악명 높은 극렬 소대원들이었다.

그들의 칼날이 향한 곳은 혁린이 아니었다. 표국 처마 밑, 공포에 질려 서로를 껴안고 있던 늙은 장인들과 식솔들이었다.

"전부 도륙해라! 맹의 권위에 도전한 대가가 무엇인지 뼛속까지 새겨 주마!"

살수들의 신형이 빗줄기를 가르며 찰나의 순간 표국의 식솔들에게 육박했다. 늙은 대장장이와 마부들의 얼굴에 짙은 절망이 드리워졌다. 검풍이 그들의 목덜미를 쓸고 지나가기 직전이었다.

혁린의 안광이 번뜩였다.

가슴팍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던 붉은 검무늬가 기괴한 진동을 일으켰다. 심장을 옥죄는 극심한 통증과 함께, 뇌신무예의 기예가 그의 무맥을 타고 폭풍처럼 몰아쳤다.

'뇌신무예 1성.'

그의 발끝이 지면을 가볍게 스쳤다. 하지만 그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진흙바닥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뇌정섬(雷霆閃)!'

콰르릉-!

하늘의 벼락이 지상으로 내려앉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색의 광선이 표국 마당을 가로질렀다. 빛은 소리보다 빨랐다. 살수들이 미처 병기를 휘두르기도 전에, 그들의 시야가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서걱!

허공을 가르는 단 한 번의 횡참.

다섯 명의 살수들이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채 바닥으로 추락했다. 잘려 나간 단면은 뇌전의 고열에 타들어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검게 그을려 있었다.

"뭐, 뭐라고……?"

남은 다섯 명의 살수들이 경악하며 급히 합격진(合擊陣)을 펼치려 발을 디뎠다. 무림맹이 자랑하는 소상진법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가동되려던 찰나였다.

파지직! 파직!

혁린은 그들에게 한 걸음도 다가서지 않았다. 그저 손에 쥔 천뢰를 허공에 가볍게 털었을 뿐이었다.

검끝에서 분출된 자색의 뇌전 줄기가 열 갈래로 흉포하게 쪼개지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살수들의 방어 기세를 가차 없이 뚫고 들어갔다.

콰드득! 콰직!

"커헉!"

합격진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자색 전율이 다섯 살수의 목뼈를 정확히 관통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신형이 허수아비처럼 꺾이며 진흙바닥에 처박혔다. 단 한 호흡. 무림맹의 정예 살수 열 명이 흔적도 없이 소멸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한 호흡에 불과했다.

"이, 미친 괴물 놈이……!"

독안매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백소진의 목을 조르려 철사를 당겼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사방을 가득 채운 무시무시한 뇌전의 기압이 그의 전신을 납덩이처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공도가 보낸 사냥개가 고작 이 정도냐."

혁린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빗방울이 그의 어깨에 닿기 전에 증발하여 하얀 안개개 되어 사방을 메웠다. 그 안개 속에서 자색으로 빛나는 혁린의 두 눈동자는 마치 저승의 염라대왕을 연상케 했다.

그때, 표국 지붕 위의 어둠이 기괴하게 일렁였다.

스스스스.

빗소리마저 삼켜 버리는 서늘한 바람이 일더니, 칠흑 같은 장포를 입은 사내가 독안매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검신이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공도가 은밀히 심어둔 죽음의 사도, 사풍검(邪風劍)이었다.

"과연 뇌신의 검이군. 하지만 제아무리 신검이라 한들, 쓰는 자가 삼류 표사라면 그 위력에도 한계가 있는 법."

사풍검의 목소리는 쇠를 긁는 듯 기괴했다. 그의 신형이 허공에서 세 갈래의 환영으로 갈라지며 혁린의 급소를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스화아아악!

바람을 찢는 예리한 검풍이 혁린의 안면을 향해 몰아쳤다. 사풍검의 절기, 삼풍살(三風殺)이었다. 세 개의 검끝이 각각 혁린의 인중, 심장, 그리고 단전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쾌검의 극의였다.

하지만 혁린의 눈에는 그 모든 움직임이 둔탁하고 느리게 보였다. 뇌신무예로 각성한 그의 감각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죽는 것은 너다."

혁린이 천뢰를 수직으로 치켜올렸다.

쿠구구궁!

하늘의 먹구름이 소용돌이치며 천뢰의 검끝으로 번개를 내리꽂았다. 신검과 하늘의 뇌전이 공명하는 순간, 가공할 만한 파괴력이 주변의 대기를 송두리째 찢어발겼다.

"뇌신무예 1성, 뇌정벽력(雷霆霹靂)!"

지이이이잉-!

수 만 마리의 매매가 동시에 우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자색의 광풍이 사풍검의 환영들을 단숨에 지워 버렸다. 실체로 드러난 사풍검의 검날이 천뢰와 부딪치는 순간, 고대의 철로 만들어진 그의 검은 장난감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끄아아악!"

사풍검의 비명은 길지 않았다.

천뢰의 검날이 그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다.

스윽.

피 한 방울 튀지 않는 깔끔한 참수였다. 사풍검의 머리가 허공으로 높게 치솟았다가, 독안매의 발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단 두 초식 만에 무림맹의 일류 고수가 목이 잘린 것이다.

혁린은 바닥에 뒹구는 사풍검의 머리를 천뢰의 검끝으로 가볍게 차 올렸다. 머리는 정확히 표국 정문 앞에 세워진 돌제단 위에 안착했다.

"무림맹에 전해라."

혁린이 독안매를 내려다보며 준엄하게 선포했다.

"이곳 용호표국은 더 이상 무림맹의 사냥터가 아니다. 한 발짝이라도 이 선을 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제단의 제물이 될 것이다."

독안매는 사풍검의 잘려 나간 머리와 혁린의 서늘한 안광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빨을 딱딱 마주쳤다. 평생 수많은 살육을 저질러 온 그였지만, 눈앞의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무력과 살기는 감당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는 백소진의 목에 걸었던 철사를 황급히 거두며 뒤편으로 볼품없이 나자빠졌다.

"이, 이 괴물 놈…… 맹주께서 결코 너를 용서치 않으실 것이다!"

독안매는 비틀거리며 표국 담장 너머로 몸을 날려 도망쳤다. 혁린은 그를 굳이 쫓지 않았다. 겁에 질린 사냥개 한 마리를 살려 보내 무림맹에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르릉.

천뢰가 검집으로 들어가자, 사방을 가득 채웠던 자색의 뇌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으, 으아아……."

"우리가 살았다! 살았어!"

표국 처마 밑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늙은 장인들과 식솔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문당하고 도륙당할 위기에서 극적으로 구제된 이들의 얼굴에는 깊은 감복과 안도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 순간, 혁린의 가슴 깊은 곳에서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다.

화끈거리며 심장을 찌르던 극심한 통증, 즉 천뢰를 쓸 때마다 쌓이던 수명의 저주인 '뇌적(雷積)'의 기운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두근. 두근.

가슴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검고 붉은 불꽃 모양의 검무늬가 파르스름한 빛을 띠며 눈에 띄게 옅어졌다.

'약자 구원을 통한 인과적 채무의 탕감.'

뇌령이 가슴속에서 차갑게 속삭이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 흐흐흐, 가증스러운 인간의 감정이 이토록 무거운 천벌을 정화하다니. 제법이구나, 혁린. 하지만 잊지 마라. 이 정화는 일시적인 방편일 뿐, 네가 걸어갈 피의 길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혁린은 뇌령의 조소를 무시하며 가슴의 검무늬를 손으로 짚었다. 타들어 가던 무맥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내력의 흐름이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고 견고해진 것이 느껴졌다. 뇌신무예의 기틀이 비로소 그의 몸에 완전히 안착한 것이다.

"린아."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백소진이었다. 그녀는 평소의 괄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조금은 낯설고 두려운 눈빛으로 혁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 그가 보여준 힘은 평범한 삼류 표사의 그것이 아니었기에, 그녀 역시 심연을 마주한 듯한 경외감을 느낀 것이리라.

하지만 그녀는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제 어깨에 걸치고 있던 낡은 무명 겉옷을 벗어 혁린에게 다가왔다.

스윽.

따뜻한 온기가 혁린의 피와 번개로 얼룩진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바보같이…… 피는 왜 이렇게 묻히고 서 있어. 춥지도 않냐?"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가에는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액체가 맺혀 있었지만, 거칠게 잔소리를 뱉는 말투만큼은 여전했다.

혁린은 그녀가 건넨 겉옷의 자락을 꽉 쥐었다. 타인을 불신하고 고립을 자처하던 그의 차가운 마음에, 작지만 묵직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때였다.

스아아아아-!

빗줄기가 돌연 사선으로 꺾이며, 표국 마당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단순한 자연의 변화가 아니었다. 공간 자체를 짓누르는 압도적인 무형의 기세였다.

사방의 이목이 표국 담벼락 위로 향했다.

그곳, 빗물이 흘러내리는 청기와 위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한 자루 청강검을 검집째 왼손에 쥔 채,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사내.

제갈휘였다.

그는 서늘하고도 깊은 눈매로 마당에 널브러진 무림맹 살수들의 시신과 제단 위의 사풍검의 머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짙은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스윽.

제갈휘가 청기와 위에서 허공으로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가 지면에 발을 디디는 순간.

쿵-!

지진이 일어난 듯, 표국 대지 전체가 묵직한 진동과 함께 아래로 가라앉았다. 대기를 압도하는 그의 무거운 검의(劍意)가 혁린의 전신을 정면으로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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